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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비싼 대가를 치르어야 할 특대형조선인강제련행죄악》
(평양 8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9일부 《로동신문》은 《비싼 대가를 치르어야 할 특대형조선인강제련행죄악》이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개인필명의 글을 실었다.

아직도 일본땅에는 유가족들을 찾지 못한 지난 세기 전반기 일제의 수많은 조선인강제련행범죄희생자들의 유골이 마구 내버려져있다. 그 유골들이 있는 자리에는 무덤도 묘비도 없다. 오직 피맺힌 원한만이 슴배여있을뿐이다.

일제시기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이 일하였던 일본의 많은 탄광, 광산 등의 흔적들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곳들에는 요란한 간판을 단 회사건물들, 유흥장들이 들어서고 관광지들이 꾸려졌다. 과거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을 악랄하게 착취하고 죽인자들, 조선사람의 피땀으로 포식하고 성장한 일제의 후예들은 그들의 유골이 묻혀있는 지역들에서 한토막의 진실한 력사마저 남기지 않으려고 현대적인 《물질문명》을 발동하여 체계적으로 쓸어버려왔다.

일본은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증거들을 없애버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학교력사교과서 등 력사책들을 로골적으로 외곡서술하면서 범죄의 력사를 미화분식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이러한 책동들을 벌리면서 《강제련행이란 말이 줄어들어 좋다.》느니, 《강제련행이란 말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느니 뭐니 하고 떠들어대고있다.

이것이 과거력사를 대하는 철면피한 일본의 태도이다.

그러나 감출수 없고 외곡할수 없는것이 바로 력사이다.

21세기에 들어와 몇해동안에만도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희생자들의 유골은 수많이 발견되였다. 일본 오사까에 있는 또고꾸지에서 1만여구, 효고현 아이오이시의 젠고지에서 60여구, 후꾸시마현에 있는 30여개의 절간에서 100여구, 도꾜의 유텐지에서 1, 100여구, 혹가이도 홍간지의 별원에서 100여구나 발견되였다.

도꾜의 유텐지(절의 이름)에 있는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희생자 유골명단에는 430명의 공화국북반부출신의 이름들도 올라있다. 추정한데 의하면 그들 대다수가 지난날 일제에 의하여 함경남북도와 평안남북도, 황해남북도, 강원도 등지에서 《군인》, 《군속》으로 침략전쟁터에 끌려가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다.

지난 세기 전반기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통치시기에 일제가 저지른 조선인강제련행범죄는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주요내용을 이룬다. 《조선사람은 <대일본제국>에 복종하든가 죽어야 한다.》는 강도적인 지배자의 관념과 《조선사람은 천명이 죽든 만명이 죽든 아까울것이 없다.》는 극도의 조선민족멸시사상이 골수에 꽉 들어찬 일제에 의해 840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이 강제련행되여 고역장들에서 노예로동을 강요당하고 수많은 청장년들이 죽었다.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는 관권과 군권이 모두 발동되여 진행된 로골적인 인간사냥, 랍치행위였다.

일제는 1939년부터 1945년사이에 조선사람들을 대대적으로 강제련행하는 정책을 악랄하게 강행하였다. 1939년 1월 일제는 대륙침략에 요구되는 군수품생산을 보장할 목적으로 《국민직업능력신고령》을 공포하고 이해 6월 1일부터 이를 강압실행하였다. 《국민직업능력신고령》조작은 조선에 있는 15살부터 50살까지의 로동능력있는 사람들을 깡그리 끌어가기 위해 그 수자를 정확히 장악하며 또한 로동력강제징용을 대대적으로 벌리기 위한 준비조치였다.

일제침략자들은 1939년 10월에는 《국민징용령》이라는것을 공포하였다. 아무런 고려도 없이 《징용장》을 발급하고 조선사람들을 끌어가는것도 강도적인 방법이였지만 그보다 더 강도적인것은 《징용장》도 무시하고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잡아서 끌어간것이다. 일제헌병, 경찰 등은 도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 길가는 사람, 잠자는 사람들을 불의에 습격, 랍치하여 화물자동차들에 싣고 강제로동판으로 보내군 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제시기의 한 력사기록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설복하여 모집에 응하도록 하는것으로써는 좀처럼 예정수자를 채울수 없었다. 그래서 군이나 면 등의 로무계가 깊은 밤이나 이른새벽에 불의에 남자가 있는 집의 침실을 습격하였으며 혹은 논이나 밭에서 일하고있는 한복판에 자동차를 들이대고 다짜고짜로 거기에 실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로 집단을 편성하여 혹가이도나 규슈의 탄광에 보내는것으로써 그 책임을 다하는 란폭한 일을 하였다.》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한 체험자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내가 17살때였습니다. …나는 5km정도 떨어진 친척집에 가기 위해 농촌길을 걸어서 3km쯤 갔는데 뒤로부터 자동차가 와서 멎더니 일본인과 조선인통역이 내려 강제적으로 차에 태웠습니다.

차에는 19명정도의 남자들이 타고있었는데 누구도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있었습니다. 그대로 군에까지 실려가 옷도 감색옷으로 갈아입었고 다음날 기차로 원산까지 련행되여갔는데 그사이에 사람들이 불어났습니다. 경관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우리를 가두고 지키고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여 혹가이도에까지 끌려가게 되였습니다. 가족과 련락을 취할새도 없었습니다.》

일제시기의 정부자료들에도 조선인강제련행이 랍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1944년 7월 일본내무성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조선국내에서의 강제련행이 《랍치》라고 명기되였다. 1942년 8월 12일 당시 일본후생성에서 진행된 회의를 기록한 내부문서에는 회의에 참가한 여러 성 사무관들과 륙해군의 고위인물들의 보고내용이 들어있다. 거기에는 《조선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을 랍치하여 주로 군관계의 공사를 시켰다.》, 《강제적으로 끌고와 가혹한 로동을 시키니 도망가는자가 나왔다.》는 등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이 랍치였다는것을 인정한 발언내용들이 적혀있었다.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은 그 피해자들에게 살인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기 위한데 목적을 둔 가혹한 인권유린범죄였다.

일제는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을 탄광, 광산, 언제건설장, 철도공사장 등 제일 고되고 힘든 작업장들에 배치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이 끌려간 곳들은 혹가이도, 이바라기, 도꾜, 니이가다, 아이찌, 교또, 오사까, 효고, 히로시마, 나가사끼, 후꾸오까를 비롯하여 일본도처의 탄광, 광산, 건설장, 조선소, 군사기지 등이다. 그들은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진 무시무시하고 위험한 작업장들에서 하루 16~18시간, 최고 21시간이라는 살인적인 로동을 강요당하였다.

일본의 유바리탄광에 끌려가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던 한 《징용》체험자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둘이 한조가 되여 한사람은 캐내고 다른 한사람은 운반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기준량으로 정해진 작업을 끝마치지 못하면 밖으로 내놓지 않았으므로 바쁠 때에는 아침 7시부터 19시간을 일하였으며 다음날 새벽 3시에 밖으로 나오는 때도 있었습니다. 식사는 보통 대두박(콩찌끼)이 위주였고 돼지도 먹지 않을 그런것을 주었는데 배가 고파 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래 일을 시킬 때에는 도중에 주먹밥 한개를 가져다주고 련달아 일을 시켰습니다.》

고역장들에서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은 굶어죽고 병들어죽고 떨어져죽고 맞아죽었다. 그들의 목숨은 짐승보다도 못하였다.

혹가이도의 어느 한 언제발전소공사장에서는 천수백명의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이 희생되였다. 공사장의 높은 곳에서 폭이 40~50cm 되는 발판을 타고 조립작업같은것을 하다가 허기진 몸으로 떨어져죽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일제감독들은 조선사람이 떨어지면 구원할 생각은 하지 않고 콩크리트를 쳐서 생매장하군 하였다. 미야기현 철도공사장에서 얼마나 많은 조선사람들이 혹사당하다가 희생되였는지 《침목 한대에 조선사람 한명》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진상은 바로 이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일제의 과거범죄문제와 관련하여 《조선사람들의 자원적의사》란 말을 외워대고있다. 말하자면 조선사람들이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고 일본 등지에 가서 노예로동을 한것은 과거 일본정부와 군부가 지시하고 조직집행한것이 아니라 조선사람들이 스스로 그러한것을 요구하였기때문이라는것이다. 일본의 낯가죽 두꺼운 이런 망발들은 죽음의 고역장들에서 혹사당하다가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의 령혼을 모독하는 행위일뿐아니라 그 유가족들과 나아가서 전체 조선민족에 대한 모독행위로 된다.

리치에 전혀 맞지 않는 일본반동들의 력사외곡나발은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 유괴하여 노예화한 범죄자는 명실공히 일제라는것을 반증해주고있다.

력사의 죄악은 절대로 감출수도 외곡미화할수도 없다. 일본이 과거청산을 계속 회피하려 하지만 어느때든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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