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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도자와 인민의 추억속에 영생하는 혁명렬사 김책
(평양 1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의 수많은 혁명렬사들가운데는 령도자와 인민의 추억속에 영생하고있는 혁명가의 전형 김책도 있다.

김책은 1903년 8월 14일 함경북도 김책시의 한 빈농민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일제의 조선강점으로 가족들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동북지방으로 이주하여 간 그는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과 망국노의 비운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일찍부터 투쟁의 길에 나섰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주체혁명위업의 시원을 열어놓으시고 민족재생의 참다운 길을 개척하신 격동적인 사변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 수령을 애타게 갈망하던 그에게 삶과 투쟁의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되였다.

주석의 령도밑에 김책은 유능한 유격대지휘관으로서 군사정치활동을 능숙하게 조직진행하여 일제를 격멸하고 조국을 해방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해방후에는 평양학원 초대원장,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내각 부수상 겸 산업상으로 사업하면서 주석께서 제시하신 당,인민정권,정규적혁명무력건설방침과 조국통일방침을 관철하는데 자기의 지혜와 정력을 다 바치였다. 그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군사위원회 위원 및 전선사령관으로서 주석의 독창적인 전략전술적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헌신분투하던중 주체40(1951)년 1월 31일 고결한 생애를 마쳤다.

그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주석을 조선혁명의 령도의 중심,단결의 중심으로 누구보다 높이 받들어모시였으며 생애의 전기간 그이의 안녕을 보장하는 사업에서 특출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해방후 그는 함흥거리를 《김일성장군 만세!》의 구호로 일색화하여 전체 시민이 수령칭송의 감정으로 들끓게 하였고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창작완성하도록 창작가들을 이끌어주어 주석의 절대적인 권위를 보장하는데서 빛나는 공헌을 하였다.

주석의 사상과 로선을 지키고 명령지시를 관철하는 길에서 추호의 양보나 타협을 몰랐으며 오직 절대성,무조건성만을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 생전에 애용하시던 금고에 수많은 사진들가운데서 김책과 함께 찍으신 한장의 사진만이 보관되여있었다는 사실은 주석의 추억속에 그가 얼마나 소중히 자리잡고 있었는가하는것을 웅변으로 실증해주고있다.

렬사의 업적을 전하기 위하여 김책시,김책제철련합기업소,김책공업종합대학과 같은 이름들이 명명되였으며 그를 형상한 많은 예술영화와 노래 등이 창작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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