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겨울방학이 한창인 요즘 거리와 마을의 곳곳에서 팽이치기에 여념이 없는 학생소년들의 모습을 볼수있다.
그들은 여러가지 형태의 팽이를 가지고 누구의 팽이가 오래 도는가를 겨루기도 하고 서로 싸움시키기도 하며 팽이를 치면서 미리 정한 곳까지 먼저 가기를 겨루기도 한다.
팽이치기는 얼음판이나 땅우에서 팽이를 채로 쳐서 돌리며 노는 어린이들의 놀이로서 조선에서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민속놀이의 하나이다.
팽이치기는 이미 고구려(B.C.277-A.D.668)와 백제(B.C.1세기 말엽-A.D.660), 신라(1세기 초중엽-935)의 삼국시기부터 이어져왔다.
이 시기 팽이치기놀이는 중요한 민속놀이의 하나로 널리 진행되였으며 그것은 이웃나라에까지 전파보급되였다.
그 이후시기에도 팽이치기가 계속되였는데 《박통사언해》, 《역어류해》를 비롯한 민족고전문헌들에는 고려(918-1392)와 리조시기(1392-1910) 가을과 겨울철이면 거리의 곳곳마다 어린이들이 박달나무팽이 등 여러 종류의 팽이를 가지고 팽이치기놀이를 하였다고 씌여있다.
조선에는 팽이와 관련한 방언들도 전해지고있는데 모두 50여개로서 지방마다 서로 다르다.
특히 평안도와 황해도지방의 방언들인 《세리》, 《세루》, 《서리》 등은 팽이가 돌면서 곧추 서있다는 의미로부터 지어졌으며 함경도와 강원도지방의 방언들인 《봉애》, 《핑애》, 《패이》, 《골팽이》 등은 팽이가 뱅글뱅글 돈다는 의미와 팽이모양이 골뱅이처럼 생겼다는 의미에서 지어진것이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