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기사 달력>>2003년7월2일기사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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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과 일화(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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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6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
600년만에 나타난 옥새 주체81(1992)년 5월 어느날이였다. 이른 아침 개성시를 찾으시여 잠시의 휴식도 없이 시안의 유적유물들을 돌아 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시내에서 20리 떨어 진 곳에 있는 왕건(고려태조왕)왕릉을 찾으시였다. 릉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며 생각에 잠겨 계시던 주석께서는 왕건은 조선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918-1392)를 창건한 시조왕인데 왕릉이 초라하다고 하시면서 외래침략으로 국력이 약해 져서 릉을 잘 쓰지 못했을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태조왕릉을 그대로 두면 태조왕은 누워서도 우리를 욕할것이다,력사학자들이 왕릉을 고증하고 건축가들과 토론하여 잘 꾸리기 위한 안을 만들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이 사실을 알고 몇밤을 감격의 눈물로 지새우던 왕씨가문의 후손들은 대대로 고이 간직해 오던 가보인 족보와 옥새를 김일성주석께 삼가 올리였다. 그 왕씨족보와 옥새로 말하면 고려왕조가 무너진후 리성계(리조의 시조왕)의 왕씨족참살을 피하여 요행 목숨을 건진 며며 왕씨후손들이 장장 600년을 보관해 온것이였다. 주석께서는 왕씨족보와 옥새를 보아 주시면서 고려가 조선의 첫 통일국가였기때문에 자신께서는 나라의 이름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으로 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족보와 옥새를 잘 보관하도록 하시고 왕씨가문후손들의 애국적소행을 높이 평가하시며 그들에게 선물까지 보내주시였다. 600년만에야 나타난 왕씨족보와 옥새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전설처럼 전해 지고 있다.(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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