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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일본인녀성이 중국주재 대사관에서 기자회견
(베이징 4월 18일발 조선중앙통신)재조일본인 안필화녀성이 18일 중국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에서 기자들과 회견하였다.

기자회견에는 중국외교부 보도국 일군과 중국의 신문,통신 기자들, 베이징 주재 여러 나라 특파기자들이 참가하였다.

기자회견에서 안필화녀성은 일본인녀성으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살게 된 경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일본이름은 히라시마 후데꼬이다.

1938년 11월 24일 도꾜도 가쯔시까에서 출생하여 1959년 12월 조선인 남편을 따라 제1차로 공화국에 들어와 조선에서 43년간 살았다.

공화국에서는 나의 자식 2명과 손자,손녀 3명이 살고있다.

그는 계속하여 일본에 가게 된 경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2002년 당시 나는 딸과 함께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살고있었다.

나는 그해 12월 9일 량강도 대홍단군에 있는 아들집에 갔다가 길주로 돌아오던 길에 한 남자를 만났다. 그 사람은 중국에서 일본에 있는 동생이 기다린다고 하면서 잠간 만나라고 하였다. 그 소리에 43년간 보지 못한 동생이 너무도 보고싶어 그 사람의 등에 엎혀 두만강을 건너갔는데 동생은 없었다.

그 사람한테 물어보니 국경가까운 곳이여서 동생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때로부터 연길에서 대련으로, 대련에서 다시 연길,심양을 거쳐 일본으로 갔다.

이 과정에 대련에서 일본기자와 조선말을 아는 사람 2명을 만났는데 그들이 심양주재 일본총령사관과 교섭하여 나를 일본으로 데려갔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일본에 있는 동안 하루도 공화국을 잊은적이 없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산다고 하여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도 보고싶었던 동생도 만나고 옛 동무들도 만나 기뻤지만 날이 갈수록 손자,손녀들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동생의 이름으로 편지를 썼는데 회답이 왔다. 그때로부터 편지와 전화를 통해 우리 손자,손녀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학에 다닌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내가 나쁜 놈들한테 속히워 일본에 갔지만 아무 차별도 없이 우리 자식들을 돌봐주시는 장군님의 인덕정치에 대하여 다시금 느꼈다.

그래서 공화국으로,장군님의 품으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43년동안 살아온 공화국이 나의 고향이다.

나는 공화국공민으로서 내 집이 있고 자식들이 기다리는 공화국으로,장군님의 품으로 당당하게 돌아가려고 한다.

그는 끝으로 자기 가정을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정을 표시하면서 《김정일장군님 만세!》를 불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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