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18일발 조선중앙통신)18일부 《로동신문》은 《강권,사기협잡으로 날조된 비법적인 <조약>》이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개인필명의 론설을 실었다.
지난날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범죄행위가운데는 국제법은 안중에도 없이 강권,사기협잡의 방법으로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전대미문의 식민지통치를 강화한 죄악도 있다. 《한일합병조약》은 우리 나라를 총칼로 가로타고앉은 일제가 일방적으로 강권을 발동하여 조작한 철두철미 비법허위문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점이 후안무치한 강도행위였다는것은 온 세상이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네들은 처음부터 그 강점을 합법적이며 정당한것이라고 묘사하였지만 <합방>은 어디까지나 철저한 강도행위였다.》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날조를 통하여 조선의 외교권과 군사통수권,사법권,경찰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전락시킨 일제는 우리 나라를 일본에 완전히 병합시키기 위한 책동에 달라붙었다. 1909년 4월 괴수들의 비밀회의에서 《한일합병》에 대하여 확정한 일제는 그후 내각회의에서 정식으로 이 문제를 토의하고 《한국을 병합하여 이를 제국판도의 일부로 하는것은 반도에서 우리의 실력을 확립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라는 강도적결정을 조작하였다. 교활한 일제는 먼저 친일주구들을 조종하여 매국적인 《한일합병운동》을 벌리도록 하였다. 그들이 노린것은 조선병탄이 마치도 조선사람들자신의 《의사》에 따라 실행된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저들의 범죄행위를 합법화,정당화하자는것이였다.
그러나 일제의 그 어떤 간교한 책동도 조선인민을 속일수 없었다. 우리 인민의 반일기운은 날로 높아갔다.
음모적방법만으로는 저들의 목적을 순조롭게 이룰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 일제는 날강도적인 본성을 드러내놓았다. 일제는 극악무도한 륙군대신 데라우찌를 《통감》으로 임명하고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을 총검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한편 조선을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기 위한 책동을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하였다. 데라우찌는 1910년 7월 서울에 피묻은 발을 들여놓은 즉시 일제침략군과 헌병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는 한편 전조선에 헌병대분소를 수풀처럼 배치하고 인천에 군함을 끌어들이는 등 전국에 삼엄한 경계망을 편 다음 《한일합병》을 최종적으로 강행하는데 착수하였다. 8월 서울에 수많은 병력을 집중시키고 일제헌병과 경찰들로 서울의 성문들과 왕궁,《통감부》,대신관저 등 중요거점들을 겹겹이 포위하여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한 데라우찌는 친일매국역적 리완용을 불러 《한일합병조약안》과 《합병》에 관한 각서를 넘겨주고 대신회의에서 그대로 접수할것을 강박하였다. 일제침략자들은 친일매국노들에게 《조약》에 《조인》하면 죽을 때까지 행복한 생활을 하는데 충분한 자금을 줄것이지만 저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목이 달아날것이라는 등 회유기만과 위협공갈을 악랄하게 들이댔다. 대신회의에 제출된 《조약안》에 대하여 학부대신 리용직이 《이러한 망국안에는 목이 달아나도 찬성할수 없다》고 강경하게 반대하였으나 8월 22일오후 데라우찌는 리완용을 불러 《한일합병조약》에 조인하게 하였다.
일제는 애당초 조선측의 그 어떤 요구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조약》과 관련한 그 어떤 합의 그자체를 예견하지도 않았다. 오직 저들의 일방적인 강도적요구만을 접수하도록 압력과 협박,강박을 들이댔다. 국제법상요구와 국제관계의 규범이 완전히 결여된 일제의 강압,사기협잡,군사적강권에 의해 애당초 불법무효하게 날조된 《한일합병조약》은 제1조에서 조선황제는 《정부》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에 《양여》한다고 하였으며 제2조에서는 조선을 《완전히 일본에 병합할것을 승인한다》고 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완전히 일본화하려는 일제의 강도적야망을 법제화하였다.
음모적이며 강도적인 방법으로 조약 아닌 《조약》을 날조하여 조선을 세계지도에서 없애버리고 조선민족의 말살을 법적으로 결정한 일제야말로 동서고금에 없는 가장 악랄하고 포악무도한 날강도무리,희세의 국제조약날조자였다.
《한일합병조약》은 조약체결에 관한 초보적인 국제법적요구를 완전히 무시한 거짓문서,그 어떤 법적효력도 가질수 없는 비법불법의 빈종이장에 불과하였다.
《조약》날조당시에 널리 적용되던 《만국공법》 제409장에는 《만일 다른 사람의 협박을 받아 자유가 없이 한것이라면 그 조약은 다 페지할수 있다》고 규정되여있으며 1969년에 유엔국제법위원회에서 채택한 윈협약에는 조약이 《협박에 의한 강제의 결과에 수행된것인 경우에는 어떠한 법적효력도 가지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여있다. 1904년 일본법학자 마쯔바라 가즈오는 《국제공법론》에서 국제조약은 체결국의 능력,전권위임,합의의 자유,체결목적과 적법성,비준 등 5가지 조건이 충족되여야 성립되며 이 조건중 어느 하나라도 준수되지 않으면 무효로 인정된다고 하였다. 유엔헌장과 윈협약에도 국제법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조약은 무효라고 명문화되여있다.
국제조약은 일반적으로 체약국들이 자기 나라와 민족의 리익을 보장하고 다른 나라들과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국가관계를 발전시킬 목적에서 체결된다. 그러나 일제는 국제조약체결의 보편성과 공인된 원칙에 완전히 배치되게 폭력적인 위협속에서 쌍방의 합의가 전혀 없이 일방의 강압과 강요로 《한일합병조약》을 제멋대로 날조하였을뿐아니라 조약의 효력발생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인 최고통수자의 비준까지도 위조하는 류례없는 국제법적사기협잡행위를 감행하였다.
《만국공법》 제406장에는 조약은 《반드시 국왕의 승인》이 있어야 실행할수 있으며 국왕이 《비준하지 않으면 곧 휴지로 된다》라고 규정되여있다. 현대국제법에서도 비준서가 교환된 후에야 비로소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하고있다.
그러나 일제는 국제조약체결절차와 효력발생조건을 무시하고 조선황제의 비준을 위조하는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던것이다.
조선봉건국가의 마지막황제였던 순종은 림종직전에 구술한 유조(일종의 유서)에서 《지난날의 <한일합병> 인준은 역신의 무리가 제멋대로 선포한것으로 내가 한바가 아니다》,《<조약체결>당시 일제는 나를 유페하고 협박했다》고 하였다.
이처럼 일제에 의해 조작된 《한일합병조약》은 아무런 합법성도 법적효력도 없는 비법불법의 《조약》이였다. 《한일합병조약》은 그 후안무치성과 《조약》내용의 강도성으로 하여 이미 유엔에서 불법무효한 《조약》으로 락인되였다.
일제가 《조약》이 날조된 사실을 극비에 붙여두었다가 그로부터 1주일후인 8월 29일에야 세상에 공개한것은 결국 그들자신도 《조약》의 비법불법성을 인정하고있었고 저들의 《조약》날조행위가 폭로되면 그에 격분한 조선인민이 들고일어나는것을 두려워하였기때문이였다.
이와 같이 일제는 다른 나라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실현하기 위해 국제법과 국제관계규범,원칙을 무시하고 국제조약을 마구 날조한 희세의 가장 악독한 침략자,날강도들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이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선택이였다》느니,《세계 여러 나라와의 합의》가 있었다느니 뭐니 하면서 일제의 《조약》날조행위를 외곡,정당화하며 범죄적인 조선침략사를 극구 미화,찬양하고있는것은 일본특유의 군국주의적체질과 도덕적저렬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은 그 무엇으로써도 과거 침략적이며 강도적인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한 행위를 비롯하여 40여년간 조선식민지통치기간 우리 인민에게 끼친 특대죄악을 절대로 정당화할수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