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6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에서 백두산에로의 답사길은 지금으로부터 50년전에 개척되였다.
당시 백두산답사행군은 순풍에 돛을 단것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인민이 전후복구건설에 한사람 같이 떨쳐나서고있던 시기 일부 나쁜자들이 항일의 혁명전통을 거세말살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었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러한 때인 주체45(1956)년 6월 5일 평양제1중학교(당시) 학생소년들로 무어진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답사단을 이끄시고 백두산에로의 행군을 단행하시였다.
혜산으로부터 백두산에로의 400여리에 달하는 답사로정을 열어나가시던 나날 그이께서는 혁명전적지답사에서 기본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력사와 항일혁명투사들의 혁명정신을 따라배우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답사로정과 일정도 혁명전적지답사의 기본목적에 맞게 세우도록 하시였다.
보천보혁명전적지를 찾으신 그이께서는 모든 답사대원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모셔져있는 곳부터 먼저 찾아 꽃다발을 드리고 정중히 인사를 올린 다음 질서있게 전적지를 참관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행군전기간 험한 길을 헤치시며 대오의 진두에 서시여 답사대원들을 이끌어주시였으며 그들이 항일유격대원들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실지 체험으로 구현하도록 하기 위하여 삼지연으로부터 리명수까지의 60여리의 행군도중 자체로 점심식사도 짓게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기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형상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량강도일대의 전적지들을 더 많이 찾아내고 혁명전적지를 력사주의원칙에서 혁명전통교양의 거점답게 잘 꾸릴데 대한 문제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백두산에로의 첫 답사행군은 일찌기 14살 어리신 나이에 광복의 천리길에 나서시여 조선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억센 신념과 의지를 힘있게 과시한 력사적인 행군으로 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