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24일부 《로동신문》은 《우끼시마마루》폭침 6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개인필명의 글 《흑막속에 묻어버릴수 없는 조직적인 집단학살범죄》를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과거 일본이 조선인민을 대상으로 감행한 수많은 집단학살범죄들가운데는 《우끼시마마루》사건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60년전 8월 24일 일본 교또부의 마이즈루앞바다를 항행하는 일본해군 수송선 《우끼시마마루》에는 근 반세기동안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전대미문의 식민지파쑈통치를 실시한 일제의 패망과 함께 해방을 맞아 조국으로 돌아가는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이 타고있었다. 그들이 나라를 빼앗긴 탓에 낯설은 일본땅에 강제로 끌려가 피눈물인들 그 얼마나 흘렸으며 고생인들 오죽했으랴. 돌아보기조차 싫은 일본땅을 떠나는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두고온 고향과 부모처자들에 대한 그리움과 기쁨으로 하여 수난에 찬 노예로동의 피로도 잠시 자취를 감춘듯싶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바다물이 사정없이 밀려들어와 배에 탄 사람들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던것이다.
당시 이 사실은 일본정부에 의해 《불가피한 사고》로 묘사되였으며 력사의 흑막속에 자취를 감추게 되였다. 그이후 일본정부는 《조선사람들이 당시 련합군의 강점을 우려하여 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에 올라탔다》고 하면서 《보상을 추구하려는 그 어떤 움직임도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다》고 결정하는것과 같은 철면피한 태도까지 취하였다.
2001년 교또지방재판소는 일제패망후 귀국하는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우끼시마마루》사건의 책임이 당국에 있다고 판결하고 정부가 피해생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할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일본의 한 신문은 이에 대해 전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수십년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그와 같은 판결이 계속 나오고있는 사실은 일본이 아직 과거청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있다는것을 랭정하게 상기시켜준다고 지적하였다.
폭로된바와 같이 《우끼시마마루》사건은 일본정부의 의도적인 조선인학살계획에 따라 조직집행된 고의적인 집단살인범죄사건이였다. 일제가 패망한 후 일본반동들은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랍치하여 일본땅에 끌고가 저지른 저들의 만행진상이 공개되는것이 두려워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무참히 학살하였다. 사실 조선사람들이 《황군》의 함선 《우끼시마마루》에 몸을 싣게 된것은 본인들의 요구에 의한것이 아니라 패망직후 한명의 조선사람이라도 더 많이 죽이는것으로써 패망의 앙갚음을 하려는 일본반동들의 음흉한 속심으로부터 조직적으로 강요된것이였다.
일본정부는 이 사건의 범죄적내막을 영원한 비밀로 묻어버리려는데로부터 배의 침몰로 죽은 사람들의 주소,성명을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지어 정확한 사망자수자조차 밝히지 않았다. 이로써 일본은 조선인피해실태를 극력 왜소화하여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사죄와 보상의무를 털어버리고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어물쩍해 넘기려고 하였던것이다.
일본은 패망 60년이 된 오늘까지도 《우끼시마마루》사건피해자들에 대한 처리를 잘못한 사실을 바로잡지 않고 그냥 덮어두고있다. 이것은 지난날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일제의 죄행에 대한 로골적인 묵인,비호행위이며 조선인민에게 2중3중의 죄악을 덧쌓는것으로 된다.
더우기 격분을 자아내는것은 최근 일본외무성이 제2차 세계대전종결 60년을 맞으면서 홈페지를 통해 전후배상문제는 관계국과 일괄처리했으며 개인적인 청구권에 대해서는 더이상 책임이 없다는것 등 과거청산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궤변을 늘어놓은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과거청산회피,범죄적력사외곡책동이 어느 지경에 이르고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일본반동들은 840만여명의 무고한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랍치하여 노예로동을 강요하고 10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황군》의 성노예로 삼은 일제의 죄행을 집요하게 부정,미화분식,정당화해나서고있다. 그러나 과거 조선인학살범죄는 절대로 감출수 없다.
일제에 의해 꾸릴렬도부근에서만도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1944년 7월 꾸릴렬도의 빠라무쉬르섬부근에서 침몰된 일본군 수송선 《다이헤이마루》에서만도 600여명에 달하는 조선청장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1943년 15척의 일본군 수송선침몰 및 파손과 1944년 3월부터 6월사이에 1,934명의 사망자를 낸 《니찌렌마루》의 침몰,594명의 사망자를 낸 《후시미마루》의 침몰 등으로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오늘 과거범죄에 대한 사죄,보상을 한사코 회피하고있는 일본반동들의 철면피한 태도는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의식의 발로로서 우리 인민으로 하여금 일본과는 끝까지 결산하고야말려는 의지를 더욱 굳게 가다듬게 하고있다.
백년숙적 일본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가슴을 불태우고있는 우리 인민은 《우끼시마마루》사건피해자들을 비롯하여 지난날 일제에 의해 무참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피맺힌 원한을 반드시 풀어주고야말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