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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조선인민의 애국적투쟁을 야수적으로 탄압말살한 범죄》
(평양 10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1일부 《로동신문》은 《조선인민의 애국적투쟁을 야수적으로 탄압말살한 범죄》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개인필명의 글을 실었다.

인간살륙과 탄압은 제국주의침략자들의 고유한 행위이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살륙과 탄압만행처럼 그렇게 야만적이고 잔인무도한 행위는 없었다. 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을 개시한 첫시기부터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고 탄압하였다. 특히 일제는 1910년 가혹한 식민지 《총독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인탄압만행에 더욱 광분하였다. 조선사람들에 대한 일제의 학살과 탄압만행은 그 야수성과 잔인성에 있어서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이다. 3.1인민봉기에 대한 야수적탄압행위도 그중의 하나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을 강점하고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닥치는대로 검거투옥,학살하였으며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고 미쳐날뛰였습니다.》

1919년 3월 1일 우리 인민은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조선독립 만세!》의 구호를 소리높이 웨치면서 일제를 반대하여 거족적인 봉기를 일으켰다. 3.1인민봉기는 총칼에 의거한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한 우리 인민의 분노의 폭발이였으며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우리 인민이 전국적규모에서 벌린 애국적인 반일투쟁이였다.

3.1인민봉기는 무장을 들지 못한 반일항전이였다.봉기에 떨쳐나선 군중이 손에 든것은 기껏해서 몽둥이나 농쟁기였다.

거의 맨주먹이나 다름없는 시위자들의 투쟁을 일제는 과연 어떻게 탄압하였는가.

당시 일제는 3.1인민봉기를 《폭력집회》,《란동시위》로 몰아붙이였다. 그리고는 조선주둔 일본군과 헌병,경찰,소방대 등 폭압력량을 총동원하였으며 일본인거류민들로 《방위단》을 무어 조선인민을 학살하는데로 내몰았다. 그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일본본토병력까지 대대적으로 끌어들여 3.1인민봉기를 탄압하였다. 일제야수들은 반일집회와 시위가 진행되는 곳들마다에서 총포사격을 가하고 칼과 도끼,참대창 등 살인흉기들을 휘두르며 인민봉기참가자들의 목을 자르고 나무에 목매달아죽이거나 불태워죽이였다. 3.1인민봉기 참가자들에 대한 일제의 학살만행은 야수들도 공포에 질릴 정도였다. 봉기당일에만도 평양과 서울 등 각지에서 벌어진 반일시위대렬에는 일제가 쏜 총탄들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거리들은 삽시에 피로 물젖었다.

기발을 든 한 나어린 녀학생의 오른팔을 향해 내리쳐지는 일본도, 그가 다시 왼손으로 기발을 추켜들자 그 왼팔마저 잘라버리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온몸을 칼로 마구 찔러죽인 일제살인귀의 야수적만행…

이것은 서울의 한 거리에서 실지 있은 일이다.

《제암리학살사건》은 3.1인민봉기시기 일제의 잔인한 죄악을 보여주는 대표적사건의 하나이다. 1919년 4월 중순 일제침략군의 한 중위가 이끄는 살인귀들은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 기여들어 주민들을 강제로 교회당에 모이게 하였다. 그다음 문을 닫아매고 건물에 불을 지르고 총을 쏘아댔다. 이때 어린 아이를 업고갔던 한 녀인이 자기 아이를 창밖으로 내밀면서 나는 죽어도 좋으니 이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애타게 웨쳤다. 그러나 일제야수들은 아이마저 총창으로 찔러 처참하게 학살하였다. 그야말로 일제침략자들은 피에 주린 살인귀들이였다. 그때 일제는 교회당안에서만도 300여명을 학살하였다. 그리고는 주민들의 집마저 모조리 불태워 황페화시켰다.

하기에 당시의 한 기록은 이렇게 전하고있다.

《…일본인이 수천수만의 무고한 조선량민에 대하여 감행한 그와 같은 란타와 악형은 너무나 흉악하고 참혹하여 사람의 귀로써는 그것을 들어서 믿지 못할 정도이며 사람의 의사로써는 그것을 리해할수 없는 행위로 되였다. 그러나 그 증거가 너무나 명백하여 그 자료를 광범히 인용할 필요조차 없는것이다. 여든살나는 늙은 할머니와 열살나는 어린 아이가 그들의 군도에 찔리여 넘어졌고 소년학생이 큰 나무에 붙들려 매인채 곤봉에 맞아 눈을 감고 혀를 내밀고있으며 소녀가 말에 짓밟히고 배를 채우고 머리칼을 끌리우며 붙들려가고있는것이다. 일본인은 이와 같은 극도의 횡포한 만행을 감행하고도 오히려 그것이 부족하여 그이상 더 가혹한 방법이 없는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정도이다.》

일제의 철저한 보도관제속에서도 3.1인민봉기에 대한 일제의 야수적탄압행위에 대하여 알게 된 한 외국인은 일제의 만행을 글로 써서 규탄하면서 《…가만히 생각할 때 세계적으로 남의 나라를 멸망시킨자도 허다하지마는 누가 이런 력사상 있어보지 못한 참혹한 방법을 적용한자가 있었는가?…

이러한 인류의 원쑤이며 국제적독사는 어느 누구를 물론하고 전부 일어나서 이를 몰아낼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3.1인민봉기시기 일제의 야수적만행으로 하여 우리 나라의 그 어디나 할것없이 온통 피바다에 잠겼다. 북쪽지대이건 중부지대이건 남부지대이건 례외로 된 지역은 하나도 없었다.

평안남북도지방에서는 어떤 참혹한 사건들이 있었는가. 정주에서 일제는 평화적시위대렬에 집중사격을 가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일제의 맹산헌병분견소 헌병들은 많은 군중을 분견소마당에 몰아넣고 기관총사격을 가하여 60명이나 집단살해하였다.

일제는 당시 강서군 성대면 옥천에서 3,000명의 시위자들에게 사격을 들이대여 온 마을을 피바다에 잠그었다.

여기에 당시의 자료가 있다.

1919년 3월 1일부터 1919년 5월말까지의 3개월동안에 조선사람들을 학살한 수는 7,500여명, 중경상을 입힌 수는 1만 5,900여명, 1919년 3월 1일부터 1919년 10월 31일까지 재판을 받은 《피고》는 1만 7,000여명…

3.1인민봉기가 일어났던 그 짧은 기간에 일제는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너무도 참혹하게 학살하고 검거투옥하였다. 일제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눈을 감을수 있었겠는가.

일제의 3.1인민봉기에 대한 탄압만행은 인류력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잔악무도한 대범죄행위였다. 일본은 이러한 과거죄행에 대하여 마땅히 사죄하고 보상하여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렇게 하지 않고있다. 수많은 조선사람의 희생의 대가는 일본이 치르어도 되고 치르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일본은 조선사람의 희생의 대가를 꼭 치르어야 한다. 만약 일본이 그것을 치르려 하지 않거나 늦잡을수록 그 대가는 보다 값비싼것으로 될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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