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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방위에 기여한 고구려의 산성들
(평양 6월 20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력사에서 고구려(B.C.277-A.D.668)는 동방의 천년강국으로 명성떨친 자랑을 후세에 길이 전하여주고있다.

고구려가 강대할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산성과 같은 견고한 방어시설들로 온 나라가 난공불락의 요새를 이루고있은데 있다.

《산성의 나라》로 불리울 정도로 고구려에는 산성이 많았다.

나라의 곳곳에 세워진 1,000여개의 성곽들가운데서 절대다수가 산성이였다.

지금까지 조사발굴된 350여개의 성곽유적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당시 성곽의 종류와 위치선정에서는 여러가지 조건을 많이 고려하였는데 고구려는 높고 험한 산이 많은 나라의 자연지리적조건에 맞게 산성을 중요시하였다.

산성은 지형조건에 따라 크게 여러개의 산봉우리들을 련결하여 구축한 고로봉식산성, 펑퍼짐한 산꼭대기에 쌓은 산봉식산성,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벌이 펼쳐진곳에 쌓은 사모봉식산성이 있는데 제일 장려된것은 고로봉식산성이였다.

고로봉식산성은 성벽을 주로 산릉선이나 절벽을 따라 쌓았기때문에 적이 공격하기에는 불리하고 아군이 방어하기에는 유리하였다. 이밖에도 물원천이 풍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수 있어 장기전에 유리하며 적이 성안을 엿볼수 없는것 등 우점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것이 바로 평양의 대성산성이다.

성벽에는 적을 감시하기 위한 망루, 성의 모서리를 지키며 보조지휘처의 역할도 겸하게 한 각루, 은밀히 군사를 내보내여 적을 불의기습하는데 리용하는 비밀출입구 그리고 옹성, 성가퀴, 포대 등 여러가지 독특한 기술이 도입된 시설들이 구축되였다.

수백만명이라는 외적의 수적우세도 견고한 산성들이 조밀하게 구축되여 철벽을 이룬 고구려의 방어진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였다.

오늘도 남아있는 고구려의 산성유적들은 슬기롭고 용감한 고구려인민들의 뛰여난 지혜, 우수한 재능과 함께 조국방위투쟁에서 용맹떨친 그들의 열렬한 애국심을 전하여주고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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