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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절승을 보여주는 일화들
(평양 3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평양의 력사문화유적 련광정에 걸려있는 채 짓지 못한 시와 《천하제일강산》이라는 현판은 평양의 절승을 보여주는 일화들을 전하고있다.

고려시기(918-1392)의 어느날 유명한 시인 김황원이 평양의 대동강기슭 부벽루에 올라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시를 지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다.

시인은 단숨에 붓을 달려 《장성일면용용수 대야동두점점산》(긴 성벽 한쪽면에는 늠실늠실 강물이요 큰 들판 동쪽머리엔 띄염띄염 산들일세)라고 서두를 떼였으나 그 다음부터는 굳어진듯 붓을 더 놀리지 못하고 갑자르기만 하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의 시재주를 비난하며 하나둘씩 헤여져갔다.

시인은 한숨을 푹 쉬며 대동강의 경치를 노래하기엔 자기의 재간이 너무 미약함을 한탄하며 붓을 꺾어던졌다.

사람들은 비록 채 짓지 못한 시이지만 글씨판을 련광정에 걸어놓고 평양의 자랑을 길이 전하게 되였다.

외국의 사신이 련광정에 남기고 간 《천하제일강산》이라는 현판에도 많은 일화들이 깃들어있다.

리조시기(1392-1910) 어느해 여름 불의에 조선을 침략해왔던 외적의 한 우두머리가 평양에 기여들어 련광정에 올랐다가 이 현판을 보게 되였다.

적장은 현판을 보고 작은 나라에 어찌 천하에 제일가는 강산이 있다고 할수 있는가고 하면서 당장 떼버리라고 호통쳤다.

그러고나서 사방을 휘둘러보던 적장은 저도 모르게 일대의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고 연신 감탄하다가 《천하》라는 두 글자를 긴 칼로 내리쳐 떼낸 다음 《제일강산》이라는 글자만이 남은 현판을 제 자리에 다시 걸어놓으라고 하였다.

군졸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자 적장은 천하라는 말에는 비위가 거슬리지만 이곳이 제일강산이라는것을 부인할수 없다고 맥없이 말하였다.

침략자들을 몰아낸 뒤 사람들은 비록 《천하》라는 두 글자는 떨어져나갔으나 원쑤들까지도 평양의 절경을 부인하지 못했다는 그 이야기가 평양의자랑거리로 될만하다고 여기고 《제일강산》이라는 현판을 그대로 놓아두고 전해왔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 평양은 옛날에 비할바없이 웅장하고 아름답게 변모되였으며 련광정의 현판도 인민들의 념원을 반영하여 《천하제일강산》이라고 원상대로 복원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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