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26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글 《절세위인의 선군길에 드리는 찬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민족최대의 경사로 2월의 조국강산은 끝없는 기쁨과 환희에 넘쳐있다.
반만년민족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새로운 변혁의 년대가 펼쳐지고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늘의 민족사적사변을 안아오시기 위해 바치신 무수한 헌신의 낮과 밤을 무엇으로 다 칭송할수 있겠는가.
경사스러운 2월의 봄날에 나는 어버이수령님의 위업을 계승완성하시려 선군장정의 길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우러르며 이 글을 쓴다.
이 땅우에 강성대국의 려명을 안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올해 1월에만도 개건된 동평양대극장,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과 만수대예술단 공연을 지도하신데 이어 인민군련합부대 지휘부와 군부대 지휘부를 현지시찰하시였고 희천의 공작기계공장과 청년전기련합기업소, 도자기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으며 새로 건설된 태천4호청년발전소를 또다시 찾아주시였다.
대소한의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주체88(1999)년 1월에도 찾아주시고 칼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주체92(2003)년 12월에도 찾아주신 태천땅.
태천사람들은 제일 추운 날에 오셨다가 제일 추운 날에 가시군 하는 장군님의 로고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 땅의 눈비는 우리가 다 맞으리니 장군님 장군님 찬눈길 걷지 마시라》고 격정에 겨워 노래불렀다고 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경사의 달인 2월에도 북방의 청진시내 혁명사적사업, 청진광산금속대학, 청진기초식품공장, 새로 건설된 군민발전소, 어랑천1호발전소, 장연호양어장 등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찬눈길 밟으시며 선군장정의 길을 걸으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러뵈올 때면 80여년전 어버이수령님께서 나의 아버지(강윤범)의 바래움을 받으며 《광복의 천리길》을 떠나시던 력사의 그날을 가슴뜨겁게 새겨보군 한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조부모님들과 친지들이 몇날만 지나면 학교도 졸업하고 날씨도 따뜻해질터인데 그때를 기다려 떠났으면 하는 심정을 터치며 그토록 만류했건만 기어이 눈보라치는 천리길에 나서시였다. 수령님의 수중에는 돈이 얼마 없었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로자걱정보다도 짓밟힌 2천만겨레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셨고 자신의 고생보다도 조국의 아픔을 더 크게 여기셨기에 눈보라치는 천리길에 흔연히 나서시였던것이다.
이렇게 어린시절 만경대사립문을 여시고 《광복의 천리길》을 걸으신 수령님께서는 기나긴 20성상 항일의 혈전만리, 눈보라만리길을 헤쳐오시였으며 해방후에도 조국이 통일된 다음 쌓인 피로를 다 푸시겠다시며 백두산길을 계속 이어가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한평생 이 세상 찬바람, 눈비를 다 맞으시며 걷고걸으신 혁명위업의 길을 오늘은 백두산의 아들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어가고계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걸으시는 선군의 길은 백두의 정신으로 난관을 맞받아뚫고나가는 령장의 강행군길이다.
설한풍이 휘몰아치는 찬눈길우에서 항일의 총성을 들으시며 인생의 첫 자욱을 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한번 백두산시절을 잊으신적이 없으시였다. 그이께서 남달리 백두의 눈보라를 좋아하시고 은빛세계 펼쳐진 하얀 눈우를 밟으시며 사색하시기를 좋아하시는것도 마음속에 언제나 백두산이 있고 빨찌산이 있기때문이시리라. 우리 장군님께서는 시련과 고난이 겹쌓일수록 백두의 찬눈길을 더 자주 걸으시였다. 주체88(1999)년 정초 흰눈덮인 백두산을 찾으시여 하늘아래 첫 동네인 무봉마을과 덕수터를 지나 무려 10리길을 몸소 걸으시며 세찬 눈보라를 즐겨맞으신 장군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여러해전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기승을 부리는 대한추위에 또다시 백두산으로 향하시였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의 강행군이 간고한데 우리모두 백두산에 가서 대한절기로 절정에 이른 강추위도 겪어보고 세찬 눈보라도 헤쳐보면서 백두의 기상, 백두의 혁명정신을 더욱 억세게 다져나가자고, 그러면 담도 커지고 의지도 굳세여져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을 자신만만하게 다그쳐나갈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바로 그래서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백두산의 눈보라를 맞으시며 백두의 찬눈길을 자주 걸으시는것은 백두의 기상, 백두의 혁명정신을 더욱 다져나가기 위해서이며 백두의 담력과 의지를 더욱 굳세게 벼려 빨찌산식으로 우리 혁명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가 아니신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빨찌산식으로 선군혁명을 령도하고 대담한 공격전을 벌려 혁명의 붉은기를 지키며 우리 식 사회주의를 고수하여야 합니다.》
백두산정신, 그것은 만난을 맞받아나아가는 완강한 공격정신이고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이며 꺾이면 꺾일지언정 신념을 버리지 않는 고결한 혁명정신이고 제힘으로 기어이 이 땅에 인류리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숭고한 혁명정신이다.
적들의 무분별한 침략전쟁연습에는 준전시상태선포로 대답하고 《핵특별사찰》소동에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단호한 탈퇴로 맞서며 핵선제공격위협에는 강력한 핵억제력으로 대응하는 바로 이것이 우리 장군님의 과감한 백두산의 공격정신이다.
적들이 칼을 빼들면 장검을 추켜들고 적들이 총을 내대면 대포를 내대는 백두의 공격정신을 지니신 우리 장군님께서 조국수호를 위해 걸으신 길은 몇천몇만리인지 모른다. 적아가 수십cm밖에 안되는 하나의 선을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대치되여있는 판문점에도 나가시고 파도사나운 날바다를 헤치며 섬초소군인들도 찾아가시며 끊임없는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는 선군령장의 거룩한 모습을 우러르며 나는 준엄한 항일대전의 나날 천교령의 눈보라를 헤치시고 100여일에 걸치는 고난의 행군을 앞장에서 이끄신 빨찌산 김대장의 숭엄한 모습이 어려와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군 한다.
지금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성산전방지휘소를 찾아주실 때 있은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다.
해발 1천여m의 아찔한 고지, 깊은 골짜기와 칼벼랑들, 련일 비가 억수로 쏟아져 길바닥의 흙은 다 씻겨내리고 로반의 돌만 남아있는 울퉁불퉁한 길 아닌 길, 백쉰굽이나 에돌며 올라가야 하는 굽인돌이에서 자칫하면 차가 낭떠러지로 굴러내리게 될 위험천만한 령길, 올라가다가는 미끄러져내리고 다시 올라가기를 그 몇번, 뾰족한 가시돌에 뚫리여 련속 터져나가는 다이야를 갈아끼우며 끝내 전방지휘소에 이른 야전차…
력사에는 전선사령관이 비행기를 타고 전선시찰을 자주 다녀 전쟁기간에 여러대의 비행기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어느 한 나라의 전쟁일화가 있다 하지만 우리 장군님처럼 전시도 아닌 평화시기의 하루 몇시간동안에 자동차다이야를 몇개씩이나 교체하면서 군인들이 있는 최전방고지에 오르시였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없는줄 안다.
몸소 강행군의 앞장에 서시여 군대와 인민을 이끄시느라 우리 장군님께서는 언제한번 휴식도 변변히 못하시였다. 일요일과 명절날 지어 온 나라 인민들이 뜻깊게 경축하는 자신의 탄생일에도 전선시찰의 길에 계신 장군님이시다.
이 땅의 모든 가정들에 복을 안겨주시려 나라의 새벽문을 제일먼저 여시고 삼라만상이 잠든 깊은 밤을 넘어 날이 밝는 이른아침까지 집무를 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력사에 정열가로 알려진 맑스와 엥겔스는 《우리는 8시간로동제를 위하여 투쟁하지만 우리자체는 종종 그이상으로 일》한다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우리 장군님께서는 하루에 21시간 지어 24시간 일하신다.
인민들은 언제나 장군님을 잘 받들어모시겠다고 했지만 사실 령도자의 받들림을 받으며 살아온것은 다름아닌 우리 인민이였다. 우리가 장군님을 위하는 그 몇백, 몇천배로 장군님은 인민을 생각하시고 인민을 위하신다.
우리 인민들이 장군님 꾸려주신 명산, 유원지들에서 등산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낼 때 장군님은 오르면서 40리, 내리면서 40리인 철령의 《아흔아홉굽이》를 넘고계시였고 사람들이 정월대보름의 정취에 잠겨 민족음식을 들 때 장군님 타신 야전차는 둥근달을 이고 전선길을 달리였다. 온 나라 인민이 풍치수려한 5월1일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고있을 때 선군령장께서는 즐거운 춤바다를 펼쳐주신 수도를 멀리 떠나 인민군군인들의 훈련모습을 보아주시고 오곡이 물결치는 농장벌에 서계시였으며 기계련합기업소와 제약공장의 구내길을 걷고계시였다.
정말 우리 인민이 걸은 찬눈길을 모두 합친다 해도 미칠수 없는것이 이 세상 끝까지인 장군님의 찬눈길이며 천만부모들의 사랑을 다 모아도 비길수 없는것이 우주와 같이 무한대한 장군님의 사랑이라고 나는 말하고싶다.
장군님께서 걸으신 선군의 길은 희망과 락관에 찬 래일을 앞당겨오는 승리의 길이다.
미래에 대한 락관, 이것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고 창조와 혁신을 낳는 원천이며 승리와 기적을 창조하는 열정이다.
세상에 령도자는 많아도 우리 장군님처럼 신념이 강하고 혁명적락관주의를 최고의 높이에서 지닌분은 없다고 본다. 경애하는 장군님은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자 이 세상에 없다는 든든한 배심과 신념으로 험난한 선군혁명의 길을 웃으며 헤쳐가시는 희세의 락천가, 배짱가이시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어느 한 공장구내에 나붙은 구호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를 보시고 만족해하시면서 그것을 온 나라 인민들의 신념의 구호, 락관의 구호로 되게 하여주신 경애하는 장군님.
고난과 시련이 중중첩첩 가로놓였던 시기에 울려나온 경애하는 장군님의 명언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인생의 참된 길을 밝혀주고 빛나는 미래창조에로 모두를 힘있게 불러일으켜준 삶의 좌우명이고 크나큰 정신적힘의 원천이였다.
선군의 길에서 장군님 터치신 호탕한 웃음은 조국의 락관이 되고 인민의 밝은 웃음이 되며 장군님 달리는 차안에서 마음속으로 부르고부르신 노래들은 온 나라가 따라부르는 신념의 노래, 승리의 노래로 조국강산에 끝없이 메아리쳐가고있다.
신념과 락관은 승리의 노래로 울린다.
두해전 12월 예술공연 《내 나라의 푸른 하늘》에 노래 《승리의 길》을 더 넣어 우리 인민들을 고무하는 신년특별공연을 하도록 해주신 장군님. 지난해 2월 16일 당보 1면에는 가요 《신심드높이 가리라》를 악보와 함께 편집하도록 하시여 군대와 인민에게 무한한 힘과 용기를 안겨주신 장군님이시다. 위인의 사상과 의지와 락관이 구절마다 넘쳐흐르는 노래의 악보를 다시 보면서 솟구치는 열정과 승리의 신심으로 온 집안이 격정과 기쁨에 넘쳤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장군님 가시는 길은 오직 한길 승리의 길이다.
강성대국의 려명이 밝아온 지금 나는 선군장정의 길에서 일군들에게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다시 새겨보게 된다.
…나는 선군길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기어이 가자는거다, 인민들은 반드시 이것을 다 리해하게 될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조국과 후손만대를 위해 무엇을 해놓았는가에 대하여 똑똑히 알게 될것이다, 이제 보라, 통장훈을 부를 날이 꼭 온다, 동무들, 믿으라! 승리를 믿으라! 미래를 믿으라!…
선군혁명천만리길은 모두가 장군님을 믿고 장군님만을 따라온 한길이였다. 우리 인민은 어려워도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을 부르고 힘겨워도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격조높이 노래했으며 누구나 《하늘처럼 믿고삽니다》를 심장으로 부르고 또 부르고있다.
그 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우리 조국은 어디에 솟아올랐는가. 그것은 반만년민족사에 가장 강력한 핵억제력을 보유한 강국의 아득한 높이이고 이 땅의 영원한 평화와 번영의 새시대이며 바야흐로 다가오는 행복의 만리이다.
이제는 이 세상에 무서울것도 부러울것도 없게 되였다. 우리 민족은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존엄높고 힘있는 민족으로 세기의 상상봉에 우뚝 올라섰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헤쳐가시는 선군의 길에서 분렬의 력사만이 흐르던 이 땅우에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이 열리고 온 겨레가 바라는 통일의 려명이 밝아오고있다.
나는 세기가 바뀐 오늘에도 백두의 행전을 벗지 않으시고 통일을 위해 력사의 찬눈길을 헤쳐가시는 우리 장군님의 모습에서 절세의 애국자의 숭고한 위인상을 본다.
조국통일은 민족자주, 민족생존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이다. 이 땅에서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이 하나가 되자면 온 겨레가 백두산정신으로 투쟁해야 한다.
일찌기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애국의 한생을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꽃피우는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의무로 간직해오신 장군님께서는 분렬된 조국의 하루하루가 흘러가는것이 매우 가슴아프다고 하시며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기 위해 눈보라치는 백두산에 가자고 하신다.
나는 지금도 2000년대의 첫해에 진행하신 백두산지구에 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소식에 접하던 때를 잊을수 없다.
그때 온 나라 군대와 인민은 신문과 TV를 통해 새해벽두에 눈보라 휘몰아치는 백두산지구에 가시여 혁명전적지와 대홍단군종합농장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는 장군님의 로고를 생각하며 격정을 금치 못하였었다. 하지만 백두의 눈보라길을 헤쳐가신 그날 장군님의 심중에 과연 무엇이 깊이 자리잡고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날 대홍단군 서두분장에 들리시여 한 평범한 제대군인안해의 무랍없는 소청대로 태여날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시고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신 장군님께서는 류경정주영체육관 건설을 빨리 다그쳐 동족사이의 협력의 길을 개척한 한 남조선기업가의 생을 빛내이도록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이번에 대홍단에 대한 료해를 여러날 하면서 북남관계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겠는가에 대하여 두고두고 생각하였다고, 나는 지금도 조국통일문제때문에 마음을 쓰며 여러 부문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고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조국통일문제때문에 얼마나 마음쓰시였으면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길에서도 통일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북남관계를 개선해나가기 위한 방도들을 일일이 밝혀주시였겠는가.
바로 그때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2000년초에 이곳 백두산지구를 찾으신것은 반세기나마 흘러오는 분렬의 력사를 단호히 끝장내고 통일의 새 세기를 안아오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나의 눈앞에는 눈보라날리는 백두산정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으신 피어린 항일대전을 돌이켜보시고 온 나라에 떠받들려있는 백두산의 장엄한 모습을 보시면서 북남관계개선과 조국통일을 위한 통이 큰 구상과 작전을 하셨다는 백두령장의 모습이 숭엄히 안겨온다.
백두산구상을 실천하여 통일의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안아오시기 위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련하시고 겨레에게 새 세기 자주통일의 리정표를 안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찬눈길을 걸으시며 펼쳐가시는 선군정치는 미국의 전쟁위협으로부터 조선반도의 평화와 전민족의 안녕을 지키며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을 힘있게 추동하기 위한 애국의 정치이다.
반세기이상 끊어졌던 국토의 혈맥이 하나로 이어지고 경제협력이 진행되며 어디서나 통일운동의 함성이 높이 울리는 오늘의 격동적인 현실은 민족과 통일을 위해 선군장정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국헌신의 빛나는 결실이다.
통일의 앞길에 아직 난관과 시련이 가로놓여있지만 희세의 위인이신 장군님께서 계시고 선군으로 다져진 강력한 전쟁억제력이 있어 이 땅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락관하며 신심에 넘쳐있는 우리 겨레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선군정치로 민족의 5천년숙원을 풀어주시였는데 이제 60여년의 통일숙원을 푸는것은 문제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남조선의 한 주민이 인터네트홈페지에 실은 글에서 《…우리 겨레를 통털어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반대와 강압에 정면으로 맞서는분, 그러면서도 온 국민의 높은 지지와 두터운 신뢰를 한몸에 받는분, 명석한 지략으로 세계의 우려속에서도 강대국에 맞서 기적의 련승을 창조하는 승리자, 세계의 정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가는 누구인가. 그분은 바로 민족자주의 의지로 조국통일의 밝은 앞길을 열어가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시다.》고 격찬한것은 그대로 통일에 대한 온 민족의 확신이고 락관이다.
경애하는 장군님만 따르면 강성대국도 오고 통일도 온다.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높이 모시여 6.15통일시대의 전도는 휘황찬란하고 우리 민족의 앞길에는 승리만이 약속되여있다.
절세의 애국자이시고 위대한 선군령장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여 우리 겨레는 머지 않아 이 땅우에 통일되고 번영하는 강국을 일떠세우고 무궁토록 행복을 누릴 영광의 날을 맞이하게 될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길은 곧 통일의 길이고 행복의 길이며 영광의 길이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면서 온 겨레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령도를 적극 받들어나갈것을 열렬히 호소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