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기사 달력>>2003년12월 2일기사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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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론설 《고구려문화를 계승한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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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12월 2일발 조선중앙통신)오늘호 《로동신문》은 《고구려문화를 계승한 발해》라는 제목의 론설을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한피줄을 잇고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한강토에서 살아온 단일민족이며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우수한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있는 슬기로운 민족입니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수백년간 존재하면서 주변나라들로부터 《해동성국》(동방의 륭성한 나라)으로 불리웠다. 발해인민들은 자기의 창조적로동으로 높은 생산력발전을 이룩하고 고구려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계승하여 우리 민족문화를 더욱 활짝 꽃피웠다. 발해와 고구려문화의 계승관계는 무엇보다도 성곽제도를 통하여 알수 있다. 발해는 각이한 지형조건에 맞게 산성,평지성,평산성 등 여러가지 형식의 성곽들을 쌓았다. 발해의 산성으로는 성산자산성,성장습자산성,운두산성 등이 있다. 이러한 산성이나 평지성은 벌판을 끼고 요충지대에 있는 험준한 자연지세를 리용하여 쌓은 고로봉식산성들이다. 성벽은 대체로 4각추형으로 다듬은 성돌로 지대가 평평한 곳에는 량면축조방법으로,경사진 곳에는 외면축조방법으로 견고하게 쌓았다. 그리고 옹성,치같은것을 설치하여 성의 방어력을 더욱 높이였다. 발해의 산성이나 평산성의 위치선정과 축조형식과 방법,성곽시설들은 다 고구려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것이다. 평지성으로는 상경룡천부,오동성,서고성,팔련성,청해토성 등이 알려졌는데 그가운데서도 발해의 수도로서 오래동안 존재한 상경룡천부는 둘레만 하여도 40리가 넘는 성이다. 넓은 벌을 낀 분지 한가운데 자리잡고있는 상경룡천부는 목단강을 자연해자로 삼고 네모반듯하게 쌓은 토석혼축성이다. 성은 외성과 황성,궁성으로 이루어졌다. 성안은 동서남북으로 뻗어간 큰 도로들에 의하여 바둑판모양을 이루었으며 외성에는 주민지대가 전개되고 황성에는 중앙관청이,궁성에는 웅장화려한 궁전들이 늘어서있었다. 발해가 상경룡천부와 같은 잘 째인 수도성을 건설할수 있은것은 궁성만을 성벽으로 둘러쌌던 안학궁형식으로부터 수도전체를 둘러막은 평양성형식의 거대한 수도성을 건설한 고구려의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하였기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발해는 수도성을 비롯한 도성주변에 위성들을 쌓았다. 발해초기 수도였던 오동성주변에는 성산자산성,통구령산성,흑석고성이 있고 상경룡천부주변에는 성장습자산성,대목단성,우장성 등이 있다. 이 위성들은 도시성을 지키기 좋은 길목들에 자리잡고있다. 이러한 위성체계는 고구려시기에 이미 확립되여있었다. 평양성주변의 황룡산성,흘골산성,황주성 등이 이것을 잘 말해준다. 발해와 고구려문화의 계승관계는 다음으로 살림집건축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발해의 살림집은 상경룡천부,중경현덕부,동경룡원부,남경남해부를 비롯한 발해의 거의 모든 령역에서 알려졌다. 살림집은 대체로 동서 량쪽방은 크고 가운데방이 작은 3칸짜리이며 몸채밖으로는 회랑을 두른것도 있다. 살림집은 남향이며 토방두리에 물도랑을 내여 비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였다. 바닥에는 회 또는 모래를 깔고 그밑에 여러층의 방습층을 만들어 습기가 올라오지 못하게 한 다음 그우에 《ㄱ》자모양의 두고래온돌을 놓았다. 이와 같은 살림집의 구조와 난방시설은 고구려의 동대자집자리,로남리 1호,2호집자리,대평리 고구려집자리 등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의 살림집에서 볼수 있는것이다. 그때에 살림집에 온돌을 쓴것은 고구려뿐이였다. 고구려의 온돌식난방은 동서방의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고유한 난방형식으로서 독특한것이였다. 이러한 난방형식을 갖춘 살림집터들이 발해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알려졌다는것은 발해사람들도 고구려사람들의 방안생활풍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것을 실증하여준다. 다음으로 무덤의 구조형식에서 고구려문화의 계승성을 찾아볼수 있다. 매장풍습은 강력한 전통의 힘을 가지고 후세에 물려진다. 발해의 무덤도 빈터에서 생겨난것이 아니라 선행시기의 매장풍습의 전통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다. 발해에서는 고구려에서처럼 돌을 리용하여 돌칸흙무덤,돌곽흙무덤,돌관무덤,돌각담무덤을 비롯한 각이한 무덤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 가운데서도 주류를 이룬것은 돌칸흙무덤이였다. 발해의 돌칸흙무덤은 안길과 안칸으로 이루어진 외칸무덤이며 대체로 남향이다. 무덤칸은 잘 다듬은 판돌과 강돌,막돌로 쌓았으며 벽에는 회를 바르거나 그우에 벽화를 그린것도 있다. 천정은 평행고임,평행3각고임,꺾음식 등 여러가지 형식으로 하였다. 발해돌칸흙무덤의 가장 전형적인것은 발해 제3대왕인 문왕 대흠무의 둘째딸인 정혜공주무덤을 들수 있다. 이 무덤은 산의 남쪽경사면을 따내여 고른 다음 그우에 돌로 무덤칸을 만들었다. 무덤칸은 안길과 안칸으로 이루어진 외칸무덤이며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향이다. 안칸평면은 방형이며 남벽중심에는 안길이 있다. 벽체는 돌로 쌓고 회죽미장을 한 다음 벽화를 그렸던 흔적이 있다. 천정은 1~2단의 평행고임우에 2단의 3각고임을 한 다음 뚜껑돌을 덮었다. 무덤칸바닥에는 돌을 한벌 깔고 그우에 다시 벽돌을 반듯하게 깔았다. 안길과 안칸사이에서는 정혜공주에 관한 비석과 돌사자가 나왔다. 비문에 의하면 정혜공주무덤은 발해초기의 무덤이다. 고구려의 돌칸흙무덤인 강서큰무덤이나 진파리 1호무덤,통구사신무덤과 같은 고구려후기의 무덤들은 정혜공주무덤과 구조형식이 같다. 이것은 고구려후기의 돌칸흙무덤형식이 그대로 발해에 계승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발해의 돌칸흙무덤에는 삼령둔무덤처럼 잘 다듬은 판돌로 무덤칸을 만들고 천정을 꺾음식으로 짜올리고 무덤무지우에 기와지붕을 씌운 특이한 무덤도 있다. 이러한 무덤형식도 고구려무덤에서 볼수 있는 현상들이다. 삼령둔무덤과 같은 꺾음천정은 진파리 10호무덤,집안의 꺾음천정무덤과 그밖의 고구려무덤에서 보이는 천정형식이다. 그리고 무덤무지우에 기와를 씌우거나 집을 짓던것은 고구려의 보편화된 풍습의 하나였다. 고구려에서 돌각담무덤때부터 이루어져 전해내려온 풍습이 돌칸흙무덤단계를 거쳐서 발해에 이어진것이다. 발해와 고구려돌칸흙무덤의 구조형식이 이렇게까지 공통한것은 그들사이의 혈연적인 관계를 보여주는것이다. 발해와 고구려문화의 계승관계는 이밖에도 발해인민들의 창조적인 지혜와 로동에 의하여 만들어진 각종 생산도구들과 무장 및 마구류들,기와,벽돌,치미와 같은 건축부재들,치레거리,도자기 등 여러 측면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이 모든것은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한 나라이라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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