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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절대로 회피할수 없는 조선인집단학살범죄의 책임》
(평양 8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24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절대로 회피할수 없는 조선인집단학살범죄의 책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 일본에서는 과거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극악한 범죄만행을 부인하고 그 책임에서 벗어나보려는 극우익보수세력들의 책동이 날로 더욱 로골화되고있다. 그들은 일본군《위안부》강제모집자료가 없다느니, 일본이 렬강들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켰다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궤변들을 늘어놓고있다. 그러나 력사적사실들은 과거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아시아나라들에 대한 침략전쟁에 피눈이 되여 돌아치면서 수많은 아시아인민들에게 커다란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였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특히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한 일제는 류례없이 가혹하고 야만적인 식민지파쑈통치를 실시하여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민족적불행과 재난을 들씌웠다. 그것은 천추만대를 두고도 씻을수 없는 죄악으로서 반드시 계산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정부는 자기가 저지른 지난날의 죄행을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고있으며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려는 성근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있습니다.》

조선에 대한 40여년간에 걸치는 식민지파쑈통치기간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죄악가운데는 수많은 조선의 청장년들을 일본에 강제로 끌고가 노예적로동을 강요하여 그들의 고혈을 깡그리 짜내다못해 무참히 학살한 범죄도 있다.

1972년에 재일조선인들과 일본의 법률가, 학자, 문화인들로 조직된 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이 도꾜를 비롯하여 일본의 25개 도, 부, 현에 지역조사단들을 조직하고 일본각지에서 일제에 의한 조선인강제련행 및 강제로동범죄의 실태를 조사연구하는 과정에 아끼다현에 1만 4,470여명, 가나가와현에 근 2만명, 지바현에 6만 9,000여명, 오사까현에 2만여명, 효고현에 1만 8,000여명, 고찌현에 8,600여명, 에히메현에 4,100여명, 야마구찌현에 근 5,000명, 가가와현에 근 2,000명 등 일본의 각지에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강제로 끌려간 사실이 밝혀졌다. 우에서 언급된 수자는 일본전국의 549개 지하구조물공사장과 1,500여개의 기업체, 수많은 군사기지건설장들과 지어는 농촌들에까지 끌려간 조선사람들의 수에 비해볼 때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일제는 강제로 끌어간 조선사람들에게 가혹한 노예로동을 강요하다못해 나중에는 가장 비렬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그들을 무참히 살해함으로써 극악한 이중의 범죄를 저질렀다.

자료에 의하면 1940~1944년사이에 일본의 탄광들에서만도 6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이 희생되였으며 《군사기밀보장》의 명목으로 꾸릴렬도에서 5,000명, 마쯔시로방공호건설장에서 500여명이 집단적으로 학살되였다. 《우끼시마마루》사건도 일제의 조선인집단살인만행가운데 하나이다.

일제는 1945년 8월 24일 일본에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남아 조국에로의 귀로에 오른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을 태운 일본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를 교또부의 마이즈루앞바다에서 항해도중 고의적으로 폭파시킴으로써 배에 탔던 조선사람들을 집단수장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두고온 조국의 하늘이 못 견디게 보고싶어 물설고 낯설은 타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다시 돌아갈 날을 그리고그리던 조선사람들이였다. 나라를 빼앗긴탓에 남의 나라 땅에 강제로 끌려가 채찍에 살점을 뜯기우고 등허리가 휘도록 고역인들 오죽 치르었으랴. 떠나온 고향과 두고온 부모처자들에 대한 그리움, 얼마 안있어 있게 될 감격적인 상봉을 그려보며 가슴을 들먹이던 그들이였건만 간악한 일제의 만행으로 그들의 소박한 꿈은 검푸른 바다속에 영영 묻히고말았다.

하지만 《우끼시마마루》사건의 피해자들이 당한 불행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과연 어떠했는가. 당시 일본정부는 《우끼시마마루》사건을 《불가피한 사고》로 묘사하는것으로써 영원히 력사의 흑막속에 묻어버리려고 책동하였다. 그 이후 일본정부는 《조선사람들이 당시 련합군의 강점을 우려하여 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에 올라탔다》고 하면서 《보상을 추구하려는 그 어떤 움직임도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다》는 식의 철면피한 태도를 취하였다. 일본정부는 이 사건의 범죄적내막을 영원한 비밀로 묻어버리려는데로부터 배의 침몰로 죽은 사람들의 주소, 이름을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지어 정확한 사망자수조차 밝히지 않았다. 이로써 일본은 조선인피해실태를 극력 왜소화하여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사죄와 보상의무를 회피하고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어물쩍해넘기려 하였던것이다. 그들의 속심은 조선사람들을 일본땅에 강제로 끌고가 저지른 일제의 만행진상이 공개되는것을 막자는것이였다.

알려진것처럼 일제는 패망직후 비렬하게도 한명의 조선사람이라도 더 많이 죽이는것으로써 패망의 앙갚음을 하려고 하였다. 패망을 전후하여 일제에 의해 《우끼시마마루》사건과 같은 조선인집단수장사건들이 여러차례나 발생한것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은 이 모든 사건들에 대해 지금까지 그 보상과 책임을 회피하고있다.

일본이 책임이 명백한 《우끼시마마루》사건의 진상을 한사코 부정하고있는것은 그 한 실례이다.

2001년 교또지방재판소는 일제패망후 귀국하는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우끼시마마루》사건의 책임이 당국에 있다고 판결하고 정부가 보상금을 지불할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일본의 한 신문은 이에 대해 전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수십년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그와 같은 판결이 계속 나오고있는 사실은 일본이 아직도 과거청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있다는것을 랭정하게 상기시켜준다고 지적하였다.

《우끼시마마루》사건은 철두철미 일본정부의 조선인학살계획에 따라 조직집행된 고의적인 집단살인범죄사건으로서 일본정부는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유가족들에게 사죄, 보상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철면피하게도 일제가 패망한지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끼시마마루》사건문제를 똑바로 해결하지 않고 그 책임을 한사코 회피하고있다. 그들의 이러한 처사는 지난날 일제에 의해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당한 조선인민의 참을수 없는 민족적의분을 자아내고있다. 우리 인민은 《우끼시마마루》사건을 조작해낸 일제의 죄악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다.

오늘 일본반동들은 과거 일제가 저지른 조선인랍치, 강제련행, 살인죄악을 은페, 무마시키려고 비렬하게 책동하면서 이미 해결된 랍치문제를 계속 들고다니고있다. 일본반동들의 이러한 책동은 교활성과 철면피성의 극치이다.

과거범죄에 대한 사죄, 보상을 한사코 회피하고있는 일본반동들의 철면피한 태도는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의식의 발로로서 우리 인민으로 하여금 일본과는 끝까지 결판을 보아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굳게 가다듬게 하고있다. 백년숙적 일본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가슴을 불태우고있는 우리 인민은 《우끼시마마루》사건피해자들을 비롯하여 지난날 일제에 의해 무참히 목숨을 잃고 재난을 당한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피맺힌 원한을 반드시 풀고야말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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