미국측이 다시 특사를 보내겠다면 일관한 립장에서 대할것이다/조선외무성대변인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은 조미대화문제와 관련하여 26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미국에서 부쉬행정부가 출현한 이후 조미대화는 지금까지 중단된 상태에 있다.
 얼마전에 미국이 조미대화재개 립장을 설명하기 위해 특사를 평양에 보내겠다고 제기해 온데 대하여 우리가 동의를 준바 있다.
 미국이 특사로 누구를 보내는가 하는것은 그들자신의 일이다.
 서해사건 이후 특사파견이 취소되였지만 앞으로 조건이 마련되여 미국측이 다시 특사를 보내겠다면 우리는 일관한 립장에서 대할것이다.(끝)


공화국정부는 <요도>호 관계자들의 귀국문제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외무성대변인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은 최근 <요도>호 관계자들이 귀국의사를 표명한것과 관련하여 26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얼마전에 <요도>호 관계자전원이 그들스스로가 주동적으로 귀국성명을 발표하고 필요한 문건수속들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일본안에서는 그 문제를 가지고 마치도 우리가 의도적으로 취한 조치인것처럼 몰아 붙이려고 하는것과 같은 아주 괴이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요도>호 관계자들이 일본으로 돌아 가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철저히 그들자체가 결심할 문제로서 공화국정부는 그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
 <요도>호 랍치사건발생전말이 어떻든간에 일본인들이 제 나라 땅으로 되돌아 가겠다는데 대해 우리로서는 구태여 막아 나설 필요가 없으며 그들의 귀국문제는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의사와 요구에 따라 타당하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을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측은 <요도>호 관계자들의 귀국의사가 발표되자마자 때를 만난듯이 그것을 우리와 결부시키면서 <미국으로부터 테로모자를 벗기 위한 조치>라느니 뭐니 하는 따위의 허황한 소리까지 내돌리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테로>모자를 씌우든 벗기든 크게 상관할바가 아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차례 강조한바 있다.
 일본당국이 <요도>호 관계자들의 귀국문제를 이런 식으로 끌고 가면 결국 얻을것이란 아무것도 없을것이며 오히려 복잡한 사태만을 초래하게 될것이다.(끝)


리비아 가다피대좌가 꽃바구니와 축전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조국해방전쟁승리 49돐에 즈음하여 대리비아아랍사회주의인민공동체 위대한 9월1일혁명의 지도자 모아메르 엘 가다피대좌가 꽃바구니와 축전을 보내여 왔다.
 꽃바구니와 축전을 조선주재 대리비아아랍사회주의인민공동체 인민사무소 림시대리비서 마흐무드 마쑤우드 아미르가 25일 해당 부문 일군에게 전달하였다.(끝)


선군정치의 위대성에 대한 인민무력부 연구토론회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선군정치의 위대성에 대한 인민무력부 연구토론회가 25일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되였다.
 토론회에서 출연자들은 선군정치는 정치리념으로부터 정치체제와 내용,인류자주위업과 시대발전에 미친 영향력에 있어서 그 어느 정치방식과도 대비할수 없는 독창적이며 완성된 사회주의정치방식으로 된다고 말하였다.
 혁명적인 총대철학에 기초한 선군정치가 정치와 군사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혁명군대의 선도적이며 결정적인 역할에 의거하여 사회주의붉은기를 굳건히 고수하고 언제나 백전백승을 이룩할수 있게 하는 만능의 보검이라는데 대하여 출연자들은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론증하였다.
 그들은 선군정치의 불패의 생활력은 조선로동당과 군대,인민이 가장 엄혹한 시련속에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고 우리 식 사회주의를 수호하였으며 겹쌓인 난관을 이겨 내고 강성대국건설의 활로를 열어 놓은데서 힘 있게 과시되였다고 지적하였다.
 선군정치가 전략적인 정치방식으로 되는것은 제국주의의 침략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위업을 굳건히 수호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한 사상적요새와 물질적요새를 성과적으로 점령할수 있게 하기때문이라고 출연자들은 말하였다.
 조선인민군 조명록총정치국장,김일철인민무력부장 등 인민무력부 책임일군들이 토론회에 참가하였다.(끝)


전승절기념 행사들 진행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49돐경축 조선인민군협주단 음악무용종합공연 <승리자의 노래>가 25일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되였다.
 출연자들은 혼성소합창 <김일성대원수 만만세>,남성독창과 남성방창 <전호속의 나의 노래>,무용 <포항의 용사들> 등에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밑에 제국주의련합세력을 격파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영예롭게 수호한 영웅적조선인민군과 우리 인민의 자랑찬 위훈을 훌륭히 형상하였다.
 공연무대에는 경애하는 김정일최고사령관의 선군혁명령도 따라 그 어떤 침략자도 추호의 용서없이 일격에 격멸소탕하며 강성대국건설위업과 조국통일을 앞당겨 나갈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신념과 멸적의 기상을 과시하는 종목들도 올랐다.
 이날 조선인민군교예단 예술인들의 경축공연도 있었다.
 한편 25일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49돐경축 농업근로자들의 무대 <1950년대의 투쟁정신으로 위대한 장군님을 쌀로써 결사옹위하리라>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교양마당에서 진행되였다.(끝)


반미공동투쟁월간에 즈음하여 다양한 사업 진행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에서 6.25-7.27반미공동투쟁월간에 즈음하여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6.25미제반대투쟁의 날> 군중대회가 각지에서 진행되였다.
 대회들에서 연설자들은 지금으로부터 52년전 미제가 도발한 조선전쟁은 철두철미 조선을 영원히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침략전쟁이였으며 야수적인 인간살륙전쟁이였다고 한결같이 말하였다.
 연설자들은 조선인민에게 반세기이상이나 국토분렬의 비극을 강요하고 있는 미제의 죄행을 단죄규탄하고 만약 그들이 조선에서 새 전쟁을 도발한다면 천백배로 복수하고야 말 결의들을 표명하였다.
 각지의 영화상영단위들에서는 기록영화 <조국해방전쟁>,<미제는 조선인민의 피 맺힌 원쑤>,예술영화 <1211고지 방위자들>,<월미도>,<돌아 설수 없다>,<명령만 내리시라> 등을 상영하고 있다.
 그리고 신천군 원암리 밤나무골과 <셔먼>호격침기념비를 비롯하여 미제의 죄악을 폭로하여 주는 곳마다에서 군인들과 청년들,학생들의 복수결의모임,시랑송모임 등 여러가지 형식의 모임들이 벌어 지고 있다.
 또한 전쟁영웅들과 로병들,미제의 만행에 의한 피해자들과의 상봉모임 등 반미의식을 높여 주기 위한 사업들도 적극 진행되고 있다.
 미제의 조선전쟁참패를 보여 주는 선전화 <미제는 수치스러운 과거를 잊지 말라>도 새로 창작되였다.(끝)


계급교양관이 평양에 새로 꾸려 졌다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을 맞으며 계급교양관이 수도 평양에 새로 꾸려 졌다.
 서성구역 련못동에 위치한 계급교양관은 6개의 교양편으로 되여 있다.
 여기에는 미,일제국주의자들과 계급적원쑤들의 죄행을 폭로하는 2,070여점의 사진,자료,증거물들이 년대순으로 전시되여 있다.
 전시품들은 미제와 일제가 조선에 침략의 발을 들여 놓은 첫시기부터 저지른 범죄적만행 등을 보여 주고 있다.
 미국,일본,영국출판물들에 실린 제국주의자들의 조선침략과 만행에 대한 반증자료들은 참관자들의 주의를 끌고 있다.
 계급교양관은 규모와 형식,내용에 있어서 전국적으로 가장 큰 종합적인 계급교양의 위력한 거점으로 된다.(끝)


계급교양주제의 선전화들 창작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최근 조선의 종합적인 미술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에서 6.25-7.27반미공동투쟁월간에 즈음하여 30여점의 계급교양주제의 선전화들을 내놓았다.
 선전화들은 조선인민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 준 미일제국주의자들의 력사적죄행과 원쑤들을 복수하고야 말 군대와 인민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제국주의자들과 반통일분자들의 새전쟁도발책동을 짓부시고 민족주체적노력으로 기어이 조국통일을 이룩하려는 전체 조선동포들의 드팀 없는 신념과 념원이 반영된 선전화들도 있다.(끝)


조선주재 각국대사관 문화 및 친선관계일군들 여러 곳 참관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주재 여러 나라 대사관 문화 및 친선관계일군들이 25일 6.25-7.27반미공동투쟁월간 중앙미술전시회장을 참관하였다.
 손님들은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업적과 그 어떤 침략자도 단매에 쳐부시고야 말 조선인민군대와 인민들의 멸적의 기상과 의지를 보여 주는 미술작품들을 돌아 보았다.
 한편 이날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49돐과 꾸바인민의 7월 26일무장봉기 49돐에 즈음하여 조선주재 꾸바공화국 림시대리대사 비올레따 구드리쥐 꿀싸끄와 대사관성원들이 어은혁명사적지를 참관하였다.
 손님들은 위대한 김정일령도자께서 주체51(1962)년 이곳에서 군사야영훈련에 몸소 참가하신데 대한 해설을 들으면서 사적자료들과 사적건물들,훈련장소들을 깊은 관심속에 돌아 보았다.(끝)


구일본륙군의 수송선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는 25일 구일본륙군의 수송선 <다이헤이마루>에 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피해자의 생동한 증언과 조사결과에 기초하여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진상조사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구일본륙군의 수송선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

 지금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일본의 불미스러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는 문제가 21세기의 시대적,력사적과제로 되고 있다고 하면서 그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국제사회의 정의로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대신 오늘 이 시각까지도 저들의 범죄적과거를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 보려고 갖은 오그랑수를 다 쓰고 있다.
 일제가 패망직후인 1945년 8월 24일 조국으로 귀국하는 조선사람들을 태운 <우끼시마마루>를 교또부의 마이즈루만에서 폭파하여 침몰시킨 사건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 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한해전인 1944년 7월 9일에 꾸릴렬도앞바다에서 구일본륙군의 수송선 <다이헤이마루>가 폭파침몰되여 거기에 타던 무고한 조선사람들이 단꺼번에 무리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는 최근에 해당 기관의 방조를 받으며 <다이헤이마루>에 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피해자를 찾아 냈으며 그의 생동한 증언과 조사결과에 기초하여 전후 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 력사의 흑막속에 묻혀 있던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한다.

   1.구일본륙군 수송선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 경위

 꾸릴렬도(일본말로 치시마렬도라고 함)는 혹까이도의 동쪽끝으로부터 깜챠뜨까반도까지 약 1,200키로메터의 사이에 있는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 져 있다.
 꾸릴렬도수역은 연어와 송어를 기본으로 하는 북양어업의 대어장으로 널리 알려 져 있다.
 꾸릴렬도와 깜챠뜨까반도사이에 슘슈해협이 있고 미국령 알류샨렬도도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태평양전쟁말기에 바로 이 꾸릴렬도 북쪽섬들을 군사전략상 일본본토를 방위하기 위한 요충지로 간주한 일제는 이미 빠라무쉬르섬과 슘슈섬에 2개의 비행장이 건설된 상태에서 전략적위치와 안개가 짙은 이 지역의 기후조건 등을 고려하여 이곳 섬들에 7개의 비행장을 더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그 완공을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당시 이곳에는 거의나 사람이 살지 않고 있었으므로 일제는 <군속>으로 일본에 강제로 끌어 간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을 옮겨 놓는 방법으로 군사기지건설에 필요한 로동력을 충당하려 하였다.
 일제는 대미방어작전에 필요한 군대 및 군수물자와 함께 군사기지건설에 동원시킬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을 혼슈에서 끌어 가기 위하여 일반선박들을 수송선으로 개조하여 리용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에서 출판된 도서 <전쟁력사총서,북동방면륙군작전>에는 <중남부태평양방면의 전쟁상황은 긴박하고 우리 나라의 보유선박도 부족한 상태에 있었지만 대본영은 치시마렬도방면에 대한 군대 및 군수품수송에 선박을 우선적으로 배당하는 조치를 취하였다.>고 씌여 져 있다.
 <다이헤이마루>는 일본 다이요해운주식회사에서 건조된 6,284톤급선박이였는데 그때 꾸릴렬도에 건설되는 군사기지에 조선인강제련행자들과 군수물자들을 수송하는데 동원되였다가 미군의 어뢰에 맞아 침몰되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출판물 <전시선박력사>에는 <다이헤이마루가 1944년 7월 5일 14시 오따루출항,빠라무쉬르섬을 향하여 항행도중 9일 9시 53분 오른쪽 배전에 어뢰를 맞아 회피,이어 1분후에 또다시 어뢰 한발이 오른쪽 배전의 갑판밑을,두번째 어뢰가 제일 명중,침수되여 선체가 즉시 오른쪽 배전으로 25도로 기울어 져 침몰되여 가므로 10시 05분 총 인원에게 퇴선명령이 내려짐.10시 45분에 고물이 수직으로 되여 전몰,승선한 제91사단관계 군인들 등 1,812명중 902명과 선원 54명 전사.침몰위치:N(북위)5123,E(동경)15548>이라고 기록되여 있다.
 바로 이 <다이헤이마루>에 일제에 의하여 강원도와 황해도에서 끌려 간 1,000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이 타고 있었는데 배가 침몰되는 바람에 그중 600여명이 단꺼번에 수장되여 무주고혼이 되고 말았다.

   2.<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은 조선청장년들에 대한 일제의 강제련행,강제로동범죄의 산물

 일제는 패전말기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을 일본에 강제로 끌어 가 일본본토를 방어할 목적으로 건설하는 군사기지공사에 내몰았다.
 이에 대하여 강제련행당시 강원도 양구군에서 살고 있던 피해자 황종수(76살)는 <1944년 5월 15일에 나는 징용장을 받게 되였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는 면서기가 우리집까지 찾아 와 나를 면사무소로 끌고 갔다.
 우리는 거기에서 다시 양구군사무소로 끌려 가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튿날 군사무소 서기 2명과 경찰 45명이 우리를 춘천역으로 데리고 갔다.
 춘천역에는 이미 강원도의 회양,양구,린제,원주 등지에서 500여명의 청장년들이 끌려 와 있었다.
 우리는 춘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을 거쳐 저녁에 부산에 도착하였다.부산에서부터는 일본군 중좌가 인솔하였는데 일본군의 감시속에 관부련락선에 옮겨 탄 우리는 아오모리와 하꼬다떼를 거쳐 오따루에 도착하게 되였다>고 증언하였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혹까이도 오따루에는 강원도에서 끌려 간 500여명외에 황해도에서도 500여명의 청장년들이 끌려 와 있었다고 한다.
 일제는 그들에게 낡은 군복과 군모를 주면서 <군속>으로서 <황군>을 위해 복무할것을 강요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해자 전금돌(80살)은 <나는 일본군 상관으로부터 너희들은 오늘부터 륙군군속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하였다.
 일제는 이렇게 일본에 강제로 끌어 간 1,000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강원도와 황해도의 두개 중대로 갈라 놓고 중대안에 소대와 분대까지 조직하고는 군사체계안에서 그들을 마소처럼 부려 먹었다.
 일제는 조선청장년들을 오따루의 산간지대에서 군사기지건설에 내몰았다.
 피해자 황종수는 <일제는 오따루에 도착한 우리를 낡은 창고에 가두어 넣었다.숙소 주변은 3메터높이정도의 울타리로 막혀 있었고 울타리우에는 철조망까지 설치되여 있었으며 34군데의 출입구에 보초소가 있었다.우리는 여기에서 일본군대의 감시하에 군사기지기초공사에 동원되였는데 이 공사장에서 붕락사고로 린제에서 끌려 간 우리 동료 4명이 희생되였다.
 1944년 7월 어느 날 갑자기 비상소집을 일으킨 일제는 너희들은 이제부터 화태(싸할린)에 가게 되였다고 하면서 여기에서 일하던 1,000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수송선 다이헤이마루에 태우고 옴짝달싹 못하게 밖으로 자물쇠까지 채워 놓았다>고 증언하였다.
 그때 이 배에는 수많은 조선청장년들과 함께 혹까이도 아사히가와에서 편성된 구일본군 제91사단 수송대의 군인 288명과 보충군인들도 탔으며 각종 군수물자와 건설자재,식량 등도 적재되였다.
 이에 대하여 당시 구일본군 제91사단 수송대 군속으로 복무하였던 이마무라 에이조는 <이 배에는 조선인군속과 수송대외에 보충군인 50∼60명이 있었다.촬영기재를 가진 종군기자도 있었다.우리들에게는 겨울군복이 공급되였지만 조선사람들에게는 여름군복이 차례졌다>고 하면서 <다이헤이마루의 선창은 화물자동차 35대와 대량의 세멘트와 철근,식량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1944년 7월 5일에 오따루를 출항한 <다이헤이마루>는 싸할린으로 향한것이 아니라 꾸릴렬도의 빠라무쉬르섬으로 향하였다.
 꾸릴렬도주변의 바다물온도는 한여름이라고 해도 4도정도로서 매우 차거웠다.
 일제는 승선하기에 앞서 조선청장년들에게 비상시에 입을 똑똑한 구명복 하나 제대로 주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당시 수송대에 입대한 쯔다 류겐은 <아라이도앞바다전투>라는 수기에서 <나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구명복가운데서 제일 새롭고 말쑥한것을 장교인원수만큼 선별하였다.다음에 병사인원수만큼 비교적 새것이면서도 손상가지 않은것을 골라 내고 남은것을 징용된 조선인군속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썼다.
 피해자 황종수는 <다이헤이마루의 밑창에는 각종 군수물자가 가득 적재되여 있었고 그 우에는 조선청장년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사람이 겨우 앉을수 있을 정도로 칸을 여러개 만들어 놓았으며 천정구멍으로 사람들이 출입할수 있게 되여 있었다.
 그러니 옆이나 밑창이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무리로 죽을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배였다.이 한가지 사실만을 놓고 보더라도 일제가 조선사람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증언하였다.
 1944년 7월 9일 오전에 <다이헤이마루>는 항행도중에 미군잠수함에서 발사된 2발의 어뢰에 맞아 침몰되여 그 배에 탕던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무리로 수장되게 되였다.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해자 황종수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갑자기 긴급신호종이 2번 울리더니 꽝,꽝하는 폭음과 동시에 바다물이 배안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이제는 꼼짝못하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이대로 죽기는 원통하다,어떻게 하나 살아서 고향에 돌아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주위를 살펴 보았다.
 하지만 화약연기때문에 앞을 가려 볼수가 없었고 사람들이 비좁은 출입문으로 저저마다 먼저 나가겠다고 덤비는 바람에 빨리 빠져 나갈수도 없었다.
 나는 겨우 빠져 나갈수 있는 구멍을 찾고 그곳을 통하여 사람들과 함께 배우로 빠져 나올수 있었다.
 갑판에 올라 가서 보니 머리가 깨여 져 즉사한 사람,온통 피에 젖어 있는 사람,옷을 목에 걸고 바다에 뛰여 드는 사람,배가 가라앉는데도 바줄을 잡고 버들적거리는 사람 등 그 광경은 정말 비참해서 차마 눈 뜨고 볼수 없었다.
 이때 배에 탔던 조선청장년들중 절반이상이 희생되였다.
 그날 밤에 우리는 슘슈섬에 구사일생으로 올라서야 배가 침몰될 때 655명의 조선사람들이 희생되였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것은 일제가 그곳에 655명이라고 씌여 진 무덤표시판을 만들어 놓은것을 보았기때문이다.양구군에서 나랑 함께 끌려 간 100여명의 청장년들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은 16명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군은 희생된 사람들속에서 겨우 9구의 시체밖에 건져 내지 않았는데 그 시체마저도 우리 손으로 화장하게 하였다.>
 일제는 겨우 살아 남은 조선청장년들에게 슘슈섬에서 인간이하의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피해자 황종수는 <비행장건설에서 중요한 작업은 다 일본군대가 직접 하였고 우리 조선청장년들에게는 공사에 필요한 채석,굴착작업을 강요하였다.그때 일본군대 1명이 조선청년 10명을 감독통제하였다.
 뼈도 굳지 못한 우리들은 일본놈들의 감시를 받으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고역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다.로동도구란 삽과 곡괭이,철장대같은것밖에 없었다.
 이런 로동도구를 가지고 한끼에 잡곡밥 100∼150g,대두박으로 만든 두부 2쪼박밖에 먹지 못하고 일하다나니 도저히 견디여 낼수가 없었다.일본놈들은 너무 배고파서 가만히 서 있는 우리를 보기만 하면 달려 와 구두발로 정갱이를 차고 구타 질식시키면서 행패를 부리군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노예로동을 강요 당하는 기간 그들가운데는 너무도 배가 고파서 채 익지도 않은 잣을 껍질채로 먹었다가 홍문이 막혀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었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각종 풀뿌리를 캐먹거나 나무열매를 따서 먹다가 발각되여 일본군에게 매 맞고 불구가 된 사람들도 있었으며 배고픔을 참지 못해 쥐까지 잡아 먹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제반 사실은 <다이헤이마루>에 탔던 무고한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이 희생된 사건이 전적으로 구일본정부와 군부의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과 대륙침략전쟁에 기인되는것이며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 및 강제로동이 중세기적인 노예사냥,노예로동을 훨씬 릉가한 중대한 인권유린죄라는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3.일본정부의 태도와 립장

 일본은 이처럼 엄청난 사상자를 빚어 낸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에 대하여 반세기가 넘는 긴긴세월 일언반구도 없이 침묵을 지켜 왔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세월에 일본인민이 이러한 참상을 당한다면 그들이 자기 정부에 응당 그 진상을 밝히고 그들의 유해를 찾아 유가족들에게 돌려 줄것과 응당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였을것이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이 사건을 력사의 흑막속에 묻어 왔으며 오늘까지도 그에 대한 진상을 똑똑히 밝히지 않고 있다.
 최근 일본정부는 내외여론의 강력한 항의에 못이겨 늦게나마 <아시아태평양전쟁시에 치시마에로의 조선인련행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서>라는것을 통하여 처음으로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였다.
 일본정부는 <다이헤이마루>의 침몰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볼수 있는 인원수는 902명인데 그중 조선인<군속>은 182명으로 추정된다는것과 <치시마>방면에 강제련행된 조선사람들의 수와 <치시마>해협에서 침몰된 수송선에 따른 조선인<군속>의 수는 확인할수 있는 기록을 찾지 못해 답변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구륙해군관계자료에 의하면 <치시마>방면에서 사망하였다고 볼수 있는 조선인<군속>은 708명으로 추측된다고 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답변서>에서 공개한 조선인희생자들의 수는 당시 일본에 끌려 가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을 직접 체험한 우리 강제련행,강제로동피해생존자들이 증언에서 밝힌 희생자수와 너무도 대조적인것이다.
 여러 자료들에 의하면 미군잠수함의 공격으로 1943년에 꾸릴렬도 북쪽으로 항행하는 구일본군 수송선 15척이 침몰되거나 파손되였으며 1944년 3월부터 6월사이에만 하여도 1,934명의 사망자를 낸 <니찌렌마루>의 침몰과 594명의 사망자를 낸 <후시미마루>의 침몰을 포함하여 9척의 수송선들이 바로 꾸릴렬도수역에서 격침되였다는것이 밝혀 지고 있다.
 구일본군은 이 수송선들에도 조선에서 끌어 간 수많은 청장년들을 태웠을것이고 그 수송선들의 침몰로 하여 강제련행된 조선청장년들이 수많이 수장되였다는것은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것이다.
 일본정부의 이번 <답변서>발표놀음은 철두철미 조선인피해실태를 극력 왜소화하여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사죄와 보상의무를 털어 버리고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어물쩍 넘겨 보려는 행위로밖에 달리 생각할수 없다.
 이것은 과거청산에 대한 일본정부의 그릇된 태도와 립장의 또 하나의 뚜렷한 표시로 된다.

   4.우리의 요구

 구일본국의 책임은 국가의 권리와 의무계승의 국제법적원리에 의하여 구일본국의 계승정권인 현 일본정부에 그대로 이전되고 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으로 초래된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의 희생에 대한 국가적책임을 인정하고 그 보상을 위한 실천적조치를 취하여야 할 국가적,국제법적의무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 침몰사건을 과거 구일본국에 의하여 저질러 진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과 조선인강제련행,강제로동범죄로 인하여 초래된 대량학살행위의 일환으로 인정하면서 일본정부에 다음과 같이 강력히 요구한다.
 첫째로,일본정부는 구일본륙군 수송선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규명하고 그 전모를 시급히 공개하여야 한다.
 일본정부는 이 침몰사건에서 희생된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의 총수와 명단,당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를 저지른 주모자와 범행자들의 명단 등 이 사건과 관련한 모든 문건들과 자료들을 공개하여야 한다.
 먼저 일본정부는 이미 발표한 <답변서>에서 추정된다고 하는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시 조선인희생자 182명과 꾸릴렬도방면에서 희생된 조선인피해자 708명의 명단을 지체없이 발표하고 우리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
 둘째로,일본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국가적책임을 인정하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희생된 모든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충분히 배상하여야 한다.
 셋째로,일본정부는 희생된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의 유해를 모두 찾아 그들의 고향 또는 가족들이 사는 곳에 안장하기 위한 실천적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넷째로,일본정부는 이 사건에 관여한 범행자들을 찾아 내여 책임소재에 따라 처벌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는 앞으로도 일본의 과거청산을 앞당기기 위하여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의 진보적단체,인사들과의 련대를 더욱 강화하고 <다이헤이마루>침몰사건을 비롯하여 일제에 의하여 저질러 진 조선인강제련행과 강제로동범죄에 대한 진상조사사업을 더욱 심도 있게 벌려 나갈것이다.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
주체91(2002)년 7월 25일
평 양

                                              (끝)


비전향장기수 리재룡의 첫딸에 대한 그칠새 없는 축하의 인사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한시바삐 축복이를 안아 보고 싶다>,<선군의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여 나거라>
 이것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비전향장기수 리재룡의 첫딸의 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어 주신 소식이 전해 지자 온 나라 인민들이 터치고 있는 격정의 목소리이다.
 거리와 마을,일터마다 장군님 사랑속에 태여난 축복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다.
 평양의 대중보도수단들도 축복이와 관련한 소식을 전하는데 많은 지면과 시간을 바치고 있다.
 보통강기슭에 있는 리재룡의 집을 찾은 백발의 통일애국투사들은 축복이를 서로서로 안아 보겠다고 싱갱이를 벌리기도 한다.
 명절처럼 흥성거리는 그의 집으로는 각지에서 오는 축하의 전화가 그칠새 없다.
 지난 6월 중순 아기는 평양산원에서 3,640g의 실한 몸으로 고고성을 터쳤고 산모는 10여일만에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였다.
 딸이 몸을 풀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주에서 올라 온 축복의 외할머니 상순애는 친정어머니보다 먼저 와 닿은 장군님 사랑앞에서 자기는 눈물만 흘렸다고 토로하였다.
 리재룡의 조카 리병호는 자기 가정의 마음을 합쳐 <축복은 장군님께 드립니다>라고 소리높이 웨치였다.
 축복이라는 한 애기의 이름속에 비전향장기수들과 가족들,온 나라 전체 인민들이 누리고 있는 만복이 다 깃들어 있다고 비전향장기수 리인모의 안해 김순임은 말하였다.
 김정숙탁아소 소장과 이 탁아소의 보육원들은 축복이를 맡아 키우고 싶은 자기들의 심정을 표명하고 있다.
 45살에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겨 첫 딸을 본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원 정규진도 축복의 소식에 접하여 어깨춤까지 추었다.
 그의 안해는 축복이의 돌생일에 입히겠다고 색동저고리를 지어 놓았다.
 삼신탄광,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등 각지의 로동계급은 축복이의 몫까지 합쳐 더 많은 일을 하겠다고 결의해 나서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정혜명학생은 장군님의 품에서 청춘을 되찾은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제2,제3의 축복이를 기다린다고 절절히 말하였다.(끝)


총련일군대표단 도착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사회주의조국을 방문하는 총련중앙상임위원회 배진구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총련일군대표단이 25일 평양에 도착하였다.(끝)


선군은 조국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로선/로동신문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로동신문> 26일부는 선군은 강성대국을 건설하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는데서 조선로동당이 견지하고 있는 기본전략로선이라고 강조하였다.
 선군은 우리 조국의 미래를 위한 가장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전략적로선이라고 론설은 지적하였다.
 론설은 선군혁명로선이 내세우고 있는 투쟁목표는 주체의 강성대국이며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주력군,핵심력량은 무적필승의 인민군대라고 지적하였다.
 가장 혁명적이고 조직적인 인민군대를 핵심,본보기로 하여 혁명대오를 정예화하고 군대의 선도자적역할을 높여 사회주의위업전반을 밀고 나가는것을 혁명의 수행방도로 내세우고 있다는데 선군로선의 과학성과 혁명성,불패의 생활력이 있다고 론설은 썼다.
 론설의 필자는 선군은 주체의 강국을 떠메고 나갈 주인공들을 억세게 키우는 인간완성의 전략적로선,나라와 민족의 안전을 철저히 담보하는 영원한 조국수호로선,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만년터전을 다지는 강성대국건설로선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오늘 온 나라의 새 세대 청년들이 인민군대에 입대하는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기고 군대에서 단련된 제대군인들이 강성대국건설의 중요전선들에서 기적과 위훈을 창조하고 있는것은 우리 조국의 양양한 미래를 뚜렷이 보여 주는 선군시대의 자랑스러운 현실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선군의 길에서 자주총대를 더욱 억세게 벼릴것이다.(끝)


신문들 평양실무회담의 합의서를 지지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26일부 이곳 신문들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와 남측 2002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가 평양실무회담에서 채택한 합의서를 지지환영하였다.
 합의서에는 오는 8.15광복절에 즈음하여 서울에서 민족통일대회를 성대히 진행하기로 하였으며 여기에 북측은 각계각층을 망라한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하였다는 등의 5개조항의 내용이 들어 있다.
 이것은 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맞는 합의서로서 민족자주의 기치밑에 조선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 나가려는 온 겨레의 립장과 의지를 반영한것이라고 신문들은 강조하였다.
 <로동신문> 론평의 필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오늘 우리 겨레의 조국통일운동은 6.15북남공동선언이 열어 준 길을 따라 북과 남,해외의 각당,각계각층을 망라한 전 민족적인 통일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8.15민족통일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여 여기에서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공동선언발표의 사변적의의를 되새기고 공동선언에 대한 지지와 실천의지를 재확인하게 되면 그것은 의심할바없이 조국통일운동을 전 민족적인 운동으로 힘 있게 추동하는 새로운 활력으로 될것이다.
 조선민족의 피를 나눈 사람이라면 누구든 시대와 민족앞에 지닌 사명감을 깊이 간직하고 자주통일의 결정적국면을 열기 위한 통일애국운동에 한사람같이 떨쳐 나서야 할것이다.(끝)


금강산관광과 그 제동기/조선중앙통신 론평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지금 남조선에서는 금강산관광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한 <한나라당>의 책동이 로골화되고 있다.
 <대통령>후보 리회창을 비롯한 우익보수세력들은 서해무력충돌사건을 계기로 <금강산관광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느니,<북에 대한 일방적인 퍼주기>라느니 뭐니 하고 떠들어대고 있다.
 이 불순한 발언들은 겨레의 통일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북남대결을 고취하는 범죄적시도의 발로이다.
 민간급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금강산관광사업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조국통일을 바라는 온 겨레의 한결 같은 지향과 세계 명산 금강산을 보고 싶어하는 남조선인민들의 념원을 반영한 숭고한 민족적사업이다.
 금강산관광은 서해무력충돌사건 이후에도 계속 활발해 지고 있으며 특히 관광상품이 다양해 지는 가운데 최근 금강산해수욕장이 문을 열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현지에서 학생들의 야영생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것은 금강산관광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소망을 풀어 주려는 우리측의 동포애적조치의 정당성과 생활력에 대한 뚜렷한 실증으로서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는 대세의 흐름으로 된다.
 그런데 <한나라당>을 비롯한 우익보수세력들은 이런 대세의 흐름에 배치되게 이번 서해무력충돌사건이 벌어지자 금강산관광사업에 빗장을 가로 지르기 위한 일대 소동을 벌림으로써 반민족적정체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간과할수 없는것은 그들이 <관광대가의 군사비전용>을 운운하며 <금강산관광으로 북에 가져 갔던 현금이 포탄이 되여 돌아 왔다>는 황당무계한 소리까지 늘어놓고 있는것이다.
 리회창이 매해 남조선강점 미군유지비로 섬겨 바치는 수십억딸라가 바로 미군의 장갑차가 되여 남조선땅에 굴러 들어와 백주에 녀중학생들을 깔아 죽이는 참사에 대해서는 항변 한마디 못하면서 있지도 않는 그 누구의 <군사비전용>에 대해 떠드는것은 가소롭기 그지없다.
 <한나라당>의 반금강산관광소동은 조국통일의 리정표인 6.15북남공동선언을 백지화하고 북남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전면차단시키며 대화의 문을 닫아 매고 오로지 대결과 전쟁만을 추구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것은 불 보듯 명백하다.
 리회창이 <전쟁불사론>으로 민심을 낚아 당면하게 <대통령선거>에서 승전고를 울려 보려는것은 어리석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평화와 통일의 암적존재인 리회창을 비롯한 우익불순세력들의 범죄행위를 반드시 계산하고야 말것이다.(끝)


몬까다병영습격 49돐을 기념/로동신문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26일부 평양의 신문들은 꾸바항쟁투사들의 몬까다병영습격 49돐을 맞는 꾸바인민들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내였다.
 <로동신문>은 개인필명의 글에서 몬까다병영에서 울린 혁명의 총성은 무장한 원쑤는 무장으로 타승해야 하며 혁명의 승리는 오직 총대에 의해서만 이룩할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몬까다병영습격전투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꾸바혁명가들과 항쟁투사들은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 잡고 피델 까스뜨로동지의 지도밑에 간고한 무장투쟁을 벌려 마침내 압제자들을 쳐부시고 인민이 정권의 주인으로 된 자유로운 새 세상을 안아 왔다고 신문은 지적하였다.
 론설의 필자는 꾸바인민이 몬까다의 정신으로 미제국주의자들의 반꾸바책동을 걸음마다 짓부시면서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혁명과 건설을 다그쳐 온대 대하여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혁명실천을 통하여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꾸바인민은 오늘 미제의 반꾸바책동이 더욱 강화되는 속에서도 동요없이 사회주의신념을 굳건히 지켜 가고 있다.
 꾸바인민의 마음속에는 오늘도 몬까다의 정신이 살아 있으며 사회주의신념이 깊이 새겨 져 있다.
 조선인민은 나라의 자주권과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서 꾸바인민이 이룩하고 있는 성과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그들의 정의의 위업에 굳은 지지와 련대성을 보내고 있다.
 <민주조선>은 몬까다의 총성으로부터 시작된 꾸바인민의 정의의 위업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라고 지적하였다.(끝)


<한총련>소속 대학생들 미국대사관앞에서 기습시위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의 <제1라지오>에 의하면 24일 낮 <한총련>소속 대학생들이 녀학생들을 살해한 미군범죄자들을 규탄하여 미국대사관앞에서 기습시위를 벌렸다.
 그들은 미군철수와 부쉬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하는 선전물을 뿌리고 대사관을 향해 닭알을 던지며 싸웠다.
 한편 이날 낮 미국대사관 맞은 편 세종문화회관 옆건물 지붕우에서 대학생들이 <부쉬대통령 공개사과,녀중생사망사건 진상규명>이라고 쓴 대형프랑카드를 걸어 놓은 다음 <녀중생 죽여 놓고 진상은페,사건무마로 우리 국민 우롱하는 주한미군 규탄한다>라는 내용의 선전물을 200여매나 뿌렸다.(끝)


여러 나라에서 남조선주둔 미군철수 주장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인민의 조국해방전쟁승리 49돐에 즈음하여 인디아,벌가리아,메히꼬에서 진행된 집회에서는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남조선에서 침략무력을 당장 철수할것을 주장하였다.
 집회들에서는 조선전쟁에서의 조선인민의 승리는 비록 작은 나라 인민이라 하더라도 나라와 주권의 주인으로 된 높은 자각을 가지고 침략자들을 맞받아 용감히 싸운다면 능히 승리할수 있다는 진리가 확증되였다고 강조되였다.
 집회들에서 참가자들은 미국은 조선전쟁의 도발자,침략자이며 조선민족을 둘로 갈라 놓은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라고 준렬히 규탄하였다.
 집회들에서는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위용 떨치고 있는 조선인민군이 조선혁명을 믿음직하게 옹호보위하는 자기의 력사적사명을 다하리라는 확신이 표시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