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기사 달력>>2003년7월26일기사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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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여 진 미제의 <강대성>신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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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7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
미제살인<장군>들의 비참한 운명 조선전쟁(1950.6-1953.7)은 미국의 군사가들에게 쓰디쓴 고뇌와 수치를 가져다 주었다. 조선침략의 도화선에 불을 지른 전쟁광신자들의 비참한 말로는 불을 즐기면 불에 타죽기 마련이라는것을 뚜렷이 실증해 주고 있다. 조선전쟁시기 미극동군사령관 및 <유엔군사령관>들이였던 맥아더,릿지웨이,클라크는 력사에 패전장군이라는 치욕을 남기였다. <크리스마스공세의 승리>를 과신하며 오만하게 <전쟁종결의 성명>까지 발표하였던 맥아더는 주체39(1950)년 11월 27일 <우리는 전혀 새로운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새 국면은 우리의 희망을 산산이 깨여 버렸다>는 성명을 발표하여 저들의 참패를 인정하였다. 결국 52년동안이나 군복을 입고 전장을 돌아 치며 <동쪽의 나뽈레옹>으로 자처하던 맥아더는 1951년 4월 11일 새벽 1시 청문도 없고 변명할 기회나 과거경력에 대한 고려도 없이 철직되였다. 맥아더의 후임으로 임명된 릿지웨이도 <하기 및 추기공세>에서의 대참패로 1년만에 그 자리에서 쫓겨 났다. 조선전선에서 패전을 거듭한 선임자들을 비웃으며 <교살작전>까지 벌려 놓았던 클라크 역시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으로 되였다. 미제24보병사단장 띤은 인민군대의 드세찬 포위작전으로 막다른 골목에 직면하자 졸병놈의 옷을 입고 숨어 다니다가 나어린 인민군병사에게 포로되여 만사람의 폭소를 자아 냈다. 이외에도 미제8군사령관이였던 워커는 인민군적후부대의 매복에 걸려 황천객이 되고 그 후임 밴프리트는 <김화공세>의 실패와 <정형고지전투>의 참패로 파직 당하였다. 높은 명예와 일확천금을 바라던 전쟁호전광들의 어리석은 꿈은 저들이 지른 불에 재가 되고 말았다. 만약 오늘 미군부호전계층이 전쟁열을 고취하며 계속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매여 달린다면 지난 조선전쟁에서 당한 패전장군들의 말로를 그대로 되풀이하고야 말것이다.(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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