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21일 지난 15일부터 20일까지 마쟈르에서 진행된 카네티국제바이올린콩클에서 우승한 만수대예술단 문경진연주가가 편지를 올리였다.
편지는 다음과 같다.
지금 이 시각도 머나먼 전선시찰과 현지지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아버지장군님께 있어서 천금보다 더 귀중한것이 시간임을 잘 알면서도 장군님께로만 달리는 이 마음 진정할길 없어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의 배려로 모스크바에 나와 음악실습을 하고있는 만수대예술단 바이올린연주가 문경진입니다.
저는 이번에 마쟈르에서 진행된 《카네티국제바이올린콩클》에 참가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온 우수한 바이올린강자들과 당당히 겨루어 영예의 제1위를 쟁취하였습니다.
이 보고를 받으시면 그 누구보다 더 먼저 기뻐하실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자꾸만 떠오르고 어머니조국의 그 정다운 품이 못견디게 그리워집니다.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음악가의 자식에 불과한 저의 미숙한 음악적재능까지 널리 헤아려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마음껏 공부하도록 배려해주시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주체예술의 최고전당인 만수대예술단에서 음악적재능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게 해주시였으며 오늘은 이렇게 국제무대에까지 나가 주체조선의 영예를 떨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이번 카네티콩클에는 이미 여러차례 국제콩클에서 우수한 전적이 있는 로씨야,중국,남조선,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들에서 온 유능한 바이올린연주가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저는 그들의 음악년한과 국제콩클경험앞에서 얼마간 당황도 했고 또 과연 제가 이번 콩클에서 우승할수있겠는가 하는 위구심도 없지않았습니다.
첫경연이 시작되기 전날 밤 저는 어째서인지 저도 모르게 노래 《우리 아버지》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장군님께서 나약해진 저의 마음을 다 읽으신듯 《경진이,조국과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너를 지켜보고있다. 부디 성공하고 어머니조국으로 돌아오너라.》고 말씀하시는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격정의 눈물을 금치 못하며 꼭 1등 하여 아버지장군님의 품에 안겨야 한다는 결심을 새롭게 다지였습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만을 그리는 마음이 의지가 되고 용기가 되였기에 저는 두려움과 주저를 모르고 결승선에서 우승할수 있었습니다.
결승경연이 끝난 후 한생을 음악으로 늙어온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저를 둘러싸고 어디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는가,아직은 년한도 경험도 어린 조선의 젊은 청년이 어떻게 국제콩클에 처음 참가하여 단번에 1등 할수 있었는가고 연거퍼 질문을 들이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나는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물론 나는 국제콩클경험도 연주년한도 부족한 신진음악가이다. 그러나 아버지장군님만을 그리며 따르는 신념과 의지가 그대로 재능이 되고 열정이 되였기에 내가 이번에 우승할수 있었다.》고 당당히 말해주었습니다.
저의 말을 듣고있던 교수들은 물론 외국기자들도 모두가 세계적인 높은 경지에 오른 우리의 주체음악예술과 조선청년들만이 지니고있는 고상한 사상정신세계에 대하여 몹시 감탄해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
이번 콩클에서 우승하였지만 그것은 첫 걸음에 불과하며 아버지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세계적인 바이올린명수가 되자면 부족한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는 이번 콩클을 경험삼고 피타게 노력하여 장군님께서 아시고 조선이 아는 바이올린수가 되겠습니다.
조국을 떠나, 장군님의 품을 떠나 머나먼 이역에서 공부하면서 제가 단 한시도 잊은적 없고 항상 마음속으로 그리고있는것은 오직 하나 경애하는 장군님의 안녕입니다.
장군님의 환하신 웃음속에 우리 조국이 전진하고 장군님께서 이어가시는 선군장정의 길우에 부흥할 주체조선의 래일이 있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문경진 올립니다
주체94(2005)년 7월 21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