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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선군시대 《모성영웅》 온성군 농장원 리희순을 소개
(평양 1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11일부 《로동신문》은 《총대신념으로 빛나는 선군시대 <모성영웅>의 숭고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온성군 풍서마을은 우리 나라의 최북단에 자리잡고있다.

두터운 얼음장밑에서도 용용히 흐르는 두만강의 물소리가 항일의 넋을 깨우치며 심장을 쾅쾅 울려주는 바로 그곳에 부모없는 170명 아이들의 포근한 삶의 보금자리가 있고 그들을 수령결사옹위의 총대로 키워가는 리희순녀성이 살고있다.

30여명의 청년들을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우고 50여명의 청년들이 사회주의농촌진지를 지켜가게 하였으며 수십명의 학생들을 부강조국의 미래로 키워가는 리희순녀성이야말로 위대한 선군시대가 낳은 또 한명의 《모성영웅》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온 사회에 군사를 중시하는 기풍을 세우고 전국의 가정을 다 후방가정,혁명적군인가정으로 만드는것은 선군시대의 요구이다.》

무엇이 리희순녀성으로 하여금 조국이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던 《고난의 행군》,강행군시기에 그 많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여 누가 알아주건말건 애오라지 그들의 환한 웃음과 선군조국의 총대를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묵묵히 바쳐오게한것인가.

나이이르게 흰서리가 내린 리희순녀성의 머리카락 한오리,한오리는 하많은 그 사연을 다 말해주고있다.

고난을 겪는 조국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스스로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굳세게 걸어온 헐치 않은 인생길의 자욱자욱에 대하여,우리 당의 선군정치를 순결하게 받들어갈 신념으로 불타는 심장속에서 샘처럼 끝없이 분출되는 총대사랑의 열렬함에 대하여…

리희순녀성에 대한 이야기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사회주의 내 조국을 받들어가는 이 나라 어머니들의 사상정신세계가 얼마나 열렬하고 고결한것인가를 감동깊이 보여주고있다.

철령에서 다진 맹세

억수로 쏟아지는 비속을 뚫고 수십리를 달려온 한대의 자동차가 철령마루에서 멈춰섰다. 중년의 부부가 차에서 내리였다. 그들은 지나온 길을 무거운 침묵속에 돌아보았다. 사랑하는 둘째아들의 묘가 있는 산봉우리가 뽀얀 비발너머로 아득하게 보이였다. 철령을 쉽게 내릴수 없어하는 그들이 풍서협동농장 농장원들인 리희순,김국조부부였다.

군사복무를 하던 경호가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리희순녀성은 그 사실을 선뜻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조국땅 최북단에서 렬차와 자동차를 타고 철령을 넘어 전연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사랑하는 전사의 부모들앞에서 부대지휘관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였다.

리수복영웅의 넋이 어린 부대에서 군사복무를 하게 된것을 더없는 자랑으로 여기며 복무의 날과 달을 위훈으로 새겨온 아들,훈련도중 뜻하지 않은 일로 부상을 당하고 숨이 지게 되는 순간 자기의 몫까지 합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결사옹위해달라는 절절한 부탁을 남기고 전호가에 피여난 한송이 들꽃을 백두산위인들의 초상화앞에 정중히 드리고야 눈을 감았다는 경호에 대한 이야기에 리희순녀성의 눈굽은 젖어들었다.

미제국주의자들과의 대결전에서 어찌 희생이 없겠는가. 그래서 우리 혁명이 그처럼 준엄한것이며 그 투쟁속에서 이룩해가는 승리가 그토록 소중한것 아니랴 하는 생각이 다시금 강하게 뇌리를 쳤다.

《군인동지들,저의 심장은 미제에 대한 증오로 끓고있습니다. 초소를 더 굳건히 지켜주십시오. 저에게 아직도 세 아들이 있는데 경호가 섰던 전호에 다 세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수령결사옹위의 총폭탄이 될 우리의 신념을 믿어주십시오.》

자기의 두손을 굳게 잡아쥐고 하던 지휘관들의 이 말이 초소를 멀리 떠나왔어도 귀전에 들려오는듯싶었다.

아들의 영웅적희생이 안겨준 충격에 리희순녀성의 심장은 세차게 높뛰였다.

(경호야,어머니는 너처럼 살련다. 조국이 기억하는 애국자가 되여 네앞에 떳떳하게 나서련다.)

이렇게 마음다지며 자동차에 몸을 실을 때 그의 얼굴에서 흘러내린것은 눈물이였던가,비물이였던가. 철쭉꽃이 아름답게 피여나는 철령이 순탄치 않은 인생길을 걸어갈 자기와 그리도 깊은 인연으로 맺어질줄을 아직은 알지 못하였다. 굽이굽이 돌고돌아 령을 내려선 자동차는 조국의 북변을 향하여 기운차게 달렸다. 그때가 주체83(1994)년 8월이였다.

이때부터 그들의 자랑스러운 원군길이 시작되였다.

그해 12월,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3돐을 맞으며 그들은 많은 원호물자를 마련하여 전연을 지켜선 병사들에게 보내주었다.

9년전의 설날에도 그들은 원군의 길을 걸었다. 사회주의건설에 떨쳐나선 군인들에게 안겨줄 원호물자를 가지고 평양으로 떠나는 남편을 바래준 리희순녀성이 온성청년역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부모잃고 먼 친척집을 찾아간다는 한 처녀애의 모습이 눈을 아프게 찔렀다. 그애의 곁을 그냥 지나칠수 없었던 그는 역앞에 있는 매대에 나가 사탕이며 과자 등을 몇봉지 사다가 손에 쥐여주고서야 역을 나섰다. 하지만 마음은 개운하지 못하였다.

(그애에게 어머니의 정이 얼마나 그리울가? 내가 그를 맡아 키울수는 없을가. …)

하지만 쉽게 결심할 문제가 아니였다.

힘겨운 발자욱을 눈우에 찍어갈수록 생각은 점점 깊어졌다.

(누구때문에 저 애가 부모를 잃게 되였는가. 미국놈들때문이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봉쇄로 우리 인민을 질식시키려는 그 원쑤놈들때문에 얼마나 많은 우리 아이들이 고통을 겪고있는것인가. 저 애들을 복수자의 대오에 세워야 한다.)

그의 가슴은 높뛰였다.

(부모없는 아이들을 내가 맡아 키우자. 그애들의 가슴속에 복수의 총탄을 재워 경호가 섰던 자리에 세운다면 조국방선은 더욱 튼튼해지리라. 그렇게 하는것이 철령에서 다진 맹세를 지키고 선군시대 어머니의 본분을 다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발걸음을 돌린 그는 역으로 달려갔다.

《얘야,우리 집으로 가자. 이 어머니와 함께 살자.》

이렇게 되여 10살난 고순이는 풍서마을에 삶의 보금자리를 펴게 되였다.

이튿날 리희순녀성은 9명의 아이들을 또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그들속에는 태여난지 몇달밖에 안되는 젖먹이도 있었다.

평양에 갔던 남편이 돌아온것은 며칠후였다. 자기와 토의도 없이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섭섭해하지 않을가 하는 위구심에 머리를 들지 못해하는 안해에게 김국조동무는 말하였다.

《여보,내가 무엇을 가져왔는가 보오.》

가방안에는 비닐로 만든 권총,땅크를 비롯한 놀이감들과 학습장,연필 등 학용품들이 꽉 차있었다.

《당신이 아이들을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청진에서 들었소. 우리 집에 자식이 10명이나 불어났는데 평양갔던 이 아버지가 빈 손으로 돌아올수가 없더구만. 그래서 뭘 좀…》

리희순녀성의 가슴속으로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자기의 심정을 리해하여주고 떠밀어주는 남편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던것이다.

《참 좋은 생각을 하였소. 우리 부모없는 아이들을 더 많이 키워 조국의 훌륭한 아들딸들로 내세우자구.》

남편의 지지와 고무는 리희순녀성을 더욱 분발시켰다.

그들은 또다시 부모없는 아이들을 데려왔다. 그리하여 그해말까지 30여명의 새 식구가 불어나게 되였다.

리희순녀성은 매일같이 눈코뜰새가 없었다. 이른새벽에 일어나 《물애기》나 다름없는 은정이를 업고 밥을 지어야 했고 다른 아이들을 깨워 세수시키고 밥먹이고 옷을 손질해주고 학용품을 갖추어주어 유치원,학교에 보내고… 집짐승먹이를 주고 방안을 청소하고 집짐승우리치기를 하고는 다시 점심식사준비를 해야 했으니 늘 시계의 초침처럼 바삐 돌아가야 하였다.

저녁이 되면 온몸이 노그라들었으나 아이들의 잠자리를 봐주고 앓는 애는 없는지 이마를 짚어보고 숨소리도 가늠해야 했으며 장난세찬 아이들이 벗어놓은 한아름이나 되는 빨래감을 안고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늘 모자라는것이 시간이였고 그리운것이 잠이였다.

아이들의 영양을 추세우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또 얼마인지 모른다. 식료품분석표를 얻어다가 부엌벽에 붙여놓고 어린이들의 건강상태와 나이,구미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기 위해 밤잠을 거의 잊다싶이 하였다. 아이들에게 잣죽을 먹이기 위해 잣을 따다가 허리를 다쳐 며칠동안 운신하지 못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의 아이들이여서 되는대로 거둔다는 말을 듣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노력이 커갈수록 아이들의 영양상태도 좋아졌다.

이렇게 되자 리희순녀성은 또다시 아이들을 데려왔다.

영희의 4형제가 부모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을 때에도 그달음으로 달려갔다.

《우리 집으로 가자.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우리모두는 아버지장군님의 한식솔이란다.》

집에 온 그들에게 리희순녀성은 새옷을 갈아입혀 내세워주었고 다음날에는 넷째의 생일상도 차려주었다. 그날 밤 영희는 남몰래 친어머니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울었다.

《어머니,우리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은 우리의 그늘진 마음속깊이에까지 뜨겁게 미치여 웃음과 행복만을 안겨주고있습니다.》

리희순녀성은 어머니당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가닿게 하기 위해 지성을 다 바치였다.

그도 10살에 아버지를,19살에 어머니를 잃고 고마운 조국의 품속에서 부러움없이 자라났던것이다. 따뜻한 손길로 키워준 어머니당의 품,오늘은 조선로동당원으로 내세워준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바로 아이들에게 밝은 웃음을 안겨주고 선군조국의 총대로 키워주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조국땅 한끝이지만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해빛이 비치는 곳이라면 부모없는 설음속에서 사는 아이들이 단 한명이라도 있어서는 안된다. 나의 사랑,나의 열정을 다 바쳐서라도 그 모든 아이들을 총대병사로 내세우리라!

수십리 떨어진 온성읍,창평,동포지구를 비롯한 여러곳을 다니며 부모없는 아이들을 데려올 때 그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된것이 비내리던 그날의 철령이였다.

조국수호의 성새-철령이 안겨준 총대사랑은 리희순녀성을 170명 아이들의 어머니로 되게 하였다.

어머니의 사랑은 대가를 모른다

아이들이 불어나자 손님들도 많아졌다. 리와 군에서는 물론 도에서도 책임일군들이 찾아와 생활을 보살펴주었다. 아이들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살림집도 큼직하게 지어주었고 텔레비죤수상기를 비롯한 문화용품들도 보내주었다.

당조직과 집단의 성의있는 방조를 받을 때마다 리희순녀성은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하였다.

어느해 겨울 읍에서 살고있는 박길송로인이 그의 집을 찾아온적이 있었다. 그런데 주인내외는 산에 땔나무를 하러 가고 아이들만 있었다. 로인은 그들과 함께 집을 돌아보며 살림살이형편을 물었다. 아이들은 까만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대답하였다. 한끼 식사에 필요한 식량은 근 30㎏,한해에 소비하는 김장용남새만 해도 30여t에 달한다고. 아궁이가 14개나 되니 얼마나 많은 땔감이 있어야 하겠는지 할머니가 짐작해보라고… 근 80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학용품이며 신발,비누는 물론 학교를 졸업하고 농장에서 일하는 수십명 처녀,총각들의 속옷으로부터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결하여야 한다니 얼마나 많은 자금이 들것인지 짐작할수도 없었다. 호기심비꼈던 로인의 눈길이 순간에 놀라움으로 변하였다.

집주인들이 돌아온것은 사위가 어두워질무렵이였다. 박길송로인은 리희순녀성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였다. 푹 꺼진 볼이며 부르튼 입술,쉬여진 목소리,장알박힌 손…

《경호엄마,아이들을 키우느라 부족하고 없는것들도 많겠는데 군이나 리의 일군들을 찾아가보라구.》

리희순녀성은 로인의 말이 고마왔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리당이나 군당에서 자주 도와주는데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우리 힘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국이 걸머진 짐을 조금이라도 덜자고 아이들을 맡아안았지 생색이나 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친어머니의 정과 사랑이면 못해낼 일이 없을겁니다.》

리희순녀성이 심장깊이 간직한 불덩이같은 조국애의 열기를 온몸에 받아안으며 로인은후더워지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였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옷이며 학용품,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남부럽지 않게 갖추어주려고 리희순,김국조부부는 손바닥에 피멍이 지도록 빈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 해마다 많은 돼지를 길러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였고 염소마리수도 부쩍 늘이였다. 산나물과 산열매를 따서 식량보탬을 하려고 산판을 헤매다가 힘이 진하여 쓰러진적이 몇번인지 모른다.

육체적고통은 참을수 있어도 거칠어진 아이들의 성격을 알고 심리를 맞추어준다는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였다. 있는 정을 다 기울이며 손끝으로 아이들을 키워도 고맙다는 말은 커녕 《어머니》라는 부름조차 듣지 못할 때 그의 마음속괴로움이 얼마나 컸을것인가.

언제인가 남철이가 미란이의 남매들과 서로 말다툼을 한적이 있었다. 리희순녀성은 참다 못하여 남철이를 되게 꾸짖었다.

그런데 저녁에 남철이가 없어졌다. 리희순녀성이 인차 자신을 뉘우치고 쫓아나갔으나 찾을수가 없었다.

한편 남철이는 집을 나오기는 했으나 갈데가 없었다. 홀로 있자니 쓸쓸하고 적적하였다. 눈앞에는 인정미 후더운 리희순녀성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공부를 잘하라고 새 학기때마다 밤을 새우며 책뚜껑을 만들어 가방에 넣어주던 모습이며 등산을 갈 때면 자기들의 점심밥과 간식을 소달구지에 싣고 따라와 안겨주던 모습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그러느라니 발걸음은 저도모르게 풍서마을로 다시 향하였다. 그런데 정작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니 면구스러웠다. 머리를 푹 숙이고 집주변을 맴돌던 그는 리당비서의 눈에 띄우게 되였다.

《이녀석,귀한 자식 매로 키운다고 친어머니의 심정이 아니였다면 너를 그렇게 하였겠느냐. 다시 그렇게 행동하면 이 큰아버지가 가만두지 않을테다.》

준절한 그말에 남철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때 뒤에서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남철이를 찾아 여러곳을 다니다가 지친 걸음으로 마을로 들어서던 리희순녀성이 그말을 들었던것이다.

《남철아!》

《어머니!》

남철이는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리희순녀성의 사랑에 대한 아이들의 추억을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향미에게는 난치의 병으로 삶과 죽음의 계선에서 헤매이던 자기를 친어머니의 사랑으로 소생시켜준 눈물겨운 사연이 있고 옥주에게는 붉은청년근위대훈련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자기를 품에 안고 사진을 찍어주던 그날의 정겨운 모습이 새겨져있다. 우리 어머니는 늘 수수한 옷에 기운양말을 신고 다니면서도 새옷을 입은 자기들의 웃음넘친 얼굴을 보며 더없는 보람을 느끼군 하였다는 란희의 목소리도 가슴을 적셔주고 손발의 언독을 뽑아주느라 며칠밤을 새울 때 따뜻한 친어머니의 정이 안겨와 목이 꽉 메였다는 영실이의 이야기도 심금을 울려준다.

지난해 2월 5일은 군인민병원에서 해산한 금복이가 퇴원하는 날이였다. 퇴원을 앞둔 산모들은 이른아침부터 흥분속에 설레이였다. 저저마다 부모,형제,친척들이 찾아와 귀여운 애기를 낳은 며느리와 딸,언니와 동생들에게 꽃송이를 안겨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해하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찾아올 부모,형제,친척이 없었다. 여느때엔 미처 다 몰랐던 서러움이 울컥 치밀어올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잇을 눈물로 적시였다.

그때였다. 출입문이 조용히 열리며 리희순녀성이 들어섰다.

《금복아,어머니가 왔다. 어디 보자,내 손녀 홍미를.》

그러나 금복이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눈물만이 흘러내리였다. 부모없는 자기를 여러해동안 애지중지 키워 내세워준 리희순녀성이였다. 시집을 가게 되였을 때에는 여러채의 이불과 가정용품,생활필수품까지 마련하여 안겨주고 결혼상도 남부럽지 않게 차려준 어머니였고 며칠전에도 산꿀이며 찹쌀,애기옷,포단까지 보내준 어머니였다.

병원문을 나서던 금복이는 또다시 머리를 떨구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마당가에 서있는 한대의 말발구,꽃송이를 들고 달려오는 명실이,성옥이들과 그들의 어깨너머에서 환하게 웃는 김국조아버지… 격정속에 말조차 할수 없었다.

금복이를 발구에 올려앉힌 리희순녀성은 찬바람이 스며들세라 이불로 온몸을 감싸주었다.

발구우에 나란히 앉아 살뜰한 정을 주고받으며 그지없는 행복속에 웃음소리 높여가는 그들을 두고 남남이라고 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것인가.

이런 뜨거운 사랑과 세심한 보살핌속에 아이들이 자라났다. 고향도 성격도 서로 다르고 살아온 경위도 각양각색인 아이들이 한지붕밑에서 한가마밥을 먹으며 울려가는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는 조국의 한끝,두만강기슭의 하늘가에 끝없이 메아리쳤다.

한해,두해 세월이 흐르고 철이 들어갈수록 아이들의 생각도 깊어졌다.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들을 맡아안고 고생을 락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어머니를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내세워줄수는 없을가.

몇해전 어느 봄날,머리가 큰 몇명의 아이들이 모여앉았다.

《아버지장군님께 편지를 올리는게 어때? 훌륭한 어머니를 키워 우리에게 보내주신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도 드리고 우리의 생각도 아뢰여드리자꾸나.》

충국이의 발기였다.

여기저기에서 박수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들은 이 일을 리희순,김국조부부가 모르게 할것을 약속하였다.

며칠후 백수십명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한장의 편지초안이 씌여졌다. 그런데 그 편지가 리희순녀성을 노엽히게 될줄 어찌 알았으랴.

《너희들에게 바쳐온 정보다 바쳐야 할 사랑이 더 많은 이 어머니란다.

170번째의 자식인 5살난 봄숙이까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복을 입게 될 때,너희들이 온 나라가 떠받드는 영웅이 되여 이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 때 우리 함께 아버지장군님께 감사의 편지를 드리자꾸나.》

사람들이여,더 묻지 마시라. 어떻게 되여 기적과도 같은 리희순녀성의 아름다운 소행이 오늘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가를.

어머니의 사랑을 불같은 뜨거움으로만 헤아릴수 없다. 세월의 흐름과 모진 시련속에서도 가식과 변심을 모르는 흰눈같은 순결성,자식들의 성장을 위해 한몸을 깡그리 바치는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는 무한한 헌신성과 겸손성에 어머니사랑의 매력이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총대를 심장에 안고 살거라

33개의 조선인민군입대증과 청년들의 입대기념사진,

큼직한 벽면을 꽉 채운 그 증서와 사진들은 오늘 가정의 더없는 자랑으로,가보로 되고있다.

아이들모두를 경애하는 장군님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영웅으로 키우려는것은 리희순,김국조부부의 절절한 소원이다.

대덕산초소에서 군사복무를 한 김국조동무는 농사일을 하는 바쁜 속에서도 아이들의 육체를 단련시키는데 깊은 주의를 돌리였다. 이른아침마다 《정일봉달리기》,《강성대국》이라고 웨치며 달리는 아이들의 앞자리에 언제나 그가 서있었고 집마당에 세워진 철봉,평행봉우에서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그의 시범동작은 아이들을 체력단련에로 분발시켰다.

한편 리희순녀성은 아이들의 양기와 정서를 키워주기 위해 애썼다. 학교당조직에서 지도교원으로 보내준 전순옥동무와 함께 아이들의 과외생활을 다양하게 짜고들었다. 저녁이면 아이들과 휩쓸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으며 나어린 봄숙이와 은정이를 량쪽에 끼고누워 백두산전설도 들려주군 하였다. 향미와 옥주,혜영,은경이가 재능있는 손풍금수,기타수들로 자라날 때 미향이와 순복이는 인기있는 독창가가 될 꿈을 키웠다. 수십명의 아이들이 진행하는 가족예술소품공연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을 수령결사옹위의 총대로 키우는데서 리희순녀성이 각별한 힘을 넣은것은 그들에게 혁명적세계관을 심어주는것이였다.

풍서마을에는 회의기원호물자건넨전투장소를 비롯하여 여러 혁명전적지들이 있다. 리희순녀성은 아이들을 데리고 항일의 피어린 자욱이 어린 전투장소들과 못잊을 사연을 안고 흐르는 두만강기슭에 자주 나가 항일투사들의 총대정신과 우리 인민의 원군기풍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군 한다.

몇해전 2월의 명절을 맞으며 진행한 왕재산혁명사적지에로의 답사행군때였다. 붉은기를 휘날리며 떠난 백수십명의 대오가 혁명가요를 부르며 20리가량 행군하였을무렵이였다. 몇명의 어린 아이들의 발걸음이 점점 떠지기 시작하였다.

《힘들어하는 저 두 아이만이라도 자동차에 태워보내라구.》

지나가던 한 로인의 말이였다.

《강한 의지를 키우는것도 행군목적의 하나이랍니다.》

리희순녀성은 그애들의 손목을 량손에 잡고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 이 길에 총대로 조국의 광복을 이룩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자욱이 새겨져있고 항일의 선군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빛내여나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어리여있다고.

《오늘의 행군길을 무심히 걷지 말아야 한다. 한걸음,한걸음에서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칠 각오안고 조국수호의 전선길로 웃으며 달려갈 마음을 키워야 한다.》

아이들은 발걸음을 힘있게 내짚었다.

리희순녀성의 진정에 떠받들려 선군조국의 총대감들이 억세게 자라났다.

7년전 3월 18일은 리희순녀성이 잊지 못하는 행복한 날들중의 하루이다. 부모없는아이들중에서 첫 총대병사가 태여난것이다.

인민군대로 떠나는 성혁이를 축하하는 노래모임은 밤이 깊어서야 끝났다. 그러나 누구도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님에게 안겨줄 꽃다발을 만드느라 분주탕을 피우는 축들도 있었고 오빠에게 색다른 음식을 안겨주려고 뛰여다니는 처녀애들도 있었다. 미숙이는 자주 편지를 하라는 마음에서 몇십장의 편지봉투와 우표를 오빠의 배낭에 넣어주었고 정철이는 동생들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자기들의 사진을 뒤면에 붙인 손거울을 형님의 군복주머니에 찔러주었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멀리 마을어귀까지 두줄로 늘어선 백수십명 아이들이 《장군님의 군대가 되자》는 노래를 부르고 손벽을 치면서 꽃다발을 흔들었다. 아이들이 태워준 목마에 올라 흩날리는 꽃보라속을 뚫고가는 미더운 자식을 앞세우고 걸음을 옮길 때 어머니의 가슴에 넘쳐났던 행복감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수십리길을 걸어 역에까지 따라나온 리희순녀성은 성혁이에게 자그마한 수첩과 꾸레미를 쥐여주었다.

《병사수첩이다. 그리구 이건 네가 좋아하는 송편이구.》

《군사복무를 잘하겠습니다. 어머니.》

리희순녀성은 성혁이를 두팔로 꽉 그러안았다.

어느덧 렬차가 출발하였다. 성혁이는 병사수첩의 갈피를 펼치였다. 그런데 첫장에 리수복영웅의 시가 적혀있는것이 아닌가. 어머니가 영웅의 시를 왜 자기의 가슴에 또다시 새겨주려고 하였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다.

《선군시대의 리수복이 되렵니다.》

멀어져가는 렬차의 기적소리에서 리희순녀성은 아들의 이 맹세를 들었으리라.

성혁이의 뒤를 이어 수십명의 아이들이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갔다.

다른 청년들은 한손에는 총을,다른 손에는 낫을 들고 농업전선을 지켜섰다. 그들은 로농적위대훈련에 성실히 참가하여 전투동원준비를 원만히 갖추면서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농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성실한 땀을 포전에 묻었다.

영희가 읍에 있는 영예군인과 일생을 같이하겠다고 결의해나섰을 때 리희순녀성의 기쁨이 또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영예군인도 돌봐주어야 하고 시부모도 모셔야 한다지. 쉽지 않은 결심을 하였다. 그 결심이 영원한것이겠지?!》

영희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는 리희순녀성의 희여진 머리칼이며 주름잡힌 눈가를 이윽토록 쓰다듬었다. 자기들을 위해 기울인 정과 고뇌의 뚜렷한 흔적이였다.

《어머니의 한생을 거울로 삼겠습니다.》

리희순녀성은 영희에게 영예군인의 안해가 갖추어야 할 품성에 대하여 일일이 깨우쳐주면서 밤을 새웠다. 다심한 친정어머니의 살뜰한 마음그대로였다.

행복한 가정이니 좋은 일만 생기는가 싶었다.

리희순녀성이 전국원군미풍열성자대회에 참가하게 되였다는 소식은 온 집안을 기쁨과 흥분으로 들끓게 하였다. 아이들은 제가 평양에 가게 된것처럼 좋아하였다. 우리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보다 더 환하게 차리고 나서야 한다면서 너도나도 떨쳐나섰다. 설옥이는 새 화장품을,란희는 새 구두를,상철이는 새 가방을…

리희순녀성이 평양으로 떠난 날부터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텔레비죤수상기앞에 마주앉았다. 화면을 통하여 정겨운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싶었다. 온 나라에 소개되는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싶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가도 어머니의 모습을 찾을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전국원군미풍열성자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만세!》

한달음에 마당으로 달려나와 터치는 아이들의 환호성은 고요하던 대기를 세차게 흔들었다.

리희순녀성이 집으로 돌아온날 온 가정이 모여앉았다. 7살난 은정이가 노래를 불렀다.

시내물 굽이굽이 어데로 가나
넓고넓은 저 바다 품으로 가네
내 마음 훨훨 어데로 가나
구름너머 그리운 장군별님께
…

그것은 리희순녀성이 제일 사랑하는 노래이다. 부모없는 아이들을 찾아 북방의 찬바람을 맞받아 홀로 걸어가던 때에도,속태우는 아이들때문에 잠못들던 밤에도 조용히 부른것이 이 노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은 조국땅 한끝에서 수많은 부모없는 아이들을 한품에 안고 키워오던 나날에 겪어야 했던 참기 어려운 마음속괴로움과 육체적고통을 입술을 깨물고 이겨내며 철령에서 다진 맹세를 꿋꿋이 지킬수 있게 한 정신적자양분이였다.

얼마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대신념으로 삶을 빛내여가고있는 리희순녀성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시여 선군시대의 《모성영웅》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령장의 뜨거운 축복은 그가 수령결사옹위의 총대를 키우는 값높은 인생길을 끝까지 걸어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되고있다.

리희순녀성과 같은 훌륭한 어머니들이 있기에 우리의 선군총대가 굳건하고 사회주의 내 조국이 불패인것이리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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