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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이 일본군《위안부》강제동원범죄를 폭로규탄
(평양 3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최근 왜나라반동들이 일본군《위안부》강제동원사실을 립증할 근거가 없다느니 뭐니 하면서 과거범죄를 은페해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있는 사실은 내외의 커다란 격분을 자아내고있다.

특히 일제에 의해 정조를 유린당하고 꽃다운 청춘을 빼앗긴 피해자들은 왜나라 족속들의 파렴치하고 날강도적인 처사에 울분을 터뜨리고있다.

함경남도 단천시 신동리에서 살고있는 곽금녀는 16살때인 1939년 왜놈들에게 속히워 14명의 처녀들과 함께 일본군대의 감시밑에 중국의 목단강에서 70리가량 떨어진 쏘만국경지대인 《몽영》이라는데 끌려가 1년반동안이나 병영에서 치욕스러운 일본군 《위안부》생활을 강요당한데 대하여 고발하였다.

그는 최근 왜나라반동들이 줴친 파렴치하고 날강도적인 망발을 규탄하면서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철저히 일제가 관권과 군권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감행한 특대형반인륜범죄행위이라고 준렬히 단죄규탄하였다.

1938년에 서울시내의 한 공원에서 일본경찰들의 《처녀사냥》에 걸려들어 다른 두 동무와 함께 강제로 중국의 심양(당시 만주의 봉천)지방에 끌려가 일본군《위안부》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 김군숙은 《위안부》만행은 매춘업자들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당시 일본당국의 조직적인 범죄였다고 폭로하였다.

뿐아니라 일본군《위안부》강제동원사실에 대해서는 강제련행책임자들중의 한사람이였던 요시다 세이지라는 일본인의 실토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분명히 해둘것》은 우리가 《<위안부>를 모집한것이 아니라 강제로 체포해갔다는 사실》이라고 하면서 자기야말로 《노예사냥군이였다》고 실토하였다.

그는 당시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건장해보이는 녀성들을 처녀건 유부녀건 가리지 않고 때리고 발로 차고 총으로 위협하면서 강제로 차에 실어갔다》고 하면서 《이렇게 내가 직접 강제련행한 <위안부>만도 1,000명이 넘는다》고 증언하였다.

지금 생존해있는 《위안부》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성노예범죄는 력사가 흘러도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중대한 문제이라고 하면서 아베일당은 더는 회피놀음을 그만두고 즉시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참으로 조선인민에게 끼친 왜나라반동들의 죄악의 력사는 지워버릴수도 외곡될수도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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