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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협 백서 력대 남조선파쑈도당의 인권유린 진상을 단죄
(평양 5월 2일발 조선중앙통신)민족화해협의회는 2일 다음과 같은 백서를 발표하였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과거 파쑈도당이 저지른 반인권범죄의 진상들이 련속 드러나 커다란 사회적분노와 규탄을 불러일으키고있다.

남조선인민들은 장장 수십년동안 중세기적인 파쑈통치밑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이하의 모진 박해와 고초를 받아왔다. 그 피에 사무친 원한과 절규는 오늘도 남녘땅에 차넘치고있다.

신성한 인권이 파쑈깡패들의 《정권》강탈과 권력유지의 희생물로 되여온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민족화해협의회는 남조선파쑈도당이 력대적으로 저지른 인권유린행위의 진상을 단죄하고 몸서리치는 과거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이 백서를 발표한다.

《용공》조작에 의한 인권탄압

남조선의 력대파쑈도당이 저지른 반인권죄악은 무엇보다 《용공》조작으로 통일애국인사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잔악무도하게 탄압하고 학살한것이다.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해 북과 남으로 갈라져살고있는것은 참을수 없는 비극이다. 더우기 분렬을 구실로 파쑈통치를 정당화하면서 인권을 억누르고 탄압하는것은 민족의 비극우에 비극을 덧쌓는 행위로 된다.

북과 남에 비록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고있지만 그것이 적대와 대결의 근거로는 되지 않으며 더우기 인권탄압의 구실로는 절대로 될수 없다.

그러나 남조선의 력대 위정자들은 우리 민족이 겪는 분렬의 고통을 파쑈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였다. 그것이 바로 《용공》조작이다.

남조선에서 《용공》조작의 피비린 막을 올린것은 리승만《정권》때부터였다.

파쑈통치배들은 미국의 배후조종밑에 정치적적수들을 《용공》의 모자를 씌워 제거하기 위해 여러모로 책동하던 끝에 1947년 7월에 인민당 당수 려운형을, 1949년 6월에는 백범 김구를 암살한것을 비롯하여 애국적인사들에 대한 테로를 공공연히 감행하였다. 친미분렬《정권》을 조작한 후에는 그를 《법》적으로 뒤받침하기 위해 1948년 12월 희세의 파쑈악법인 《보안법》을 만들어냈으며 이 악법을 휘둘러 친미사대매국과 독재통치에 장애로 되는 세력들을 가차없이 처형하였다.

《남로당국회프락치사건》은 바로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파쑈도당은 1948년 9월 남조선《국회》에서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이 통과된데 이어 반민족행위자, 친일파들에 대한 조사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자 이 위원회의 활동을 가로막기 위해 1949년 2월 이른바 《반민법》개정안이라는것을 내들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한결같은 반대에 부딪쳐 《국회》에서 페기처리되고말았다. 이에 당황한 파쑈도당은 1949년 5월 《보안법》페지를 주장하며 《특별조사위원회》활동에 참가하였던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고 이들에게 《남로당》관계자들과 만나 《남로당프락치》를 결성하고 외국군대철수와 남북통일협상, 남북정당단체대표 정치회의구성 등을 주장하였다는 《혐의》를 들씌워 중형을 선고하였으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중단시키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리승만파쑈도당은 1950년대 말 남조선에서 평화통일기운이 높아가고 정치적위기가 심화되여 저들의 영구집권음모가 파탄되게 되자 《진보당사건》을 조작하였다.

당시 평화통일을 주장한 진보당과 당수 조봉암에 대한 대중적지지가 높아가는데 커다란 불안을 느낀 파쑈도당은 1957년 진보당기관지 《중앙정치》 10월호에 《평화통일에로의 길》이 발표된것을 기화로 《빨갱이들에게 나라를 맡길수 없다》고 하면서 이 당 핵심성원들을 《보안법》위반에 걸어 기소하였으며 1959년 7월에는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에 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리승만역도가 《정권》의 자리에서 쫓겨난 후 미국의 각본에 따라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강탈한 박정희군사파쑈도당은 식민지통치와 독재《정권》유지를 위해 《용공》조작에 더욱 매달렸다.

이 군사깡패들은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비롯한 진보적인사들을 《북을 찬양, 고무, 동조》하고 《용공사상》을 부식하였다는 구실로 체포하고 사형과 중형에 처하였으며 련이어 《사회당사건》, 《혁신당사건》, 《사회대중당사건》, 《민주청년동맹사건》 등을 날조하여 불과 몇달사이에 23개의 정당과 238개의 사회단체를 강제해산시키고 28만 3,000여명의 각계층 인민들을 체포, 투옥, 처형하였다.

널리 알려진 《인민혁명당사건》과 《전국민주청년학생총련맹사건》(민청학련사건)은 《유신》독재시기의 대표적인 반공모략사건들이다.

1964년 3월 서울대학교에서부터 시작된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한일회담》반대투쟁이 삽시에 남조선 전지역에 파급되여 6.3인민봉기로 확대되자 이에 극도로 당황망조한 군사파쑈도당은 그해 8월 그 무슨 《북의 지령》이니,《국가변란 획책》이니 하면서 《인민혁명당사건》이라는것을 조작하고 사건관련자들에 대한 일대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그후 남조선에서 파쑈독재를 반대하고 《유신체제》철페를 요구하는 대중투쟁이 더욱 고조되는데 따라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이라는것을 또다시 조작하여 이 조직이 《민청학련》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를 들씌워 사건관련자들을 《보안법》, 《반공법》, 《내란예비음모》, 《내란선동》 등 《죄》목으로 극형과 중형에 처하였으며 도례종을 비롯한 8명은 사형판결을 내린후 몇시간안에 전격집행하는 포악무도한 만행을 감행하였다.

《용공》조작의 마수는 해외동포들에게도 뻗쳤다. 1967년 7월 도이췰란드에 가있는 류학생, 예술인, 지식인들이 《동부도이췰란드주재 북대사관과의 련계》밑에 《적화공작》을 진행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지하리념조직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지도하면서 학생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날조하여 작곡가 윤이상 등 도이췰란드지역 교포들과 남조선의 진보적지식인 194명을 《간첩》으로 몰아 랍치구속하고 사형을 비롯한 중형을 들씌운것은 그 한 실례이다.

군사파쑈도당은 《유신정변》후 《용공》조작놀음에 더욱 환장이 되여 1974년 한해동안에만도 《울릉도간첩단사건》, 《서해사건》, 《추자도사건》, 《동해사건》 등 10여건의 《용공사건》들을 날조하였으며 1979년 9월에는 《통일혁명당재건사건》을, 10월에는 《남민전사건》을 조작하여 관련자 대부분을 사형과 무기징역 등 극형과 중형에 처하였다.

《유신》파쑈독재자의 비참한 종말과 더불어 총칼부림으로 《정권》의 자리에 올라앉은 전두환, 로태우 군사파쑈도당은 파쑈의 칼을 더욱 사납게 휘둘러댔다. 그들이 집권한 몇년사이에만도 《광민사사건》, 《부림사건》, 《제2광주사태획책사건》, 《통일혁명당 고려대학교사건》, 《남파부부간첩사건》, 《사로맹사건》 등 수많은 각종 《용공사건》들이 조작되여 숱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김영삼파쑈도당은 《문민》의 간판밑에 군사깡패들을 찜쪄먹을 정도로 《용공》조작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남한조선로동당사건》이라는 어마어마한 《간첩단사건》을 날조하여 그것을 디디고 《정권》의 자리에 들어앉은 문민파쑈도당은 1993년에는 《김삼석, 김은주간첩단사건》을, 1994년에는 《리화춘간첩사건》을, 1995년에는 《박충렬간첩사건》, 《박창희교수간첩사건》을, 1996년에는 《김동식간첩사건》, 《신규영간첩사건》 등을 날조하여 세상을 경악시켰다.

이 모든 《용공사건》들이 어떻게 조작된것인가 하는것은 1994년 10월 《한겨레영화제작소》의 한 직원이 도이췰란드 베를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자기가 1992년부터 《안기부》의 밀정으로 매수되여 활동해왔으며 《안기부》의 지령을 받고 《간첩단사건》조작에 직접 가담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안기부》요원들과의 대화내용이 들어있는 록화테프와 사건조작, 밀정공작실태 등에 대한 자료들을 공개한데서도 잘 나타나고있다.

력대 파쑈통치배들은 이러한 모략적방법으로 수많은 《용공사건》들을 조작하였다.

지난해 남조선의 과거사진상규명단체들이 각계로부터 재조사요구로 접수한 《용공사건》만 해도 2,800여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인민혁명당사건》, 《민청학련사건》, 《동부베를린사건》 등 수십건은 진상해명이 이루어져 완전한 조작이라는것이 판명되고 관련자들이 《무죄》로 인정되였다.

실로 분렬의 비극을 악용하여 《용공》조작으로 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한 남조선파쑈도당의 극악무도한 범죄는 천추를 두고 온 민족의 저주와 규탄을 받을것이다.

초보적인 인권과 민주주의적자유의 말살

남조선파쑈도당이 저지른 반인권죄악은 다음으로 가장 야만적인 철권통치로 남조선인민들의 초보적인 인권과 민주주의적자유마저 깡그리 말살한것이다.

말하고 듣고 보는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초보적인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다. 그러나 력대 파쑈도당은 남조선인민들이 자기의 의사에 따라 말하고 보고 듣는 권리마저 여지없이 유린하였다.

그들은 정치적야욕을 위해 정치인으로부터 학자, 언론인, 경제인, 종교인, 청년학생, 시민,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일거일동을 감시통제하면서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마구 잡아가두고 박해하였으며 고문하고 학살하였다.

그리하여 남조선은 입이 있어도 말할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수 없으며 귀가 있어도 들을수 없는 인간생지옥으로 되였다.

남조선에서의 인권유린행위는 어느 한 시기나 어느 한두사건에 국한된 일시적이고 우발적인것이 아니라 력대파쑈폭군들이 대물림을 해오면서 《법》화하고 《정책》화하여 감행하여온것이라는 점에서 류례없는것이다.

리승만역도가 《보안법》을 조작하고 휘둘러 인권을 가혹하게 말살하였다면 박정희군사깡패는 이 악법을 보다 파쑈적으로 개악하고 전문살인폭압기구들을 만들어내여 남조선을 최악의 인권불모지, 민주의 페허지대로 전변시켰다.

특히 군사파쑈도당은 미국의 비호밑에 《정권》을 가로채자마자 불과 10개월동안에 《반공법》과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비롯한 무려 2,000여건의 각종 악법들을 무더기로 조작하고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각종 파쑈폭압기구들을 설치하여 온 남조선땅을 《정보망》으로 뒤덮고 인민들의 눈과 귀, 입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또한 일체 정당, 사회단체의 정치활동과 《옥내외 집회》를 엄금하며 언론, 출판, 보도의 《사전검열》 등을 내용으로 하는 《포고》 제1호, 제4호, 제11호를 련이어 발표하고 그것을 휘둘러 한달도 되나마나한 기간에 260여개의 정당, 사회단체들을 강제로 해산하고 76개의 일간신문, 305개의 언론사, 453개의 주간지를 포함한 수많은 출판, 보도기관들을 강제페간시켰다. 1964년 8월에는 《언론륜리위원회법》을 조작하여 1966년까지 불과 2년동안에 659개의 언론출판기관들을 강제로 페쇄시켰다.

파쑈도당의 반민주적인권탄압만행은 1970년대에 들어와 더욱 극심해졌다. 《유신》독재자는 1972년 10월 《유신체제수립에 관한 특별선언》과 그해 12월에 조작한 《유신헌법》을 통하여 형식상 존재하던 《3권분립원칙》마저 무시하고 행정권은 물론 《사법권》, 《립법권》까지 모두 거머쥐였으며 《긴급조치》 1호, 2호, 4호, 6호 등 폭압령을 련달아 내리고 《사회안전법》을 비롯한 각종 파쑈악법들을 새로 조작하여 폭압에 한층 미쳐날뛰였다.

파쑈교형리들은 1973년 10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최종길이 학원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청년학생들의 투쟁을 지지해나섰다고 하여 그를 《중앙정보부》에 끌고가 갖은 고문을 다 들이대여 신체를 만신창으로 만들어놓은 다음 감옥의 높은 층에서 내려뜨려 학살하고는 《투신자살》한것처럼 꾸미였으며 재일교포 류학생 서승형제를 잡아가두고 중세기적인 살인고문을 들이대다 못해 서승을 불고문으로 얼굴도 알아볼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1974년 2월에는 연세대학교 학생 100여명을 《긴급조치》위반에 걸어 강제련행하여 중형을 들씌우거나 전기고문으로 살해하였으며 같은 해 4월 《긴급조치4호》의 공포를 반대하여 시위투쟁에 나선 리화녀자대학교의 25살난 녀학생을 고문실로 끌고가 발가벗기고 고문을 가하여 실신상태에 빠뜨린후 그를 집단릉욕한 다음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군사깡패들은 저들의 파쑈통치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가 팔순에 난 전직《대통령》이건, 야당 《대통령》후보이건, 심복부하이건 관계없이 처형과 테로의 대상으로 삼았다.

전 《대통령》 윤보선이 자주와 민주를 지향하는 청년학생들과 종교인들을 두둔하였다고 하여 그를 체포하여 박해를 가하던끝에 1974년 7월 《군사재판》에 끌어내여 징역 15년의 형벌을 들씌운 사실과 《대통령선거》후보로 나섰던 야당인사 김대중을 해외에서 랍치하여 자루속에 걷어넣고 연덩어리까지 매달아 바다에 처넣어 죽이려하다가 들통이 나게 되자 서울의 그의 집에 내동댕이친 《김대중랍치사건》,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미국에 망명하여 《유신체제》를 비난하였다고 하여 그를 랍치하여 처참하게 살해한 사건 등은 세상에 너무도 잘 알려져있다.

전두환역도는 인권말살행위에서 선임자들을 훨씬 릉가하였다.

군사파쑈도당은 《12.12숙군쿠데타》이후 남조선에서 신군부의 등장을 반대하여 반독재민주화투쟁이 세차게 벌어지자 1980년 5월 주요 도시를 비롯한 전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으며 대학과 언론기관, 지어 《국회의사당》과 정당본부들에까지 《계엄군》을 투입하여 남조선의 애국적청년학생들과 각계층 인민들, 야당정객들과 재야인사들을 무리로 잡아가두고 처형하였다. 당시 한 재야인사는 《내란음모죄》에 걸려 지하독감방에서 2개월동안이나 발가벗긴채 야수적고문으로 허위자백을 강요당하였다.

특히 새로운 파쑈독재권력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내오고 《정치풍토쇄신에 관한 특별조치법》,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개정안》, 《정당법》 등 무려 100여가지의 파쑈악법들을 조작하거나 개악하여 정당, 단체들을 강제로 페쇄하고 활동을 금지시켰으며 언론사들을 통페합하는 등으로 집회, 시위, 결사 등 초보적인 정치활동의 자유와 민주주의적권리마저 철저히 말살하였다.

1986년 한해동안에만도 전두환일당에 의하여 각종 악법에 걸려 무고하게 감옥에 끌려간 사람은 무려 78만 3,000여명이나 되며 강제해산된 재야단체는 40여개에 이른다.

한편 전두환도당은 《전국민주학생련맹사건》, 《전국민주로동자련맹사건》, 《광민사사건》 등 모략사건들을 조작하여 애국적인 청년학생들과 로동자, 언론인들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투옥하고 야수적으로 처형하였다. 경상남도 창원에 《삼청교육대》라는 집단수용소를 만들어놓고 군사파쑈통치를 반대하는 청장년들을 끌어다 《순화교육》을 시킨다는 구실밑에 고역에 내몰고 야수적인 고문과 비인간적학대를 가하여 참혹하게 학살하였다.

1986년 10월 《반공국시》를 반대하고 《통일국시》를 주장한 《신민당》출신 《국회》의원 유성환에 대한 탄압사건,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박종철학생을 고문으로 숨지게 한 사건, 1987년 12월 경찰과 《백골단》 500여명을 내몰아 구로구청앞에서 13대 《대통령선거》를 반대하는 로동자들을 비롯한 각계층 시민들을 각목과 쇠몽둥이로 때려죽이고 지하실에 몰아넣어 최루탄가스로 질식시켜 죽인 사건 등도 전두환파쑈도당에 의해 빚어진 반인권적참극의 일단이다.

로태우도당 역시 1989년 4월 《안기부》, 《보안사》, 검찰, 경찰로 이른바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조작하고 류례없는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18개의 재야단체를 포함한 220여개의 애국적인 단체들을 탄압하고 수십명의 애국인사들과 신부 등을 잡아가두거나 《출국금지령》을 내리는 등으로 박해하였으며 그해 5월에는 광주의 조선대학교 교지 《민주조선》창간호에 공화국을 소개하는 론문을 발표한 리철규학생을 《용공분자》로 몰아 지명수배하던 끝에 그를 무참히 학살하여 수원지에 처넣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로태우일당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을 겨냥하여 1990년 10월과 1991년 6월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15만명의 경찰과 《안기부》, 검찰은 물론 남조선군 정규병력과 460여만명의 예비군까지 동원하여 남조선전역에서 검문검색과 수사소동을 벌려놓고 광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한편 《중앙정보부》를 보다 파쑈적으로 개편하고 권능을 대폭 강화한 《안기부》도 부족하여 《보안사령부》까지 끌어들여 미행, 도청, 우편물검열 등을 가혹하게 실시하였으며 《사찰기록부》를 만들어놓고 정계, 언론계, 로동계 등 각계 인사들에 대한 정치사찰을 집중적으로 벌렸다.

《보안사령부》를 《기무사령부》로 바꾼 후에는 재야인사들과 운동권학생들을 《위험인물》, 《요시찰대상자》로 등록하여놓고 그들의 동태와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 더욱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군사파쑈《정권》의 피줄을 그대로 이어받은 김영삼역도 또한 인권탄압에 얼마나 열을 올렸는가 하는것은 그가 《문민파쑈》로 불리운 사실 한가지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역도가 집권한후 최루탄소비량은 1993년의 3만여발로부터 1996년에는 15만발이상으로 늘어났으며 다련발최루탄소비량은 1996년에 근 1,000상자에 이르렀다. 최루탄사용에 쓰인 돈은 1993년의 5억 1,100만원으로부터 1996년에는 그의 5배가 넘는 근 30억원으로 불어났다.

《문민》파쑈시기 남조선의 감옥들도 최고로 차고넘쳐나 당시 관계당국이 발표한 공식자료에 의하더라도 총 수용능력 5만 3,000명보다 무려 1만명이나 더 많은 6만 3,000명이 교도소와 구치소에 갇혀 가혹한 고문에 시달리였다.

오죽했으면 외신들까지 극악한 인권실태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남조선은 땅덩어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라고 평하였겠는가.

참으로 력대파쑈통치배들의 인권유린만행은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수 없다.

치떨리는 집단대학살만행

남조선파쑈도당이 저지른 반인권죄악은 또한 무고한 인민들을 상대로 집단적인 대학살만행을 무차별적으로 감행한것이다.

집단대학살만행은 반인권범죄가운데서도 특별히 엄중시되는 대범죄이다. 력사에는 침략자들이 다른 나라를 강점하고 강점지 민족을 대상으로 대학살을 감행한 기록은 있어도 남조선의 력대 파쑈통치배들처럼 자기 인민을 대상으로 집단적인 대학살만행을 감행한 그런 야만적인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파쑈도당이 외세와 한짝이 되여 해방직후부터 감행한 인민대학살만행은 그 하나하나가 가장 수치스러운 대범죄의 기록으로 되고있다.

1946년 10월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이 《미군정반대》, 《인민위원회 활동보장》, 《민주개혁실시》 등의 구호를 웨치며 대중적항쟁의 거리에 떨쳐나섰을 때 미제침략군과 함께 중무장한 병력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2만 5,000여명을 야수적으로 살륙하고 1만 5,000여명을 잡아가둔 《10월인민항쟁참가자들에 대한 대학살사건》, 1948년초 단독《정부》수립반대 등을 요구하여 일떠선 각계층 인민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여 8,500여명을 검거투옥한 《2.7구국투쟁참가자들에 대한 학살사건》, 1948년 4월 미군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방대한 군병력을 동원하여 《소탕전》을 벌려 제주도 전지역을 초토화하고 제주도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무려 7만여명을 무참히 학살한 《제주도인민들의 4.3봉기참가자들에 대한 대학살사건》 그리고 이해 10월 려수군인폭동에 떨쳐나선 각계층 주민들과 군인들을 무참히 살륙한 《려수대학살사건》 등은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인민들에 대한 집단대학살사건은 특히 전쟁시기에 집중적으로 감행되였다.

파쑈도당은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탄압할 목적으로 《보도련맹사건》을 조작하여 재판도 없이 무려 1만 7,700여명이나 학살하였으며 그 가족들까지 《련좌죄》에 묶어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전쟁시기에 있은 세칭 《량민학살사건》은 파쑈도당의 살인마적기질을 그대로 드러낸 또 하나의 대표적인 집단대학살만행이다.

그들은 저들의 범죄적인 집단대학살만행을 가리우기 위해 살인부대를 《인민군대》로 가장시키는 비렬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1950년 7월~10월 라주경찰서가 이른바 《라주부대》를 조직한 다음 그들에게 《인민군대》복장을 입히고 전라남도 남부지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무고한 인민들을 집단적으로 총살하게 한것은 그 비근한 실례이다.

1950년말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남조선군 1개 대대가 《유격대와 내통했다》는 구실밑에 북상면일대에서 1,200여호의 집을 불사르고 그곳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였으며 다음해 2월에는 신원면 대현리, 와룡리를 비롯한 6개 리에서 700여호의 집을 불사르고 100여명의 청장년들을 죽였으며 그후 부락에 남아있던 늙은이와 부녀자, 어린이 등 500여명을 박산골짜기에 끌고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죽였다. 경상남도 함양, 산청, 령산, 진영, 전라북도 전주 등에서도 이러한 끔찍한 학살만행이 감행되였다.

파쑈도당의 집단적인 인민대학살만행은 전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파쑈도당은 새 정치, 새 제도, 새 생활을 요구하여 일떠선 인민들을 전시에 군사작전을 하듯 중무장한 대병력을 내몰아 마구 짓뭉개버렸으며 민주를 갈망하여 투쟁의 광장에 떨쳐나선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땅크와 장갑차, 비행대와 미싸일까지 동원하고 《계엄군》에 환각제까지 먹여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1960년 4월인민봉기때만도 200여명이 학살되고 부상자는 1,280여명에 달하였다.

1980년 5월의 광주학살사건은 파쑈도당의 야만적인 인민대학살만행을 집중적으로 고발하는 특대형 반인류적범죄이다.

파쑈도당은 민주를 목터지게 웨치는 시민들에게 기관총과 포사격을 들이대여 무리로 죽이다 못해 땅크를 내몰아 깔아죽이고 팔순로인을 총탁판으로 내리쳐 죽이였는가 하면 녀대학생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만삭이된 녀성에게 달려들어 대검으로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 죽였다.

군사파쑈깡패들의 몸서리치는 살륙만행에 의하여 광주 한개 도시에서만도 수천명이 무참히 학살되고 1만 4,00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목포, 화순, 라주, 려수, 순천 등지에서도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시도 아니고 평시에 평화적주민들을 상대로 이처럼 대살륙전을 벌려 온 도시, 온 남조선을 피의 바다에 잠근 류혈적만행은 동서고금 그 어느 폭군의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것이다.

실로 력대 남조선파쑈도당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권범죄에 대해 렬거하자면 끝이 없다.

지금 남조선에서 과거사재조사, 재평가사업들이 진행되고있다고 하지만 억울한 죽음과 고초를 당한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을 비롯한 인민들의 그 원한을 어떻게 다 풀수 있겠는가.

남조선에서 반인권범죄는 결코 지나간 일이 아니다. 과거 인권탄압에 리용되였던 《보안법》과 같은 파쑈악법이 오늘까지 존재하여 독을 쓰고있고 파쑈도당의 후예들과 잔당들도 아직 살아남아 옛 세상을 복구해보려고 획책하고있다.

반인권범죄의 직접적책임이 있는 《한나라당》은 저들족속들이 저지른 죄행에 대해 사죄한마디 하지않고있을뿐아니라 뻔뻔스럽게도 감히 다음기 《정권》을 넘겨다보면서 《인권》이요, 《국민》이요 하고 떠들어대고있다.

이것은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 대한 모독이고 력사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다. 《한나라당》은 과거 파쑈도당의 후예들로서 반민족,반인권범죄집단이다.

《한나라당》안팎에는 악명높은 《유신》독재자의 딸, 《5, 6공》시절의 파쑈관료배, 법관, 교형리, 고문기술자, 학살범 등이 득실거리고있다. 그들은 6.15세력에 대한 적의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피비린내나는 숙청흉계를 꾸미고있으며 《살생부》까지 작성해놓고 복수의 칼을 갈고있다.

남조선인민들의 자주적존엄과 통일에 대한 지향을 부정하고 동족을 알 권리, 동족과 악수할 권리마저 빼앗아보려고 발광하고있는것도 《한나라당》이고 현대판 《용공》조작의 능수도 《한나라당》이며 외세와 야합하여 남조선인민들의 생존권을 유린하다 못해 성폭행과 성추행으로 녀성들의 인권을 밑바닥까지 처참하게 짓밟는것도 다름아닌 《한나라당》이다.

이런 자들이 앞으로 집권하게 되면 남조선에 또 어떤 피비린내나는 광풍이 불어치고 남조선인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게 될것인가 하는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피로 얼룩진 《한나라당》은 입이 열개라도 《인권》에 대해 말할 체면이 없으며 애당초 더이상 존재해서도 안될 화근거리이다.

남조선각계층은 과거사청산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 피의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야 하며 반인권범죄의 소굴인 《한나라당》을 력사의 심판대에 기어이 올려놓아야 한다.

이와 함께 《보안법》을 비롯한 파쑈통치의 낡은 잔재를 하루빨리 쓸어버림으로써 다시는 암흑의 과거사가 되풀이되지 말게 하여야 할것이다.

주체96(2007)년 5월 2일
평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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