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5월 31일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할머님이신 열렬한 애국자 리보익녀사의 탄생일이다.
녀사께서는 1876년에 평양시 사동구역 오류리의 청빈하면서도 의절이 강한 가문에서 탄생하시였다.
모진 가난과 고역속에서도 녀사께서는 민족의 절개를 지켜 굳세게 살며 싸워나가시였다.
녀사께서는 언제나 자제분들에게 대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으며 맏아드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혁명투쟁의 길에 나서신 다음부터는 나라를 찾는 큰 일을 하자면 마음을 굳게 먹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아드님의 혁명활동을 적극 고무하고 방조해주시였다.
맏아드님에 뒤이어 셋째아드님이신 김형권동지께서 혁명투쟁에 나서시게 되면서부터 만경대가문에 대한 일제의 행패는 더욱 악착해졌으나 녀사께서는 애국적절개를 굽히지 않으시였다.
주체15(1926)년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시였을 때 누를길 없는 슬픔속에서도 녀사께서는 김일성주석께 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어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 나나 어머니에게는 효도를 못해도 나라를 찾는 길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주석께서 항일무장투쟁을 조직령도하시던 시기 그이를 《귀순》시켜보려고 일제는 혁명의 변절자들을 내세워 돈뭉치까지 들리워 만경대집에 보내였다.
김일성장군이 산에서 내려오면 관동군대장이나 조선군사령관자리도 주겠다는 일제의 온갖 유혹도 녀사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없었다.
원쑤들은 압록강연안과 중국동북지방의 험한 산들로 녀사를 데리고 다니면서 《귀순공작》에 협력할것을 강요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 조국을 해방하시고 1945년 10월 14일 20년만에 그리운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였을 때 할머님께서는 한생에 쌓인 시름이 다 풀린다고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다.
열렬한 애국자이신 리보익녀사께서는 손자분께서 국가수반이시였음에도 생의 말년까지 농사를 지으시면서 근면하게 생활하시다가 83살을 일기로 서거하시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