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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간또대지진때 감행된 극악무도한 조선인집단살륙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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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9월 2일발 조선중앙통신)2일부 《로동신문》은 《간또대지진때 감행된 극악무도한 조선인집단살륙범죄》라는 제목의 론설을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제가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또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을 기화로 조선사람들에 대한 야만적인 집단학살을 감행한 때로부터 80년이 되였다. 간또대지진때 조선인집단학살은 1920년대 일제가 저지른 범죄들가운데서 가장 피비린내나는 반인륜적대살륙만행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23년의 간또대진재는 지각운동이 일으킨 자연의 재난과 함께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선민족에게 강요된 인공적인 재난도 기록하고 있다.대진재를 조선인탄압의 호기회로 삼은 깡패들은 도처에서 일본도와 참대창으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였다.》 지금으로부터 80년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리히터척도 7.9의 대지진이 일본의 간또일대를 휩쓸었다.강한 지진과 그로인한 화재로 도꾜를 비롯한 간또일대는 불바다로 되였으며 삽시에 120여만명이 집을 잃고 한지에 나앉았다. 당시 일본반동정부는 피해자들을 구제할 긴급대책을 취할대신 정부에 대한 높아 지는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한 《묘안》으로 《조선인대학살》이라는 무서운 음모를 꾸미였다. 9월 1일 오후 일본총리관저의 마당에서 열린 《림시각의》에서는 정보부에 민심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데 대한 명령을 주었으며 이에 따라 정보부장 나가오까란자는 《조선인이 방화한다》,《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 등의 류언비어를 날조해냈다. 더우기 치안의 최고책임자인 내무대신 미즈노 렌따로와 경시총감 아까이께 아쯔시는 9월 1일 밤 도꾜시내를 순회하고 《조선인대학살》음모를 고안하였다.그리고는 9월 2일 오후 조선인탄압지령을 지바현 후나바시의 해군무전소를 통해 각 지방장관들에게 내리였다. 뒤이어 구체적인 조선인살인지령실행을 위해 9월 2일 일본《천황》의 《칙령》 401호로 《계엄령》까지 공포하고 군대와 경찰,헌병들을 대량적으로 동원하였다. 당시 일본법에 의하면 《계엄령》은 전시 혹은 사변이 발생한 경우에만 가능한것이고 사변인 경우에도 반드시 내란 또는 폭동의 발생이 인정되여야 내리게 되여 있었다.이로부터 일본반동정부는 조선인집단학살의 법적구속력을 마련하기 위한 모략으로 자연재해구제와는 관계없이 《조선인폭동설》을 날조하고 무고한 조선인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할데 대한 《계엄령》을 공포하였던것이다. 일본반동정부가 《천황》의 이름으로 《계엄령》을 공포한것은 저들이 날조한 《조선인폭동설》의 《진실성》을 일본인들이 그대로 믿도록 하기 위한 악랄한 술책이였다. 일제는 9월 3일 내각비상회의를 열고 제1차세계대전에 참가하였던 가장 악질적인 장교들로 《간또계엄사령부》를 조직하였다.그리고 4만명에 달하는 군대와 경찰무력을 도꾜-요꼬하마를 중심으로 한 간또일대에 집결시키고 이 지역을 전시공포의 도가니속에 몰아 넣었다. 이와 함께 경찰서,파출소의 게시판들에는 《불량조선인들이 봉기》하였다는 거짓내용과 함께 《반항하면 구태여 죽여도 일없다》는 게시문이 붙여 졌으며 경찰관들은 메가폰을 가지고 도시를 순회하며 《조선인들의 폭행에 대하여서는 죽여도 일없다》고 일본인들에게 조선인학살을 공공연히 선동하였다. 또한 일본반동정부는 군대와 경찰들에 불량배들로 조직된 3,000여개의 《자경단》 등과 협동할것을 지시하였다. 《계엄사령부》의 지휘밑에 일제야수들은 장총,일본도,단도,날창,참대창,곤봉,쇠갈구리 등 각종 흉기들을 가지고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무참히 탄압학살하였다. 놈들은 이르는 곳마다 《검문소》들을 만들어 놓고 《고엔 고쥬고센(5원 55전)》이라는 발음하기 까다로운 일본말을 시켜 보아 조선사람을 식별하고서는 그 자리에서 목을 자르지 않으면 배를 가르거나 눈알을 빼고 코를 베여냈으며 벌거벗겨 모욕을 준 다음 죽여서는 그 시체를 시내로 질질 끌고 다니는 귀축 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제의 조선인집단학살만행은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십여명씩 묶어서는 제방에 세워 놓고 새로 만든 기관총의 성능을 검사한다고 하면서 쏴죽이였고 불이 붙는 콕스장에 철사로 묶은 맨몸뚱이채로 집어던져 불 태워 죽이였다. 또한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여 밟아 죽이였고 음부에 참대창을 박아 죽이였다. 당시 조선인학살에 직접 참가하였던 한 일본인경찰은 《참살정형은 도저히 입으로 표현할수 없었다. ...어린 아이들을 줄을 세워 놓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잘랐으며 그 다음 그 부모들도 찔러 죽이였다. 살아 남은 조선사람들의 팔을 톱으로 켜는 자도 있었다.그것도 도중에서 팽개치고 또 다른 조선사람들을 톱질하는 모습은 보기도 끔찍하였다.죽은 사람들의 눈을 식칼로 도려내는것도 보였다. ...경찰서구내는 피바다를 이루었으며 장화를 신지 않으면 걸을수 없는 형편이였다.》라고 실토하였다. 실로 일제야수들의 만행은 말과 글로써는 다 표현할수 없는 전대미문의 야만행위였다.일제의 극악무도한 조선인집단학살만행으로 지진발생후 두주일 남짓한 기간에 도꾜 하네다부근에서는 2,000여명,스미다강부근에서는 400여명,혼죠부근에서는 400여명,가메도경찰서부근에서는 300여명,우에노경찰서부근에서는 150여명,쯔루미경찰서부근에서는 100여명 그리고 도꾜의 린근지역들인 가나가와,요꼬하마,사이다마,이바라기,군마 등지를 비롯하여 일본 전국각지에서 조선사람들을 수백명,수십명씩 집단학살하였다.이때 일제야수들이 무참히 학살한 조선사람의 수는 무려 2만 3,000명이나 되였다.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일제의 귀축 같은 살륙만행은 그들이야말로 인간증오와 민족배타주의사상이 골수에 꽉배인 천인공노할 악한들이고 피를 즐기는 흡혈귀들이며 사람잡이를 유희,도락으로 삼는 살인마,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 주었다. 철면피하기 그지없는 일본반동지배층은 천추에 씻을수 없는 피비린 조선인집단살륙만행을 감행하고도 그 진상을 은페하기 위하여 온갖 책동을 다하였다. 일제는 일본통신보도수단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실시하면서 저들의 죄행이 폭로되는것을 막으려고 발광하였다.그들은 이와 함께 국가적살인범죄행위를 깡패단체인 《자경단》에 전가시키려고 비렬하게 책동하였다.일본반동정부는 어떻게 하나 저들의 조선인집단살륙범죄를 가리워 보려고 저들스스로가 조직한 《자경단》의 일부 분자들을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하는 기만극까지 연출하였다. 그러나 재판과정에 그들은 정부의 사촉을 받아 한짓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선인살륙에 대한 《보상》까지 요구해 나섰다.이를 통하여 조선인집단살륙범죄사건의 내막이 드러나게 되자 일본반동지배층은 재판을 흐지부지해 버리고 말았다. 지어 일제는 조선인학살만행을 가리우기 위해 저들이 살륙한 조선사람들의 시체를 불태워 없애버리는 한편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그 책임을 조선사람들에게 넘겨 씌우는 극도로 파렴치한 행위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1923년 9월 5일 일본륙군,해군,내무성,경시청,《계엄사령부》의 우두머리들은 모략적인 꿍꿍이를 벌리고 《일본공산주의자들과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배후에서 폭행을 선동하였다.》고 조선인살인만행진상을 외곡날조하였다. 일제가 간또대지진때 《조선인폭동설》을 조작하고 정부와 군대가 한덩어리가 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무참히 집단살륙한 반인륜적범죄는 력사에 기록되여 있으며 그 무엇으로써도 부정할수 없고 덮어버릴수 없다.그런데 일본은 그때로부터 80년이 된 오늘까지도 그 진상을 똑바로 해명하지 않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성,사죄와 보상을 회피하고 있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조선에서의 옛 식민지시절을 되살리려는 범죄적야망밑에 우리 나라의 있지도 않는 《핵 및 미싸일위협》을 떠들며 대조선적대시압살책동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것이다.최근 일본반동들속에서는 《북조선과는 전쟁을 해도 좋다》느니,《북조선미싸일기지들을 선제타격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는 전쟁폭언들이 마구 튀여 나오고 있다.이와 때를 같이 하여 일본에서는 반총련테로행위가 강화되고 있다.총련기관들과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우익깡패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이러한 살벌한 분위기는 마치 80년전의 간또대지진때를 방불케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전체 조선민족의 커다란 우려와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우리 인민은 간또대지진때 일제의 조선인집단살륙만행을 비롯하여 그들이 조선식민지통치시기 감행한 잔악무도한 죄악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으며 새 세기에 기어이 그 피값을 받아낼 결심이다. 일본은 우리 인민의 의지와 립장,대일감정을 똑바로 보고 하루빨리 성근하게 과거청산의 용단을 내려야 한다.(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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