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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계획적으로 추진된 미제의 조선전쟁준비책동》
(평양 6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24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계획적으로 추진된 미제의 조선전쟁준비책동》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지난 조선전쟁을 일으킨 미제의 정체는 그 무엇으로써도 숨길수 없다. 그것은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조선전쟁도발준비를 다그쳐온 력사적인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미제의 조선전쟁도발준비책동은 계획적이고 음모적이며 강도적인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미제는 무엇보다도 조선전쟁도발을 위한 침략계획을 미리 은밀한 방법으로 작성, 완성하였다.

당시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1946년 전쟁광신자 맥아더를 미극동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이전 미태평양군무력의 대부분으로 극동군을 편성한 후 조선전쟁을 포함한 극동침략계획을 완성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맥아더사령부에는 《G-3》, 《G-2》라고 하는 조선전쟁도발을 위한 작전계획과 첩보공작을 연구하는 집단이 무어졌다.맥아더는 여기에 이전 일본군장성들과 고급장교들로 조직된 《력사반》과 《KATO》기관까지 끌어들였다. 이 집단에 의하여 연구, 완성된 극동침략계획(A, B, C계획)은 1950년 1월 미합동참모본부에서 최종적으로 토의, 비준되였다.

미제는 극동침략계획 《A》에 준하여 1949년초 《북벌》군사전략계획을 작성하였다. 이 계획에는 38°선에서의 정면돌파와 때를 같이하여 동서량해안으로 상륙하여 공화국북반부의 허리를 자르고 일거에 평양과 원산을 점령한 다음 압록강, 두만강계선으로 공격성과를 확대할 기도가 반영되여있었다.미제는 《북벌》을 위한 모든 지상작전과 해상작전을 미해공군의 지원밑에 수행할것을 예견하였다.

미제는 1949년말부터 1950년초에 걸쳐 조선전쟁도발계획을 검토, 수정하고 38°선돌파작전으로 침략전쟁을 개시하기로 확정하였으며 세계제패전략을 반영한 극비문건인 《NSC-68》계획도 작성하였다. 1950년 4월 2일 미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비준된 《NSC-68》계획에는 조선전쟁을 도발한 후 미군과 추종국가군대를 투입할데 대한 문제가 반영되여있었다.

미제는 조선전쟁에서 주력으로 될 미군무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1948년 6월에 미국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평화시기 《징병법》을 조작하고 군사예산을 대폭 늘이는 한편 남조선괴뢰군을 조직, 확대하기 위한 책동을 본격적으로 벌렸다.

조선전쟁도발직전까지 남조선괴뢰군현역은 륙군 9만 3,000명, 공군 3,000명, 해군 1만 5,000명으로 확보되였다. 리승만역도는 방대한 예비병력을 확보할데 대한 미제의 지시에 따라 20만명의 청년들을 긁어모아 국방장관이 직접 거느리는 반군사조직인 《청년방위대》를 편성하였고 중학교이상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주어 전쟁에 동원리용할 목적으로 《학도호국단》까지 조직하였다. 이에 대하여 당시 한 서방출판물은 미제의 전쟁도발계획에 따라 우익청년단으로서 군사훈련을 받은 남조선청년들의 수는 125만명에 달하였으며 그 목적은 북조선의 인민군무력에 대한 《10대 1의 우위》를 보장하는데 있다고 폭로하였다.

남조선괴뢰군에 대한 통수권을 장악하는것을 전쟁준비의 중요한 고리로 내세운 미제는 남조선괴뢰군 부대장자리에 미군장교들을 임명하고 군대의 모집과 편성, 교육, 훈련을 직접 틀어쥐고 집행하였다.미제는 1948년 8월 25일 리승만매국역도와 공모하여 《과도기간 잠정적군사 및 안전에 관한 행정협정》을 체결하였고 군대에 대한 지휘권과 남조선군사기지 및 군사시설관할권을 장악하였다.

미제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남조선괴뢰군부는 1, 7, 6, 8보병사단무력을 서부의 옹진으로부터 동부의 강릉에 이르는 38°선에 전개하였으며 이미부터 작전예비대로 장악하고있던 2, 3, 5보병사단들을 대전, 대구, 광주지역으로부터 서울지역으로 진출시켜 개성, 의정부방향으로 기동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미국도서 《조선전쟁의 력사》는 1950년 6월 18일 미국대통령특사 덜레스가 38°선을 시찰했을 때 《리승만군의 거의 대부분은 벌써 실제적으로 38°선을 따라 배치되여있었다.》고 폭로하였다.

미제는 남조선괴뢰군을 미국제무기로 무장시키기 위하여 리승만역도에게 거액의 《군사원조》를 제공하였으며 각종 무기와 전투기술기재, 함선, 비행기들을 대대적으로 공급하였다.

미제는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고 여기에 미군과 추종국가무력을 투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미리 타산하였다.그것은 남조선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가 1950년 1월에 《북벌계획은 결정된 문제이다. 이것을 실현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침공을 개시한다 할지라도 <정당한 리유>를 가지기 위한 전제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떠벌인데서 명백히 드러났다.

미제는 조선전쟁시 유엔의 간판밑에 미군과 추종국가군대들을 투입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시켰다.유엔담당 미국무차관보 죤 디.히카슨의 증언에 의하면 미국무성에서는 《북조선의 침략》을 날조하기 위한 유엔결의초안까지 전쟁전에 작성해놓았다.

미제는 전쟁도발에 대비한 군사기지와 시설물들을 꾸리기 위한 책동도 본격적으로 다그쳤다.

1946년 6월 21일 미륙군성은 조선을 저들의 영원한 해외군사기지로 만들데 대한 계획을 발표하고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무력의 대부분을 38°선지역에 접근배치하였으며 여러곳에 공격진지들을 무수히 설치하였다. 38°선연선의 서부지대를 주공격방향으로 정한 미제는 림진강의 남안과 의정부북쪽계선에 배치한 공격진지들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항만과 비행장, 철도, 주요도로들도 정비하였으며 새로운 공군기지들을 건설하거나 확장하였다. 그리하여 3~4년사이에 남조선에는 70여개의 미군사기지가 꾸려졌다. 미제는 이 기지들을 어느때나 제 마음대로 리용할수 있도록 리승만역도와 《협약》까지 맺었다.

미제는 조선전쟁에 일본의 군사기지와 군사력을 동원하기 위한 준비를 적극 추진하였다. 1950년 2월에 추가한 해외주둔 미륙군의 유지비 40억 2,000만US$중에서 많은 몫을 일본에서의 군사기지건설에 돌린 사실은 미제가 조선전쟁을 앞두고 군사기지건설을 얼마나 중시하였는가를 잘 알수 있게 한다.조선전쟁직전까지 일본에는 612개의 군사기지들과 시설물들이 준비되였다.

미제는 이전 일본군대의 잠재력량을 《어민협회》, 《토지개발대》, 《합작농장》 등의 간판밑에 비밀리에 보존하였으며 1948년 3월 《신경찰기구에 관한 법령》을 조작하고 《경찰예비대》, 《해상보안대》, 《철도경비대》, 《항공보안대》를 조직편성하고 미국식으로 무장시키며 훈련을 주었다.

미제의 조선전쟁도발준비책동에서 가장 특징적인것은 38°선분계연선에서 무장도발을 끊임없이 벌린것이다. 적들은 38°선무장도발을 《내전을 위한 좋은 시험대》로, 《적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실전능력을 높이는 연습》으로, 《북벌》군사전략계획을 실현하는데 유리한 공격출발위치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 주요목적은 조선전쟁도발의 책임을 우리 공화국에 넘겨씌울수 있는 구실을 미리 만들어놓자는데 있었다. 미제와 남조선괴뢰군부가 1947년부터 전쟁도발직전까지 연 8만 3,800여명의 무장인원을 동원하여 5,150여차에 걸치는 무장도발행위를 감행한것은 이와 관련되여있었다.

미제와 리승만역도는 전쟁도발날자가 다가옴에 따라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정탐, 파괴암해작전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적들은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정탐, 파괴암해작전을 위하여 여러 경로를 통하여 수많은 간첩, 파괴암해분자들을 우리 나라에 침투시켜 북침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보려고 책동하였다.우리 공화국에 대한 정탐자료들은 서울에 있던 《조선련락사무소》에 집결되고 그를 통해 맥아더사령부 정보국을 거쳐 워싱톤에 보고되였다.

미제는 1950년초에 조선전쟁도발계획이 완성되자 곧 일본군국주의자들과 리승만매국일당을 결탁시키기 위한 범죄적책동을 벌리였다. 맥아더는 1950년 2월 중순에 리승만역도를 도꾜에 불러들여 조선전쟁도발과 관련한 11개 조항의 특별지시를 주었다.

미제는 이처럼 전쟁도발준비를 빈틈없이 갖춘데 기초하여 1950년 6월 25일 불의의 북침공격으로 조선침략전쟁을 도발하였다.

미제의 지난 조선전쟁도발범죄는 절대로 감출수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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