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11일부《로동신문》은 《일제의 특대형강제련행,랍치범죄는 덮어버릴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된 개인필명의 글을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최근 일본극우익세력들이 우리가 인도주의정신을 발휘하여 넘겨준 랍치피해사망자의 유골문제를 가지고 복잡하게 놀아대며 반공화국책동에 열을 올리고있다. 그들은 우리의 성의를 악용하여 저들이 날조한 《가짜유골설》을 목청을 돋구어 여론화하면서 그 무슨 《항의집회》를 가진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제재문제》를 토의한다 어쩐다 하며 소동을 피우고있다. 그런가 하면 언론들을 내세워 일본인들속에서 대조선적대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여론공세를 펴고있다.
일본극우익세력들이 이미 해결된 랍치문제를 걸고 반공화국광대놀음을 벌리는것은 어처구니 없고 격분하지 않을수 없는 일이다. 명백히 말하건대 일본이 진짜 랍치문제를 론하려면 과거 일제가 조선에서 저지른 반인륜적인 특대형강제련행,랍치문제부터 먼저 론하고 깨끗이 청산하는것이 옳을것이다. 사실 최대의 랍치범은 일본이다. 랍치문제에서 일본은 가해자이고 우리는 피해자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한 력사를 잊지 않고있습니다.》
지난 세기 전반기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강제련행,랍치범죄는 그 규모와 수단,방법에 있어서 중세기적인 노예사냥을 방불케 하는 야수적인 만행으로서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물수 없는 뼈아픈 상처를 남기였다.
일제침략자들의 조선인강제련행,랍치범죄는 침략전쟁을 계단식으로 확대해나감에 따라 보다 로골적으로 감행되였으며 그 규모에 있어서 류례없는 날강도적죄악이였다.
일제는 조선강점 전기간 840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랍치하여 전쟁대포밥으로 써먹거나 죽음의 고역장에 내몰아 마소와 같이 부려먹었으며 100여만명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화하였다.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랍치만행은 력사적사실자료들에 의하여 확증되였다. 1939년에 《징용령》이 발동되여 불과 1년사이에만도 일제는 조선에서 40만명이상을 강제련행,랍치하여갔다. 일본의 한 출판물은 일제에 의해 태평양의 여러섬들과 남방지대에 강제련행,랍치되여간 조선사람의 수는 100만∼150만명이나 된다고 썼다.
일제는 조선의 청장년들을 강제련행,랍치하는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처음에 아무런 리유와 구실도 없이 강제로 조선의 청장년들을 끌어가던 일제는 저들의 강제련행,랍치만행이 우리 인민들의 항거에 부딪치자 강제련행,랍치를 합법화하는 각종 악법들을 조작하여 그것을 무조건 시행하도록 하였다.
일제는 저들의 침략전쟁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보충하기 위하여 《국가총동원법》,《국민징용령》,《개정국민징용령》,《장년전원에 대한 징용령》,《녀자정신대근로령》 등 악법들을 마구 조작발표하였다. 그리하여 일제의 강제련행,랍치만행은 합법적성격을 띠고 공공연히 감행되였으며 수많은 조선의 청장년들이 직업이나 나이,성별 등에 관계없이 강제련행,랍치,유괴되여 아무런 생명의 안전담보도 없는 노예고역장,죽음의 전쟁터로 끌려갔다.
일제의 강제련행,랍치만행은 그 방법에 있어서도 매우 악독하고 잔인하였다.
강제련행,랍치피해자들의 증언과 피해진상조사자료에 의하면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랍치만행은 징발,체포,회유기만,공갈협박,사기협잡 등 육체적강제와 정신적강제를 결합한 초폭력적강제련행,랍치범죄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강제련행,랍치한 일제는 그 피해자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두어놓고 노예제적규률을 적용하였는가 하면 가혹한 로동강도와 장시간의 로동시간을 강요하면서 무참히 혹사하였다. 로동보호시설이 전혀 없는 군사시설물공사장이나 탄광,광산과 언제,철도건설장 등 가장 위험하고 고된 부문에는 언제나 조선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일하는 동물》,《말하는 도구》로 취급당하였다. 일본에서 발견된 1944∼1945년 자료에 당시 일본전국에 있었던 549개소의 군사시설물공사장들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사람들이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다고 지적되여있는 사실,일제의 이전 동부군 첩보사관이였던 한 일본인이 극비밀리에 건설을 진행하던 《마쯔시로대본영》 지하방공호에서 1945년 4월부터 패전할 때까지의 사이에 일제에게 강제련행,랍치된 약 2,000명의 조선사람들이 쇠사슬에 련결된 채로 가혹한 강제로동을 강요당하였다고 고백한 사실은 그것을 반증해주는 단적실례로 된다.
일제는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랍치하여 중세기적인 노예로동 등을 강요하였을뿐아니라 무참히 살륙하였다.
일본이 자랑하는 3대 차굴인 《시미즈》,《단나》,《센산》차굴공사들에서만도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이 참혹하게 무주고혼이 되였다. 이 사실에 대해 한 일본인은 《조선신보》에 발표한 목격담에서 《조선사람의 시체를 밀차에 실어 흙무지속에 마구 처넣었다. 생사도 확인하지도 않고 땅속에 묻힌 조선사람이 많았다.》라고 실토하였다. 일제는 탄광을 비롯한 군수산업부문에서도 조선인로무자들을 대량학살하였다.
일제시기 노예로동,로동재해에 의한 조선인로무자들의 사망률이 제일 많은 곳은 탄광,제강,광업부문들이였다. 1938.5∼1945.5월까지 혹가이도탄광들에서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학살된것을 비롯하여 1940∼1944년기간에 일본전국탄광들에서 6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이 학살되였다.
일제침략자들의 전쟁터에서도 조선사람들의 운명은 마찬가지였다.
일제는 강제련행,랍치해간 조선인《병사》들을 격전장의 맨 앞장에 세우고 그 다음줄에 《황군》을 배치하여 조선인《병사》들을 감시하게 하고 《돌격》때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가차없이 죽이였다. 이렇게 조선인징병자들은 전선에서 앞으로는 《적》탄에 맞아죽고 뒤로는 일제침략군의 총알에 맞아 학살되는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하였다.
일제침략군에 끌려간 《군속》들의 신세도 다를바 없었다.
일제는 강제련행,랍치해간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군속》이라는 이름밑에 타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에 파송하였다. 이밖에 중국,남양방면은 물론이고 요꼬스까,구레,사세보,마이쯔루,오미나또,진해 등 일제침략군의 각 해군기지들에 수많은 조선인《군속》들로 《해군작업단》을 조직하였다.
남방전선지대에 끌려간 《군속》들은 타이-먀 마철도건설장과 인도네시아의 쑤마뜨라종단철도건설장,안보비행장건설장 등 열대의 밀림지대와 외진 섬들에서 갖은 박해와 고문,기아와 질병,고역에 시달리다가 죽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마저도 《비밀보장》,《절량》을 구실로 집단학살되였다.
특히 태평양전쟁시기 남양군도에 진출했던 일제침략군은 보급로가 차단되자 조선인《군속》들을 수많이 잡아먹는 식인종행위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다.
사실은 바로 이러하다. 지금도 일본땅 곳곳에는 일제에게 강제련행,랍치되여 참혹한 불행과 고통,죽음을 강요당한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유골이 그대로 내버려져있다.
일본이 진실로 랍치문제,유골문제를 론하겠으면 조선인강제련행,랍치죄행과 그 피해자들의 유골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조치를 취해야 할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