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4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자주시대의 탄생과 더불어 새로운 선군혁명방식이 력사에 출현하였다.
당을 먼저 창건한 다음 군대를 조직하여 혁명투쟁을 벌리던 기존방식과 전혀 다른 이 혁명방식은 조선민족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시였다.
주석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을 당시 국내외정세는 매우 복잡하였다.
쏘련의 위력이 장성강화되고 피압박인민들의 혁명투쟁이 날로 앙양되는 한편 1929년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공황으로 세계적인 공황기에 처한 제국주의자들은 이 심각한 정치경제적위기에서 벗어나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특히 일제는 아시아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전쟁준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치면서 조선에 대한 식민지적폭압과 략탈을 더욱 강화하였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로 인하여 막다른 처지에 이른 조선의 도처에서 반일대중투쟁이 세차게 전개되였으나 적수공권의 폭동군중은 일제의 야수적인 무력적탄압앞에서 실패를 거듭하였다.
현실은 자체의 침략적,략탈적본성으로 하여 식민지에서 결코 스스로 물러가지 않는 발톱까지 무장한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하여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할것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이로부터 주석께서는 력사적인 카륜회의(1930.6.30~7.2)와 명월구회의(1931.12)와 같은 여러 기회에 조국해방의 유일한 길은 무장투쟁을 벌리는데 있다는 사상을 천명하시고 그것을 구현하여 첫 혁명적무장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1932.4.25)하시였다.
또한 항일무장투쟁의 매 시기 반일인민유격대를 정치사상적으로,군사기술적으로 강화하시고 그에 의거하여 조선혁명전반을 령도하시였다.
이것은 일제를 타승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은 조선에서 지체없이 당도 국가도 창건할수 있은 원천이였다.
주석께서는 그후에도 혁명령도의 전 기간 군사에 선차적관심을 돌리시고 총대를 끊임없이 강화하여 혁명의 승리적전진을 이룩하시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