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기사 달력>>2005년 7월 13일기사 목록
로동신문 《악랄하고 비렬한 반공화국제재책동》-일본의 끈질긴 경제제재
(평양 7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13일부 《로동신문》은 《악랄하고 비렬한 반공화국제재책동》이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개인필명의 론설을 실었다.

일본반동들은 지난 수십년간 조선의 통일을 한사코 방해하면서 남조선일변도,대조선적대시정책을 악랄하게 실시하였다. 그들은 미국의 침략적대조선정책에 적극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어리석게도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건설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도록 각방으로 책동하였다. 전후 수십년간에 걸치는 일본의 반공화국제재책동은 집요하고 비렬하기 그지없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일 두 나라사이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인차 해결되여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집정자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옳바른 길로 나아가려는 일본인민들의 의사와는 어긋나게 우리 공화국에 대한 비우호적인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일본반동들의 장기적인 반공화국제재책동은 우리 나라에 대한 극도의 증오감, 우리 제도에 대한 체질적거부감의 산물인 동시에 대조선침략야망의 발현이다. 일본반동들은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건설이 적극 추진되고 우리 나라의 국제적권위가 날로 높아지자 시기질투하고 배아파하면서 비렬하게 책동하였다. 그들은 끊임없는 제재책동으로 우리를 경제적으로 질식,굴복시키려고 기도하였다. 그러한 행위를 꼽자면 수없이 많다.

일본반동들은 우리에게 경제제재를 가하여 우리 나라에서의 사회주의건설을 방해하고 불순한 정치적목적을 달성하려고 획책하였다. 그들은 미제가 우리에게 경제제재조치를 취할 때마다 상전에게 뒤질세라 적극 맞장구를 치면서 우리에 대한 압력과 제재소동을 벌리였다. 미국이 1949년에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를 조작하였을 때 그리고 1950년에 《재산통제규범》이라는것을 내놓았을 때 등 미국의 제재소동때마다 일본반동들은 그에 편승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무역 및 재정적봉쇄를 실시하였다. 1950년대 중엽에 이르러 우리 공화국과의 경제문화교류를 바라는 일본인민들의 요구와 압력이 강화되자 당시 일본총리였던 하또야마는 《북조선과의 경제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회담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정작 일본의 민간급에서 조일쌍무무역관계개선움직임이 보이자 일본정부는 조일무역을 허용하지 않기로 하고 1955년 10월 24일 각 성 차관회의에서 우리 공화국과의 무역을 비롯한 교류를 일체 금지한다는 결정을 채택하였다. 1957년에 등장한 기시내각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도 일본정부의 반공화국적대시정책으로 하여 조일간의 무역은 정부급에서는 물론 민간급에서도 진행되지 못하고있었다. 조일간의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일본인민들의 투쟁이 강화되는데 위압된 일본정부는 1961년 4월에 조일무역을 정식허용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러나 직접무역을 진행하는데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인 직접결제금지조치, 조일무역에 종사하는 일본의 수출업자들에 대한 수출은행융자승인금지조치는 해제하지 않았다. 일본이 1973년 12월에 승인한 수출은행융자에 대해 보더라도 그것은 3건의 기계 및 설비수출에 대한 융자로 그치였으며 1년후에는 부당한 구실을 대고 수출은행융자의 제공을 거부하였으며 일본통산성도 수출보험업무를 중단하였다.

일본은 우리 공화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책동의 한 고리로서 우리 나라의 수출품에 대하여 높은 관세를 계속 적용하여오고있다. 일본은 수입관세적용에서도 우리 나라에 대해 극심한 차별을 두었다. 일본이 우리 나라에 가장 불리한 《국정세률》을 그대로 적용하고있는것은 그 단적실례이다.

지난 시기 일본정부가 우리 공화국의 무역관계자 및 기술자들의 일본방문문제와 관련하여서도 금지조치를 해제하지 않아 우리 공화국과 일본과의 무역관계자 및 기술자들을 비롯한 인적교류는 호상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진행되였다. 1966년 7월 우리 나라와의 무역관계를 정상화하며 발전시킬것을 념원하는 일본경제계와 사회계의 강력한 압력에 못이겨 사또정부는 우리 나라 무역기술대표단의 일본입국을 허가할것을 결정하였으나 그후 입국수속사무를 고의적으로 태공하면서 우리 나라 무역기술대표단의 일본입국실현을 지연시켜오다가 끝내는 무기한 연기한다는것을 공포하였다. 그러자 일본무역회사들도 우리 나라에 대한 수출계획리행을 취소한다고 발표해나섰다. 일본을 방문한 우리 나라 경제대표단성원은 1972년에 7명, 1973년에 40-50명정도에 불과한데 비해 조선을 방문한 일본의 무역관계자와 기술자들은 이 시기 년간 500-600명에 달하였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일본당국이 우리 나라에 대해 얼마나 못되게 놀았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일본반동들이 우리 공화국을 경제적으로 봉쇄질식시키기 위해 얼마나 광분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사실자료가 또 있다. 2003년 일본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비렬한 일들이 벌어졌다. 일본당국자들과 그리고 군사평론가요,교수요 하는 사람들, 적지 않은 언론들은 우리가 일본에서 합법적인 무역을 통해 사가는 민수품들을 군수용으로 리용할수 있다느니, 우리 나라로 들어가는 수출품들을 통제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며 별의별 허튼 소리들을 다 내돌리다 못해 지어 《민수품을 둘러보면 어느것이나 다 군수재료》로 리용될수 있다고까지 떠들어댔다. 그들은 우리가 일본의 화장품을 들여다 화학무기제조에 리용할수 있다느니, 자전거를 사다가 그 베아링을 군수용으로 쓴다느니 뭐니 하는 괴이한 소문까지 내돌리였다. 반공화국적대감,제재책동에 환장이 된자들이 아니고서는 이런 너절한 놀음을 벌릴수 없는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책동에 의하여 조선반도정세가 악화될 때마다 우리에 대한 경제봉쇄의 도수를 높이였다. 일본은 1990년대에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국의 고립압살책동의 돌격대로 나서서 《집단적인 제재》놀음에 열을 올리였다. 그들은 지어 국제기구들에까지 우리의 《핵의혹》설을 내돌리며 우리 나라에 대한 경제봉쇄를 강화하도록 추동질하였다. 지난 시기 미국과 손잡고 대조선적대시책동을 끈질기게 벌리였던 일본반동들이 최근에는 일본단독으로라도 우리 나라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행하겠다고 망발하며 제재발동소동을 벌리고있다. 이것은 이제는 일본반동들이 극도로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져 상전을 제껴놓고 독단적으로 대조선제재에 나서려 하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일본반동들의 반공화국제재책동은 경제분야에만 국한된것이 아니였다. 1988년 미국의 뒤를 따라 우리 나라에 대한 《제재조치》라는것을 발표한 일본반동들은 요꼬하마에 입항한 우리 선박 《만경봉》호에 대하여 《승무원의 상륙금지》라는 구실로 선장이 부두에 내려 꽃다발을 받는것까지 금지시켰으며 우리 나라 무역선 《송림》호가 정박장에 기름을 흘렸다는 생트집을 잡아 단속하는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 나라 중앙동물원과 교또시동물원이 1986년부터 진행하고있는 동물교환의 일환으로서 중앙동물원 대표가 늑대와 까치를 교또시동물원에 보내기 위해 일본에 들어가려는것까지 막아나서는 상식밖의 졸렬한 놀음까지 벌리였다.

일본반동들이 오랜 기간 우리 공화국을 적대시하면서 온갖 비렬하고 악랄한 제재조치들을 발동하였으나 그것은 우리 인민의 대일적대감만을 분출시키고 일본의 2중,3중의 반공화국범죄행위를 반드시 결산하고야말 우리 군대와 인민의 의지를 더욱 굳세게 하였을뿐이다. 일본이 반공화국제재정책으로 얻은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일본의 영상을 흐려놓고 그들의 도덕적저렬성과 고약한 심보를 드러내보여주었으며 일본인민들의 리익을 손상시켰다. 우리 인민은 일본의 끈질긴 제재속에서도 사회주의건설을 성과적으로 추진시키고 나라의 경제력과 군력을 끊임없이 강화하여왔다. 일본은 반공화국제재정책이 우리 나라에는 통하지 않는다는것을 명심하고 부질없는 놀음을 그만두는것이 좋을것이다.(끝)

Copyright (C) 2005 KOREA NEWS SERVICE(K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