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3일발 조선중앙통신)3일부 《로동신문》은 비전향장기수 조창손의 수기 《선군혁명동지애는 우리 공화국 특유의 향기이다》를 실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 력사의 언덕을 넘고넘으며 승리를 향하여 도도히 전진하는 주체혁명위업,조국통일위업은 세계의 많은 정치가들,진보적인민들의 경탄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이 벅찬 현실을 대할 때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체현하고계시는 선군혁명동지애의 숭고한 세계가 이 몸을 휘감군 한다.
그도 그럴것이 어떤 의미에서 조선혁명은 령도자의 위대한 사상과 숭고하고도 특이한 동지애에 매혹된 군대와 인민이 그것을 혈맥으로 하여 혼연일체를 이루고 그 위력으로 승리를 떨치는 일심의 대하라고 할수 있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지니신 동지관,혁명적동지애는 사람중심의 철학에 기초하여 온 나라 인민들을 품에 안아 동지관계를 맺으시고 한번 주신 믿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주시는 헌신적이고 변함없는 위대한 사랑이며 이 세상 그 어느 정치가나 령도자에게서도 찾아볼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숭고하고 뜨거우면서도 아름다운 천품이다.
이 위대한 천품에 매혹되여 항일의 로투사들로부터 청소년들에 이르기까지 남녀로소모두가 경애하는 장군님과 정을 나누고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이고 서로가 합심하고 돕고 이끌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것이 우리 사회의 풍조이고 관습처럼 굳어진 생활이다.
지난 5년동안에 사랑의 대지에서 꽃펴나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눈물겹도록 목격하고 전해들으면서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보다 뜨거운 선군혁명동지애와 동지관에 대한 위대한 신념에서 조선혁명의 모든 승리의 요인과 성공의 비결을 찾아보군 한다.
동지애와 일심단결
혁명과 더불어 이 세상에 동지와 동지애라는 말이 생겨났다. 로동계급의 혁명투쟁이 시작된 때로부터 력사는 동지관계에 대한 하많은 이야기들을 새기면서 발전하여왔다. 많은 혁명가들이 동지와 동지애의 심원한 뜻을 깨달으면서 완전무결한 믿음과 사랑에 기초한 동지적단결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100여년을 헤아리는 로동계급의 혁명투쟁력사에서 그런 단결을 실현한 정치가는 오직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뿐이시다.
항일무장투쟁과 새 조국건설,조국해방전쟁과 전후복구건설시기에도 그랬지만 오늘의 붉은기수호전과 선군혁명총진군을 통하여 나는 조선혁명의 승리의 요인이나 성공의 비결이 오직 사람중심의 철학과 동지애에 기초하여 맺어진 혁명적단결의 힘에 있다는것을 심장으로 절감하고있다.
일제가 기승을 부리며 우리 민족의 넋을 말살하려 할 때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조선혁명의 닻을 올리시여 조국광복위업을 성취하시고 이 땅에 사회주의를 일떠세워주신 힘도,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반사회주의압살공세를 짓부시고 《고난의 행군》,강행군을 승리적으로 이끌어주신 힘도 백두산위인들의 동지관과 혁명적동지애에 원천을 둔것이라고 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의 동지애는 단결의 터전우에서 피여난 사랑과 충성의 꽃이다.》
지금도 나는 기록영화들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군 한다. 뜻을 같이하는 동지,생사를 같이하는 동지애만 있으면 그 어떤 폭풍도 시련도 뚫고 반드시 혁명의 큰뜻을 성공시킬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시고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시여 동지애로 뭉친 혁명가의 대부대를 마련하시고 그 위력으로 한 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지전설,동지를 위하여 자기를 바칠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동지를 얻을수 있다는 열렬한 동지관을 지니시고 수령님 맡기고 가신 전사들과 인민들의 운명을 지켜 무수한 사선길을 헤치시며 믿음과 충성의 완전무결한 일심단결의 세계를 창조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혁명동지전설,
한 일군이 뜻하지 않은 일로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여 억수로 퍼붓는 비를 흠뻑 맞으시며 한밤중에 사품치는 강물우의 철교를 아슬아슬하게 넘으시는 화폭과 사랑하는 전사의 령구앞에서 눈물을 걷잡지 못하시는 모습에서 나는 항일혁명렬사 리광동지가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고 비분을 금치 못하시며 몸소 사선을 헤치시여 사랑하는 전사가 이루려던 뜻을 기어이 실현시켜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사랑하는 병사들을 위해 험한 파도길,칼벼랑길,진창길을 걷고 또 걸으시는분,병사들을 찾으시여서는 친어버이심정으로 잠자리와 식당을 먼저 돌아보시고 영예게시판의 사진도 보아주시며 병사시절이 더없이 빛나도록 해주시고 이미 떠나간 전사의 위훈이 세월의 락엽에 묻힐세라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시는 우리 장군님같으신분은 세상에 없다.
혁명전사들과 인민을 위해 베푸신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의 전설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하여 일일이 다 꼽을수 없고 그 하나하나가 다 위대한 동지애의 서사시여서 정말 눈물없이는 대할수 없다. 나는 거기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지니신 혁명적동지애의 우주와 같은 폭과 태양과 같은 열도,백두산천지물과 같은 순결함을 보았고 령도자와 인민이 서로 신뢰하고 아끼는 믿음과 사랑의 세계를 새롭게 알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무한대한 동지애의 세계,인간사랑의 깊이를 접할수록 숭고한 감정에 휩싸임을 금할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마음의 기둥,신념의 원천,희망의 전부이신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경모심에서 오는것일것이다.
오로지 동지를 귀중한 혁명의 재산으로 삼으시고 이 땅우에 동지애의 대화원을 가꾸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 아니시라면 인생의 거의 절반을 남녘땅 감옥에 묻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어떻게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 오늘처럼 청춘을 되찾고 영광스러운 삶을 마음껏 누릴수 있겠는가.
솔직히 말하여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중에서 오늘같은 날을 보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고향이 황해남도 룡연이고 북에 처자가 있는 나도 통일되기 전에는 조국으로 갈수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중에는 언제나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있었다.
장군님께서 세계에 옥중투쟁을 한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남조선의 비전향장기수들과 같이 30~40년을 옥중에서 지조를 지켜 투쟁한 그런 혁명가들은 없다고,우리는 남조선에서 투쟁한 동지들에 대하여 잊지 말아야 하며 그들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자신께서는 이것이 우리 당이 전사들에게 베풀수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며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을 한꺼번에 데려오시는것과 같은 인류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동지애의 전설을 창조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시다.
력사에는 어느 나라의 군사령관이 전투에서 희생된 한 전사의 묘앞을 지나며 머리를 숙여 조의를 표시한것을 커다란 미덕으로 찬양한 기록이 있다.
하물며 혁명전사들과 인민을 위하여 주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 주시고 기울일수 있는 모든것을 다 기울이시며 동지사랑의 서사시를 수놓아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관,열렬한 동지애의 세계를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지구상에 200여개를 헤아리는 나라가 있지만 령도자와 인민이 사상으로 공고히 결합되고 마음과 뜻을 함께 하며 가장 혁명적이고 뜨거운 동지관계를 이룬 나라,령도자는 인민을 위하여 쪽잠과 줴기밥으로 낮과 밤을 이으시며 전선길을 걸으시고 인민은 장군님을 어버이로 믿고 따르며 결사옹위의 성새를 이룬 나라는 우리 나라뿐이다.
이 사랑의 대지에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힘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달았다.
황금과 권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은 사람을 움직인다.
경애하는 장군님은 인민은 동지이고 선생이라는 류례없는 믿음과 사랑의 철학으로 천만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도 하시고 소수로 다수를 이기시며 세상을 들었다놓는 선군전설도 창조하시는 희세의 위인,21세기의 태양이시다.
령도자와 인민이 뜻과 정으로 뭉친 선군혁명동지애의 화원,혼연일체야말로 권력으로도 이룰수 없고 돈으로도 살수 없는 우리 공화국 특유의 재부이고 자랑이 아니겠는가.
정녕 동지애로 뭉쳐지고 동지애로 승리하는 우리 조국은 동지애의 강국이다.
혁명적사랑은 뜨겁고 열렬하다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인간향기라면 혁명적동지애는 그 향기의 자양이다.
지난 2월 어느날 제9차 김정일화축전장을 찾았던 나는 그곳에서 뜻밖에 미국 시카고에서 왔다는 한 동포녀성을 만나게 되였다. 나를 알아본 그 동포녀성은 무척 반가와하면서 5년전 판문점분리선을 넘는 선생님을 보면서 몇날 앉아계시지 못하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오늘 보니 룡이 되였다고,정말 룡이 되였다고 곱씹어 말하는것이였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멈춰세울수 없는것이 인생의 로화라고 하였다. 더구나 나로 말하면 남쪽에서 이미 죽음을 선고받았던 몸이다. 그러한 내가 동포녀성이 말한것처럼 조국의 품에서 룡이 된것이다. 나의 신상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를 놓고서도 우리 장군님의 동지애,우리 사회의 진면모를 말하게 된다.
사람은 자기의 소원이 성취되였을 때 제일 기뻐한다. 조국에로의 귀환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있어서 기쁨중의 기쁨이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꿈속에서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기면서도 그 기쁨을 맛볼수 없었다. 39년만에 밟게 되는 조국땅도 제발로 걷지 못하고 삼륜차에 실려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판문점분리선을 넘어섰던것이다. 그만큼 나의 생명은 생사기로에 있었다.
하늘땅을 뒤흔드는 《만세!》의 환호성과 《아버지-》,《여보-》 하고 찾는 소리를 멀리서처럼 들으며 잠시 의식을 차린 나에게 누군가가 선생님앞에 서있는 청년이 집을 떠날 때 낳은지 2달밖에 안되였던 아들이고 젊은 녀인은 딸이며 그 옆의 할머니는 안해라고 알려주는것이였다. 39년간 입속에서만 부르던 아들과 딸,안해이다. 전신의 힘을 모아 《정삼아-》 하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30년간의 감옥살이와 9년간의 남조선사회생활은 나를 성한 곳이라고는 없는 페인으로 만들었다. 귀환을 앞두고 나는 죽음을 선고받았다. 이를테면 생명이 몇달을 넘기지 못한다는것이였다.
솔직히 말하여 나는 이제는 조국의 품에도 안겼고 보고싶었던 안해와 아들딸도 만났으니 죽어도 원이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이러한 나를 살려주고 온 나라가 다 아는 공화국영웅으로,조국통일상수상자로 내세워주신분은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은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들을 동지로,전우로 믿어주시고 그들의 운명과 미래까지 책임져주시는 위대한 동지이시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혁명가로 불러주시며 전사들에게 주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계시여 오늘은 내가 룡이 되였고 우리 가정에서는 만복이 넘쳐난다. 1년 365일치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는 날이 없다. 우리 집구석구석까지 장군님의 사랑이 꽉 차고 넘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시로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건강상태를 알아보시고 여러차례에 걸쳐 각종 보약들을 보내주시였으며 나를 비롯하여 병약한 동지들을 위하여 특별치료대책까지 취해주시였다.
장군님의 뜻을 받들고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몸을 추세우기 위한 의사선생들의 수고가 많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건강상태를 알아보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즉시에 대책을 취하군 하며 때로는 밤을 밝혀가며 병상태를 관찰하군 한다.
감옥에서 위장병을 심하게 앓으면서도 소화제 한알 얻어먹을수 없었던 내가 어버이장군님의 보살핌속에 세상에서 값비싼 고가약이란 고가약은 다 쓰고있다.
올해초에 귀한 영양제와 보약을 가지고 우리 집에 찾아온 의사선생님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이 계셔서 외국에 나가서 사온것이라며 내 손에 꼭 쥐여주는것이였다.
불시에 눈앞이 흐려졌다.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겠으나 격정이 솟구쳐 《나같은게 뭐라고 나라 일이 바쁘신 장군님께서 그토록 마음쓰신단 말입니까. 장군님,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였다.
아마 내가 건강회복에 쓴 고가약을 비롯한 각종 약제들,보약들과 치료비까지 돈으로 계산한다면 그 어느 백만장자도 대부호도 깜짝 놀랄 엄청난 액수에 달할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사들을 위해서라면 나라의 천만금도 아끼지 않으신다.
우리들의 건강을 꼭 회복시켜 잃어버린 청춘도 되찾아주고 복을 마음껏 누리게 하시려는 장군님의 열화같은 사랑속에서 몇달밖에 살지 못할것이라고 하던 나도 삼륜차에서 일어나 씩씩한 발걸음으로 백두산밀영고향집과 백두산혁명전적지들을 참관하였으며 명승지들도 돌아보면서 인생의 락을 마음껏 누리고있다.
나뿐이 아니다. 우리 동지들모두가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속에서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았고 가족들과 더불어 삶의 희열을 한껏 맛보고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배려로 경치좋은 동해바다가로 휴양을 떠난다.
지난해에는 송도원과 시중호에서 해수욕도 실컷 하였다. 올해에는 7월초부터 우리들의 휴양생활이 시작되였다. 휴양을 떠나기 하루앞서 갑자기 잠시 모이라는 련락이 왔다. 모임장소에 가보니 휴양 떠날 때 입을 여름양복들이 옷걸이에 주런이 걸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여름양복이였다. 살점을 뜯고 뼈를 깎는 수십년간의 감옥살이를 푸른 수의 하나로 살아온 우리들은 때없이 받아안는 장군님의 사랑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걷잡지 못하군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철따라 보내주신 옷들이 이제는 옷장에 넘쳐난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덕으로 좋은 집을 쓰고 살겠다,철따라 입을옷이 많겠다,먹을것도 풍족하겠다,게다가 몸도 좋아졌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날마다 기쁨이요,웃음이다.
태양이 비치는 대지에도 양지가 있는가 하면 음지도 있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베푸시는 혁명적동지애는 우리 사회에서 음지를 찾아볼수 없는 빛발로,우리 인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민으로 키우는 자양으로 되고있다.
전체 인민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밑에 살며 일하는것을 자랑으로 여기고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공화국이다.
자기의 피와 살,뼈까지 남에게 바치며 꽃나이처녀들이 자진하여 영예군인의 안해가 되고 부모잃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며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것과 같은 고상한 동지애의 미풍은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저 남조선사회같은데서는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다.
얼마전 나는 어느 한 병원의 피부이식수술장에서 있은 사실을 전하는 《로동신문》기사를 눈물속에서 읽었다.
뜻밖에 일어난 화재사고로 많은 로동자들의 생명과 공장재산에 위험이 닥쳐오게 되자 희생을 무릅쓰고 불속에 뛰여들어 동지들과 공장재산을 구원하고 사경에 처한 평범한 로동자를 살리기 위해 온 공장이 떨쳐나서고 지어 군인들과 나어린 학생들까지 병원에 달려와 병원마당은 자기 살점을 바치겠다고 싱갱이질을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신문기사에서 나는 우리 사회사람들의 참다운 인생관과 량심,진실한 도덕과 미덕이 어떤것인가를 다시금 절감하였다.
돈이 없으면 들었던 수술칼도 내리우고 혈육이 죽어가도 아랑곳하지 않는 황금만능의 사회,다같은 인간이면서도 누구에게는 지배할 권리가 차례지고 누구에게는 복종할 의무만이 강요되는 썩은 사회,《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승냥이 법칙이 만연되는 패륜패덕의 사회에서는 리성이나 량심,미덕의 쪼각도 찾아볼수 없다.
나는 이따금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사회와 전체 인민이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동지적관계가 지배하는 우리 공화국을 대비하면서 자신보다 먼저 집단과 동지들을 위하는것을 공민의 신성한 의무로,고상한 도덕과 본분으로 여기도록 하시고 전체 인민을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혁명동지로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하군 한다.
사실 나야말로 혁명동지들의 덕을 많이 본 사람이다.
내가 30년간의 감옥생활에서 죽지 않고 살아 조국의 품에 안길수 있은것도 백두산위인들께서 키우신 혁명동지들의 덕이다.
송곳 꽂을만 한 제 땅도 없어 숯을 구워 팔던 숯쟁이아들로 태여난 내가 혁명동지에 대해 알기 시작한것은 조국해방전쟁시기이다.
1950년 5월에 군복을 입고 총을 잡은 나는 복무기간 동지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중대장을 비롯한 중대의 지휘관들은 비발치는 탄우속에서도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할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정치부중대장동지는 전투에서 부상당한 나에게 자기 피까지 수혈해주었다.
수십년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너와 나는 피와 살을 나눈 동지라고 하면서 나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의 인상좋은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생사를 가늠할수 없는 조국통일의 길에서 나는 혁명동지의 귀중함을 더욱 깊이 느꼈다.
1962년 4월에 불행하게도 체포된 나는 거의 매일같이 물고문,전기고문,비행기고문 등 악형을 당하였다. 우리는 누구나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을 각오를 하고 놈들과 맞섰다. 그 과정에 나는 심한 위장병을 앓게 되였다. 인민군대에서 70kg이상급 씨름경기에 참가하군 하던 내 몸무게가 40kg도 못되게 줄어들었다.
지겨운 그 나날 김선명,최태국,김동기,안영기,김창원동지들을 비롯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서 혁명가로 자라난 많은 동지들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감옥에서 열번도 더 죽었을것이다.
불처럼 뜨겁고 흰눈처럼 깨끗한것이 동지적사랑이다.
우리 동지들은 수십년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자신처럼 동지를 사랑하는 뜨거운 인간들이였다. 불치의 병고에 시달리는 동지의 손과 발이 되여 갖은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혈육보다 뜨거운 동지적사랑이 있었기에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적들의 악랄한 전향공작책동도 이겨낼수 있었고 신념을 지킬수 있었던것이다.
1960년대 말부터 《산송장》으로 내버려져 죽음의 문어구에서 헤매던 내가 오늘에는 행복의 대문안에 들어서 온갖 락을 다 누리고있고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고 행복의 꽃을 활짝 피우고있는데서 그리고 온 나라 천만군민이 서로 돕고 이끌며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있는 현실을 통하여 나는 동지애로 시작된 조선혁명은 동지들과 인민들에 대해 불보다 뜨겁고 열렬하신 경애하는 장군님 계시여 승리에서 승리에로 이어지고있다는것을 확신하였다.
이러한 위대한 사랑의 세계는 력사에 전무후무하다.
그래서 나는 선군혁명동지애는 우리 공화국 특유의 향기라고 긍지높이 웨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