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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절세의 위인들의 손길어린 민족교육의 화원》
(평양 11월 20일발 조선중앙통신)20일부 《로동신문》은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소장 교수,박사 조희승의 수기 《절세의 위인들의 손길어린 민족교육의 화원》을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는 지나온 한생을 새삼스럽게 돌이켜보게 하는 그런 때가 있다.요즘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생겼다.

얼마전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조국인민들의 커다란 관심속에 력사적인 재일조선인중등교육실시 60돐, 총련 조선대학교창립 50돐을 성대히 기념하였다.나에게는 결코 무심히 대할수 없는 뜻깊은 날들이다. 총련민족교육의 화원에서 10여년간 배우며 자란 나의 가슴속에는 절세의 위인들의 사랑의 손길이 어린 민족교육에 대한 고마움의 정이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총련의 민족교육사업은 이국땅에서 우리 동포들의 민족성을 지키며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재일조선인운동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키우는 매우 중요한 사업입니다.》

예로부터 교육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한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일러왔지만 이역땅에서 사는 해외동포들에게 있어서 자기 민족의 말과 글,력사와 문화를 알게 하는 민족교육이야말로 동포사회의 존망과 관련되는 더없이 중요하고 사활적인 사업이다. 철없던 시절에는 미처 생각 못한것이지만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는 나날 실지생활체험을 통하여 깨달은 진리이다.

나의 청소년시절은 총련 구라시끼조선초중급학교(당시)와 히로시마조선중고급학교, 교또조선초중고급학교를 거쳐 조선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총련민족교육의 화원에서 흘러갔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민족교육의 화원이 없었다면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손에 올망졸망 매달려있는 6남매의 막내인 내가 어떻게 마음의 한점 구김살도 모르고 그처럼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수 있었겠는가. 사실 우리 부모들은 학교문앞에도 가보지 못하였던 까막눈들이였다. 이역의 어지러운 잡바람이 스며들지 못하는 해빛밝은 교정에서 배움의 글소리 랑랑히 울리며 민족의 넋을 새겨안고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펼치던 못 잊을 그 나날들이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다.

나를 력사탐구의 길로 떠밀어준것도 다름아닌 민족교육이였다. 총련 구라시끼조선초중급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어느날 나는 우연히 일본의 한 력사도서를 읽다가 심각한 모순점에 부딪치게 되였다. 책에 서술된 조선력사에 대한 부분이 내가 우리 학교에서 배운것과 그릇되게 서술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완전히 정반대였다. 알아보니 조선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외곡말살하려는 일본반동들의 파렴치한 책동의 산물이였다. 순간 어린 마음에도 민족적의분이 솟구쳐올랐다. 그날 나는 마음다졌다.

(우리 력사를 지키자.내 기어이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지키고 빛내이는 력사학자가 되리라.)

체계적인 민족교육을 받는 과정에 가슴속에 간직된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슬기로운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그것을 외곡말살하려는 일본반동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내가 력사탐구에 일생을 바치리라고 결심하게 된 동기였다. 그때부터 나는 어린 《력사학자》가 되였다. 나는 짬만 있으면 많은 력사책들을 읽으며 지식의 탑을 쌓아나갔다. 내가 집을 멀리 떠나 교또조선초중고급학교로 전학하게 된것도 조선관계 력사유적들이 많은 그곳에서 력사공부를 심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후 총련 조선대학교 력사지리학부(당시)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나는 조국에 가야 조선력사를 더 잘 연구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주체61(1972)년 귀국선에 올라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조국에 귀국한 후 나는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조선력사학과에 입학하였다. 하여 이름으로만 알고있던 원사,교수,박사들을 비롯한 공화국의 권위있는 교원들의 심도있는 강의와 지도를 받으면서 탐구의 나래를 더 활짝 펼치게 되였다. 나는 나라에서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배우고배워 마침내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다. 이어 사회과학원 연구사로 사업하면서 나는 《조선수공업사》(1), 《가야사연구》, 《일본에서의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을 비롯한 가치있는 력사론문들과 도서들을 집필하였다. 특히 공화국의 권위있는 원사선생과 함께 공동으로 집필한 《초기조일관계사》는 오래동안 외곡되여오던 조일관계력사의 진실을 과학적으로,자료적으로 깊이있게 밝힌것으로 하여 내외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후날 나와 만났던 일본과 남조선의 력사학자들은 원사선생과 동년배쯤 되는 관록있는 학자인줄로만 알았는데 재일동포출신의 젊은 사람이라는것이, 더구나 그 나이에 벌써 교수,박사로 되였다는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금강산에서 진행된 북남력사학자들의 학술토론회에서도,지난해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서울에서 진행된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에 참가하였을 때에도 나는 이런 소리를 자주 들을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키워준 어머니조국의 은정에 대하여, 민족교육의 고마움에 대하여 나는 새삼스럽게 느낄수 있었다.

나는 공화국 사회과학자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기회도 여러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총련일군들이 조국의 품에서 어엿한 력사학자로 성장한 나를 몹시 대견해하며 열렬히 축하해주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애국위업의 중요초소들에서 조국과 총련애국위업을 위해 헌신하고있던 학창시절의 옛 스승들과 친우들도 나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감동되였다고 진심을 터놓았다.

일본방문의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어린 조치로 조선대학교에 마련된 조선력사박물관을 돌아보면서도,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으며 마음껏 배우는 새 세대 동포학생들의 활기에 넘친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민족교육에 기울여주시는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사랑과 은정에 대하여 절감하게 되였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애국의 꽃망울을 활짝 피워주는 민족교육의 화원이 없었다면 나의 오늘이 어찌 있을수 있겠는가.

재일동포들이 입버릇처럼 민족교육이야말로 총련애국위업의 생명선이라고 말하고있는데 옳은 말이라고 본다.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 집요하고 악랄한 동화책동이 국책으로 되고있는 일본땅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있어서 민족교육은 가장 사활적인 문제이다. 하기에 민족교육권리를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 동포들모두가 떨쳐나서 그토록 견결히 싸워나가고있는것이 아닌가. 총련의 만년재보인 민족교육을 굳건히 사수하고 대대손손 이어가려는 동포들의 의지로 출렁이는 애국의 격랑은 그 어떤 탄압의 광풍으로써도 막지 못한다.

민족교육의 자랑스러운 년대기와 더불어 의의깊은 나날들이 흘러가고있는 지금 새삼스럽지만 나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말하고싶다.

《절세의 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이 어려있고 애국의 자랑찬 력사가 비껴있는 민족교육의 화원을 부디 소중히 여기시라.그리고 영원히 빛내시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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