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박성철동지의 략력은 다음과 같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인 박성철동지는 주체2(1913)년 9월 2일 경상북도 경주시의 빈농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박성철동지는 일제통치의 암담한 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여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용감하게 투쟁하였다.
동지는 주체19(1930)년 봄부터 반일회, 농민협회, 공청 등 혁명조직에 가입하여 광범한 대중속에서 지하공작활동을 적극 벌렸으며 그들을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 이바지하였다.
박성철동지는 주체23(1934)년 4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한 후 유능한 군사정치일군으로서 당정치사업과 군사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려 항일무장대오를 확대강화하고 일제침략군을 격멸소탕하는데 공헌하였다.
박성철동지는 조국이 해방된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건당, 건군, 건국로선을 받들고 지방정권기관과 인민군대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하면서 인민정권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고 인민군대를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바치였다.
박성철동지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인민군 사단장, 해군사령부 부사령관, 최고사령부 정찰국장으로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군사사상과 전략전술적방침을 받들고 미제의 무력침공을 분쇄하며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박성철동지는 전후시기 외국주재 대사로, 외무성 부상, 당중앙위원회 부장, 내각부수상 겸 외무상으로 사업하면서 우리 당의 대외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동지는 주체62(1973)년 7월부터 정무원 부총리로, 주체65(1976)년 4월부터 정무원 총리로, 주체66(1977)년 12월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으로, 주체87(1998)년 9월부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으로 사업하면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을 다그치고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공고발전시키며 조국의 부강번영을 이룩하는데 기여하였다.
박성철동지는 주체50(1961)년 9월부터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고 주체53(1964)년 6월부터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주체55(1966)년 10월부터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였으며 주체58(1969)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및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주체69(1980)년 10월에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선거되였다.
박성철동지는 주체48(1959)년 최고인민회의 제2기 때부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사업하였다.
동지는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쌓아올린 특출한 공로로 하여 공화국영웅칭호와 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 국기훈장 제1급, 자유독립훈장 제1급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박성철동지는 주체97(2008)년 10월 28일 오랜 병환끝에 서거하였다.
박성철동지는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지니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령도에 무한히 충실하였다.
박성철동지는 비록 서거하였으나 우리 당과 혁명위업에 바친 그의 고귀한 투쟁공적은 길이 남아있을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