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월 16일발 조선중앙통신)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16일 반인권,반민족,반통일범죄로 얼룩진 《한나라당》의 추악한 과거죄악사를 고발하는 고발장을 발표하였다.
고발장은 다음과 같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한나라당》패거리들이 미국과 한짝이 되여 반공화국인권소동에 악랄하게 매달리는 한편 《정체성》이니,《시효》니 하면서 저들의 추악한 과거죄악사를 덮어버리고 재집권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미친듯이 날뛰고있다.
나라와 민족앞에 저지른 죄악으로 하여 이미 력사의 심판을 받고 매장되였어야 할 《한나라당》이 뻔뻔스럽게도 머리를 쳐들고 감히 있지도 않는 그 누구의 《인권》을 거들며 남조선의 진보개혁세력들을 공격하고 재집권까지 꿈꾸는것은 정의와 량심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으로서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한나라당》의 뿌리이며 원조상인 력대 파쑈독재《정권》들이 감행한 반인권,반민족,반통일범죄를 다시한번 온 세상에 낱낱이 폭로하며 《한나라당》의 추악한 정체를 바로 알리기 위하여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남조선을 민주와 인권의 페허지대로 만든 극악한 파쑈깡패
《한나라당》의 선조인 남조선의 력대 독재《정권》들이 저지른 죄악중의 죄악은 가장 야만적인 파쑈통치로 남조선을 민주와 인권의 참혹한 페허지대로,인간생지옥으로 만든것이다.
남조선인민들은 미국의 군사적강점과 식민지지배가 시작된 첫날부터 자주적인간이 향유할수 있는 응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줄기차게 투쟁하여왔다. 그러나 그들의 참다운 지향과 념원은 미국과 그 주구 파쑈통치배들에 의하여 무참히 짓밟혔다.
1960년의 4월인민봉기는 그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다.
미국은 식민지위기수습을 위해 박정희군사도당을 내몰아 《5.16군사쿠데타》를 단행하게 하였으며 남조선인민들이 피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열매를 하루아침에 가로채고 가장 악독한 파쑈통치를 실시하도록 막후조종하였다.
박정희군사도당은 미국의 비호밑에 권력의 자리에 들어앉자마자 수많은 각종 악법들과 폭력기구들을 조작하여 잔인하고 무지막지한 폭압정치를 실시함으로써 남조선인민들의 초보적인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깡그리 말살하였다.
군사깡패들은 《5.16군사쿠데타》이후 불과 10개월동안에 《반공법》,《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비롯한 무려 2,000여건의 악법들을 무더기로 조작하였으며 악명높은 파쑈폭압기구인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각종 《정보망》으로 온 남조선땅을 뒤덮어 인민들의 눈과 귀,입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특히 1961년 7월에 조작된 《반공법》은 군사독재를 반대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조국통일을 바라는 애국적인 정당,사회단체들과 각계층 인민들을 《용공》으로 몰아 탄압하는 전대미문의 반인권적인 악법이였다. 이 파쑈악법에 의하여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흘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한 군사도당은 《일체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엄금》하며 《옥내외 집회의 금지》와 《언론,출판,보도의 사전검열》 등을 내용으로 하는 《포고》 제1호,제4호,제11호를 련이어 내고 그것을 휘둘러 한달도 되나마나한 기간에 260여개의 정당,사회단체들을 강제로 해산하고 76개의 일간신문,305개의 언론사,453개의 주간지를 포함한 수많은 출판,보도기관들을 강제페간시켰다.
1964년 8월에는 《언론륜리위원회법》을 조작하여 1966년까지 불과 2년동안에 659개의 언론출판기관들을 강제로 페쇄시켰다.
파쑈깡패들은 학문과 사회활동의 자유,학원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청년학생들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고 학생들이 운영하는 사회과학써클은 물론 체육문화써클 지어는 전통적인 교내행사까지도 강제로 해산시켰으며 진보적인 청년학생들을 학교에서 내쫓고 불법처형하였다.
이 무지한 행위에 의하여 1965년 8월이후 1년동안에만 하여도 무려 1만 1,700여명의 진보적인 청년학생들이 퇴학 또는 정학처분을 받았으며 많은 교수들이 《정치교수》라는 감투를 쓰고 교단에서 쫓겨났다.
군사도당의 중세기적인 총칼통치,폭압통치는 1972년 《10월유신》을 계기로 극도에 이르렀다.
박정희역도는 1972년 10월에 발표한 《유신체제》수립에 관한 《특별선언》과 그해 12월에 조작한 《유신헌법》을 통하여 형식상 존재하던 《3권분립원칙》마저 무시하고 행정권은 물론 사법권,립법권을 비롯하여 모든 권력을 한손에 거머쥐였으며 《대통령》선출도 인민들이 직접 뽑는 직선제가 아니라 저들의 거수기인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발동하여 간접적으로 조작하도록 하고 임기연장과 류임한계페지 등으로 종신《대통령》을 해먹을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남조선에서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유신》철페와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투쟁이 격렬해지자 파쑈도당은 《비상사태》우에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고 1974년 한해에만도 《긴급조치》 1호,2호,4호,6호 등 폭압령을 련달아 내리였으며 《사회안전법》을 비롯한 각종 파쑈악법들을 새로 조작하여 폭압에 더욱 미쳐날뛰였다.
《유신》도당은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을 탄압하고 정치적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 무슨 《간첩단사건》이니,《남조선적화공작단사건》이니 하는 수많은 모략극도 날조하였다.
1974년 4월에는 《민청학련사건》에 《인민혁명당사건관련자》들까지 거들어 1,000여명의 애국적인사들과 청년학생들을 령장도 없이 잡아가두고 250여명을 《군사법정》에 내세웠으며 8명을 《사형판결》하고 18시간만에 전격집행하는 파쑈적폭거를 감행하였다.
1967년에는 《남조선적화공작단사건》이라는것을 조작하여 도이췰란드,프랑스,이딸리아 등지에서 학술연구와 학업에 종사하고있던 남조선출신 학계,문화계 인사들과 류학생 329명을 체포하고 처형하여 세상사람들을 격분시켰다.
파쑈도당은 지어 야당인사를 백주에 랍치하여 테로하는것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망명중에 있던 김대중을 도꾜의 한복판에서 대낮에 불법랍치하여 공해상에서 살해하려 했던 1973년의 《김대중랍치사건》은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군사깡패들은 저들의 독재통치에 방해가 되면 그가 팔순에 난 《대통령》이건,《국회의원》이건,심복부하이건 사정없이 칼날을 휘둘렀다.
전《대통령》 윤보선이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은 젊은 학생들과 그리스도교도들을 두둔하였다고 하여 그를 체포하여 박해를 가하던끝에 1974년 7월 《군사재판》에 끌어내여 징역 15년의 형벌을 들씌운 사실,1971년 10월 저들 족속인 《민주공화당》소속 《국회의원》들이 야당이 제출한 《내무부장관 해임건의안》에 찬성투표하였다고 하여 그들에게 온갖 박해와 탄압을 가한 일명 《10.2항명파동》,이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미국에 망명하여 《유신체제》를 비난하였다고 하여 그를 랍치하여 처참하게 암살한 사실 등은 그것을 보여준다.
극악무도한 파쑈통치로 남조선을 《폭압왕국》,인권불모지,인간생지옥으로 만든 《유신》독재자는 1979년 10월 응당한 징벌을 받았으며 18년간에 걸치는 박정희군사독재《정권》은 마침내 종말을 고하였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은 새로 등장한 전두환군사파쑈도당에 의하여 또다시 자기의 모든 권리를 짓밟히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국의 배후조종밑에 1979년 《12.12숙군쿠데타》를 감행한 전두환도당은 신군부의 등장을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인민들의 투쟁이 고조되자 1980년 5월 17일 남조선전역에 《비상계엄령》을 확대실시하였으며 모든 정치활동을 일체 금지시키고 대학과 언론기관,지어 《국회의사당》과 정당본부들에까지 《계엄군》을 투입하여 민주세력과 애국력량에 대한 전면적인 파쑈공세를 감행해나섰다.
군사깡패도당의 폭거에 의하여 민주를 갈망한 남조선의 애국적청년학생들과 각계층 인민들,야당정객들과 재야인사들까지 무리로 체포,처형되였다.
전두환일당은 재야인사 김대중을 《내란음모죄》에 걸어 지하독감방에 가두어놓고 매일 15시간이상 2개월동안 발가벗긴채 야수적고문을 들이대여 허위자백까지 받아냈다.
전두환일당의 파쑈적폭압은 광주봉기자들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대학살만행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살인악마 전두환역도는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모조리 죽이라》는 《특별명령》을 내리고 수만명의 공정부대와 기갑사단무력을 내몰아 시위자들을 마구 쏘아죽이고 찔러죽이고 땅크와 장갑차로 깔아죽여 온 광주시가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전두환역도는 그 피바다우에 새로운 파쑈독재권력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내오고 권력을 틀어쥔 다음 현직 《대통령》을 내쫓고 제가 《대통령》벙거지를 빼앗아썼다.
그리고 《정치풍토쇄신에 관한 특별조치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개정안》,《정당법》 등 무려 100여가지의 파쑈악법들을 조작개악하여 정당,단체들을 강제로 페쇄하거나 그들의 활동을 가로막고 언론사들을 통페합시켰으며 집회,시위,결사 등 초보적인 정치활동의 자유와 민주주의적권리마저 철저히 말살하였다.
1986년 한해동안에만도 전두환일당에 의하여 각종 악법에 걸려 무고하게 감옥에 끌려간 사람은 무려 78만 3,000여명이나 되며 강제해산된 재야단체는 40여개에 이른다.
한편 전두환도당은 《전국민주학생련맹사건》,《전국민주로동자련맹사건》,《광민사사건》 등 수많은 모략사건들을 조작하여 애국적인 청년학생들과 로동자,언론인들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투옥하고 야수적으로 처형하였다. 지어 경상남도 창원에는 《삼청교육대》라는 집단수용소를 만들어놓고 군사파쑈통치를 반대하는 청장년들을 끌어다 《순화교육》이라는 구실밑에 고역에 내몰고 야수적인 고문과 비인간적학대를 가하여 참혹하게 학살하였다.
1986년 10월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여야 한다고 주장한 《신민당》출신 《국회의원》 유성환에 대한 탄압사건,1987년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에 대한 고문치사사건 등 전두환도당의 살인만행을 실례들자면 끝이 없다.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파쑈적전횡과 횡포는 로태우군사《정권》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로태우파쑈도당은 1989년 4월 《안기부》,《보안사》,검찰,경찰로 이른바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조직하고 류례없는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18개의 재야단체를 포함한 220여개의 애국적인 단체들에 대한 수색소동을 벌렸으며 수십명의 애국인사들과 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가두거나 《출국금지령》을 내려 박해하였다.
또한 1990년 4월 임금인상과 로동3권을 요구해나선 울산현대중공업로동자들의 롱성현장에 1만 5,000여명의 전투경찰과 직승기,초계경비정,대형불도젤과 같은 중장비들을 출동시켜 지상과 해상,공중으로부터 립체적인 《진압작전》을 벌리고 단꺼번에 600여명의 로동자들을 체포련행하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로태우일당은 특히 자주,민주,통일을 위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을 탄압할 목적에서 1990년 10월과 1991년 6월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15만명의 경찰과 《안기부》,검찰은 물론 남조선군 정규병력과 460여만명의 예비군까지 동원하여 남조선전역에서 매일같이 검문검색과 수사소동을 벌려놓고 지명수배자들과 운동권청년학생들에 대한 광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한편으로는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안기부》의 권능을 대폭강화하여 미행,도청,우편물검열 등 온갖 불법수단을 다 동원하고 《사찰기록부》라는것까지 만들어 각계층의 일거일동을 감시하였다.
1989년 남조선의 한 방송은 《안기부》의 검은 명부에 《감시대상자》로 고정등록된 사람이 5만 3,000여명에 달하였으며 540여개 단체의 핵심간부 1,400여명이 체계적으로 《안기부》의 추적감시를 받았다고 폭로하였다.
《안기부》와 함께 《보안사령부》도 당시 《평민당》총재였던 김대중을 비롯하여 정계,언론계,로동계 등 사회각계 인사 1,300여명을 대상으로 정치사찰을 집중적으로 벌렸으며 《기무사》로 이름을 바꾼후에도 재야인사들과 운동권학생들을 《위험인물》,《요시찰대상자》로 등록하여놓고 그들의 동태와 동향을 탐지하는 놀음을 계속하였다.
전두환,로태우군사《정권》의 사생아인 김영삼《정권》역시 《문민》의 간판밑에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에 대한 파쑈적탄압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김영삼역도가 집권한이후 인민탄압에 사용한 최루탄만 보아도 일반최루탄의 경우 1993년에 3만 100여발, 1994년에는 6만 5,000여발, 1996년에는 15만발이상으로 늘어났으며 다련발최루탄은 1993년의 160상자로부터 1994년에 177상자,1995년에 330상자,1996년에는 근 1,000상자에 이르렀다. 최루탄사용에 쓰인 돈은 1993년의 5억 1,100만원으로부터 1996년에는 그의 5배가 넘는 근 30억원으로 불어났다.
《문민》파쑈도당의 무분별한 탄압으로 말미암아 남조선의 감옥들은 차고넘쳐날 정도였다. 당시 남조선《법무부》가 발표한 공식자료에 의하더라도 1996년 6월 현재 남조선 전지역에 만들어놓은 교도소와 구치소에는 총 수용능력 5만 3,000명보다 무려 1만명이나 더 많은 6만 3,000명이 갇혀있었다.
김영삼역도가 얼마나 폭압에 미쳐날뛰였으면 남조선언론들과 외신들이 《문민파시스트》,《문민파쑈》라고 규탄할 정도였겠는가.
참으로 력대 파쑈통치배들에 의하여 남조선은 세계최악의 민주와 인권의 페허지대,인간생지옥으로 전락되였다.
《한나라당》의 조상은 바로 이런 파쑈깡패집단이다.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팔아먹은 추악한 사대매국노
《한나라당》의 뿌리이고 원조상인 력대 독재《정권》이 저지른 용서할수 없는 죄악의 또하나는 비렬하고 추악한 사대매국행위로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외세에 송두리채 팔아먹은것이다.
남조선의 력대 독재자들은 모두 친미,친일이 골수에 찬 특등역적들이고 희세의 사대매국노들이다.
《유신》독재자 박정희만 보아도 일제통치시기 일본《황군》에 혈서를 쓰고 자원입대하였으며 《신경군관학교》와 《일본륙군사관학교》까지 졸업하고 일본군의 중대장으로서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에서 피묻은 일본도를 휘두르며 애국자들에 대한 토벌과 학살에 앞장서 날뛴자이다. 일제가 패망한 후에는 미국의 품에 안겨 친미충견으로 되였으며 미국제땅크를 타고 《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마침내는 《정권》의 자리까지 가로챘다. 그러한 자이기에 그가 집권하여 한 일이란 미일상전을 할애비처럼 섬기고 남조선을 미일상전에게 통채로 내맡긴것밖에 없다.
박정희역도가 1961년 11월 부임인사차로 미국을 처음 행각하여 《타국에 와있다는 기분을 전혀 느낄수 없다》,《귀국이 우리를 령도한다는데 대하여 신에 감사를 드린다》는 역겨운 망발을 꺼리낌없이 늘어놓은 사실은 아직도 사람들을 수치와 모멸감으로 얼굴뜨겁게 하고있다.
박정희역도는 미국과 굴욕적이고 매국배족적인 《조약》과 《협정》들을 수많이 체결하여 남조선을 미국의 식민지로 깊숙이 굴러떨어지게 하였다.
역도는 미국이 시장을 개방하라고 하면 경제가 어떻게 되고 인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되든 남조선시장을 통채로 내맡겼으며 미국이 전쟁대포밥을 대라고 하면 동족의 청장년들이 죽건말건 아랑곳없이 섬겨바쳤다.
미국의 웬남침략전쟁터에 연 32만여명에 달하는 남조선청장년들을 내몰아 무리죽음을 당하게 하였으며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단 몇푼의 돈에 팔아먹은 매국문서인 남조선일본《협정》에도 서슴없이 도장을 찍은 자도 박정희역도이다.
박정희역도는 온 민족이 한결같이 요구하는 미군철수를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남조선을 미국의 영구군사기지로 내맡겼으며 남조선강점 미군에 치외법권적지위를 주고 미국과 한짝이 되여 동족을 해치는 북침전쟁준비에 미쳐날뛰였다.
남조선강점 미군에게 특권적지위를 부여한 1966년 7월의 남조선미국《행정협정》을 체결한것도 그리고 남조선미국《국방각료회담》(1968년 5월)과 그 확대판인 남조선미국《년례안보협의회》와 같은 전쟁모의판을 내오고 북침전쟁에서의 공동작전을 위한 남조선미국《련합군사령부》(1978년 11월)를 설치한것도 박정희역도이다.
또한 미국본토에서 미제침략군무력을 끌어들여 남조선에서 세계최대규모의 《팀 스피리트》핵전쟁연습과 《을지 포커스 렌즈》합동군사연습판을 벌려놓은것(1976년)도 다름아닌 《유신》도배들이다.
박정희역도는 이러한 추악한 매국배족행위로 하여 《제2의 을사오적》,《정치창녀》로 악명을 떨치였다.
전두환역도 또한 미국이 오래전부터 손때묻혀 키운 친미분자이다.
역도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8군사령관으로 있던 밴프리트의 주선으로 남조선에 처음으로 세워진 《륙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숭미사대주의와 사람잡이기질을 키우고 장교로 되였으며 그후 미중앙정보국에 발탁되여 1959년과 1960년 두차례에 걸쳐 미국에 가서 《게릴라소탕전》과 《심리전》에 관한 특수교육을 받고 남조선에서 최초의 특수전교육장교로 되였다. 1970년에는 《백마부대》련대장으로 웬남전쟁마당에 파견되여 《토벌작전》에서 악명을 떨친 대가로 미국 《동성무공훈장》까지 받았다.
일본의 한 잡지는 《전두환은 웬남전쟁당시 오랜 벗인 윅캄장성의 강력한 뒤받침을 받으면서 권력의 길을 줄달음쳐왔다》고 썼다.
전두환역도는 늘 《미국의 리익이 곧 한국의 리익》이라고 떠들며 다니였는가 하면 심지어 《나는 미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언짢은 소리를 하는것을 묵과하지 않는다》라고 지껄여 주변사람들을 아연케 하기도 하였다.
1981년 1월 미국에 가서는 《백골이 되여도 미국의 은덕을 잊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미군의 남조선영구강점을 애걸하였으며 미국회 상하량원의원들을 만나서는 미군이 철수되지 않도록 노력해준데 대해 《감사》하다느니 뭐니 하고 아양을 떨기도 하였다. 역도는 특히 남조선과 미국사이의 《공동성명》발표후 워싱톤의 《내슈널 프레스》구락부에서 한 연설에서 남조선은 《미국과 일본의 방호벽》이라는 망발을 줴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일본잡지 《세까이》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공식석상에서 자기 나라를 다른 나라의 방호벽이라고 규정한것은 이례적이다. 이 말은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을 위해서 존재하는 나라라는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두환정권은 한국민을 위해서라기보다 미국과 일본을 위해서 봉사하고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말이다》(1981년 5월호)라고 조소하였다.
이런 추악한 친미매국노였기에 전두환역도는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반미투쟁에 대하여 상전보다 더 신경을 쓰면서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1980년 12월에 있은 광주《미국문화원》방화사건과 1982년 3월의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 1985년 5월 서울《미국문화원》점거사건 때 역도가 앞장에 서서 《용공리적》이니,《북의 선동》이니 하면서 《수사본부》요, 《수사전담반》이요 하는것들을 설치하고 경찰과 검찰,군대까지 총동원하여 애국적청년학생들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과 종교인들까지 체포하는 광란을 벌리고 그들에게 극형을 들씌운것은 그 한 실례에 불과하다.
전두환역도의 뒤를 이어 《정권》의 자리를 가로타고앉은 로태우역도는 남조선 전체를 미국의 군사기지로 섬겨바친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1989년 7월 남조선강점 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을 늘일데 대한 상전의 요구에 따라 인민들로부터 걷어들인 혈세를 강점비용으로 섬겨바칠것을 확약하였으며 1990년 9월에는 미국이 벌려놓은 침략적인 만전쟁의 비용을 부담하는 매국협약에도 도장을 찍었다. 또한 1991년 11월에는 굴욕적인 남조선미국《전시지원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조선반도유사시 남조선의 항구들과 비행장 등을 미군이 마음대로 리용할수 있도록 《법적담보》를 마련하였다.
《문민》의 감투를 쓰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은 김영삼역도의 사대매국행위는 더욱 구역질나는것이였다.
김영삼역도는 《대통령》감투를 쓰자마자 선참으로 미국상전을 찾아가 《동맹관계》니,《21세기를 향한 우호관계》니 하면서 그것을 《최우선과제》로 삼겠다고 공약하였다.
이자는 남조선에 반환하게 되였던 미군사기지와 시설,부지를 그대로 사용하게 하였을뿐아니라 무려 30억US$이상의 유지비를 부담하면서까지 미군의 남조선영구강점을 애걸하였다.
또한 미국상전과 함께 동족을 모해하고 압살하기 위하여 《핵의혹》이요,《응징》이요,《제재》요 하면서 기승을 부리였다.
특히 김영삼역도는 《세계화》를 떠들면서 외국독점자본에 남조선시장을 내맡기다 못해 1993년 12월 남조선농민들의 명줄이 걸려있는 쌀시장마저 미국에 개방하고 경제를 파국에로 몰아넣음으로써 1997년에는 남조선경제가 《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쇠고랑을 차게 만들었다.
이로 하여 남조선은 경제주권까지 외국독점자본에 송두리채 빼앗기는 치욕를 당하게 되였다.
남조선각계층은 이를 1905년 을사년에 이은 《제2의 국치》로 통탄하면서 김영삼역도를 규탄하였다.
참으로 남조선의 력대 파쑈통치배들이 저지른 반민족적범죄는 말로 다할수 없다.
이러한 매국배족의 치욕스러운 혈통을 이어받은것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분렬과 대결을 악랄하게 추구한 반통일집단
《한나라당》의 뿌리이고 원조상인 력대 독재《정권》들이 저지른 또하나의 죄악은 분렬주의적인 《두개 조선》정책과 대결책동으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고 겨레의 자주통일념원을 짓밟아버린것이다.
력대 파쑈독재자들은 례외없이 모두가 분렬과 대결을 악랄하게 추구하고 통일을 방해한 반통일분자들이였다.
그들은 8.15후 나라의 분렬을 막고 전조선적인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공화국의 노력과 온 겨레의 한결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등에 업고 남조선에 《단독정부》를 조작하여 이 땅에 분렬의 비극을 몰아왔으며 1950년대초에는 《북진통일》을 웨치면서 미제와 함께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의 불을 질러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참화와 재난을 들씌웠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들어와 박정희《정권》은 《승공통일》의 구호밑에 미국의 범죄적인 《두개 조선》로선을 《정책화》하고 나라의 분렬을 영구화하는 길로 나갔다.
반통일분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이 북을 통치하고있는 한 통일은 없다》, 《통일은 시기상조》,《실력배양》을 떠들면서 련방제통일방안을 비롯한 우리의 공명정대한 통일방안들과 평화발기들을 모두 외면하였으며 통일을 주장해나선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을뿐아니라 일체 통일론의를 금지시키고 《통일》이라는 말만 해도 마구 잡아가두었다.
더우기 우리의 주동적인 조치와 노력에 의하여 북남사이에 대화의 문이 열리고 조국통일3대원칙이 천명된 7.4공동성명이 발표된것을 계기로 전 민족적범위에서 통일기운이 급격히 높아지자 박정희군사《정권》은 파쑈적인 《유신체제》를 조작하여 그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1973년 6월에는 미국이 짜준 각본에 따라 분렬주의적인 《6.23특별성명》을 발표하여 민족의 영구분렬을 공식선언하였다.
이로 하여 수십년만에 처음 열린 북남대화들이 모두 단절되고 북남관계는 불신과 대결상태로 되돌아가는 비극적사태가 초래되였다. 게다가 《유신정권》은 1977년부터 군사분계선 전구간에 콩크리트장벽을 구축함으로써 하나의 지맥으로 잇닿은 조국강토를 뭉텅 두동강내는 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1980년대에 이르러 전두환,로태우《정권》은 《멸공통일》의 구호밑에 분렬과 대결정책을 더욱 악랄하게 추구하였다.
전두환역도는 1980년 9월 이른바 《대통령취임식》이라는데서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북과 대결할수 있는 힘을 키우는것이 제5공화국의 기본정치목표》라고 떠벌이면서 《힘의 대결》을 대북정책로선으로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군사도당은 대내적으로는 《반공법》의 독소조항을 포함시켜 보다 파쑈적으로 개악한 《보안법》(1980년 12월)을 조작하여 인민탄압에 더욱 광분하는 한편 북침전쟁책동에 더욱 열을 올리면서 미국과 함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규모를 대폭 늘이고 그에 최신핵전쟁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전쟁훈련의 침략적이며 도발적인 성격을 일층 강화하였다.
전두환일당의 이러한 반공화국대결정책과 전쟁책동으로 하여 1980년대 중반기에 남조선수재민들에 대한 우리의 구호물자제공을 계기로 좋은 분위기속에서 열렸던 경제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비롯한 여러갈래의 대화들이 모두 결렬되였다.
전두환일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87년 5월에는 7.4공동성명에 배치되게 대화와 통일을 전면부정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공식 제창함으로써 북남관계를 파국적위기에로 몰아넣었다.
전두환《정권》의 뒤를 이어 로태우《정권》은 《북방정책》과 《<두개 조선>의 국제적합법화》를 들고다니면서 분렬영구고착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였으며 한편으로는 《창구일원화》간판을 내걸고 북남민간단체들의 접촉과 래왕을 야수적으로 탄압해나섰다.
로태우일당이 사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목사와 《전대협》대표 림수경을 돌아가자마자 잡아가두고 박해를 가한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0년대초에 이르러 북남사이에는 고위급회담 등이 개최되여 화해와 통일의 분위기가 다시 감돌기 시작하였으나 김영삼역도의 《문민정권》출현으로 그것은 다시 좌절되였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편승하여 《흡수통일》의 간판을 내건 《문민정권》의 반통일책동,대결과 전쟁소동은 선행 군사《정권》의 뺨을 칠 정도였다.
《문민》역도는 《취임식》때 《민족을 우선시하겠다》고 하였지만돌아앉기 바쁘게 《북을 단순히 동족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수 없다》고 하면서 동족과의 전면대결을 선언해나섰다.
역도는 집권한지 얼마안되는 1993년 6월과 12월 전투복차림으로 전후방부대들과 군사분계선철조망밑을 싸다니면서 《북과 싸울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추라 》고 전쟁열을 고취하였는가 하면 1994년 9월에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남조선에 기여든 미국항공모함 《키티호크》호에까지 올라가 전쟁광기를 부리였다.
김영삼역도가 집권한후 북침전쟁연습도 급격히 늘어났다.
공식적으로 보도된 대규모전쟁연습만 보더라도 1993년의 16건으로부터 1994년에 32건,1995년에 37건,1996년에 88건,1997년에는 120건으로 5년사이에 무려 7.5배나 증가되였다.
우리 민족이 대국상을 입었을 때 김영삼역도가 저지른 천추에 용납못할 죄행은 오늘도 온 민족을 분노의 피로 끓어번지게 하고있다.
온 겨레가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비통감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지어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까지도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있을때 김영삼역도는 동족으로서 응당 하여야 할 초보적인 조의표시마저 줴버리고 초상집에 대포를 들이대는격으로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가게 하는 불한당짓을 하였다.
그리고 남조선인민들이 조문을 표시하는것을 가차없이 탄압하였으며 지어 평양을 향해 판문점으로 달려가는 조문행렬을 중도에서 가로막는 망동도 꺼리낌없이 감행하였다.
김영삼역도가 저지른 반인륜적망동은 역도야말로 동족의 피는 고사하고 한쪼각의 도덕의리도 모르는 천하망종이며 무지막지한 반통일분자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김영삼역도의 반민족적죄행으로 말미암아 최고위급회담날자까지 받아놓았던 북남관계는 또다시 파탄되였으며 북남대화는 수년간이나 공백상태에 놓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영삼역도는 우리 민족의 감정을 크게 상하게 하고 겨레의 통일념원을 짓밟았으며 북남관계를 최악의 상태에 몰아넣은것으로 하여 통일의 가장 악랄한 적으로서의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나라가 갈라져 60년이 넘도록 아직 통일이 이룩되지 못한것은 바로 이러한 자들이 남조선의 력대《정권》의 자리를 차지하고 외세와 한짝이 되여 분렬과 대결책동을 일삼아왔기때문이다.
실로 《한나라당》의 원조세력인 남조선의 력대 독재《정권》들이 저지른 범죄는 이루 다 헤아릴수 없다.
남조선인민들과 우리 민족은 파쑈통치배들에 의하여 자기 발전에서수십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잃어버렸으며 그로 인해 숱한 고통과 불행,희생과 손실을 당하였다.
《한나라당》의 조상인 력대 독재《정권》들이 저지른 죄악은 천추만대를 두고 저주를 받아야 하며 민족과 력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시효》니 뭐니 하며 과거죄악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것은 어리석은 수작이다.
《한나라당》의 몸통에는 파쑈독재와 민족반역,반통일의 검은 피가 가득 차있다.
추악한 피줄을 이은 《한나라당》이기에 오늘 파쑈독재의 옛시절을 그리워하면서 그것을 복귀해보려고 날치고있으며 그 더러운 피를 흘리면서 잔명을 부지해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는것이다.
이러한 《한나라당》을 어찌 그대로 둘수 있겠는가.
력사와 민족의 이름으로 이미 죽음이 선고된 《한나라당》은 당장 해체되여야 하며 그 족속들은 엄중히 처벌되여야 한다.
《유신》파쑈독재자의 후예인 《한나라당》 대표는 제 애비의 비극적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물러나는것이 좋을것이다.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은 《한나라당》의 치욕스러운 과거죄악을 절대로 용납하지 말고 철저히 계산하여야 하며 파쑈통치배들의 저주로운 바통을 이어 오늘도 범죄우에 범죄를 덧쌓고있는 《한나라당》을 민족의 원한과 분노를 담아 기어이 폭파해버려야 할것이다.
주체95(2006)년 1월 16일
평양(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