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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 리경찬의 수기 《위인숭배심을 화폭에 담아》
(평양 2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15일부 《로동신문》은 《위인숭배심을 화폭에 담아》라는 제목으로 된 비전향장기수 리경찬의 수기를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저는 남쪽의 감옥에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경모의 마음을 담아 백두산호랑이를 그리였습니다.

35년간의 옥살이총화라고도 할수 있는 백두산호랑이그림,그것은 온화한 화실이 아니라 차디찬 감방에서 투쟁으로 그린 소중한것이였습니다.

한줄기 빛도 없는 감방에서 그림에 조예도 없던 제가 백두산호랑이를 그리게 된데는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을 피력하고싶은 충동에서 화구를 잡았던 이 손에 펜을 들었습니다.

1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호랑이를 용맹과 정의의 상징,운명의 수호신으로 숭상해왔습니다. 재앙과 역병을 막고 복을 가져다주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우상화하여온 호랑이,건국시조들의 출생과 성장과정에 호랑이와 관련된 신화적이야기를 전해온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인지 나라를 위해 용감히 싸운 영웅호걸을 호랑이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영웅호걸도 백두산호랑이에는 비긴적이 없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던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하던 시기 백두산에서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백만관동군을 삼대베듯 쓸어눕히신 김일성장군님의 항일대전소식에 접한 때로부터 2천만동포는 그이를 민족의 구세주로 우러러따르며《백두산호랑이》로 높이 칭송하였습니다.

백두산호랑이,이 호칭에는 구세제민의 태양을 맞이한 우리 겨레의 한없는 기쁨과 긍지가 어리여있었습니다.

백두산은 우리 겨레가 태여난 민족의 성산이며 이 나라의 지맥이 뻗어내린 조종의 산입니다. 우리 민족사의 본관인 백두산을 떠나 우리 겨레의 넋과 정기에 대해 말할수 없습니다. 만리창공에 거연히 솟아 천하를 굽어보는 백두산의 기상은 그대로 우리 민족의 기상이며 백두산의 정기는 그대로 우리 겨레의 정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어디서나 백두산을 우러르며 살아왔습니다. 더우기 김일성장군님께서 항일대전을 벌리신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일뿐아니라 광복의 성산으로 겨레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으며 백두산호랑이는 곧 김일성장군님으로 칭송되였습니다.

백두산호랑이는 우리 인민들에게 무적의 힘과 용기를 주는 필승의 상징이였으며 원쑤들에게는 불안과 죽음을 주는 공포의 대명사였습니다.

사실 광복전에 이 나라 어디에서나 백두산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문만 나도 인민들은 김일성장군 빨찌산이 왔다고 환성을 올렸고 왜놈들은 겁에 질려 숨도 크게 쉬지 못했습니다.

제가 살던 장풍군에서는 백두산호랑이가 구월산에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나돌자 한동안 일본순사들이 주재소에 들어박혀 문밖출입도 못한 일까지 있었습니다.

백두산호랑이야말로 민족의 태양을 따르는 이 나라 백성들의 신념과 긍지,투쟁과 승리의 별칭이였습니다.

성스러운 조국통일의 길에 나섰다가 30∼40년 옥살이를 해온 우리들도 0.75평 먹방에서 김일성장군님을 백두산호랑이로 부르며 의지해 싸워왔습니다.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악착한 고문과 간교한 회유기만에도 굴하지 않고 견결할수 있은것은 수령님께서 왜적들을 족치시고 조국광복을 이루어주셨듯이 미제를 타승하시고 조국통일을 이룩하여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백두산호랑이가 우리를 지켜주고있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매질에도 아픔을 몰랐고 그 어떤 감언리설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백두산호랑이에 대한 생각만 하면 마음이 굳세여지고 배짱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수령님께서 급서하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에 접한 우리들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이전 쏘련이나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붕괴되였을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여 조금도 락심을 몰랐던 우리들이였지만 수령님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하늘이 무너진것 같이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적들은 때를 만난듯이 우리에게 더욱 악착하게 사상전향공세를 들이댔습니다.

어느날 나는 또 한차례의 고문으로 의식마저 몽롱해져 쓰러져있었는데 귀가 번쩍 뜨이는 형리들의 말소리가 들리였습니다. 한놈이 북도 이제는 며칠 못갈것이라고 떠벌이자 다른 놈이 북에는 수령님과 똑같은 백두산호랑이가 있다고 하면서 장군님에 대해 말하고 미국출판물에도 《판단이 정확하고 결심이 단호하며 타격이 무자비한 장군》이라고 보도되였다는것이였습니다.

나는 그 말에 소스라쳐 일떠설번 했습니다. 온몸에 힘과 용기가 용솟음치는것이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전해들었었습니다.

백두산에서 탄생하시여 항일의 총포성을 들으시며 성장하신 장군님께서 성격도 기질도 취미도 신통히 백두산을 닮으셨다는 이야기며 어리신 나이에 고대전쟁으로부터 현대전쟁에 이르는 세계전쟁사와 병서를 독파하고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작전대에서 령장의 슬기와 담력을 터득하시였다는 이야기,주체적인 군건설과 전법에 관한 로작들을 수많이 발표하시고 인민군대를 일당백의 백두산강군으로 키우셨다는 이야기…

우리에게 장군님에 대한 숭배심과 신념을 더욱 굳게 안겨준것은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가 북의 핵문제를 걸고 그 무슨 《사찰》소동을 일으켰을 때 장군님께서 전국에 준전시상태를 펴신데 이어 핵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도록 하셨다는 통쾌한 소식이 전해진 때였습니다. 그 소식은 마치 드센 발통으로 원쑤들을 후려치며 터치는 백두산호랑이의 성난 포효,천하를 흔드는 뢰성같이 들리였습니다. 우리는 적들이 김정일장군님을 김일성장군님과 꼭같은 백두산호랑이로 무서워하는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저는 이 경이적인 사실을 그 무엇으로든 표현해서 세상에 남기고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나 소설을 쓸줄도 몰랐고 노래를 지을줄도 몰랐습니다.

오직 그림으로 장군님의 모습을 그려보고싶은 마음이 동했습니다. 나는 그림을 배우지는 못했어도 어려서부터 좋아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나의 소망은 백두산호랑이를 그릴 생각에 닿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것은 그 당시 저에게 한 운동권대학생이 들여보낸 출판물속에 실린 만화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것과 관련되였었습니다.

일본신문 《아사히신붕》 1994년 6월 7일호에 실린 고시마 데라가가 그린 《저 목에 방울을…》라는 제목의 만화에는 위엄있는 호랑이가 참대숲속에 비스듬히 누워 앞을 노려보고있는데 그앞에는 초췌한 세 사나이(클린톤과 하따,김영삼)가 《제재》방울을 들고 벌벌 떨며 서있었습니다. 호랑이눈치를 흘끔흘끔 보며 일본수상 하따더러 빨리 《제재》방울을 호랑이목에 걸라고 뒤에서 부추기는 클린톤,하따의 뒤에 숨어 덜덜 떨면서 그의 등을 두손으로 간신히 떠밀고있는 김영삼,참대숲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미국이 쥐여준 《제재》방울을 들고나섰다가 호랑이를 보고 질겁하여 《저게 호랑이가 아닌가》하고 비명을 지르며 비실비실 물러서는 하따.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 통쾌한 만화였습니다. 고양이앞의 쥐와 같은 상전과 주구들의 몰골,그것은 백두산호랑이로 위엄높으신 우리 장군님앞에서 기절초풍하는 제국주의자들과 분렬세력의 가련한 처지를 보여주는 힘있는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백두산호랑이를 그림에 담을 결심을 굳히게 되였습니다.

저는 통방으로 동지들에게 백두산호랑이를 그리려는 나의 결심을 알렸습니다. 모두가 절대찬성이였습니다. 동지들은 교형리들의 고문과 회유에도 굴함없이 혁명적지조를 지켜나가도록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계시면서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김정일장군님을 끝까지 따르려는 우리의 뜻을 백두산호랑이그림에 잘 담아달라고 당부와 격려를 보내며 지지해주었습니다.

저는 더욱 힘을 얻고 백두산호랑이를 그릴 열망으로 가슴 불태웠습니다.

지금까지는 백두산호랑이를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싸워왔다면 이제부터는 백두산호랑이를 직접 화폭에 담으며 그 기상으로 살며 백두산장군의 전사로 싸울것을 마음다졌습니다.

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습니다.

《김정일동지는 비범한 령도력으로 혁명과 건설을 현명하게 령도하고있습니다.》

백두산호랑이를 그리는 과정은 백두산장군의 절세의 위인상을 체득하고 그에 매혹되는 과정인 동시에 백두산의 기상으로 적들과 싸워 이겨나가는 과정이였습니다.

어느날 운동시간에 싸리나무꼬챙이를 얻은 나는 거기에 물을 묻혀 감방바닥에 호랑이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무엇부터 어떻게 그려야 할지…

더우기 그저 보통호랑이가 아니라 백두산호랑이를 그려야 하므로 쉽게 그릴 일이 아니였습니다. 불현듯 저의 뇌리에는 고급중학교시절에 외워두었던 혁명시인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쉬-위-
바위우에 호랑이 나섰다
백두산호랑이 나섰다
앞발을 거세게 내여뻗치고
남쪽 하늘 노려보다가
<따-웅-> 산골을 깨친다
그 무엇 쳐부시련듯 톱을 들어
<따-웅->…》

바로 그것이였습니다.

백두산호랑이의 눈에는 천리안의 예지가 넘치면서도 원쑤들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눈부신 빛발이 담겨져야 했습니다. 《임금 왕》자가 새겨진 백두산호랑이의 이마에는 겨레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만민을 따뜻한 품에 안아주시는 민족의 령수의 위엄과 자애로움이 어리여야 했습니다. 백두산호랑이의 억센 발톱이며 날카로운 이발에는 민족의 원쑤들을 단매에 후려쳐 풍지박산내는 천하무적령장의 서슬푸른 기상을 담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다름아닌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 그대로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영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방바닥에 그려보기를 수천번,그림솜씨도 어지간히 느는듯싶었습니다. 그 사이에 동지들의 눈물겨운 지원으로 종이며 색감들도 마련되였습니다.

나는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하지만 다 그려놓고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장군님의 천출위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받아안던 그 격동과 감흥을 그림에서는 도무지 느낄수가 없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출중하신 풍모와 그이께서 지니신 백두의 기상과 담력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왔습니다. 저의 서툰 그림솜씨에 실망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백두산을 닮으신 불세출의 령장,희세의 전설적영웅호걸의 걸출한 기상과 무비의 담력을 심장으로 체득하지 못했기때문이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러던 1996년 11월말 어느날 저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판문점을 시찰하시였다는 놀라운 소식에 접하게 되였습니다.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터쳤고 적들은 발밑에서 원자탄이라도 터진것처럼 아우성을 쳤습니다.

판문점이 어떤 곳입니까,중앙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적아가 서로 총구를 겨누고있는 곳,언제 적들이 도발을 걸어올지 모르고 언제 적들의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이 세상 그 어느 열점지대보다 더 첨예한 판문점을 장군님께서 시찰하시였다니… 정말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그야말로 장군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백두산같은 용단이였고 장군님께서만이 지니실수 있는 백두담력이였습니다.

저는 천만대적이 달려들어도 눈섭 한번 까딱하지 않고 일거에 무서운 타격을 가하여 놈들을 옴짝 못하게 만드시는 김정일장군님의 백두산호랑이기상을 보았습니다.

그 기상은 광복전 김일성장군님께서 일제의 북부국경지대 주요군사요새로 되여있는 보천보를 들이쳐 놈들을 혼비백산케 하셨던 그 백두산호랑이의 기상그대로였습니다. 말하자면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백두산호랑이이신 수령님께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신 그 보천보의 광복홰불을 판문점의 통일서광으로 지펴올리시여 온 겨레에게 통일조국의 밝은 앞날을 활짝 열어주셨던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다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선군장정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시며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고립압살공세를 제압하시고 민족의 운명과 존엄을 지켜주시는 천출명장 김정일장군님의 모습,그이앞에서 설설 기는 양키제국주의의 몰골,이 격동적인 현실은 저의 심장을 쾅쾅 울려주었습니다.

저는 다시 백배의 힘을 얻고 백두산호랑이를 그려나갔습니다.

누군가가 그림은 보는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매혹과 숭배의 마음가짐으로 그림을 그리니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열정과 희열도 몇갑절 더해지고 창작적환상도 더 풍부해졌습니다. 그림을 그려나가는 저의 눈앞에는 원수복을 입으신 장군님의 름름하신 모습도 환히 떠올랐습니다.

마침내 강성대국건설을 알리는 우렁찬 포성인양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가 우주로 힘차게 날아올랐다는 희소식이 전해진 그 뜻깊은 시각에 저는 백두산호랑이그림을 드디여 완성하였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다 말할수 없었습니다. 간수들의 눈을 피해가며 악전고투속에 그려낸 그림이여서 더욱 보람찬것이였습니다. 마치 천하를 얻은 심정이였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김정일장군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의 전사된 긍지가 온몸에 넘쳐났습니다. 그 멋,그 쾌감을 과연 무엇에 비기겠습니까. 신념에 살고 의지로 생을 빛내이는 우리 태양의 전사들이 삶의 보람을 한껏 느끼게 하는 격정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백두산호랑이그림에는 오매불망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러따르는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일편단심이 비껴있고 육신을 마스는 고문과 사상을 희롱하는 유혹을 꿋꿋이 이겨내게 한 신념이 맥박치고있습니다.

저는 혼신을 다 바쳐 그린 백두산호랑이그림을 1999년 2월 광주감옥을 나설 때 품에 간직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출소후에도 장군님을 그리는 마음을 뜨겁게 불태워가면서 백두산호랑이를 계속 그렸습니다.

그 나날에 저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민족의 태양,조국통일의 구성으로 우러러따르는 사람들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뿐이 아니라는것을 깊이 절감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백두산호랑이를 타고계시는 영상이 실린 남조선신문을 보며 경탄을 금치 못하는 로동자들의 모습에서,예언가로 소문난 백운산이라는이가 텔레비죤에서 장군님의 영상을 뵈옵고 《20대부터 운세가 상승기에 있는 호랑이상》이라고 격찬한 신문기사에서 그리고 김정일장군님께서 호랑이를 타고 제주도 백록담에 오시여 호수주변을 돌아보시였다는 이야기에서 저는 장군님을 경모하는 남녘의 민심을 읽었습니다.

저는 공화국의 품에 안긴 이후에도 우리 인민들이 백두산호랑이를 얼마나 열렬히 따르고 경모하는가 하는데 대해 더욱 절절히 느끼였습니다.

공화국에서는 제가 백두산호랑이그림을 그린것을 소중히 여기고 저에게 만수대창작사의 유능한 미술가를 붙여주어 미술을 배우도록 해주었고 조선미술가동맹 맹원으로 받아주었으며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서화전시회까지 마련해주었습니다.

저는 평양과 지방들에서 진행한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서화전시회때 저희들이 출품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백두산호랑이작품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참관자들의 모습을 통해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다함없는 숭배심을 느꼈습니다.

더우기 제가 그린 백두산호랑이그림 여러점이 공화국창건 55돐기념 국가미술전람회에 전시되였고 그중 한점이 국가미술소장품으로 지정되기까지 한데서 백두산위인을 높이 받들어모시는 사업이 국가적인 관심속에 중대사로 되고있다는것을 실감하였습니다.

전문미술가로 알려진 사람도 아닌 제가 그린 그림이 잘되였으면 얼마나 잘되였겠습니까.

오직 남쪽의 감옥에서 적들과의 대결속에서 우리 장군님을 따르고 받드는 한마음을 화폭에 담았을뿐인데 그것을 그처럼 중히 여겨주니 그 고마움에 목이 메입니다.

저는 한생을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숭배심을 화폭에 담으며 백두산위인칭송에 바치렵니다. 영원히 백두산호랑이를 그리면서 그 비범한 기상으로 살며 그 출중한 모습을 꼭 닮아가겠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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