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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통신사 비망록 《일본은 반공화국모략극을 조작한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요꼬다 메구미녀성의 유골《감정결과》를 날조한 일본반동들의 속심을 폭로
(평양 1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중앙통신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위임에 따라 인민보안성과 법의학전문가들이 분석한 자료에 기초하여 24일 비망록을 발표하여 일본반동들이 조작한 일본인녀성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감정결과》의 진상을 낱낱이 폭로하였다.

비망록은 일본에서의 유골감정결과는 철저한 날조이라고 하면서 일본정부가 단정한 《국내최고수준의 연구기관에 의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검사결과》의 의문점에 대하여 밝혔다.

그 의문점은 첫째로, 똑같이 골편을 의뢰받은 과학경찰연구소에서는 DNA검출을 하지 못하였는데 데이꾜대학에서는 《결과》를 얻어냈다는것이며 둘째로, 유골감정을 위한 분석방법이고 셋째로,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에 대한 데이꾜대학의 《DNA식별감정서》에 밝혀진 분석내용의 앞뒤가 맞지 않는것이다.

비망록은 유골감정절차와 형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제반 사실은 일본이 들고나오고있는 유골《감정결과》라는것이 체질적으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극우익세력들과 이들과 야합하여 자기의 정치적목적을 달성해보려는 불순한자들의 날조품이라는것을 여지없이 실증해주고있다고 강조하였다.

비망록은 또한 일본이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감정결과만 날조한것이 아니라 외교관례에서 찾아볼수 없는 치졸하고 음모적인 방법으로 그의 남편의 지문,피지,세포 등을 채집하여 남편과 딸의 부녀관계도 부정해버린 사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일본이야말로 믿을래야 믿을수 없고 가깝게 지낼래야 지낼수 없는 나라이라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고 지적하였다.

비망록은 유골감정결과까지 날조한 일본의 속심은 랍치문제를 《국민감정》의 미명하에 저들의 과거청산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로, 국제적으로 조선을 고립시키기 위한 도구로, 정략실현과 지어는 돈벌이의 좋은 수단으로 리용하자는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비망록은 일본정부는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이 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한 이상 우리가 수차에 걸쳐 요구한대로 유골을 더하지도 덜지도 말고 원상그대로 다시 돌려보내며 감정결과날조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있는 자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비망록 전문은 다음과 같다.

* * *

조선중앙통신사 비망록 《일본은 반공화국모략극을 조작한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이미 보도된바와 같이 최근 일본은 일본인녀성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감정결과를 날조하고 그를 기화로 살벌한 반공화국소동을 벌리고있다.

일본의 극우익세력들과 정계인물들이 《북조선인권법안》 성립과 제재를 떠들면서 우리와의 대결국면을 조성하고 있으며 일본정부는 저들이 제기한 일본인 《안부불명자》 해명을 위해 지금까지 우리가 기울인 성의와 노력, 그 결과를 전면부정하고 이미 약속한 인도주의지원을 중단하였다.

조선중앙통신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위임에 따라 인민보안성과 법의학전문가들이 분석한 자료에 기초하여 일본의 반공화국모략극인 유골《감정결과》의 진상을 내외에 알리기 위하여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1. 일본의 유골감정결과는 철저한 날조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로 말하면 그의 남편으로부터 2004년 11월 14일 조일정부간실무접촉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왔던 일본정부대표단 단장 외무성아시아오세안주 국장(당시) 야부나까 미또지가 제3자의 개입이 없이 직접 받은것이다.

2004년 11월 15일 일본정부대표단이 귀국한후 일본경찰청은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을 범죄관련《증거물》로 여기면서 형사소송절차에 따른다는 구실밑에 니이가다현 경찰본부를 내세워 감정의뢰서를 내게하고 과학경찰연구소,데이꾜대학,도꾜치과대학에서 DNA감정과 골상학에 기초한 감정으로 정밀검사를 하게 하였다.

여러날에 걸치는 검사결과 과학경찰연구소는 《유골이 고온에서 태워졌기때문에 DNA를 검출할수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였으며 도꾜치과대학도 골편이 미세하므로 감정하기 어렵다는 립장을 표시하였다.

그런데 2004년 12월 8일 일본내각관방장관 호소다 히로유끼가 급기야 기자회견을 열고 《북조선이 요꼬다 메구미의것이라고 제공한 유골이 DNA감정결과 다른 사람 2명의 뼈를 섞은것이라는것이 판명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외무성도 2004년 12월 25일 베이징주재 대표부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내온 《조선으로부터 제시된 정보,물적증거의 정밀조사결과》라는 문건에서 《조선측으로부터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이라고 제공받은 뼈에 대해서는 DNA검출가능성이 있는 골편 10개를 신중히 선정하여 경찰당국이 국내 최고수준에 있는 데이꾜대학과 과학경찰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하였다. 그중에서 데이꾜대학에 검사를 의뢰한 골편 5개중 4개로부터는 같은 DNA가 그리고 다른 1개로부터 다른DNA가 검출되였다. 그러나 어느쪽 DNA도 요꼬다 메구미의 DNA와 다르다는 검사결과보고가 나왔다. 이것은 국내최고수준의 연구기관에 의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검사결과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단정한 《국내최고수준의 연구기관에 의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검사결과》에는 너무나도 의문점이 많다.

의문점은 첫째로, 똑같이 골편을 의뢰받은 과학경찰연구소에서는 DNA검출을 하지 못하였는데 데이꾜대학에서는 《결과》를 얻어냈다는 그것이다.

데이꾜대학에서는 화장한 유골에서 사립체(미또콘드리아) DNA를 분리해 내고 요꼬다 메구미의 태줄과 대조하여 식별감정을 하였다고 한다.

데이꾜대학의 《감정결과》를 《기적》이라고 할수 있겠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유골을 《두 사람》의 유골로 《감정》한데 대해서는 명백히 과학적이라고 말할수 없다.

여기서 문제는 일본정부가 전국 경찰기관들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유골들을 의뢰받아 세계최신설비를 가지고 감정을 해온 력사와 경험이 있는 과학경찰연구소에서 DNA를 검출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 과학성을 외면하고 데이꾜대학의 DNA《감정결과》만 절대시한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주간잡지 《슈깡 깅요비》 2004년 12월 24일호는 《DNA를 검출할수 없었다는 사실과 검출할수 있었다는 사실은 다 같이 과학적사실이다. 법의학을 위한 설비가 세계적인 환경에 있는 과학경찰연구소가 검출할수 없었다는것도 또한 무시할수 없는 결론인것이다. 결론을 내리려면 의뢰받은 두 연구기관에서 나온 결과가 일치해야 할것이다. 식량지원을 중지하고 경제제재를 운운하는 결정에로 이어지게 하는것은 과학분석의 방법을 외곡하여 정치적으로 리용하려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까밝혔다.

자타가 인정하는바와 같이 하나의 대상을 놓고 두 연구기관이 분석한 감정결과가 서로 반대인 경우 그에 대한 평가에서 어느 한쪽의것만을 절대화한다면 그것은 과학성과 객관적인 타당성이 결여된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의문점은 둘째로, 유골감정을 위한 분석방법이다.

데이꾜대학은 유골감정에 사립체DNA분석방법을 적용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줄씨를 해명하는 이 방법도 먼저 골편속에 존재하는 세포를 채취하고 그속에서 DNA를 선별해내야만 가능한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평균 1,200℃에서 시체를 화장하고있다.

1,200℃의 고온에서 화장한 유골을 DNA분석방법으로 감정해도 개인식별이 불가능하다는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유골을 1,200℃의 고온속에서 연소하면 모든 유기물질들이 산소와 결합되여 기체상태로 공중에 날아나며 무기물질인 회분만 남게 되고 이러한 회분도 일정한 기간 허울로서 형체를 남길수 있지만 그것도 약간한 외부적작용만 가해지면 형체조차 유지될수 없다.

따라서 데이꾜대학이 1,200℃의 고온상태에서 연소된 유골에서 세포를 채취하고 그것을 배양증식시키는 방법으로 DNA를 감정해냈다고 하는것은 믿기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주간잡지 《아에라》 2004년 12월 27일호가 《DNA는 열에 약하므로 화장한 뼈에 남아있다고는 보통 기대할수 없다. 이번에 실력에서는 일본에서 최고라고 할수있는 과학경찰연구소에서 (DNA를) 검출할수 없었다. 데이꾜대학의 감정결과가 옳다면 비전문가가 장작으로 태웠기때문에 고르롭지 못하여 우연히 열이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생겨 기적적으로 세포가 남아있었다는것으로 될것이다.》고 폭로하였다.

의문점은 셋째로,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에 대한 데이꾜대학의 《DNA식별감정서》에 밝혀진 분석내용의 앞뒤가 맞지 않는것이다.

《감정서》에 의하면 데이꾜대학에서는 사립체DNA에 대한 분석이 같은 구역안에서 염기배렬들이 골편1은 C형으로, 골편2,3,4는 A형, 골편 5는 AG,CT,TC혼합형으로 되였다.

한사람 유골의 DNA를 구성하는 누클레오티드의 염기배렬들은 같은형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세가지 형태로 나타났으며 그중에서 골편 1개는 혼합형으로 되여있다는것은 이상하다.

이러한 결과를 억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유골은 세 사람 또는 그 이상의것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일본이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은 《본인의것이 아니라 다른 두 사람의 뼈》라고 결론한것과 모순된다.

특히 골편 5에 대한 첫번째와 두번째의 분석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온것은 리해할수 없다.

골편5에 대한 두번째 분석에서는 첫번째 분석한것과 동일한 사립체DNA토막을 2배로 증가하였기때문에 응당 첫번째 분석결과를 확증할수 있는 같은 분석결과가 나와야 하겠으나 완전히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

조그마한 한개의 골편속에서 서로 다른 분석결과가 나왔다는것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모순되므로 외부적인 작간이 있었다고 밖에 달리 볼수 없다.

데이꾜대학의 《감정서》에 《골편 5는 분석한계구역에 있으며 재생성에서 문제를 안고있는 자료라는것은 명백하다.》고 지적된것은 《감정결과》를 과학적으로 담보할수 없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또한 유골표면에서DNA가 증폭되지 않았다고 하는것도 의심을 더해주고있다.

《감정서》에는 골편에 오염물질의 부착을 예상하여 먼저 초음파세척을 하고 거기에서 나온 찌꺼기들에서 골편에 적용했던것과 같은 방법으로 DNA추출을 해보았지만 증폭이 인정되지않기때문에 자기들이 감정한것은 뼈표면에 붙어있는 오염물질이 아니라 뼈속에 있는 DNA라고 하였다.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은 보통사람들의 유골과 마찬가지로 화장,운반,보관과정에 여러 사람들이 다루었다.

1,200℃의 고온에서 연소된 유골에서 DNA를 분리해낼 정도의 예민한 감정이면 골편표면에 붙은 찌꺼기들을 감정할 때 그 유골을 직접 손으로 다룬 사람들에 대한 DNA도 검출되였어야 하겠으나 검출되지 않았다는것은 많은 의문을 자아낸다.

이것은 결국 《감정》의 신빙성을 인정받으려고 한것인지 아니면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에서 DNA를 검출할수 없게 되자 정보기관이나 특정한 기관,인물들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의 뼈를 대학에 주어 감정하게 하였을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DNA감정에 밝은 데이꾜대학 법의학 명예교수 이시야마 이꾸오가 일본에서는 《북조선이 2명분의 뼈를 보낸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감정도중에 누군가의 DNA가 섞여졌을 가능성도 부정할수 없다.》(2004년 12월 18일부 《마이니찌신붕》)고 발언한것은 결코 우연하지 않다.

이밖에 유골감정절차와 형식에도 문제가 있다.

DNA를 리용한 다형분석은 매우 예민하고 세밀한 분석이기때문에 약간한 외부적조작이 가해져도 분석에서 큰 오차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예민한 DNA검사는 정치적성격을 크게 띠고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의 립회가 없이는 의학적,법률적견지에서 볼 때 객관성을 인정받을수 없게 되여있다.

더구나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감정결과가 조일관계에 무시할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는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요구가 더욱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그렇지만 일본정부가 우리에게 보내온 《감정서》에는 분석자는 물론 립회인의 이름도 밝혀져있지 않다.

일본정부가 립회인도 없는 《감정》문건, 분석자의 이름과 분석기관의 공인도 없는 문건을 가지고 《객관성있는 과학적검사》라고 하면서 그 무슨 《해명》을 운운하는 자체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엄중한 모독이 아닐수 없다.

제반 사실은 일본이 들고 나오고있는 유골《감정결과》라는것이 체질적으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극우익세력들과 이들과 야합하여 자기의 정치적목적을 달성해보려는 불순한자들의 날조품이라는것을 여지없이 실증해주고있다.

2. 신뢰할수 없는 일본

우리는 지난날 우리 나라를 무력으로 강점하고 사상 류례없는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실시하여 우리 인민에게 전대미문의 불행과 고통을 들씌우고도 60년세월이 흐르도록 그 청산을 회피하고있는 일본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가 분출되고있는속에서도 랍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할수있는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하였다.

랍치문제가 일본정부의 시종일관한 반공화국적대시정책과 그로 인한 우리 인민의 격앙된 반일감정을 배경으로 산생되였다는것을 고려해볼 때 일본정부에도 문제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2002년 9월 조일평양선언채택이후부터 2004년 7월까지의 기간에 랍치생존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랍치피해자가 아닌 미국사람 젠킨스와 그의 딸들도 일본에 보내주었다.

또한 난관이 많았지만 일본정부가 제기한 일본인《안부불명자》들의 생사여부를 재조사하고 확인하기 위하여 국가적인 조치로 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성의있는 조사활동을 벌리였으며 2004년 8월과 9월 베이징접촉에 이어 11월 평양에서 진행된 조일정부간 실무접촉에서 《안부불명자》들이 사망한데 대해서와 그 원인, 생존시기의 생활경위 등 그 기간 조사결과에 대하여 일본측에 구체적으로 통보해주고 이를 립증할수있는 증거자료제시, 증인들과의 면담조직 등 실제적으로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다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측 단장인 외무성아시아오세안주국장(당시) 야부나까 미또지는 평양에서 있은 우리와의 공식접촉시 《지금까지 조사위원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준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이번에 자기들이 《여러가지 사건확인자료를 받고 증인 및 관계자들과의 면회 등을 하도록 협력해준것은 조사위원회의 성의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하였다.

또한 《안부불명자》해명에서 기본은 요꼬다 메구미이기때문에 《그의 사망을 확인하고 일본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유골을 반드시 넘겨 주기 바라며 유골은 당연히 그의 부모에게 전달되여야 하기때문에 부탁한다.》고 하면서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을 만나게 해줄것과 유골을 넘겨줄것을 여러차례 애걸하다 싶이 간청하였다.

그리고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을 만나 유골을 넘겨받을 때 일본측 단장은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으로부터 메구미의 유해를 내가 직접 받았다. 이것을 메구미의 량친에게 직접 넘겨주겠다는것을 약속하며 공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자필을 서면화하고 수표까지 하였다.

그러나 일본측은 유골을 가지고가서는 공표정도가 아니라 도꾜도 미나또구에 있는 회관에 전시해놓고 원래 토장한 유해를 우리가 의도적으로 꺼내여 감정할수 없게 화장하였다고 걸고들면서 반공화국모략소동에 불을 달아놓았다.

뿐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준데 대하여 앞에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성의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말하고 돌아가서는 《조선측의 설명을 뒤받침하는것은 없었다. 일본정부로서 전혀 받아들일수 없고 성의가 결여된 대응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는 내용의 문건까지 보내여왔다.

일본은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감정결과만 날조한것이 아니라 그의 남편과 딸의 부녀관계도 부정해버렸다.

일본정부대표단 성원들은 2004년 11월 12일 고려호텔에서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을 만나 여러장의 가족사진을 놓고 대상확인을 하는 방법으로 몰래 그의 지문과 피지를 채취하였다.

그리고 일본측 단장은 2004년 11월 14일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과 다시 만나기에 앞서 액체로 된 점착약을 손에 바르고 그와 악수하면서 상대방의 손에 부착된 세포를 채집하였다.

이렇게 채집한 세포를 일본정부대표단에 망라된 경찰청관계자가 고려호텔에서 넘겨받아 귀국후 과학경찰연구소에서 세포감정을 하게 하고 그 결과를 데이꾜대학에 넘겨 요꼬다 메구미의 딸의 DNA와 대조감정을 하게 하였다.

그러고도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과 그의 딸이 부녀간이 아니라고 사실을 완전히 외곡하여 언론계에 흘리였다.

이리하여 2004년 12월 6일호 일본주간잡지 《슈깡겐다이》에는 《악수작전》에 의해 우리가 《가짜 요꼬다의 남편》,《가짜 혜경이의 아버지》로 내세운것을 자기들이 밝혀냈다는 모략기사가 실리게 되였다.

우리는 일본정부대표단이 외교관례에서 찾아볼수 없는 치졸하고 음모적인 방법으로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의 지문,피지,세포 등을 채집한데 대해 처음부터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그것이 사실을 확증하는데로 이어지리라고 보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일본이 애당초 문제해결을 바라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걸고들기 위한데 초점을 맞추었다는것은 일본의 반공화국모략단체들의 책동은 제쳐 놓고 정계의 동향만 보아도 잘 알수있다.

일본정부대표단이2004년 11월 15일 귀국하여 우리가 제시한 증거자료들,유품,유골 등에 대한 확인검사도 하기전에 11월 17일 자민당 간사장 대리 아베 신조는 도꾜도내에서 한 강연에서 《볼것이 없으며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고있다. 북조선에는 압력밖에 통하지 않으며 응당 경제제재를 발동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폭언하였다.

이에 앞서 11월 16일 문부과학상 나까야마 나리아끼, 환경상 고이께 유리꼬 등 각료들이 저마끔 기자들앞에 나서서 《우리가 성이 났다는것을 보여줄 시기가 왔다》,《경제제재 등 여러가지 압력을 중시해야 한다》,《국제사회마당에서도 호소해가야 한다》고 목청을 돋구었으며 초당파국회의원 조직인 《랍치의원련맹》은 총회에서 우리에 대한 경제제재발동,인도주의지원중지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11월 18일에는 자민당이 5단계로 된 제재실시안을 최종 검토하는 등 우리에 대한 제재와 압력분위기를 고취하였다.

현실은 죽은 사람을 살았다고 하고 부녀간의 친혈육관계를 부정하고 가짜유골까지 만들어내는 일본이야말로 믿을래야 믿을수 없고 가깝게 지낼래야 지낼수 없는 나라이라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3. 유골감정결과를 날조한 일본의 본심

유골감정결과를 날조하면서까지 랍치문제의 해결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성의와 노력을 전면부정하면서 조일관계를 최악의 대결상태에로 몰아가고있는 일본의 속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

옳바른 정치철학과 리념이 없는데로부터 국가외교는 대미추종일로에만 매여달리고 정계는 파벌과 권력찬탈을 위한 싸움으로 해를 맞고 보내고있으며 군국주의부활이 위험도수를 넘어서고있는것이 오늘 일본의 정치상황이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고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랍치문제를 《국민감정》의 미명하에 저들의 과거청산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로, 국제적으로 우리를 고립시키기 위한 도구로, 정략실현과 지어는 돈벌이의 좋은 수단으로 리용하는것이 《국익》에 부합된다고 간주하고있는것 한가지뿐이다.

일본은 바로 이러한 《국익》을 위해 랍치문제해결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고있으며 가짜유골사건을 조작했던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아무리 흑백을 전도하고 비렬한 방법으로 정치적목적을 이루어보려고 해도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감정결과를 날조하고 우리 공화국을 모해한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일본정부는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이 본인의것이 아니라고 한 이상 우리가 수차에 걸쳐 요구한대로 유골을 더하지도 덜지도 말고 원상그대로 다시 돌려보내며 감정결과날조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있는자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할것이다.

주체 94(2005)년 1월 24일
평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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