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기사 달력>>2006년 7월 21일기사 목록
수기 《<리조실록>에 깃든 위인의 숭고한 뜻을 새겨본다》
(평양 7월 21일발 조선중앙통신)21일부 《로동신문》은 《<리조실록>에 깃든 위인의 숭고한 뜻을 새겨본다》라는 제목으로 된 비전향장기수 손성모의 다음과 같은 수기를 실었다.

온 나라 인민이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주체의 최고성지를 찾는 7월이다.이 못 잊을 7월에 즈음하여 나는 금수산기념궁전에 보존되여있는 우리 민족의 재부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 뜨거워오른다.

우리 민족과 인류가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찾고찾는 태양의 집에는 수령님께서 생전에 보물처럼 아끼시던 《리조실록》 번역본이 소중히 보관되여있다.

더우기 7월 8일은 일찌기 우리 수령님께서 전화의 불길속에서 《리조실록》을 구출하도록 해주신 날이여서 이 고전에 깃든 절세의 위인의 숭고한 뜻이 더욱 가슴에 뜨겁게 젖어든다.

나는 민족사에 영원히 전해갈 귀중한 국보인 《리조실록》에 비낀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새기며 이 붓을 든다.

1

문화유산은 민족이 걸어온 길을 실물로 보여주는 증표이다.

그래서 그 민족의 력사를 알려면 문화유산을 보라는 말이 있다.

문화유산들에는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력사와 전통이 체현되여있다. 이러한 문화유산도 지켜주는 품이 있어야 빛나게 된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근면하고 성실한 노력과 뛰여난 재능으로 세계에 손꼽히는 많은 문화유산들을 창조하여 동방문화를 꽃피워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천문대와 최초의 철갑선을 만들어낸것도 우리 선조들이며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한것도 우리 조상들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힘이 약했던탓에 그 찬란한 문화유산들을 외래침략자들에게 짓밟히우는 참을수 없는 수난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때 나는 《문화재는 가장 맛나는 비게덩이》,《황금사발이 나오는 무덤》이라며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물들을 사정없이 파괴하고 략탈해가는 일본사무라이들을 보면서 뼈를 깎아내고 살을 저며내는듯 한 아픔을 누를길 없었다.

그 비분이 나로 하여금 력사공부에 뜻을 두게 했는가싶다. 그래서 광솔불밑에서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몰래 탐독하고 마음맞는 청년들과 고전도 수집하며 우리의 력사를 지키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길잃은 반항아의 몸부림에 불과했다.

망국의 세월속에 수난을 겪던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은 우리 민족의 유구찬란한 문화유산을 누구보다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다.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나의 눈앞에는 1950년 전화의 나날 옛 력사문헌인 《리조실록》이 구출되던 때의 일이 어제런듯 삼삼히 밟혀온다.

나는 인민군대의 반격으로 서울이 해방되자 용약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러던 어느날 최고사령부의 특별명령을 받고 떠나는 한 인민군구분대를 만나게 되였다.

적들을 족치는 중요한 전투임무를 받은줄로 알았던 나는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들고 《리조실록》구출작전에 동원된 구분대였던것이다.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에 의해 우리의 민족문화유산들이 로략질당하는 현실을 늘 가슴아프게 여겨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서울이 해방되자 즉시 《규장각》에 있는 《리조실록》부터 안전하게 구출하실 구상을 펼치시였던것이다.

그날이 바로 7월 8일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무력침공을 단호히 물리치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여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을 원쑤격멸에로 불러주신 그 길로 《리조실록》구출작전을 펴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교육상에게 주신 지시 《<리조실록>을 구출할데 대하여》에서 이렇게 언명하시였다.

《지금 미제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이 도발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조국은 시련을 겪고있으며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적들에 의하여 파괴소각되거나 도난당하고있습니다. <리조실록>도 피해를 입거나 없어질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절대로 수수방관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귀중한 재보인 <리조실록>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리조실록>을 반드시 구출하여야 합니다.》

자자구구 우리의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수령님의 열렬한 사랑이 맥박치는 말씀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를 내오시고 새 사회건설을 위해 한푼의 돈이 귀하였지만 막대한 자금을 돌리시여 공화국북반부에 널려있는 문화유적들을 조사발굴하여 잘 보존하도록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특히 수령님께서는 4월남북련석회의때 북으로 들어온 홍명희선생을 만나시여 《리조실록》은 유명한 국보라고 하시며 서울에 있는 《리조실록》의 관리문제를 두고 심려하시였다.

그러기에 수령님께서는 전쟁이 일어나자 세계전쟁사에 없는 《리조실록》구출작전을 몸소 펼치시였던것이다.

그때가 과연 얼마나 준엄한 때였던가.

남으로 패주하는 미국군대는 불리한 전쟁국면을 역전시켜보려고 발악하고있었다.

전쟁의 운명과 관련되는 긴급하고도 중대한 문제들이 최고사령부의 작전명령을 기다리고있었고 전선이 멀어지고 싸움이 치렬해질수록 한명의 인민군전사가 더없이 귀중한 때였다.

그 준엄한 시각에 수령님께서는 교육상에게 《리조실록》을 구출할데 대한 지시를 주시고 교육부문의 권위있는 력사학자들을 최고사령부로 부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영문을 모르고 최고사령부에 달려온 그들에게 《리조실록》을 구출하기 위하여 동무들을 서울로 파견하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그 로정도를 하나하나 그어주시였다. 그리고 즉시 한 인민군지휘관을 전화로 찾으시여 《리조실록》을 구출해오는데 필요한 군용자동차를 긴급히 보장해줄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다시 서울주둔부대 지휘관에게 《리조실록》 구출과 호송을 책임적으로 보장할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수령님께서는 종이를 꺼내시여 친필로 력사학자들의 편의를 최대로 보장할데 대한 자신의 존함을 모신 명령서를 전선사령관앞으로 보내시고 어떤 일이 있어도 《리조실록》을 사소한 손상도 없이 구출하도록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이렇듯 뜨거운 애국애족의 손길아래 서울의 《규장각》에 방치되여 불타버릴번했던 방대한 량의 《리조실록》이 구출되여 남으로 진격하는 인민군대와는 반대방향으로 《리조실록》을 실은 군용차들이 북으로 질주해오는 꿈같은 광경이 펼쳐지게 되였던것이다.

력사에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같이 정사에 해를 끼친다며 고서적들을 불태운 일화는 있어도 전쟁의 불비속에서 왕조실록을 구출한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원래 《리조실록》은 4부로 인쇄되여 리조시기 나라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장소들인 서울의 춘추관과 충청도의 충주, 경상도의 성주, 전라도의 전주에 있는 사고들에 분할되여 보관되여왔었다.

그러나 곡절많은 우리 민족사의 축도인양 《리조실록》도 파란만장의 수난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1592년 임진조국전쟁시기에는 왜적들에 의해 3부는 불타버리고 유독 전주사고에 보관되여있던 실록만이 겨우 남게 되였다.

임진조국전쟁후 다시 4부를 인쇄하였지만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의 권력다툼으로 불타버리고 또 한부는 일제에게 략탈당하여 간또대지진때 재가루로 되고말았다.

남조선을 강점한 미국군대가 《규장각》에 틀고앉아 조선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많은 고서적들을 로략질하는 가운데 《리조실록》은 또다시 림종직전의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그 실록이 어버이수령님에 의하여 드디여 전화의 불길속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되였던것이다.

《리조실록》을 구출해왔다는 보고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주인들의 손에 들어온 《리조실록》을 어디에 보관하겠는가고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앞으로 안전한 장소를 마련할 때까지 주변의 농촌마을에 보관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올리자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수령님께서는 그러지 말고 최고사령부에 안전하게 보관하여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최고사령부, 그곳이 과연 어떤 곳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고 전쟁승리의 작전도가 마련되는 최고지휘부, 거기에 《리조실록》을 보관하도록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단호한 결심에는 이 력사문헌을 사소한 손상도 없이 후손만대의 재보로 물려주시려는 그이의 숭고한 애국의 뜻이 어려있었다.

장구한 인류력사에는 1만 4천 500여회의 전쟁이 기록되여있지만 언제 어느 전쟁사에 우리 수령님과 같이 준엄한 혈전의 마당에서 전투병력을 동원하여 옛 력사문헌을 구출해내고 그것을 친히 최고사령부에 보관하도록 하신 례가 있었던가.

임진조국전쟁때부터 수백년동안 전란의 시련속에서 버림받던 《리조실록》은 우리 수령님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자기의 진정한 주인, 위대한 보호자를 맞이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1950년 7월 8일은 1413년에 출판된 《리조실록》이 537년만에 처음으로 태양의 빛을 받아안은 행운의 날이라고 말하고싶다.

정녕 어버이수령님은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구원하고 보호하고 빛내여주신 위대한 은인이시다.

2

진주보석도 닦아야 빛이 난다.

이끼푸른 성돌도 그 유래를 모르면 막돌로 버림받고 세월과 더불어 전해지는 고전도 그 뜻을 모르면 서가에 꽂힌 쓸모없는 고서로 되고만다.

로동당시대에 와서 훌륭히 번역되여 민족의 보물로 빛을 뿌리는 《리조실록》은 어버이수령님의 불면불휴의 애국헌신의 결정체이다.

흔히 력사가들은 문화유산을 학문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 수령님은 하나의 문화유산도 슬기롭고 재능있는 우리 민족의 력사를 빛내이는 귀중한 재보로 여기시였다.

돌이켜보면 《리조실록》을 번역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리조실록》은 일기체형식에 수백년을 내려오며 변형된 여러가지 문체를 다 담고있는 독특한 조선식한문으로 씌여져있는것으로 하여 학계에서조차 난해한 고서로 인정되여왔다.

그 량이 또한 방대하기 이를데 없었다.

리왕조의 27대에 이르는 500여년의 력사가 수록된 《리조실록》은 권수로는 1,763권, 책수로는 근 900책에 달하는 《정부》일지이다.

당시 력사편찬에서 앞섰다고 하는 명나라의 《황명실록》이 294년간의 력사를 501책에 담고있는 사실은 《리조실록》의 방대함을 실감케 한다.

《리조실록》은 포괄하는 시기도 장구할뿐아니라 정치,경제,군사,문화,외교 등 모든 부문과 자연현상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사실과 사건들이 폭넓게 기록되여있다. 그래서 누구도 감히 번역할 엄두를 내지 못한 《리조실록》이였다.

게다가 일부 편협한자들은 왕조의 낡은 문서보따리나 번역하여 무슨 필요가 있는가고 하면서 각방으로 훼방을 놀았다.

당시 많은 학자들과 력사애호가들이 이 책에 흥미를 가지고있었지만 그 내용을 리해하기가 어려워 책장만 뒤지다가 자리를 뜨군 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력사학을 전공한 나도 그러한 학생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옛 조상들이 써온 표현과 표기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고서는 좀처럼 읽을수 없는 《리조실록》을 번역할 대담한 구상을 펼치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어느 한 나라의 총리는 전쟁시기 구출된 《리조실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탄을 금치 못해하며 이 실록은 대단한 보물이라고, 귀국은 정말 대단한 귀물을 가지고있다고 말씀올리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외국사람들도 찬탄하며 부러워하는 이 실록을 어떻게 하나 번역할 결심을 더욱 굳히시였다고 한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당 부문 일군들에게 《리조실록》을 오늘 번역출판해놓지 않으면 먼 후날에 가서는 한사람도 이 책의 글줄을 읽어내지 못하게 될것이다, 후대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책을 모두 번역출판해놓아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력사와 한문에 누구보다 밝으시고 중국말과 글에도 능통하신 수령님께서는 짬짬이 《리조실록》원본을 연구하시며 중국책을 읽는것과는 전혀 다르다는것을 발견하시고 조선식한문으로 된 이 실록번역사업을 국가의 중대사로 내세워 추진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리조실록》번역을 위한 중대한 조치가 취해져 전국적으로 선발된 유능한 학자들로 번역집단이 무어지게 되였다. 그들을 위해 아담한 청사가 마련되고 경치좋은 묘향산에 휴양소와 같은 번역실도 새로 꾸려졌다.

초기 번역집단에서는 실록의 량이 방대하고 시간이 무한정 걸릴것으로 보고 필요한 부분만 추려서 번역하자는 의견도 제기되였었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수령님께서는 단호하게 《원문대로 번역하시오.》라는 친필교시를 주시였다.

보태지도 말고 덜지도 말며 원문그대로 번역하도록 하신 수령님의 가르치심에는 《리조실록》의 사료적가치를 티끌만큼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는 깊은 뜻이 어려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일에 바쁘신 속에서도 《리조실록》번역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민족고전번역사업에 한생을 바쳐온 로학자들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에도 명철한 해명을 주시며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민족고전번역에서 어려운 한자말과 한문식문투를 그대로 두고 거기에 토를 다는것으로 되여왔던 종래의 낡은 틀을 마스고 우리 인민이 흔히 쓰는 구두어를 기준으로 하여 우리 말로 알기 쉽게 풀어줄데 대한 문제, 문장구조를 우리 말 어순에 맞게 번역하도록 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실록번역사업에 기울이신 로고는 끝이 없다.

력사학의 대스승이신 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해박한 지성, 현명한 령도가 있어 현대어에서 대등한 말마디를 찾기 어려운 《리조실록》의 특수한 용어들과 력사어,전문용어들도 주석을 주지 않고 본문에서 풀이되여 누구나 보고 리해할수 있는 번역본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였던것이다.

《리조실록》번역의 나날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드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충정과 비범한 령도가 깃들어있다.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젊음과 열정에 넘치신 우리 장군님의 모습을 뵈오며 그이께서 지니신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범한 력사적안목에 대해 직접 체험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학시절에 벌써 생사를 판가리하는 준엄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리조실록》을 구출하도록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조치는 동서고금에 없다고, 《리조실록》과 같은 국보적인 책을 번역하여 많은 사람들이 리용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시며 력사학을 떠메고나갈 청년대학생들의 사명감을 깊이 깨우쳐주시였다.

《리조실록》에 깃든 어버이수령님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을 누구보다 깊이 체현하고계시였기에 실록번역사업을 단순히 고전을 번역하는 실무적인 사업이 아니라 수령님의 념원대로 묻혀있던 민족의 력사를 찾아내여 후손만대에 전하는 만년대계의 애국위업으로 내세우신 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조실록》번역본을 아무데 내놓아도 손색이 없게 최상의 수준에서 출판하도록 하시고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돐까지 무조건 끝낼데 대한 믿음어린 과업도 주시며 번역사업에 새 세대 학자들을 인입할데 대한 대담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리조실록》이 한권한권 출판될 때마다 번역본을 보시고 기뻐하실 수령님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제일먼저 수령님께 드리도록 하시였다.

그때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들에게 안겨줄 또 하나의 귀중한 재부가 마련된데 대해 그리도 기뻐하시며 밤새워 보아주시였다고 한다.

절세의 위인들의 각별한 보살피심이 있어 리조 500여년의 력사가 90만매의 방대한 원고지에 번역되여 옮겨지게 되였고 문자를 해득할수 없어 서가에 속절없이 꽂혀있던 18만여일의 일기를 수록한 《리조실록》이 마침내 자기의 전모를 세상에 드러내게 되였던것이다.

400책의 번역본이 서가에 주런이 꽂혀졌을 때 수령님의 집무실은 명절처럼 흥성이였다고 한다.

오늘도 금수산기념궁전을 우러르면 금수산에는 세상에 없는 보물이 있으니 그것은 저 400책의 《리조실록》들이라고 하시며 만시름을 잊으신듯 만면에 태양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우리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들려오는것만 같아 가슴뜨거움을 금할수 없다.

《리조실록》의 번역을 통해 단순한 왕조의 실록이 아니라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지닌 우리 민족의 찬란한 력사를 온 세상에 빛내여주시려는 수령님과 장군님의 깊고깊은 뜻을 우리 어찌 다 헤아릴수 있겠는가.

1419~1450년의 30여년동안에 봉건적억압과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일떠선 100여건에 달하는 인민들의 크고작은 투쟁이야기며 세계악보출판력사에 기록될 《세종실록악보》의 발견과 매일 정확한 시간을 기록한 1만여건의 기상관측자료들을 비롯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과 과학적인 사료들…

《리조실록》이 번역되지 못했더라면 이런 생동한 력사적사실들과 귀중한 자료들을 어디서 찾아낼수 있겠는가.

언제인가 수령님께서는 금수산의사당 정원에 흰까치가 날아든것을 보시고 희귀한 일이라고, 《리조실록》을 보면 500여년전 전라도 곡성현에 흰까치가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력사적사실자료까지 생생히 되살려주시였다고 한다.

한번 아시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으시는 우리 수령님의 비상한 기억력도 감탄을 자아내고 하나의 자연현상을 보시여도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과 풍속을 빛내주시려는 그이의 숭고한 애국심에 머리가 숙어진다.

우리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귀중히 여기신 우리 수령님이시여서 《리조실록》번역사업에 그처럼 아낌없는 로고와 심혈을 바치시고 생전에 외국의 인사들을 만나시면 금수산의 《보물》을 그리도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신것이 아니였겠는가.

선군장정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 2004년 12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 전화의 불길속에서 《리조실록》을 구출해주시고 그 번역사업을 이끌어주신 사실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우리가 번역한 《리조실록》이 잘된데 대해서 다시금 치하하시였다.

나는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공화국에서 1981년 12월에 《리조실록》 번역을 끝냈다는 소식을 듣고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출옥후 나는 안면있는 력사학자들을 자주 만나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남에서는 <리조실록>을 어려운 한자는 그대로 두고 지방의 방언을 뒤섞어 번역하였기때문에 보고도 뜻을 잘 리해할수 없다. 그러나 북에서 번역한 <리조실록>은 누구나 보고 알수 있게 되여있다. 정말 대대손손 전해갈 대력사전서이다》라고 감탄하군 하였다.

그리고는 방대한 《리조실록》을 원문대로 번역출판한것을 보면 확실히 북에는 문화재의 진가를 아는 위인, 력사학의 거장이 계신다고 찬탄하였었다.

남조선언론들이 북이 남에 비해 력사학에서도 훨씬 앞섰다고 평하고있는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력사의 풍운속에 영영 사라질번했던 《리조실록》을 찾아주시고 세계 그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민족공동의 재보로 안겨주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은 그 무엇으로써도 다 칭송할수 없다.

나는 탁월한 선군정치로 민족의 존엄과 사회주의의 운명을 수호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에서 전화의 불길속에서 《리조실록》에 새 생명을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영상을 우러른다.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반만년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총대로 굳건히 지켜가시는 우리 장군님의 선군정치가 아니였다면 이 땅에서는 전쟁이 열백번도 더 터졌을것이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들도 그 불길속에 타버렸을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은 어버이수령님 그대로 선군으로 《리조실록》과 같은 보물들을 지켜주시는 애국애족의 화신이시며 민족문화유산의 위대한 보호자이시다.

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가 있어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통일시대가 열리고 북과 남이 힘을 합쳐 일제에게 강탈당했던 《북관대첩비》를 찾아오는 경사도 맞이할수 있었다.

얼마전 서울에서는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이라는 명칭으로 공화국에서 발굴한 민족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특별전시회》가 열리여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아주는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절세의 위인들의 숭고한 뜻과 불멸의 업적이 새겨져있는 우리 민족의 재보들이다.

정녕 주체성,민족성을 최고의 높이에서 체현하신 절세의 애국자,천출위인들을 모시여 우리 민족의 력사도 찬란하고 우리의 민족문화유산들도 빛나고있는것이다.

무릇 사람들은 민족문화유산에는 력사가 살아 숨쉬고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위인의 력사속에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 숨쉬고있다고 온 세상에 소리높이 웨치고싶다.

민족문화유산에 바쳐진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한평생을 전하는 증견자인양 태양의 집-금수산기념궁전에 소중히 보관되여있는 《리조실록》.

그 부피두터운 갈피갈피마다에는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안겨오고 장군님의 위대한 숨결이 맥박치고있다.

그렇다. 우리 겨레는 민족의 재보로 세세년년 전해질 《리조실록》에서 절세의 위인들의 위대한 애국의 뜻을 읽으며 수령복,장군복을 노래한다.(끝)

Copyright (C) KOREA NEWS SERVICE(K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