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기사 달력>>2003년7월24일기사 목록 |
|
|
||
|
|
||
|
깨여 진 미제의 <강대성>신화(2)
|
||
|
||
|
|
||
|
(평양 7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
풍지박산난 발악적인 <공세>들 조선전쟁을 도발하면서 <속전속결>하겠다던 미제의 호언장담은 허황한 꿈으로 되고 말았다. 전쟁개시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자 미제국주의자들은 태평양방면의 륙해공군과 지중해함대의 일부 그리고 예비로 두었던 군함들까지 동원하여 악명 높은 <9월 총 공세>를 벌리였다. 그러나 인민군대의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에 의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 미제의 <크리스마스총공세>도 풍지박산났다. 맥아더는 <크리스마스>날 전으로 압록강까지 점령하기 위해 미8군단,1군단,9군단,괴뢰2군단,미1해병사단 등을 <총 공세>에로 내몰았다. 하지만 맥아더의 총공세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령활한 작전적방침에 따라 진행된 인민군련합부대의 결정적인 반공격에 의하여 산산이 부서졌다. 미국의 한 신문은 <크리스마스 총 공세>의 참패에 대하여 <미국이 겪은 패배가운데서 최악의 패배>(<타임> 1950년 12월 11일부)라고 보도하였다. 맥아더는 <총 공세>실패의 책임을 지고 철직되였다. 그 자리에 새로 올라 앉은 릿지웨이는 1951년 8월 중순부터 전선동부에서 <하기 및 추기공세>를 감행하였다. 김일성주석의 작전적방침에 따라 완강한 진지방어로 넘어 간 인민군부대들은 전연전방에서 달려 드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소멸하였다. <하기공세>에 이어 <추기공세>에로 넘어 간 미제는 1211고지에 하루 평균 3만∼4만발의 폭탄과 포탄을 퍼 부으면서 파도식공격을 감행하였지만 시체와 죽음만을 남기였다. 이에 대하여 영국의 <에코노미스트>지는 <잘 무장하고 기술적으로 잘 준비되였으며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한 2대강국(미국,영국)의 군대가 보병부대(인민군대)들에게 얻어 맞고 퇴각하던 광경은 아시아도 유럽도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라고 야유하였다.(끝) |
|
Copyright (C) 2002 KOREA NEWS SERVICE(KNS)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