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기사 달력>>2003년8월20일기사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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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품에 안겨 박사로-비전향장기수 김중종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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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8월 19일발 조선중앙통신)얼마전 나는 만수대의사당에서 만사람의 축복속에 언어학박사증과 메달을 수여 받는 끝 없는 영광을 지니였다.
세상사람들을 놀래우는 기적의 주인공이 된 나는 비오듯하는 눈물을 닦을념도 못하고 조각처럼 굳어 지고 말았다. 비전향장기수박사,이것은 인류과학발전사나 세계옥중투쟁사에서 례사롭게 찾아 볼수 있는 낱말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영광의 단상에 오르게 되였는지 생각할수록 꿈만 같다.파란 많던 인생행로가 한순간에 안겨 왔다. 그가운데서도 옥중에서 그 무슨 학문을 연구한다고 암중모색하며 피 타게 노력하던 일들이 잊혀 지지 않는다. 어려서 배웠던 밭은 한문지식을 더듬으며 력사연구를 결심한 나는 우리 나라 력사에 남아 있는 왕이름과 고을이름,벼슬이름들의 어원적연구에 달라붙었다. 제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력사문헌의 이름글뜻을 구조적으로 파고 드는 과정에 나는 고유한 조선말의 뿌리가 본래의 의미와 판이하게 달라졌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나는 한문으로 기록된 력사와 문전들의 이름글뜻에서 본래의 이름말소리의 뿌리를 찾아 내는 방법과 그것을 우리 말소리로 풀어 읽는 요령을 밝혀 내면서 생각나는대로 책장여백에 빼곡히 적어 넣군 하였다.고심참담한 노력이 담긴 귀중한 연구기록이 간수들의 눈에 띄워 한순간에 재가루가 되였을 때에도 나는 연구를 중단하지 않았다. 하여 감옥안에서만도 20여권에 달하는 합법도서들의 여백에 피땀에 절은 수많은 연구기록을 남겼다. 옥중생활 29년,1만여일이나 되는 이 죽음의 나날에 나는 고구려계통의 북쪽말과 신라계통의 남쪽말에 대한 부르죠아언어학자들의 두개 <기원설>궤변을 론박할 과학적론거를 찾고 옛 조선말의 짜임새와 쓰임새를 풀어 읽는 방법과 가족 및 친족이름말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로 력사의 이끼속에 묻혀 있던 고유한 조선말의 어원을 주체적립장에서 밝혀 낼수 있었다. 1989년 10월에 63살의 몸으로 감옥문을 나와 고향이라고 찾아 가니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형제들에게도 의지할 형편이 못되였다.병약한 몸으로 생활전선에 나선 나는 닭도 치고 꽃도 가꾸었으며 닭알장사,꽃장사로 거리를 헤매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한 책편찬소개소에 들어 가서야 낮에는 찾아 오는 손님들에게 봉사하고 밤에는 기억을 더듬어 가며 옥중연구자료에 기초한 원고를 집필,정리할수 있었다. 2000년 9월에 나는 사연 많은 그 연구자료를 안고 60여명의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행복속에 꿈 같은 삶을 누려 가던 어느날이였다. 뜻밖에 한 일군이 찾아 와 옥중에서 연구해 온 자료를 가지고 론문을 쓸것을 권고 하는것이였다. 나의 충격은 실로 컸다. 오랜 세월 철창속에서 고이 간직해 온 간절한 소원을 그리도 소중히 헤아려 주는 어머니조국이 너무도 고마와 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였다. 그날부터 나는 나라의 권위 있는 언어학자들의 각별한 관심속에 밤낮을 이어 <력사의 이끼를 벗겨 본 옛 우리 이름말>에 대한 론문집필에 달라붙었다. 그것이 마침내 빛을 본것이다. 학자들은 미숙한 나의 론문이 대동강문화를 창조하던 시기로부터 조선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것을 과학리론적으로 론증하고 주체적견지에서 력사와 언어학연구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한 과학리론적가치가 큰 론문이라고 일치하게 인정해 주었다. 키워 주고 보살펴 주는 품,믿어 주고 내세워 주는 은인이 없고서야 어떻게 행복한 오늘을 상상이나 할수 있겠는가. 인생의 행복자,성공자로 된 나를 보며 사람마다 부러워 한다.만복을 받아 안은 행운아라고. 평범한 한 인간을 온 세상이 다 아는 박사로 내세워 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나는 충심으로부터 삼가 큰 절을 드린다.(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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