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기사 달력>>2006년 11월 13일기사 목록
비전향장기수의 글 《신념으로 밝아오는 통일강성대국의 려명》
(평양 11월 12일발 조선중앙통신)12일부 《로동신문》은 비전향장기수 리공순의 글 《신념으로 밝아오는 통일강성대국의 려명》을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력사적인 판문점시찰 10돐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지금 나의 마음은 위인의 거룩한 자욱이 어려있는 판문점에로 달려가고있다.

미국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이 최절정에 달하였던 그때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최전연중의 최전방인 판문점에까지 나가시여 어버이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세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실 굳은 신념과 의지를 천명하신 장군님.

경애하는 장군님의 신념은 우리 조국의 모든 승리의 원천이며 조국통일의 위력한 무기이다.

위인의 신념으로 강성대국의 려명이 밝아오고 자주통일시대의 전환적인 국면이 펼쳐지고있는 오늘 나는 체험을 담아 혁명적신념과 승리에 대한 생각을 글로 옮겨보려고 한다.

1

혁명이자 신념이고 신념이자 혁명이다. 오늘보다 래일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억세게 살며 투쟁하는 사람만이 신념의 강자로, 혁명의 승리자로 될수 있다.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과 신념에 대해 밝히신 새로운 철학이고 심오한 지론이라고 본다.

인류사의 갈피에는 혁명에 대한 위인들의 견해들이 기록되여있다. 맑스는 《혁명은 력사의 기관차》라고 했고 엥겔스는 혁명을 《정치의 최고행위》라고 했다.레닌은 《혁명은 투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력사에 《혁명은 신념》이라고 규명한 위인은 없었던것으로 안다.

혁명과 신념의 호상관계에 대한 장군님의 명언은 혁명투쟁에서 신념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주체적해명에 기초한것으로서 비범한 예지와 령도력을 지닌 혁명의 영재만이 밝힐수 있는 고전적명제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혁명은 신념이고 신념은 승리이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해가는 혁명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그 길에서는 얼어죽을수도 있고 굶어죽을수도 있으며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수도 있다. 따라서 강한 혁명적신념을 소유해야 혁명의 길에 나설수 있고 그 길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할수 있는것이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남쪽 감옥에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으면서도 싸워서 승리하고 조국으로 돌아올수 있은것은 혁명적신념을 떠나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다.

수십년동안 감옥살이를 한다는것은 정말 말과 같이 쉬운 일이 아니다. 참기 어렵고 표현할수 없는 고통의 련속이 수인살이이다.

우리는 인생의 청춘기에 감옥에 들어갔다가 머리에 흰서리를 이고 감옥문을 나섰다. 한때 세계최장기수로 소문났던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나 현재 이스라엘감옥에 수감되여있는 레바논의 장기수 사미르 쿤타르의 옥중년한이 27년이라면 우리는 30~40년 지어 45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우리가 갇혀있는 0.75평 독감방은 15척의 높은 담장이 둘러쳐있어 인간세상과 격페되여있었다. 들려오는것이란 고문과 신음소리, 전향을 강요하는 교형리들의 울부짖음뿐이였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말그대로 절해고도에서 인생을 살며 투쟁해야 하였다.

한해가 다르고 두해가 달랐다. 10년이 다르고 20년이 또 달랐다. 감옥생활의 고통은 해를 넘길수록 더해만 갔다.

강인한 의지로 겨울을 이겨내니 또다시 겨울이 오고 혹독한 추위가 우리 몸을 사정없이 얼구었다. 여름은 여름대로 감방안이 한증탕이 되여 온몸을 물주머니로 만들군 했다. 고문과 심문을 당하고 먹방에 내동댕이쳐지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대로 감옥안에서 생을 마칠수도 있다는 생각,세상은 우리가 여기서 싸우다죽었다는것도 모를것이라는 생각…

쇠도 오래 되면 산화된다. 하물며 인간은 쇠가 아니다. 우리가 감옥살이하는 기간 강산은 여러번 변하였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것이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것이 있었다. 그것은 혁명가의 신념이였다. 설사 아무도 모르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해도 조국과 인민앞에 한번 다진 전사의 맹세는 추호도 저버릴수 없었다.

나는 감옥안에서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내가 조국통일의 길에 첫걸음마를 떼던 지난 시기의 일들을 머리에 떠올리군 하였다.

충청남도 서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난 나는 어려서부터 나라없는 설음을 뼈에 사무치게 체험하였다. 8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떠돌이살이를 하던 그때 나는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백두산에서 피어린 항일대전을 벌리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8.15는 왔어도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공화국북반부와는 달리 미군이 강점한 남조선에서는 인민위원회들이 강제해산되고 친일파,민족반역자들은 상전을 바꾸어업고 또다시 제 세상처럼 날치였다. 나는 집안이 가난한탓에 배움의 꿈도 짓밟히고 부자집의 심부름군으로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에게 혁명을 해야 한다는 자각을 심어주고 혁명적신념을 안겨준것은 혁명의 군복을 입었던 때부터였다.

16살때 미국에 의해 북침전쟁이 터지자 의용군에 입대하여 락동강계선까지 나갔던 나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어릴적부터 그처럼 경모해마지 않던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북으로 왔다. 전후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교육제도의 혜택으로 돈 한푼 내지 않고 대학을 나오고 함흥철도설계연구소에서 당사업을 한 공화국에서의 10여년간의 행복했던 생활은 잊을수 없는 나날들이였다.

그때 일들을 생각하느라면 저절로 새 힘이 솟고 혁명의 길에서 물러서면 안된다는 자각과 의지가 더욱 굳어졌다.

신념을 지켜 싸우는 날과 달은 교형리들의 악착한 고문과 회유를 이겨내는 간고한 투쟁의 날과 달이였다.

적들은 우리를 전향시켜보려고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중세기적고문을 들이대였다. 뭇매가 일상사로 되고 불고문,물고문,고추가루고문 등 별의별 고문수법들이 다 동원되였다. 거꾸로 매달아놓고 때리고 의자에 꽁꽁 묶어놓고 전기고문을 들이대기도 했으며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하여 못 살게 굴었다. 지금도 그때 당하던 고문을 생각하면 꿈속에서도 소스라쳐 깨여나군 한다. 얼마나 우리의 살점을 뜯어내고 뼈를 깎고 정신을 흐려놓으려 했던가.

옥중투쟁의 나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사형수로 최후를 각오했던 나는 변치 않을 통일신념을 담아 감방벽에 《통일지도》를 그렸다. 손끝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평양과 주요도시들의 이름, 북남으로 련결된 철길과 도로들을 새겨놓고 그우에 《조선》이라고 썼다.

며칠후 이것이 발각되여 나는 고문장으로 끌려갔다. 교형리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나를 결박한채로 콩크리트바닥에 쓰러뜨려놓고 입에다 소금물을 부어넣었다. 옹근 이틀동안 악착한 고문을 들이댄 교형리들은 피투성이된 나를 먹방에 내던졌다.

《이 빨갱이놈아,언제까지 전향 안하고 뻗치는가 보자.》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것이 얼마나 굳은것인가 하는것을 알수 없었다.

혁명적신념,이것은 천리 불바다, 만리 혈로도 꿋꿋이 뚫고나가는 철의 의지이고 끈질긴 유혹앞에서도 휘지 않는 지조이며 악형과 고문,단두대우에서도 꺾이지 않는 절개이다.

엎어놓고 짓밟아도 한목소리, 거꾸로 매달아놓고 매질해도 한목소리인 사람만이 진짜혁명가, 수령의 전사이다.

우리는 《전향 안할테야?!》하며 관절을 꺾으면 《안한다》고 웨쳤고 고추가루물을 코에 들이부으면 《모른다》고 고함을 쳤으며 음식과 녀자로 유혹하면 단호히 쳐갈겨버렸고 교수대에 올려세우면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불렀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이처럼 혹독한 고문과 갖은 회유속에서도 신념을 지킬수 있은것은 마음속에 언제나 정의와 승리의 상징이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기때문이였다.

우리들가운데는 자기 인생에서 수령님을 몸가까이 뵈온 영광을 지닌 사람도 한둘이 아니였다. 선군의 총대로 일제의 100만대군을 제압하고 나라를 다시 찾아주신 30대 청년장군의 조국개선연설을 들으며 만세를 터치던 농민출신도 있었고 침략자 미국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놓은 전승의 열병식장에서 강철의 령장을 우러러 발구름소리 높이 울리던 어제날의 군인도 있었다.자기들의 일터를 몸소 찾아주신 수령님께 인사를 올리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은 일군도 있었다.

우리는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을 통방으로 서로 주고받으면서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과 공화국에서의 행복넘쳤던 생활을 눈앞에 그려보군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신념을 더욱 단련하기 위해 감옥안에서도 당세포조직을 뭇고 스스로 당적분공도 맡아나섰으며 주체사상과 조선로동당력사에 대한 학습도 꾸준히 진행하였다. 우리는 감옥안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소식도 듣고 《푸에블로》호나포사건,《EC-121》간첩비행기격추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면서 우리 공화국은 역시 총대가 강하고 자존심이 센 자주의 나라이라는것을 더욱 뜨겁게 느끼였다. 그 나날에 어버이수령님과 꼭같은 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조국과 인민을 령도하고계신다는 감동적인 사실도 알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 계시여 우리 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 이런 확신이 우리들을 신념의 강자들로 만들었고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최대의 상실의 아픔속에서도 우리를 불사조처럼 다시 일떠서게 했다.

흘러온 인생을 돌이켜보며 나는 가끔 이런 생각에 잠기군 한다. 우리가 죽음의 유령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 나날 잠시나마 자기자신의 생명이나 안락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것인가고, 그러면 정신적으로 동요하였을것이고 혁명적신념을 끝까지 지킬수 없었을것이다.

실제로 감옥에서 기나긴 옥살이와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전향서를 쓴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감옥에서 나가서 돈과 녀자한테 빠져 신념을 버리는자도 나타났다. 그 대가로 그들은 순간의 안식은 얻었지만 삶의 영원한 보람과 긍지를 잃었다.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의 발표로 우리들이 개선장군이 되여 조국으로 돌아올 때 환송나온 많은 남녘사람들속에는 《전향자》로 분리되여 같이 따라오지 못하고 부러움과 후회의 눈물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념은 승리였다. 인생의 환희였고 기쁨이였다.

우리는 신념으로 잃었던 인생의 모든것을 다시 찾았다. 건강도 되찾고 청춘도 되찾았으며 아무나 누릴수 없는 행복과 영광의 최절정에서 살고있다. 공민의 최고영예인 공화국영웅칭호,《조국통일상》을 수여받고 온 나라 인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값높은 삶을 누리고있다.

이것은 어머니조국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신념을 지켜싸운 사람들에게 주신 가장 빛나는 삶의 표창이다.

2

지난 6년간 우리는 남녘의 감옥에서 그토록 가고싶고 밟아보고싶던 조국땅각지를 발목이 시도록 다녀보았다.

이 나날에 우리 조국이야말로 이 세상 어디서도 볼수 없는 신념의 강국이라는것을 더 잘 알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선혁명은 신념으로 개척되고 신념으로 전진하며 신념으로 승리하는 위대한 혁명입니다.》

우리 혁명은 《ㅌ.ㄷ》에서 닻을 올린 때로부터 장구한 기간 언제나 어버이수령님을 령도의 중심,단결의 중심으로 높이 모시고 위대한 령도자를 따라 신념의 한길만을 헤쳐왔다. 백두밀림에서 15성상 풍찬로숙하며 강도 일제와 끝까지 맞서싸운것도,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반공격으로 전환시키며 조국해방전쟁에서 최후승리를 이룩한것도, 전후 빈터우에서 자주,자립,자위의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운것도 다 신념이 안아온 특출한 기적이고 승리이다.

그 길에서 조국과 인민,수령을 위해 자기 한목숨 서슴없이 바치고 인생을 아름답게 꽃피운 신념의 투사들은 그 얼마인가.

지난 《고난의 행군》,강행군시기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혁명적신념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것을 세계앞에서 남김없이 과시한 가장 엄혹한 시련의 시기였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옥중투쟁이 한 인간의 사상을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신념의 투쟁이였다면 조국인민들의 투쟁은 나라를 지키고 사회주의를 고수하느냐 마느냐 하는 전민족과 인류의 운명과 관련된 신념의 결사전이였다고 할수 있다. 붉은기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이 남쪽에서는 0.75평을 무대로 하여 벌어졌다면 북에서는 온 나라가 《처창즈》가 되고 《연길폭탄》이 되여 제국주의의 봉쇄질식공세에 결사적으로 맞섰다.

조국의 천만군민의 가슴속에 간직된 그 억센 신념을 나는 몇해전 구월산유원지를 돌아보면서도 가슴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2단폭포의 옹벽에 새겨져있는 《미래를 위하여 고난의 마지막해 1997》이라는 글발은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미래를 생각하고 승리를 확신하면서 모든 난관을 이겨내며 구월산을 인민의 명산으로 꾸린 군인들, 그들의 가슴속에 고패친 승리에 대한 확신,미래에 대한 락관은 어디에서 온것인가. 그것은 선군령장 김정일장군님 계시여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철석의 신념이며 오늘은 비록 허리띠를 졸라매고 정대로 바위를 까내며 탐승길을 내지만 머지 않아 강성대국의 찬란한 아침이 동터온다는 굳은 확신이였으리라.

나는 자강도의 놀라운 변모를 보여주는 기록영화를 보면서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정신,《고난의 행군》을 락원의 행군으로 전변시킨 강계정신이 어떻게 창조되였는가를 절감했다.청년영웅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면서는 령을 허물고 골을 메우며 그 넓은 대통로가 어떻게 뻗어나갔는가 하는 감동깊은 이야기도 들었다.

모든것이 신념이였다.온 나라가 따라배우는 혁명적군인정신도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않으려는 군인들의 신념이 창조한 불굴의 정신이고 성강의 봉화도 자력갱생의 신념이 지펴올린 홰불이며 동해안의 희한한 소금밭풍경도 고난의 천리를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는 필승의 신념과 락관이 가꾸어낸 창조의 열매였다.

오늘도 우리 조국은 신념으로 전진하며 신념으로 최후의 승리를 마중해가고있다.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19일까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백두산지구를 참관하면서 우리 조국이 과연 무엇으로 강한가 하는것을 다시금 똑똑히 새겨안을수 있었다.

새 세기 첫해에 우리가 가보았을 때에는 백두산지구 건설이 착공의 첫삽을 뜬데 불과하였었다. 그런데 불과 몇해사이에 백두산지구는 천지개벽한 모습을 자랑하고있었다. 무봉,리명수와 포태지구의 새 풍경은 마치 밀림속의 동화세계를 보는것 같았다. 백두산을 통채로 옮겨놓은것 같이 멋들어지게 건설한 백두관이며 희한한 봇나무거리가 있는 삼지연읍에 들어섰을 때에는 너무도 달라진 그 모습에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찔하게 높이 솟은 두 산봉우리사이에 언제를 쌓아 건설한 삼수발전소를 돌아보면서는 자연을 길들이는 인간의 무궁한 창조적힘에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백두산지구의 이 놀라운 변혁을 창조한것도 결국은 만난을 뚫고 강성대국건설에 이바지하려는 혁명적신념이였다.

삼수발전소 건설의 나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두해전 건설자들은 삼수골에서 대발파를 하였다.정탐위성으로 조선의 북부지구에서 솟구쳐오르는 연기구름을 발견한 미국은 북조선이 핵시험을 하였다고 벅적 떠들었다. 이것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평양에 있는 여러 나라 외교관들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이 본것은 핵폭발이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인간의 강한 정신력이였다.

충격과 흥분을 금치 못하는 외교관들에게 건설장의 책임자는 《보라, 미국의 봉쇄로 우리에게는 연유가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는 연유가 아니라 피를 뿌려서라도 기어이 저 언제를 쌓고야말것이다. 이 신념이 우리가 가진 진짜핵무기이다》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조국인민들에게 이런 억센 신념을 주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다.

령도자의 신념이 강해야 군대가 강하고 인민이 강하게 되는 법이다.

수십년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군님께 혁명가들에게는 죽을 때에도 버리지 말고 베고죽어야 할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고 물으신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그것은 혁명적신념이라고,살아도 혁명적신념을 지켜싸우고 죽을 때에도 그것을 베고죽는것이 혁명가의 인생이라고 대답올리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혁명가의 특질에 대한 아주 멋진 정식화라고 말씀하시였다.

생전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은 아마 드물것이라고, 자신께서는 조선혁명을 오래동안 령도하여오면서 김정일동지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을 처음보았다고, 아마 세계정치무대를 둘러보아도 그만큼 신념이 강한 지도자는 없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신념, 그것은 다름아닌 총대신념이다. 백두산의 총대가문에서 물려받고 총대와 함께 흘러온 선군령도의 나날에 더욱 굳히신 혁명적신념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쳐가시는 선군정치는 혁명적신념의 최고정화이다.

백수십년을 헤아리는 로동계급의 혁명투쟁사에는 일찌기 선군이라는 말자체가 없었다.

선군혁명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혁명투쟁에서 최고형태의 혁명이라고 본다. 힘으로 사회주의를 압살하려는 제국주의세력과 총대로 맞서 새것을 지키고 인류의 미래를 창조해가는 선군위업은 보통의 신념으로써는 엄두도 낼수 없는 일이다. 어떤 값비싼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민대중의 생명인 사회주의는 지켜야 한다는 가장 투철한 혁명적신념이 선군의 불길로 타올랐다. 고난속에서도 웃으며 미래를 창조하는 승리의 신심과 혁명적락관,랑만으로 개척해가는것이 선군위업이다.

다박솔초소에 선군의 더 큰 자욱을 새기신 때로부터 우리 장군님은 언제나 전선길에 계시였다.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라는 신념의 글발을 력사에 남기시며 장군님 눈오나 비오나 걷고 또 걸으신 선군장정의 수십수백만리길.

혁명은 말로나 연설로 하는것이 아니라 신념으로 한다.

지난 10여년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단 한번의 신년사나 공식연설을 하지 않으시였다. 인민들이 설날아침 장군님의 신년사를 기다릴 때 TV에서 울려나온것은 장군님의 전선시찰소식이였다. 장군님께서는 한해의 아침도 전선길에서 맞으시였고 한해의 저뭄도 전선길에서 보내시였다. 이렇게 오직 신념으로 혁명을 하시고 위대한 실천으로 조국을 지키시고 이끌어가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

지금도 선군령도의 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하신 혁명적신념과 관련한 뜻깊은 말씀을 생각하느라면 마음이 숭엄해진다.

어느해 바람세찬 겨울날 대소한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자강땅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는 언제나 승리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용감하게 맞받아나가야 한다고, 누가 최후에 웃는가를 보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이것이 우리 당의 신념이고 의지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누가 최후에 웃는가를 보자,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고난과 시련의 언덕을 넘어 오늘 우리 인민은 승리자의 웃음을 짓고있다. 신념의 노래를 부르고있다.

예로부터 사람이 재난을 당하면 3일을 수습해야 하고 가족이 재난을 당하면 석달을 수습해야 하며 고을이 재난을 당하면 3년을 수습해야 하고 나라가 재난을 당하면 30년을 수습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우리 조국은 장군님의 신념으로 싸워 불과 10여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화를 복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켰고 《붕괴》설에 사회주의승리, 선군승리의 만세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는 얼마전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우리의 력사적인 핵시험성공을 환영하는 평양시군민대회를 잊을수 없다. 한세기전 총대가 약해 나라를 빼앗기고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피눈물을 뿌리며 통곡을 터치던 우리 민족이였다. 독립을 갈구해 《선언서》를 랑독하고 만세를 불렀건만 일제의 총칼에 쓰러져야 했던 겨레였다.

그러던 우리 민족이 오늘은 제국주의의 그 어떤 침략도 막아낼수 있는 최강국,핵보유국이 되였다. 다시는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영원히 자주민족의 존엄과 평화,번영을 누리게 된 끝없는 환희와 긍지가 만방에 소리높이 터쳐진것이다.

강성대국은 결코 먼 앞날이 아니다.

지금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최근 일군들에게 하신 뜻깊은 말씀을 생각해보면 무한한 격정에 가슴젖어든다.

지금 우리 나라에 강성대국의 려명이 밝아오고있다고, 이제는 우리 나라에서 모든 일이 잘되여가고있으며 바야흐로 난관과 시련의 마지막어둠을 밀어내는 승리의 동이 터오고있다고, 우리 인민이 그처럼 어려운 시련을 겪은 《고난의 행군》,강행군의 후과를 완전히 가셔버리고 부강번영하는 사회주의락원에서 온 세상에 소리치며 잘 살게 될 날이 가까와오고있다고, 선군정치의 승리의 날도 멀지 않았다고 그리도 확신에 넘쳐 말씀하신 경애하는 장군님.

장군님의 신념은 승리와 기적의 원천이다. 신념의 최고화신이신 장군님의 뜻을 가슴에 지니고 그이따라 나아갈 때 극복 못할 난관이 없고 못해낼 일도 없으며 혁명의 최후승리를 이룩할수 있다.

온 겨레가 바라는 통일의 새 아침도 장군님의 신념으로 밝아오고있다.

분렬의 비극을 하루빨리 끝장내고 통일조국을 겨레에게 안겨주시려는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드팀없는 신념이다. 어린 시절에 벌써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아닌 더 큰 하나가 된다는 단결의 진리, 통일의 철리를 밝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은 하나로 합쳐져야 살고 둘로 갈라지면 살수 없는 유기체와 같다고 하시면서 일찍부터 조국통일의 길에 불멸의 령도자욱을 새겨오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1996년 11월 24일에 단행하신 판문점시찰은 대결과 분렬의 오랜 장벽에 파렬구를 내고 통일을 바라는 온 겨레에게 무한한 신심과 락관을 안겨준 충격적인 사변이였다.

판문점은 오랜 세월 대결과 분렬의 상징으로 일러온 곳이다. 쌍방의 군대가 가느다란 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직접 맞서있는 이곳은 조선반도에서 대결과 긴장이 가장 첨예한 최전방이다.

그런데 이처럼 위험한 곳에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통일을 위해 몸소 나가신것이다.

당시 감옥안에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장군님의 크나큰 담력과 통일의지에 가슴이 막 뭉클해났다. 정말 우리 장군님은 통일을 안아오실 절세의 위인이시라는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판문점에서 천명하신 선군령장의 통일의지는 그대로 실천에 옮겨져 2000년 6월에는 행성을 뒤흔든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마련되고 6.15공동선언이 채택되였다.

오늘 온 겨레를 격동시키고 통일애국에로 불러일으키는 《우리 민족끼리》는 나라의 통일을 그 어떤 외세에도 의존함이 없이 우리 민족자신의 힘으로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굳센 자주신념,통일신념의 결정체이다. 그것은 그대로 온 겨레의 신념이 되여 《우리 민족끼리》의 대하가 삼천리에 도도히 굽이치게 하고있다.

통일이자 신념이고 신념이자 《우리 민족끼리》이다.

지금 내외반통일세력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어떻게 하나 가로막고 이 땅에 전쟁을 몰아오기 위해 갖은 발악적책동에 매달리고있다. 그러나 강한것이 신념이고 이기는것이 신념이다. 승리는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든 우리 겨레에게 있다.

희세의 선군령장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따라 우리 조국과 겨레는 통일되고 번영하는 강성대국의 찬란한 아침을 이 땅우에 반드시 안아오고야말것이다.(끝)

Copyright (C) KOREA NEWS SERVICE(K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