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1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족은 예로부터 력법을 중요시하고 끊임없이 발전시켜 농사와 일상생활에 리용하여왔다.
삼국시기부터 력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고구려시기에는 《구집력》을 제작하였다.
859년 발해사신이 《선명력》이라는 천문력서를 일본에 가져다주었는데 이 력서는 일본에서 861년 6월부터 823년동안이나 리용되였다. 《선명력》은 일본의 천문학과 력법 나아가서는 사회생활전반의 발전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후세의 력사가들은 이 력서의 사용기간을 《선명력시대》라고 부르고 《선명력》전달을 《력사기록상의 일대 기념사》로, 발해사신이 《일본문화에 미친 최대의 공헌》으로 평가하였다.
고려시기 《선명력》을 발전시켜 《십정력》, 《칠요력》, 《둔갑력》, 《견행력》 등의 새 력서들을 만들어냈다.
13세기말~14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천문학자 강보는 력계산에서 고차보간법을 적용하여 력계산을 신속정확히 할수 있는 수표를 만들어 그것을 묶어서새로운 력법인《수시력첩법립성》을 편찬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력법창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이 력법에 기초한 수시력은 근 1세기동안 리용되였다.
리조시기에 력법연구는 더욱 심화되였다. 특히 세종왕시기에는 국가적사업으로 되여 수시력에서 일식과 월식, 5개의 행성부문을 보충하는 사업이 진행되였다.
그 이후에도 조선에서는 《천세력》과 같은 력들을 만들어 리용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