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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혁명투사 회상실기 《백두산녀장군의 뜨거운 인정미》
(평양 9월 19일발 조선중앙통신)19일부 《로동신문》은 항일혁명투사 박성철의 회상실기 《백두산녀장군의 뜨거운 인정미》를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청춘시절 백두산위인들의 슬하에서 총을 잡고 광복성전에 나섰던 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러 이제는 내 나이도 90고개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항일전의 그날로부터 동지들과 인민들을 친혈육처럼 사랑하시며 남을 위해주시는데서 기쁨과 행복을 찾으시던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의 모습은 고령의 망각에도 흐려지지 않고 못 잊을 추억을 불러내군 합니다.

아마도 김정숙동지께서 부어주신 애틋한 사랑과 정이 내 골육에 깊이 슴배인때문인가봅니다.

1

내가 김정숙동지를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두만강연안에 자리잡고있던 연길현 부암동의 장재촌유격구에서였습니다.

그때가 주체22(1933)년 마가을쯤이라고 기억됩니다.

팔도구광산에서 광부로 일하면서 지하공작을 하고있던 나는 지하당책임자가 상급조직에 보내는 통신련락을 가지고 그곳에 갔었습니다.

구정부에 도착하니 방은 텅 비여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낯선 사람이라고 이상한 눈길로 살피면서 그저 모른다고만 하는것이였습니다.

나는 맥이 풀려 구정부마당에 털썩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이때 아이들의 랑랑한 노래소리가 들려오더니 인츰 씩씩한 아동단원들의 대렬이 나타났습니다.

그 대렬의 인솔자는 아동단지도원인듯한 보통키의 애젊은 녀성동무였는데 정차면서도 상냥스러워보이는게 대번에 정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이앞으로 다가가 찾아온 용무를 말한 다음 구정부일군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가고 물었습니다.

알고보니 그분이 바로 김정숙동지이시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랜 동지를 만난것처럼 무척 반가와하시며 저에게 적구에서 수고가 많겠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저으기 미안쩍은 기색으로 인민혁명정부 간부들은 지금은 만날수 없다고 하시면서 그들은 낮에는 산에 올라가 유격대원들과 같이 유격구보위와 농사일로 해를 보내고 밤에는 마을에 내려와 군중해설사업과 경계근무로 달을 지운다고 하시였습니다.

나는 난감해서 망연히 먼산만 쳐다보았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러는 내 모습을 보시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그냥 한자리에 서계시다가 아동단은 지금 산에 콩가을을 하러가는데 구정부간부들이 있는데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시며 가능한껏 알아보겠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 진정이 하도 고마워 나는 무작정 그이를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구정부일군들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나는 이왕 여기까지 온바에 아동단원들의 콩가을을 도와주고싶어 팔소매를 썩 걷어올리고 밭으로 들어섰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동단원들과 함께 신바람이 나게 콩대를 베나가시였는데 그 솜씨가 여간이 아니였습니다.

그이를 따라잡자고 땀을 철철 흘리며 낫을 휘둘러대던 나는 쉴참에 내옆에서 부지런히 낫질을 하던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되여 유격구에 들어왔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애는 김정숙동지를 가리키며 《우리 누나가 데려왔어요.》라고 하는것이였습니다.

내가 친누나인가고 묻자 그는 아니라고 하면서 《그래도 나를 친동생보담 더 사랑해줘요.》라고 자랑스레 말하는것이였습니다.

알고보니 그 애는 일찌기 량부모를 다 잃고 문전걸식하다가 팔도구광산에서 소년로동에 시달려온 불쌍한 애였습니다.

그 애를 유격구에 데려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에게 《더벅머리》라는 별명대신 금과 같이 신념을 변치 말라고 《금산》이라는 좋은 이름을 지어주시고 인정에 주린 그를 제살붙이처럼 살뜰히 돌봐주시였습니다.

사실 낟알 한알이 귀하고 적들이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유격구의 형편에서 의지가지할데 없는 아이들을 맡아 키운다는것이 용이한 일이 아니였습니다.

금산이와 같은 아이들을 친동생,친혈육처럼 보살피시는 그이의 눈물겨운 인정미에는 단순한 동정심이나 애정만으로는 다 그려낼수 없는 한없이 고결한것이 있었습니다.

아동단콩밭에서 내려온 다음 나는 마을에서 며칠 묵는 사이에 사람들이 김정숙동지에 대해서 하는 많은 말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잠간 들리신 집에서도 그냥 일어나시는 법이 없이 물도 길어주고 부뚜막도 손질해주고 방아도 찧어주는 성실하고 알뜰한 일솜씨와 세상에 보기 드문 인정미와 후한 마음씨로 해서 유격구인민들과 아동단원들은 누구나 그이를 《우리 정숙이》,《우리 누나》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따르고있었습니다.

구정부에 통신을 전달하는 임무는 수행했으나 속에 품었던 목적을 실현하지 못해 모대기던 나는 드디여 김정숙동지께 내 속을 터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솔직히 그때 내가 장재촌으로 오게 된것은 지하조직의 통신을 전하는데도 있었지만 주요목적은 유격대에 입대하려는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정부에 찾아가 통신을 전하고 내 의향을 비쳤더니 최근 적구사업을 더 잘할데 대한 문제가 강조되고 특히 광산로동자들과의 사업이 중시되고 있는 때여서 상급의 특별한 지시가 없이는 나를 유격대에 받아줄수 없다는것이였습니다.

내가 입대하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뻗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심중히 들어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입대청원이 부결되였다고 맥을 놓지 말라고, 이제 아무때건 입대할 날이 있을거라고 고무해주시였습니다.

어찌나 따뜻이 말씀하시는지 나는 마음씨고운 그이께 괜한 걱정을 끼친것이 아닌가 하는 송구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나는 그이께 답답한 속이 후련해지게 아무 말이든 좀 해달라고 무랍없이 청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드럽게 웃으시며 나는 팔도구광산에 종종 가보는데 늘쌍 마소와 같이 일하는 광부들의 불쌍한 정상을 볼 때면 눈물이 나고 그들을 다 유격구로 데려오고싶은 생각이 불같아 얼른 발길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혁명조직이 있고 로동자들을 이끌어줄 지하공작원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아픈 마음을 달래군 했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나는 적구에서 싸우는 동지들을 누구보다 존경한다고, 나는 동무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미더운 동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해왔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니 이상하게도 그토록 갈망하던 입대소원이 성취되지 못한 아쉬운 심정이 가라앉고 지어 지하공작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드는것이였습니다.

김정숙동지의 인정이 끄는 힘은 그만큼 매혹적이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불같은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그 특이한 인정미는 언제나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습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깡그리 바친 삶,그것이 바로 김정숙이였고 그가 걸어온 인생이였다. 그는 언제나 자기를 희생시키면서 남을 위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에 쓰신 이 구절구절을 읽어보느라면 김정숙동지께서 자칫 잘못하면 혁명대오에서 떨어질번 했던 나의 운명을 희생적으로 구원해주시던 일이 삼삼히 돌이켜집니다.

장재촌유격구에서 김정숙동지의 따뜻한 바래움을 받으며 헤여진 후 다시 광산으로 돌아와 지하공작사업을 하던 나는 소원이 성취되여 1934년 봄에 유격대에 입대하였습니다.

내가 다시 그이를 만나뵙게 된것은 주체24(1935)년 3월이였습니다.

그 시기로 말하면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좌경모험주의자들이 조작한 반《민생단》투쟁으로 우리 혁명앞에 가장 엄중한 시련이 닥쳐왔던 때였습니다.

그때 좌경분자들은 지나가는 말 한마디,별치 않은 롱담 한마디에도 《민생단》이 아닌가고 고아대군 했습니다.

우리 부대에 갓 입대한 신입대원은 밥이 쉬였다는 말 한마디에 《민생단》으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살벌한 분위기로 날이 밝고 해가 저무는 속에 나에게도 변고가 생겼습니다.

로두구습격전투때까지만도 별일 없던 내 총이 덜컥 고장났던것입니다. 어찌된탓인지 격발기가 잘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알려지는 날이면 틀림없이 《민생단》으로 몰려 죽을지도 모르는 판이라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도 어성버성 지냈습니다.

그렇게 벙어리 랭가슴앓듯 하자니 그 고통이란 적을 잡기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살을 저미는 고민속에 나는 앉아서 제편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도망을 칠가 하는 절망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였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김정숙동지께서 유격구에서 철수하는 가족대렬을 인솔하시고 내가 있던 신선동유격구에 오시였습니다.

그 순간 나의 기쁨은 이를데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동무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저 대렬속에 <민생단〉혐의자가족들이 수두룩하다누만. 어쩌자고 저런 사람들을 데려오는지…》라고 하며 혀를 차는것이였습니다.

그때 김정숙동지께서 인솔해가지고 오신 사람들의 대부분은 로약자들과 어린이들이였는데 그들이 바로 《민생단》혐의자가족들이라는것이였습니다.

나는 누구도 보호해주기를 꺼려 하는 그들을 의롭게 위해주시는 김정숙동지의 용단에 감탄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그이께 무슨 화라도 미치지 않을가 하는 걱정스런 생각이 들면서도 혹시 나를 도와줄 묘책을 가르쳐주실지도 모른다는 미련으로 그이를 찾아갔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군복을 입은 나를 보시자 이게 얼마만인가고 몹시 반가와하시며 나의 입대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시였습니다.

그러는 그이께 만나자마자 보총사연을 꺼내기 멋적어서 머뭇거리고있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다홍왜회의소식을 들었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내가 회의가 진행되였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자세한것은 모른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며칠전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삼도만으로 오시여 다홍왜회의소식을 자세히 알려주시였다고 하시는것이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항상 동지를 굳게 믿고 실천을 통하여 검열하는 원칙에서, 대렬의 사상의지적통일과 전투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반《민생단》투쟁을 진행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고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시였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이젠 내가 살게 되였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물까지 핑 도는것이였습니다.

그리고 기쁜김에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못했던 고장난 총때문에 마음썩이던 일을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나의 말을 끝까지 들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며 삼도만유격구에서 무기수리를 하던 동무가 여기로 함께 왔는데 그에게 부탁해보자고 하시는것이였습니다.

그러시고는 내 총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시여 제꺽 고장퇴치를 해가지고 오시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날 나에게 교훈이 될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민생단》으로 몰리우는것이 무서워서 고장난 총을 그냥 메고다니다가 싸움판에서 원쑤를 놓쳐버리면 혁명앞에 돌이킬수 없는 죄를 짓게 되지 않는가, 우리가 주눅이 들어 할 말도 못하고 남의 눈치만 살피면 오늘의 시련을 이겨낼수 없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습니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며칠을 참지 못하여 배신자가 되고 일생을 망칠번한 자신을 돌이켜보며 몸서리쳤습니다.

그러느라니 나를 제때에 도와주고 깨우쳐주신 김정숙동지에 대한 고마움이 한가슴에 그들먹이 차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이의 덕을 입은것이 어찌 나만이겠습니까.

삼도만유격구에서 최희숙동무가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당하게 되였을 때 심판장에서 그를 희생적으로 보증해나서신분도 김정숙동지였고 억울하게 갇혀있는 《민생단》혐의자들에게 밤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것과 약품을 날라다주어 그들을 구원한 사람도, 적들이 유격구에 달려들었을 때 펄펄 끓는 죽가마를 머리에 이시고 총알이 비발치는 전투장에 달려가 바로 그 《민생단》혐의자들에게 죽을 권하며 장군님께서 이제 이 엄중한 사태를 바로잡으실거라고, 그러니 신념을 잃지 말고 끝까지 살아 혁명을 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고무해주신분도 김정숙동지이시였습니다.

나는 굶어도 좋고 얼어도 좋다, 그러나 동지들이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내가 죽는 대가로 동지들을 살릴수 있다면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웃으면서 죽음의 길을 택할것이라는것이 그이의 인생관이였습니다.

그이께서 도천리에서 지하공작을 하실 때 류가촌의 지주가 열병에 걸린 머슴살이소녀를 산중초막에 내다버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 불쌍한 소녀를 돌봐줄 엄두를 못내고있을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결연히 그 초막에 찾아가시였습니다.

조직성원들이 아이를 간호하다가 전염되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만류할 때 목숨이 두렵다고 아이 하나 살려내지 못한다면 나라는 어떻게 찾고 인민은 어떻게 구원하겠는가고, 인민을 살리자고 내댄 목숨인데 두려울것이 없다고 하시며 초막을 떠나지 않으시고 소녀를 기어이 소생시키신 김정숙동지.

그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나는 자기희생성으로 일관된 그 인정미야말로 그이의 천품이며 김정숙동지는 인간에 대한 불같은 사랑을 지니신 미덕의 최고화신이시라는것을 더욱 뜨겁게 느꼈습니다.

2

남들의 정을 받는것보다 남들에게 자기의 정을 주는데서 더 큰 기쁨을 찾는것은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께서 신조로 삼으신 인생관이였습니다.

처창즈유격근거지에서 있었던 사실을 하나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때가 주체24(1935)년 6월경이였는데 당시 우리는 식량고생을 무던히도 하였습니다.

그 고생스러웠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저려오지만 그때는 눈을 시퍼렇게 뜨고서도 기아로 숨지는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어려운 속에서도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지들의 식사를 보장하시느라 별의별 고생을 다하시며 무진 애를 쓰시였습니다.

내가 속한 련대가 돈화-교하간 렬차습격전투를 치르고 처창즈유격근거지로 돌아온지 며칠만이였습니다.

길가에서 우연히 련대부 작식대원인 김명화동무를 만나게 되였을 때 나는 그에게 김정숙동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요즘 김정숙동지의 건강이 말이 아니라고,입술이 다 터지고 몸이 약해져서 허기져 쓰러지면서도 동무들이 풀죽이나마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글타글 애쓰시는데 자기는 그이를 도울 방도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나는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즉시 병실로 달려가 배낭에 건사해두었던 비상량식주머니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명화동무에게 주며 김정숙동지에게 꼭 대접해달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반홉 되나마나한 강냉이였지만 그렇게라도 김정숙동지를 도와드리게 된것이 무척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후 내가 돈화-명월구간 렬차습격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소할바령으로 떠날 때였습니다. 내가 무기장구류들을 휴대하고 막 떠나려는데 김정숙동지께서 조용히 부르시는것이였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배낭을 벗기고 내가 일전에 그이께 드렸던 쌀주머니를 넣어주시였습니다.

나는 후닥닥 놀라며 그걸 도로 주면 섭섭하지 않는가고 하면서 쌀주머니를 배낭에서 꺼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나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은 고맙지만 처창즈식량형편이 어렵다고 비상식량을 축내서야 되겠는가고, 자신께서 배고픈것은 얼마든지 참을수 있지만 동무들이 배곯는것을 보면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내 걱정은 말고 그저 싸움만 잘해달라고 당부하시며 배낭을 들어 내 어깨에 메워주시였습니다.

그런데 소할바령에 도착하여 저녁밥을 지어먹자고 비상량식주머니를 꺼내보니 어쩐지 본래보다 무겁고 불룩한 느낌이 드는것이였습니다.

아니나다를가 반홉도 될가말가 하던것이 곡상으로 한홉도 넘었을뿐아니라 그것도 통강냉이를 절구에 찧어 강냉이쌀로 만든것이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내가 드린 비상식량을 오히려 더 보태서 가공까지 해주신것이였습니다.

그 지성이 어찌나 목이 메던지 나는 그 쌀로 지은 밥을 겨우 삼켰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스러운것은 통강냉이 한알도 얻어보기 힘든 처창즈의 형편에서 그이께서 어떻게 나의 비상량식주머니를 불쿠어주셨겠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나는 종시 그 의문을 풀지 못한채 조국해방을 맞이하게 되였습니다.

해방직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의 저택에서 음식상에 마주앉았을 때 나는 문득 처창즈생각이 나서 김정숙동지께 그 강낭쌀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아무렴 처창즈에 고만한 강냉이쌀도 없었을가요? 다 생기는 구멍수가 있는거예요.》라고 롱담조로 말씀하시는것이였습니다.

그 말씀에 나는 더 캐여묻지 못하고 그저 웃어버리고말았습니다.

그후에 사연을 알아볼 길이 없었는데 한번은 김일부주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정숙동지께 그가 강냉이를 얼마큼 드렸던 일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사연인즉 어느날 깊은 수림속에 지어놓은 김일동무네 정치공작조의 귀틀집으로 얼마나 숲속을 헤맸는지 허기지다 못해 얼굴이 창백해진 녀성들이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김일동무가 부랴부랴 얼마간의 강냉이쌀로 죽을 쑤려 하자 한 녀성이 강냉이쌀을 매만지며 《오래간만에 쌀을 보는군요. 이걸 보니 굶어서 일어 못나는 처창즈사람들이 생각나요.》라고 하며 양재기에 둬줌가량의 강냉이쌀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배낭에 넣는것이였습니다.

기아상태에 빠져 허리도 펴지 못하면서도 처창즈사람들을 생각하는 그 녀성의 갸륵한 마음에 크게 감동된 김일동무는 다음날 자기들의 식량재산을 통털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후날 알고보니 그 녀성이 바로 김정숙동지였다는것이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얼핏 생각되는것이 있어 김일동무에게 그때가 1935년 여름 어느날쯤 되지 않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걸 어떻게 신통히 알아맞추는가고 몹시 놀라와하는것이였습니다.

나는 그때에야 수십년세월을 두고 미지수로 남아있던 불어난 강낭쌀의 비밀을 알게 되였습니다.

참으로 김정숙동지의 인정미는 용암처럼 뜨거운 동지적사랑에서 흘러나온 그이 특유의 미덕이였습니다.

그 위대한 미덕으로 충만된 사랑과 정은 항일전의 나날이나 새 조국건설의 그날이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조국해방의 총공격작전을 준비하던 시기인 주체33(1944)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한 훈련기지에서 훈련과 학습으로 드바쁜 나날을 보내고있었는데 어느날 부대지휘부에서 휴식이 선포되였습니다.

휴식일이면 우리는 소풍도 하고 하모니카도 불고 노래도 부르면서 하루를 즐기군 했습니다.

그날 한낮때 내가 병실에서 군복을 손질하고있는데 누구인가 부르는 《고향의 봄》노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만리타향에서 그 노래를 들으니 고향집이 그리워지고 혈육들에 대한 생각이 못견디게 갈마들었습니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류경수동무가 얼굴을 내밀고 이러고만 있지 말고 김정숙동지한테 찾아가보자고 하는것이였습니다.

나는 쾌히 동의하고 따라나섰습니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휴식일인데 병실에서 뭘하다가 이제야 오는가고 가볍게 나무라시며 장군님께서도 동무들을 기다리시다가 조금전에 나가셨다고 하시였습니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고 하시며 서둘러 부엌에 내려가신 그이께서는 제창 밥상을 들고 들어오시였는데 정갈한 상보를 벗기니 김이 문문 나는 빵그릇이 놓여있었습니다.

류경수동무와 나는 군불을 때여 음식을 데우면서까지 우리를 기다리신 그 진정이 헤아려져 얼른 밥상에 마주앉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왜 그렇게 앉아있기만 하는가고, 차린것은 없어도 제 집처럼 생각하고 많이 들라고 하시며 밥상앞으로 이끄시였습니다.

그 말씀에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오늘따라 집생각이 간절해서 왔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나는 늘 동무들의 친누이나 동생이 되고 어머니가 되리라 마음먹군 한다, 그런데 동무들이 휴식날에 집생각을 하면서 있었다니 아무래도 내 성의가 모자라는것만 같다,하지만 집을 떠나 싸우는 혁명가들에게도 언제나 고향집이 곁에 있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김일성장군님은 조선혁명가들의 친어버이이시고 장군님 계시는 집은 혁명가들의 고향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구든지 이 집을 찾아오리라고 믿고 아침부터 기다리였다고.

마디마디에 친혈육의 정이 뜨겁게 어려있는 그이의 말씀은 우리의 가슴속에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전사된 긍지와 영예가 얼마나 큰것인가를 가슴뿌듯이 새겨주었습니다.

그후 나는 휴식일외에도 집생각이 날 때면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는 집을 자주 찾군 했습니다.

참으로 그때 우리는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는 집이라는 말만 들어도 부모처자,형제들이 기다리는 고향집과 같이 강한 애착심을 느끼군 하였습니다.

조국이 해방된 후에도 우리 투사들은 김정숙동지의 다심하고 친근한 정에 끌려 그이께서 계시는 집을 때없이 찾군 했습니다.

주체36(1947)년 늦봄 어느날이였습니다.

그날 나는 일이 생겨서 그러니 점심시간에 꼭 와달라는 김정숙동지의 부탁을 받고 위대한 수령님의 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차례진것은 일감이 아니라 뜻밖에도 《특별대접》이였습니다.

어느새 메밀국수를 누르시였는지 김정숙동지께서는 꾸미를 먹음직스레 놓은 큰 국수그릇에 덧국수까지 있는 상을 내앞에 놓으시면서 어제 저녁에 장군님께서 동무의 국수사연을 들으시고 얼마나 국수생각이 났으면 국수집에 찾아갔겠는가, 그 동무가 오면 꼭 국수를 눌러먹이라고 당부하시였다고 일러주시는것이였습니다.

그날 그이께서 나에게 메밀국수를 차려주시게 된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전날이였는데 중앙보안간부학교 교무부장사업을 하던 나는 대안에서 평양으로 나와 일을 보느라고 오전 한겻을 돌아치다가 점심때가 거의 되였을무렵에 련광정근처의 국수집으로 갔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국수생각이 너무 나서 평양에 가면 랭면을 실컷 먹으리라고 벼르고있던참이라 나는 국수집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에게 국수를 둬그릇 잘 말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국수 한그릇값을 물어보고나서 웃주머니를 더듬어보던 나는 속이 철렁 하였습니다.

돈가방이 없었던것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새벽에 군복을 손질하면서 덤벼치다가 호주머니에 돈가방을 넣지 않고 나온것 같았습니다.

손님들은 국수집으로 연줄연줄 들어서지 주방에서는 국수가 당장 나올 판인데 어쨌으면 좋을지 궁리가 통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인이 국수를 들고 나오려던찰나에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도망치다싶이 밖으로 나와버렸습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맹랑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느라니 시간도 퍼그나 지나고 이제는 점심을 굶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향방없이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정이 끌어당기는 힘이란 알다가도 모를것이였습니다.

한참 가다가보니 내가 어느새 위대한 수령님의 저택앞에 이르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저택에 들어서니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창 터밭김을 매고계시였는데 꽃밭처럼 알뜰하게 꾸려진 터밭에는 마늘이며 부루,쑥갓,풋고추,봄배추 등 갖가지 남새들이 푸르싱싱 자라고있었습니다.

내가 남새같은거야 장마당에서 사오시지 않고 괜한 수고를 한다고 말씀드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언제 왔는가고 반색하시며 글쎄 장마당에서 사올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내손으로 갖가지 남새를 가꾸어 장군님께 신선한 남새료리를 해드릴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내가 감동에 젖어있는데 그이께서는 문득 생각나시는지 점심식사를 했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그 말씀이 어찌나 반가왔던지 내 입에서는 밥을 못 먹었다는 소리가 거침없이 튀여나왔습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왜 아직도 식사를 못했는가고 하시며 일손을 놓으시고 서둘러 밭에서 나오시였습니다.

나는 나때문에 그이께서 두벌밥을 지으시게 된것이 미안스러워 시간이 없어 그러니 찬밥이라도 한술 먹으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아무리 허물없어도 찬밥이야 어떻게 대접하겠는가고 하시며 급히 밥을 덥혀 밥상을 챙겨가지고 들어오시였는데 밥상우에는 너무도 소박한 음식이 놓여져있었습니다.

흰쌀알이 드문드문 보이는 잡곡밥과 더운물 한그릇, 배추김치 한종지, 풋마늘,부루,된장이 전부였던것입니다.

나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배고픈김에 밥 한그릇을 게눈감추듯 하였습니다.

내가 밥술을 놓고 물러나앉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산에서 싸울 때는 별수가 없었지만 지금에야 무엇때문에 제때에 식사를 못하는가고 나무라시며 여태 뭘하느라고 점심을 못했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그래서 그이께 국수집에서 뛰쳐나온 일에 대하여 손시늉까지 해가며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까지 글썽해지게 웃으시며 소문난 유격대중대장이 국수 한그릇도 못 얻어먹고 달아나다니 그게 될말인가, 국수집주인한테 사정이야기라도 해볼걸 그랬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난것이 우스워 나도 한참동안 소리내여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연을 스쳐지나지 않으시고 이렇듯 친히 메밀국수를 눌러 나에게 대접해주시니 그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었겠습니까.

별안간 목이 꽉 메여오르고 코마루가 찡해와서 나는 덤덤히 국수그릇만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는 나의 손에 저가락을 쥐여주시며 김정숙동지께서는 《국수가 맛있겠는지 모르겠어요. 산에서 타향살이를 할 때 동무가 나에게 찾아와도 언제한번 흰쌀밥 한끼, 국수 한그릇 대접한적이 있었나요? 그게 마음에 늘 걸렸댔는데 어제 동무가 국수소리를 하길래 내손으로 만든 메밀국수를 대접하고싶어 오라고 했어요.》라고 다정히 말씀하시였습니다.

돌이켜볼수록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의 한평생은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하여, 혁명동지들과 인민의 기쁨과 행복을 위하여 자신을 초불처럼 태우신 충신의 한평생, 특유한 미덕의 한평생이였습니다.

김정숙동지의 한없이 고결한 인정세계를 언제나 가슴속에 안고사시는분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오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선군혁명령도의 천만리길에는 김정숙동지의 숭고한 사랑과 미덕이 그대로 이어진 병사사랑,인민사랑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무수히 꽃펴나고있습니다.

그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인자하신 영상을 그려보군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백승의 선군령도가 있고 장군님을 충성의 한마음,애국의 한마음으로 받드는 군대와 인민이 있기에 김정숙동지께서 바라시던대로 내 나라는 누구나 화목하고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세상에 자랑떨치는 김일성조선,김정일강성대국으로 자자손손 더욱 빛나리라고 나는 굳게 확신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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