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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 임병호의 수기 《새 삶의 축복》
(평양 12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28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비전향장기수 임병호의 수기 《새 삶의 축복》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아마도 사람들은 새 삶이라면 평양산원부터 생각할것입니다. 하지만 어찌 첫 고고성을 터치는것만이 새 삶으로 되겠습니까.

선군의 따사로운 해빛속에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누리고있습니다.

인간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지 않는 이는 없습니다.

사람은 정치적 및 사회경제적권리를 다 향유하며 행복하고 보람찬 생활을 할 때 진정한 삶을 누린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란다고 하여 차례지는것도 아니고 권력과 재부로도 살수 없는것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저의 오늘의 삶을 통하여 사람을 제일 귀중히 여기는 인덕의 최고화신을 모셔야 삶에 대한 인간의 희망과 요구가 완전무결하게 실현된다는 삶의 진리를 다시금 새기게 됩니다.

90평생을 뒤돌아보며

이 세상에 생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누구나 세상에 자기의 출생을 알린 생일날을 소중히 여깁니다.

지난 9월 1일이였습니다. 이날 제가 아흔번째로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는것을 아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친히 저에게 생일상을 보내주시였습니다. 아흔까지 사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그 나이에 그런 영광을 받아안는것 또한 범상한 일이 아닙니다.

생일상앞에 앉게 되니 생의 은인이시고 삶의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에 꽉 차올랐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정말 고맙습니다. 저에게 재생의 행운을 가져다주신 어버이장군님께 감사의 큰절을 삼가 드립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인정많으신분, 덕이 크신분을 어버이로 모신 덕에 세상에 다시 태여난 기쁨과 감사의 정을 아뢰였습니다.

원래 저는 1914년 9월 1일에 충청남도 보령의 극빈한 소작농가정에서 태여났습니다. 가정에 첫 자식이 태여났으니 우리 부모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저에게는 고고성을 터친 날부터 생에 대한 담보가 없었습니다. 일제의 조선민족멸시,멸살책동의 가장 막심한 피해자는 갓난아이들이였습니다. 아들의 생명이 언제 끊길지 몰라 저의 부모들은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서 제가 걷기도 하고 어른들의 말귀도 알아듣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그제서야 이 녀석이 명은 있는가부다 하고 생각하고 근 100리길을 걸어 면사무소에 가서 그해 9월 1일에 제가 태여난것으로 출생신고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1916년생이 되였습니다.

당시 나라잃은 우리 인민은 상가집개만도 못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메돼지들이 파먹는 뚝감자와 산나물로 죽을 쑤어먹었습니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부모들은 하나밖에 없는 이 아들의 생일날에 쌀밥 한사발 떠주지 못하였습니다.

고된 생활은 저에게 반항의 눈을 틔워주었습니다. 일제와는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깨달은 저는 17살에 집을 떠나 반일의 폭풍이 태동하는 만주로 향했습니다. 뜻이 맞는 청년들과 반일계몽사업도 하고 친일주구청산도 하느라고 하였지만 혁명조직의 지도를 받지 못하다보니 별로 성과가 없었고 일제경찰의 감시를 받는 몸이 되고말았습니다.

일제의 눈을 피해 조국에 나온 저는 황해도(당시)의 어느 한 광산에 취직하였습니다. 광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정치공작원의 지도밑에 반일지하혁명조직이 무어져 활동하고있었습니다. 그의 한 성원으로 된 저는 조직의 귀중함과 거대한 힘을 느끼며 혁명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에서 일제에게 철추를 내리신다는 소식은 열혈의 이 가슴을 반일애국으로 높뛰게 하였습니다. 저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민항쟁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로동자들을 각성시키고 묶어세우는 한편 광산과 주변에 주둔한 일제침략군의 동태자료들을 조직을 통해 조선인민혁명군에 보내주군 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침내 강도일제를 쳐부시고 조국을 찾아주시였습니다. 조국해방의 따사로운 빛발은 겨레에게 삶의 희열을 북돋아주었습니다.

-목숨보다 귀중한 새 조국건설에 이 한몸 바치리라.

착암기를 틀어잡고 막장에서 낮과 밤을 보냈지만 힘든줄 몰랐습니다. 떠나온 고향, 이 아들을 기다릴 어머니생각도 했지만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의 새 조국건설로선을 받들어 더 많은 일을 하고 어머니를 만나리라 결심하였습니다. 당에서는 제가 해방전 반일지하혁명조직의 성원으로 투쟁도 잘하였고 해방후에는 새 조국건설에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있다고 평가하면서 남먼저 간부양성학교에 보내주었고 당일군으로, 광산의 무역일군으로 키워주었습니다. 준엄한 전쟁시기에도 저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다른 나라들과 무역거래사업을 하면서 전쟁승리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 8월말 출장준비를 서두르는 저에게 안해가 며칠있다 돌아오는가고 묻는것이였습니다. 두어달은 잘 걸릴것 같다고 대답하며 왜 그러는가고 되묻자 그는 며칠있으면 당신생일이기에 하고 얼버무리는것이였습니다. 그때까지 생일상을 받아보지 못하고 산 저에게 안해의 말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해도 그다음해도 저의 생일은 출장길에서 지나갔습니다.

감옥은 삶을 판가리하는 결전장이기도 합니다. 적들은 생일에 대한 애착심을 악용하여 생일날에 비전향장기수들을 전향시켜보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꾸미군 하였습니다.

제가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있던 어느해 7월 26일이였습니다. 면회를 왔다기에 나가니 어머니가 온것이였습니다. 근 30년만에 만나는 어머니였습니다. 저의 손을 꼭 잡고 죽기 전에 너를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어서 왔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행색이 형편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년로한 어머니가 차비할 돈이 없어 고향 보령으로부터 광주까지 300여리 먼길을 일주일나마 줄곧 걸어서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습니다. 가슴에서는 피눈물이 흘렀습니다. 더욱 저의 가슴을 미여지게 한것은 그날이 어머니의 생일날이라는 사실이였습니다. 교형리들은 제가 이날에 그리고 그리던 어머니의 말을 들을것이라고 타산하고 면회를 승인하였던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적들이 생각하는 그런 녀성이 아니였습니다. 제가 생일선물 하나 마련하지 못하여 죄스럽다고 하자 대뜸 《무슨 소릴 하느냐, 네가 떠난 뒤로 우리 집에서는 누구도 생일을 쇠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아들이 전향하도록 설복하라고 하였다만 네가 김일성장군님의 령을 받든 전사라니 이 에미는 기쁘기만 하다. 장하다. 힘들어도 꿋꿋이 이겨내거라.》하며 웃음짓는것이였습니다.

그날 저의 망막에 새겨진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저에게 혁명가의 지조를 목숨으로 지키려는 투지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제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교형리들의 야만적인 고문에도,살이 썩어들어가는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여러달동안 먹방에서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도 신념과 지조를 지킬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조국의 장한 아들로 살기 바라는 어머니의 웅심깊은 마음이 힘으로 되였기때문입니다.

32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감옥문을 나섰으나 제가 갈 곳은 양로원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는 여러명의 비전향장기수후원회 성원들과 청년학생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저의 생일날이기에 축하하러 왔다는것입니다. 성의는 고마왔지만 선뜻 받아들일수 없었습니다. 그들앞에서 저는 가슴에 피멍으로 새겨진 어머니와의 면회를 추억하였습니다.

제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혜로운 품으로 돌아온 다음해 저의 생일날이 다가오자 아들과 며느리가 서두르는것이였습니다. 그때에도 저는 감옥살이나 하다가 돌아왔는데 무슨 생일을 쇠겠느냐, 부모에게 자식된 도리도 하지 못하였으니 생일을 쇠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 태여나 한번도 생일상을 받아보지 못한다는것은 사실 아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집안의 어른인 제가 생일을 쇠지 않으니 우리 가정에서는 자연히 생일놀이가 없어졌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였지만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제 신상의 이런 실태까지 헤아리시여 은정을 베풀어주신분이 바로 운명의 태양이신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통일애국투사, 민족의 영웅으로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령도의 그 바쁘신 길에서도 저에게 90평생 받아보지 못한 생일상을 안겨주시는 크나큰 은덕을 베푸시였던것입니다.

어버이의 은정이 넘쳐나는 생일상은 혁명전사들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의 축도였고 이 세상 그 어느 어머니도 줄수 없는 크나큰 은덕의 응결물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은혜로우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축복을 받은 오늘은 이 할아버지가 다시 태여난 날이다. 너희들이 부른 <축복받은 나의 삶>이라는 노래는 이 할아버지를 위해 지은 노래같구나. 다시한번 불러주렴.》

고목에 꽃이 피였습니다. 절세의 위인을 모셔야 복된 삶도 있다는 인생의 진리는 저의 90살생일을 통해서도 증명되였습니다.

인덕의 화신을 모신 덕

세상에 인민들의 마음과 뜻을 합친것보다 위력한 힘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힘을 인식한탓에 많은 정치가들이 인민의 단합에 뜻을 두었지만 누구도 그 뜻을 실현하지 못하였습니다. 돈과 권력으로도 해결할수 없는 이 문제의 열쇠는 바로 정치가의 인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 공화국의 현실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세상에 우리 공화국처럼 령도자와 군대와 인민이 마음과 뜻을 함께 하는 일심단결의 나라는 없습니다. 그 어떤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그 힘앞에 제국주의렬강들이 쩔쩔매고있습니다.

정말 통쾌하고 가슴후련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습니다.

《인민들은 인덕이 있는 위인을 좋아합니다.인덕이 있어야 위인의 품격도 올라가는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총명하고 재능이 있는 지도자라고 하여도 인덕이 없으면 지도자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예로부터 인덕은 사상과 령도력과 함께 지도자의 자질과 품격을 특징짓는 3대풍모의 하나로 일컬어왔습니다. 인민대중이 자기들을 끝없이 사랑하고 자기들에게 헌신하는 지도자를 좋아하는것은 당연한 리치입니다. 덕이 있는 정치가는 대중의 신망을 얻게 되고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지만 덕이 없거나 부족한 정치가에게는 향기없는 꽃에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 않듯이 사람들이 끓이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가장 복받은 인민입니다.

인민을 사랑하는것을 천품으로 지니신분,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 헌신하시는 인덕의 화신을 령도자로 모시고있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제가 조국에 돌아와 지난 6년남짓한 기간 심장이 후덥도록 열렬하게 느낀것이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늘같은 인덕입니다.

며칠전 저녁이였습니다. 어느 중앙기관에서 일하는 아들이 집에 돌아와 여느때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것이였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이 추운 겨울에도 전선길,야전차에서 낮과 밤을 보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일군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오랜 시간 인민생활을 높일 방도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면서 우리 인민들을 세상에 부럼없이 잘 살게 하는것이 자신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우리가 선군을 하는것도 인민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힘주어 강조하시였다고 하는것이였습니다.

저의 온몸은 순간에 불덩이를 안은듯 격정으로 달아올랐습니다.

선군도 인민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 하는것이다!

얼마나 가슴울렁이게 하는 명언입니까.

위인들의 그 어느 전기의 구절에 인덕이 철철 넘쳐나는 이런 사랑의 금언이 있습니까, 력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격언의 어느 모퉁이에 이런 아름다운 덕행의 정화가 새겨진적 있습니까.

저절로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인민을 가장 열렬히 사랑하시는분, 가장 인정이 많으신분을 어버이로 모신데서 흐르는 행복의 구슬이였습니다.

별치 않은 일이 사람의 심금을 크게 울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 제가 받은 충격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날부터 저에게는 아이들의 글읽는 소리도, 녀인들의 밝은 웃음도, 씩씩한 젊은이들의 활기띤 목소리도 무심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덕의 화신을 모신 덕에 누리는 선군복때문임을 새삼스럽게 새겨안았기때문입니다.

인류정치사의 새 기원을 열어놓고 평화도 지키고 인민들에게 행복도 베푸는 선군정치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이 펴실수 있는 인민적정치의 정화입니다.

저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백두산기슭에 펼쳐주신 인민의 무릉도원,사회주의선경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멀고 험한 전선길에서 삼지연인민들의 생활을 걱정하시며 락원을 일떠세울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신 경애하는 장군님,누구나 부러워할 멋진 새거리를 일떠세워주시고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그리도 기쁘시여 태양의 미소를 지으신 인민의 어버이,

남조선에서 그런 집을 쓰고 살자면 묵돈을 들여야 하기때문에 근로인민들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저는 선군시대에 태여난 삼지연의 희한한 살림집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강한 총대를 가지지 못한탓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노예의 멍에를 써야 했던 지난날을 추억하였고 불행과 수난의 비운을 겪는 남조선인민들도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선군이 평화수호의 보검일뿐아니라 크나큰 인덕이라는것을 확신하게 되였습니다. 가슴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이 밀물처럼 흘러들었습니다.

선군시대의 무릉도원이 어찌 삼지연마을뿐이겠습니까.

안변땅,함주땅,양덕땅 아니 온 나라 곳곳에 먼 후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는 사회주의선경이 펼쳐졌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 12월초 추운 겨울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미곡마을을 찾으시고 그곳에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깊이 새기시였습니다. 시종 기쁘시고 만족하시여 웃음을 지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의 해빛같은 모습이 지금도 저의 가슴을 격정과 행복으로 설레이게 합니다.

현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정치가 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수호하는 위력한 보검이고 인민의 행복의 오아시스라는것을 립증하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체취가 스며있는 나라의 최북단으로부터 최전연 판문점까지 그리고 동서의 바다가로부터 심산유곡의 이름없는 산골마을에 이르기까지 이 땅우의 모든것이 그것을 실증하여주고있습니다. 어버이장군님의 미소속에 날로 높아가는 인민들의 랑만에 넘친 웃음소리가 그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사회주의땅답게 변모된 대지가 그것을 증명하고있습니다.

인민을 위해서라면 진창길,벼랑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걷고 또 걸으시며 인민의 행복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으시는 인민의 어버이를 선군령장으로 모시여 우리 인민의 행복한 삶이 활짝 꽃펴나고있고 보다 휘황찬란할 래일이 기약되여있는것 아니겠습니까.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이 우리 인민의 마음은 언제나 어버이장군님께로만 달리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마음속에 인민이 살고 인민의 마음속에 어버이장군님이 계십니다.천만군민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오직 하나 우리 공화국뿐입니다.

오늘의 세계에서 독특한 선군정치로 평화뿐아니라 인민들의 존엄과 삶을 지켜주고 빛내여주는 공화국의 희한한 현실은 인류의 동경과 부러움을 자아내고있습니다.

제가 40여년세월을 산 남조선만 보더라도 여기에서는 통치배들의 권력,치부,부귀영화를 위한 당파,계파,분파싸움이 그칠새없고 그로 하여 사회에는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극단한 개인주의가 만연되여있습니다. 큰물이 나 인민들이 고통받고있을 때 정치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해외나들이를 떠나고 골프놀이로 시간을 보내고있는것이 현실입니다.

남조선에 있을 때 공화국을 다녀온 사람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북에 가보니 선군은 인민들의 복리를 위한것이더라, 선군정치하에서 령도자와 군민이 한식솔이 되여 한지붕밑에서 동락하고있었다, 군대는 원민을 하고 인민은 원군을 하더라, 인정이 말라버린 이남땅과는 달리 이북은 혈육도 아닌 남남이 피와 살을 나누어가지는 별세상이였다, 우리 이남사람들도 그런 훌륭한 정치를 받으며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면서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였습니다.

아마 제가 한두해만 더 남조선에 있었더라도 늙고 병든 이몸은 이미 저세상것이 되고말았을것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강하시고 덕이 크시여서 우리 조국이 강하고 위력합니다.

지금 미제는 《핵문제》,《인권문제》,《미싸일문제》 등을 내들고 우리 공화국을 해쳐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있습니다.

하지만 백두산선군령장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고 장군님께서 키우신 강력한 인민군대가 있어 우리 공화국은 끄떡없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누리는 행복은 남달리 큽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남조선에서 고생하였다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전선길의 야전차에서도 줄곧 저희들을 생각하고계십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늘같은 은덕으로 저희들은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고 복된 삶을 누리고있습니다.

우리 집의 구석구석까지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이 꽉 차있습니다. 선군의 해빛속에서 저는 세상에 다시 태여났으며 인민군대에서 복무하던 손자는 올해에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이 되였습니다. 공화국에 일점혈육도 없던 제가 비옥한 토양에 뿌려진 씨앗처럼 번성하는 대가정의 가장이 되였습니다.

날과 달이 흐를수록 저는 선군복이야말로 어버이장군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은덕중의 은덕, 최상최대의 덕임을 가슴후덥게 절감합니다.

위대한 선군정치하에서 높은 존엄과 복된 삶을 누리는 우리모두 인덕의 화신이신 어버이장군님을 해와 달이 다하도록 높이 받들어 모십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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