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10일발 조선중앙통신)《구국전선》인터네트싸이트에 의하면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선전국이 6일 《반통일집단 한나라당의 력대 용공조작책동을 만천하에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고발장을 발표하였다.
고발장은 다음과 같다.
지금 《한나라당》은 그 무슨 《정통성》과 《정체성》을 운운하며 《대통령선거(대선)필승》에 몸부림치고있다.
《한나라당》이 부르짖고있는 《정통성》과 《정체성》이란 리승만《자유당정권》의 《반공》그루터기에서 독버섯으로 돋아나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로태우의 《민자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의 《용공》조작책동을 이어온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통일적속성이며 체질이다.
《한나라당》은 원조상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반공》을 생존수단으로 삼고 《용공》조작으로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비호하고 남북대결을 고취해온 반역의 패당들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선전국은 자주,민주,통일을 위한 애국적민중의 투쟁을 《용공》으로 매도, 탄압해온 《한나라당》의 만고죄악을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하여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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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의 《반공》으로 말하면 제2차세계대전후 제국주의의 《반공》두목으로 등장한 미국이 《한국》을 저들의 세계지배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전초기지, 보루로 만들고 북을 침략하기 위해 사대매국역적들에게 쥐여준 폭압의 도구, 통치의 수단이였다.
따라서 친미사대매국노들이 일으킨 《반공》광증과 《용공》조작책동은 어느것이나 다 미국의 식민지지배와 반북침략책동을 뒤받침하는데 목적을 둔것으로서 그 악랄성과 교활성, 횡포성에 있어서 전례없는 광기를 띠였다.
이 땅에서 미국의 첫 《반공투사》집단은 리승만의 《자유당》이였다.
1904년에 미국군함을 타고 미국에 건너가 미국산 우유와 빠다를 핥으며 친미노복으로 길러진 리승만은 해방후 이 땅에 발을 디딘 첫날부터 《반공》에 혈안이 되였다.
리승만은 미국의 지령밑에 한낱 꼭두각시 《반공》단체에 불과한 단독《정부》를 조작하였고 1948년 12월 1일에는 《반공》과 《용공》조작을 관제화하기 위한 《보안법》을 만들어냈다. 결과 이 땅에서는 친미를 위한 《반공》, 《용공》조작의 둥지와 《법적토대》가 마련되게 되였다.
처음부터 민중의 버림을 받고 그 어떤 정치적지반도 없었던 《자유당》반역집단은 《반공》으로 미국에 추종하고 《용공》조작에 의한 민중탄압으로 《정권》을 유지해왔다.
《자유당》패거리들은 미《군정》을 반대하고 민주주의적인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일떠선 각계민중을 《좌익세력》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것으로써 《용공》조작의 피비린 서막을 열었다.
민중의 자의에 의해 세워진 인민위원회들을 강제해산하고 1946년에는 9월총파업과 10월민중항쟁을, 1948년 4월에는 《단선》, 《단정》을 반대하는 제주도4.3봉기를, 10월에는 려수군인폭동을 《좌익세력》의 란동으로 몰아 류혈적으로 탄압하였다.
미군의 직접적지휘밑에 리승만일당이 《빨갱이소탕전》의 명목으로 감행한 야수적살륙만행에 의해 제주도에서만도 거의 모든 마을들이 초토화되여 피바다, 불바다에 잠겼으며 제주도민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7만여명이 무참히 학살되였다.
한편 《자유당》패거리들은 정치적적수들을 제거하기 위해 1947년 7월에는 인민당 당수 려운형을, 1949년 6월에는 미《군정》과 《단정》을 반대하고 통일정부수립을 지향하는 백범 김구를 암살하였으며 련공통일을 주장하는 애국적인사들을 무리로 탄압함으로써 정치적위기를 수습하고 북으로 쏠리는 민심에 칼을 박았다.
《자유당》은 미국을 등에 업고 《단선》, 《단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둘로 갈라놓았을뿐아니라 《일방이 타방을 반드시 점령하지 않으면 생존할수 없다》, 《공산주의자들과는 같이 살수 없다》고 하면서 북의 정치제도를 따르거나 찬양하는 세력들을 《용공》으로 몰아 검거, 학살, 처형했다.
이른바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 인도》한다는 미명하에 《보도련맹》이라는것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수십만명의 애국적인민을 강제로 가입시킨 후 6.25전쟁이 일어난 시기를 전후하여 그들을 도처에서 학살하는 무지막지한 파쑈적살인만행을 감행하였으며 미군과 함께 전쟁전기간 수백만의 동족을 살해하는 대범죄를 저질렀다.
휴전후에도 리승만일당은 입만 벌리면 《북진통일》을 부르짖으며 평화통일세력을 탄압하는데 피눈이 되였으며 1959년 7월에는 《대통령》후보자로 나섰던 조봉암을 《빨갱이에게 나라를 맡길수 없다》고 하면서 《간첩》혐의자로 몰아 처형하였다.
이렇듯 리승만의 《자유당》통치는 진보적통일인사들에 대한 《용공》조작과 학살로 얼룩진 피비린 자취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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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군사파쑈독재집단인 《공화당》 역시 민중탄압으로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비호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한 《친미반공당》이였다.
일찌기 려수군인폭동진압에서 《공로》를 세워 《신생 <대한민국>을 살려놓은 숨은 <공로자>》라는 치욕의 평가를 받은 《반공》독사를 우두머리로 하는 군부집단은 4.19를 지지하는 민중을 《자유체제를 무너뜨리려는 공산주의세력》으로 몰아붙이며 미국을 등에 업고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군부독재집단은 군사정변직후 《용공》조작의 서막으로 《민족일보사건》을 날조하여 조용수사장을 비롯한 진보적인사들을 북과 련계시켜 처형하였으며 련이어 《사회당사건》, 《혁신당사건》, 《사회대중당사건》, 《민주청년동맹사건》 날조 등으로 23개의 정당과 238개의 사회단체를 강제해산시키고 불과 몇달사이에 28만 3,000여명의 각계민중을 체포, 투옥, 처형하였다.
집권후 미국에 찾아가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의 편에 서있다》고 대미《충성》을 맹약한 독재집단은 자기들의 최고목표는 《용공척결》이라고 기염을 토하면서 《헌법》에 《반공》을 《국시》로 쪼아박고 《보안법》을 더욱 개악하였으며 1961년 《중앙정보부》를 조작하여 완벽한 《반공》체제를 구축하였다.
《공화당》의 《반공》무리들은 해외에 거주하고있는 동포들도 《용공》으로 몰아 처형할 목적밑에 1967년에는 《동부베를린사건》을 조작하여 수많은 사람을 해외에서 랍치하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하기에 이전 주《한》미군사령관이란자도 《공화당》집권자를 가리켜 《100% 반공분자이며 100% 친미적인물》이라고 하였던것이다.
《자유당》이 《단선》, 《단정》으로 민족분렬을 조장한 원조상이였다면 《공화당》은 《두개 조선》을 정책화하여 민족분렬을 영구화에로 이끌어간 원흉이며 리승만의 《북진통일》을 《승공통일》로 탈바꿈하여 남북대결을 격화시킨 악당들이였다.
《공화당》일당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남북교류를 주장했던 사회당 당수, 사회대중당 정치위원을 비롯한 수많은 통일애국인사들을 재판도 없이 학살하였으며 이북의 구호미를 받자고 한 언론인들과 서신 및 인사교류와 다방면적인 합작을 주장한 단체들, 인사들을 《간첩단》, 《공작단》, 《용공분자》로 몰아 처형하였다.
《북에 공산주의자들이 있는한 통일은 안된다》고 떠벌여 온 《공화당》패거리들은 조국통일3대원칙이 천명된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후에도 《대화는 대화이고 반공이라는 우리의 립장은 본질적으로 달라질수 없으며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반공에서 능동적인 반공으로 바꾸어나갈뿐》이라고 떠벌이면서 1972년 10월 영구분렬과 《반공》을 위한 《유신체제》를 조작하고 《정권》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간첩단사건》을 련이어 날조해냈다.
1974년 한해동안에만도 《전국민주청년학생총련맹》(민청학련)을 《공산혁명을 위한 지하조직》으로 규정하고 《국가반란》을 기도했다는 죄를 꾸며 1,000여명을 체포하여 250여명을 군사재판에 넘긴 《민청학련사건》을 비롯하여 《서해사건》, 《울릉도간첩단사건》,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추자도사건》, 《동해사건》 등 10여건의 《용공》조작사건들을 날조하였다.
집권말기에는 《용공》조작을 《유신》독재《정권》연장의 최후수단으로 삼고 1979년 9월 《통일혁명당재건사건》을, 10월에는 《남민전사건》을 조작하여 애국민중과 청년학생들을 대중적으로 검거, 투옥, 처형하였다.
실로 5.16과 함께 시작된 《공화당》일당 집권 18년은 《반공》으로 통일운동을 가로막고 《용공간첩사건》조작으로 수많은 민중을 학살한 죄악으로 점철된 행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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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광주살인마》로 불리우는 전두환의 《민정당》역시 《용공》조작의 피를 마시며 돋아나 《용공》탄압으로 집권을 부지한 《반공광신당》이였다.
전두환살인마는 자주, 민주, 통일을 념원하는 광주민중을 《용공분자》들로 몰아대고 미국의 배후조종밑에 《계엄군》을 내몰아 광주시를 《피의 목욕탕》으로 만들었다. 련이어 《비상계엄령》으로 정당들과 《국회》의 활동을 봉쇄하고 정치적반대파들을 지하감옥에 끌어갔으며 지어는 당시 《대통령》까지도 권력의 자리에서 쫓아냈다.
《12.12숙군쿠데타》와 5.17폭거 등 살인광란극으로 《대통령》감투를 뒤집어쓴 전두환파쑈독재자는 불안정한 《정권》유지의 최대변수를 선임자들처럼 《용공》조작에서 찾으면서 1980년 12월 30일 《비상계엄》하에서 《보안법》에 《반공법》의 독소조항들을 첨가, 체계화하여 그것을 반북대결과 파쑈화를 위한 만능의 악법으로 개악하였다.
선임《반공정권》의 반통일체질을 그대로 이어받은 《민정당》은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북과 대결할수 있는 힘을 키우는것이 제5공화국의 기본정치목표》이며 《국민들의 머리를 반공으로 개조하는것이 안보문제의 초점》이라고 하면서 《반공궐기대회》, 《반공강연회》, 《반공단합대회》 등 《반공사상주입》광대극을 대대적으로 벌려놓았다.
심지어 《히틀러소년단》의 재판인《한국청소년련맹》이라는 《반공》소년단체를 만들어 어린 학생들속에까지 《승공》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기만적인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이라는것을 내놓은 전두환은 미국의 조종하에 《교차승인》에 앞서 《교차접촉》을 실현하고 《유엔동시가입》에 앞서 《유엔단독가입》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단계론》을 계속 들고나오면서 《정부》에 앞서가는 그 어떤 통일론의도 《용공》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탄압함으로써 7.4남북공동성명을 전면부정해버렸다.
《북과는 대결만이 있을뿐이고 평화통일은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을 대공교두보로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어온 전두환일당은 청년학생들의 1980년 광주《미국문화원》방화투쟁과 1982년 부산《미국문화원》방화투쟁, 1985년 서울《미국문화원》점거투쟁 때에는 직접 나서서 《수사전담반》까지 만들어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은 물론 종교인까지 체포하여 쇠고랑을 채우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1986년 10월에는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여야 한다》고 주장한 《신민당》소속 《국회》의원 유성환을 《용공분자》로 몰아 철창속에 가두었고 《건국대학교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청년학생을 《련공》에 걸어 란폭하게 탄압하였다. 《광민사사건》과 《부림사건》, 《제2광주사태획책사건》, 《통일혁명당 고려대학교사건》 등 《민정당》의 파쑈독재집단이 일으킨 《용공》소동은 이루 헤아릴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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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특수전학교에서 친미교육을 받고 전두환과 함께 미국의 《반공》전쟁터인 윁남전쟁마당에 뛰여들어 친미주구로 맹활약한 쌍둥이 《반공맹수》인 《민자당》의 로태우 역시 《용공》조작에는 뒤떨어지지 않았다.
1987년 6월 《민정당》의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였던 로태우는 이른바 《6.29선언》이 기만《선언》으로 락인되여 인기가 대폭하락되고 집권의 꿈이 깨질 위험이 조성되게 되자 그 출로를 《용공》조작에서 찾고 1987년 11월 《남파부부간첩사건》에 이어 충격적인 《칼기폭파사건》을 조작했다.
《대통령》감투를 쓴 이후에는 《정권안보》를 위해 1989년 4월 《안전기획부》와 《국군보안사령부》,경찰을 포괄하는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용공세력척결》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로태우의 《민자당》패거리들은 1991년 5월 《국회》에서 다수 《국회》의원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회의장도 아닌 중앙홀에서 무선마이크로 《보안법》개악을 단 35초만에 통과시켜 《용공》조작의 법률적체제를 정비하였다.
1990년 10월부터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로태우일당은 청년학생들과 각계 민중을 《체제전복》세력으로 몰아대며 탄압하는데 무려 15만여명의 군병력과 경찰, 460만여명의 예비군을 출동시켰다.
《죽음의 공포만 주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통치철학》으로 1988년 4월 《반제반파쑈한국민중전선건설회발족 선언문사건》, 1990년 《사로맹사건》 등 《용공사건》을 조작하여 수많은 민중을 감옥으로 끌어가고 교수대에 매단것이 바로 로태우의 《민자당정권》이였다.
로태우일당은 경향각지에서 통일운동이 고조될 때에는 《대화창구일원화》의 간판을 내걸어 차단했고 《이북바로알기》운동이 확산될 때에는 《체제수호》의 구호를 흔들며 탄압선풍을 일으켰다.
1989년 5월에는 광주의 조선대학교 교지 《민주조선》창간호에 북을 소개하는 론문을 발표한 리철규학생을 《용공분자》로 몰아 300만원의 현상금까지 걸고 지명수배하던 끝에 그를 무참히 학살하여 수원지에 처넣었다.
로태우는 조국통일을 주장하는 《전대협》을 《용공리적단체》로 몰아붙이면서 1988년 6.10남북학생회담과 8.15남북학생회담을 무산시키고 1991년에는 8.15범민족대회와 청년학생통일대축전을 막기 위해 《제2단계 범죄와의 전쟁》놀음을 벌리기까지 하였다. 이와 함께 조국통일을 위해 사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림수경, 문규현을 《보안법》상의 《잠입탈출죄》, 《찬양고무죄》, 《회합통신죄》에 걸어 철창속으로 끌어갔다.
그리고 1988년 적십자회담, 경제회담, 국회회담을 위한 남북대화가 활성화되자 이른바 《5개 간첩단사건》이라는것을 날조하여 이 모든 회담들을 무산시켰으며 《한국자유련맹》, 《호국청년련합회》, 《승공련합》, 《재향군인회》 등 《반공》반통일단체들을 조직정비하여 반북대결을 격화시키는 망동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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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일당은 정신병적인 집권욕을 가지고 국민들을 배신하는 3당야합으로 《반공》파쑈독재자들의 품에 기여들어가 《정권》을 잡고 《용공》조작을 업으로 삼은 반역의 무리이다.
《민자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김영삼은 《대통령선거》에서 승산이 없게 되자 그 출로를 찾기 위해 1992년 《국군》 특수부대원들을 인민군복장으로 위장시켜 휴전선일대에서의 《국군》에 대한 기습사건을 시도하였다. 《대선》을 한달정도 남기고서는 출판물들이 《대선을 앞두고 위기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용공조작이다》고 평한 그대로의 《남한조선로동당사건》을 조작하여 권력의 자리를 차지했다.
김영삼의 《신한국당》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변절한 자들과 우익보수세력들이 한곳에 모인 력대친미보수세력들의 《반공》사상의 총 아성이였고 반북대결세력의 총 집결처였다.
집권하자마자 《북을 단순히 동족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수 없다》고 하면서 미국을 등에 업고 북과의 전면대결전에 나선 김영삼역도는 1993년 5월 《북진통일》과 《승공통일》의 변종인 《제도통일론》을 내놓았다. 7월에는 《통일정책의 3대기조》와 《3단계통일방안》이라는데서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가 보장되는 통일》을 제창했으며 《자유가 없는 통일은 더욱 불안전하며 번영이 없는 통일에는 문제가 더 많다》는 《통일무용론》을 흔들면서 《승공통일》, 《흡수통일》의 야심을 드러내놓았다.
또한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반공》교육내용을 보다 악랄하게 만들고 극우보수단체들을 동원하여 《호국정신권양대회》니, 《규탄궐기대회》니 하는 《반공대회》를 련이어 벌려놓았으며 일시 중단했던 초,중,고등학교들에서의 《반공웅변대회》까지 부활시켰다.
이른바 《좌경폭력세력》에 대한 탄압을 《정부의 당면과제》로 선포하고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애국적민중을 탄압하기 위한 《신공안정국》을 조성한 《신한국당》일당은 《북에 맹종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조처해야 한다》고 떠들며 《주사파파동》을 일으켰다.
《대선》전 《보안법철페》를 웨쳐대던 김영삼이 《선거》때에는 《보안법》을 《자유민주주의체제수호》의 불가분리의 요소로 미화분식했고 《대통령》감투를 쓴 다음에는 《보안법페지는 미군철수보다 더 위험한것》이라고 떠들면서 《안기부》를 비롯한 폭압기구를 총 발동하여 민주세력을 《체제전복세력》, 《용공리적세력》으로 몰아 탄압선풍을 일으킴으로써 집권한지 10개월동안에만도 무려 478명의 애국민중을 《보안법》에 걸어 체포, 구속했다.
1993년 4월 25일 《전대협》의 후신으로 《한총련》이 결성되자 《북의 조종을 받는 <리적단체>, <좌경사상오염의 근원지>》로 몰아 강제해산시키려고 하였으며 로동자들의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도 악랄하게 탄압했다.
《신한국당》패거리들은 선임집권자들보다 한수 더 떠서 《용공》조작사건마다에 어마어마한 《간첩단》이라는 딱지까지 붙여 내놓군하였다.
1993년에는 《김삼석, 김은주남매간첩단사건》을, 1994년에는 《리화춘간첩사건》, 《북한장학금교수간첩사건》을, 1995년에는 《박충렬간첩사건》, 《박창희교수간첩사건》을, 1996년에는 《김동식간첩사건》, 《신규영사건》 등을 련속 날조하여 《정권안보》의 제물로 삼았다.
김영삼역도는 1994년 6월 이른바 《구국전위사건》을 날조하고 자주, 민주, 통일을 주장한 안재구를 체포하여 《북조선의 지시에 의한 반국가활동을 한 간첩》으로 몰아 사형을 구형하였으며 1996년 8월에는 연세대학교 8.15통일대축전행사장을 《리적성》에 걸어 초토화하고 1996년 말에는 《무장공비침투사건》을 날조하여 《비상경계령》까지 내리는 《반공》소동을 일으켰다.
더우기 용납할수 없는것은 북이 력사에 류례없는 대국상을 당했을 때 군부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동족에게 총구를 들이댔는가 하면 조의표시를 위한 통일인사들의 북행길을 총칼로 가로막고 평양을 다녀온 박용길장로를 옥중으로 끌어가는 만행을 감행한것이다.
김영삼《신한국당》패거리들이야말로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고 《신공안한파》로 남쪽땅을 《용공》조작의 란무장으로 전락시켜 애국민중의 피로 물들인 천추에 용납못할 반민족적, 반민중적, 반통일적반역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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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대 친미 《반공당》들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은것이 바로 오늘의 《한나라당》이다.
미국이 입을 벌리는대로 《반공》나발을 불어댐으로써 《한국의 리부쉬》로 불리우던 《한나라당》의 리회창이나 《반공》우익대변지인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5, 6공》시기 요직을 차지하고있으면서 히틀러와 같은 《반공》광기를 부려 《최틀러》로 불리우던 최병렬을 비롯하여 이 당패거리들 모두가 친미《반공》을 업으로 하는 《한국》판 매카시즘들이다.
《한나라당》집단은 《반미는 곧 용공》이라는 등식으로 《반미감정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반미구호를 웨치는것은 민족적자존심을 지키는것이 아니라 국가리익에 손해를 불러오는 망국이다》, 《반미시위는 한미동맹관계를 약화시키는 망동이다》고 하면서 반미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용공》조작에 혈안이 되여왔다.
오늘 《대선》을 노린 《한나라당》패거리들의 반북대결소동과 《용공》조작책동은 극한점에 이르고있다.
다리부러진 짐승 한곬에 모인다고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나 《한나라당》에 둥지를 튼 우익보수세력들은 이 땅을 다시금 파쑈의 란무장으로 만들고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색갈론》이라는 《마녀잡이》구호를 내걸고 《용공》조작의 칼날을 민주세력뿐아니라 현 당국에까지 마구 휘둘러대고있다.
《한나라당》은 동국대학교 교수 강정구의 학술적주장에 대해 《한미동맹관계》와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송두리채 뒤흔드는 일》이라고 하면서 공안당국을 부추겨 그에 대한 검거소동과 재판놀음을 벌리게 하였으며 합법적단체인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 《전교조》를 《용공》단체로, 민주세력들을 《친북세력》으로 몰아대며 사법처리할것을 강박하고있다.
《보안법》페지를 요구하는것은 《한국을 <간첩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하면서 《한나라당》패거리들은 악법페기를 발의한 《국회》의원들을 《북의 로동당원》,《빨갱이빨찌산》으로, 《정부》를 《로동당의 별동대》로,《청와대》를 《적와대》로 매도해나섰다.
또한 2005년 12월 《사립학교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반미친북교육을 하자는것》이라고 소동을 피우며 이것은 《친북좌경세력》을 진출시켜 사립학교들을 《혁명수행집단》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주의빨갱이법안》이라고 떠들어댔다.
《한나라당》의 이런 《용공》조작광기를 두고 언론들은 《과거 독재의 모든 정치적, 물질적유산을 이은 무쏠리니의 검은 샤쯔부대》라고 규탄했고 정치권내에서까지 《군부독재집단의 후예가 사회전체를 갈등의 도가니속에 몰아넣고있다》, 《유신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 21세기 이 사회의 한복판을 활보하고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울려나오고있다.
민족적반목과 대결을 노린 《한나라당》패거리들의 필사적이고 악랄한 반북소동은 력대 선임 《반공》광들의 범죄적《용공》조작책동을 훨씬 릉가하고있다.
이들은 6.15공동선언을 《공산화통일선언》으로, 2000년 6월 15일을 《국치일》로 매도하며 《1항은 미군철수로 이어지고 2항은 남의 민주주의체제를 양보한것》이므로 《목숨을 걸고 저항할것》이라고 고아대며 공동선언을 파기하기 위해 《청와대》의 《밀약설》, 《사전협의설》을 날조하고 《대통령탄핵》을 들고나왔는가 하면 《통일부》 장관을 TV에 나오는 《간첩》에 비유하며 그의 사퇴를 강박해나섰다.
6.15공동선언실천에 나선 범민련 남측본부 전 의장과 전 사무처장을 《보안법》위반으로 몰아 《간첩혐의》루명을 들씌웠고 현대아산 회장 정몽헌에게는 《대북송금의혹》과 《리적행위》감투를 씌워 그를 죽음에로 몰아갔을뿐아니라 6.15공동선언탄생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갖가지 혐의를 씌워 옥고를 치르게 하였다.
한편 《한나라당》의 역적무리들은 《주적개념》삭제문제가 일정에 오르게 되자 큰 변이나 난것처럼 《안보의 지축이 흔들리고있다》, 《주적개념은 분명히 해야 하며 일보의 양보도 있을수 없다》, 《여전히 북은 국가로서가 아니라 반국가단체로,북정권은 협의할 대상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반북대결을 부르짖었다.
《한나라당》은 금강산관광은 《이북퍼주기로서 북의 핵고폭시험자금으로 리용될수 있다》느니,동서해안의 철도, 도로련결은 《북의 남침통로를 개설해주는것으로 될수 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또한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개막행사에서 남과 북이 통일기를 들고 입장하는데 대해서는 《스포츠가 정치선전마당으로 리용될수 있다》고 걸고들었으며 6.15공동선언발표 6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행사가 진행된 광주가 《북의 해방구였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일삼았다.
최근에는 북의 선군정치와 자위적억제력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북의 《동조세력》, 《간첩》으로 몰아대며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에게 형벌을 가하는 등 새로운 《간첩단사건》들을 날조하고있다.
한편 《한나라당》패거리들은 미군철수기운이 높아지자 새로운 《남침위협설》을 류포시켜 《미군이 없으면 서울방어선이 무너진다》고 아우성치며 《국회》에서 《미군철수반대결의안》을 조작하는 추태를 부리였고 《통일정책보다 안보정책에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떠들어대고있다.
《한나라당》은 북의 자위적전쟁억제력이 강화되는데 따라 더욱 로골화되고있는 미국의 북침전쟁책동에 편승하여 《원산상륙》과 《전쟁불사론》을 웨치며 민심을 소란시키고 반북대결분위기를 고취하고있다.
실로 파헤쳐볼수록 《한나라당》이야말로 친미로 서식하고 《용공》조작으로 연명하는 사대매국의 무리들이며 민중의 지향을 억누르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역의 집단이다.
민족의 피로 일신의 영달과 집권을 추구해온 《한나라당》의 력대 《용공》조작의 죄악은 그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버릴수 없다.
대세의 흐름에서 밀려나 《반공》의 하수구속에 처박힌 우익보수패잔병집단인 《한나라당》이 제아무리 몸부림치며 《용공》조작광기를 부려도 그것은 물에 빠진자가 지푸래기 잡는식의 가소로운 몸부림에 불과하다.
히틀러와 무쏠리니, 도죠의 비참한 말로가 보여주듯이 《반공》광신자들의 운명이란 파멸뿐이다.
이런 악의 집단이 《정권》을 다시 잡게 되면 이 땅은 《유신》때보다 더한 파쑈와 폭압의 광풍속에 휘말리게 될것이며 우리 민중은 지난 60여년 당한것보다 더 비참한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게 될것이다.
더 나아가 삼천리강토는 미국의 핵전쟁마당이 되고 민족의 희망이고 미래인 6.15공동선언도 물거품이 되고말것이다.
각계 애국민중은 6.15시대에 역행하여 낡아빠진 《용공》조작으로 집권의 망상을 이루어보려는 《한나라당》 역적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이 땅에서 영영 매장해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야 할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