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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들의 어제와 오늘(일기의 일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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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2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품에 안겨 비전향장기수들은 남조선에서는 상상할수 없었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럴수록 그들은 하나의 물건,하나의 현상을 놓고도 어제날의 고통과 오늘의 행복에 대하여 생각하며 눈물을 짓고 있다. 비전향장기수들의 심정이 적힌 일기의 일부를 아래에 소개한다. 어제날의 <총각대장>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속에는 가장 아름다운 청춘시절에 사랑도 다 바쳐 감옥에서 총각으로 늙은 장기수들이 많다. 나 역시 1951년 10월,26살 총각으로 시작된 감옥생활이 45년세월 계속되였다. 놈들은 3대 왕조를 거치며 형조판서 등 조정의 높은 벼슬을 해온 량반가족의 가문에서 태여난 나를 쉽게 전향시킬수 있다고 보고 온갖 회유와 권모술수,폭력 등 수단과 방법을 다 썼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날과 달을 나는 신념하나로 버티여 냈으며 끝내는 이기고 감옥문을 나섰다. 하지만 몸 담을 곳이 없었다.이미 형제들은 나를 호적에서 지워버린 상태였다.그러나 어머니조국은 나에게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영예와 삶을 주었으며 세계최고장기수라고 떠받들어 주었다.<총각대장>의 생활에서도 벗어 났다.생활이 너무도 행복스러워 흐르는 날과 달을 비끄러매놓았으면 하는 천진란만한 생각까지 하군 한다.(김선명) 행복의 열쇠 나는 감옥생활 40년동안에 단 한번도 감방문을 내 손으로 열거나 닫은적이 없다.비전향장기수들에게는 문손잡이를 잡을 권리조차 없는것이다.만일 규정을 어기고 자기 손으로 문을 열면 <도주>하려 했다는 혐의로 혹독한 징벌을 면할수 없다. 때문에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항상 간수가 열쇠를 열고 문을 열어 준 다음에야 나올수 있었고 나온 다음에도 열려 진 문을 간수가 닫군 하였다. 이런 고약하고 지독스러운 통제에 구속되였던 이 손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행복의 열쇠를 쥐여 주시였다. 그 은정속에 우리들은 창문을 제외하고 사람이 드나드는 문만도 17개나 되는 집에서 살고 있다.독감방의 문손잡이조차 잡을수 없었던 우리들이 오늘은 궁궐 같은 집의 17개 문손잡이들을 모두 제손으로 열고 닫으며 자유롭게 행복을 누리고 있다.(김우택) 행복의 싱갱이질 나는 밥상앞에 마주 앉을 때면 안해와 자주 싱갱이질을 하군 한다. 나는 무슨 밥을 이렇게 많이 담았는냐고 하고 안해는 하얀 흰쌀밥이 무둑히 담겨 진 밥사발을 내 앞에 놓아 주며 건강은 밥사발밑에 있다면서 많이 들라고 자꾸 권한다. 그럴때면 남조선의 감옥에서 먹군 하던 콩보리밥덩어리가 생각난다. 2-3숟가락정도의 콩보리밥 한덩어리와 반국자가량의 멀건 소금국을 먹고나면 배고픔이란 이루 말할수 없었다. 하루는 먹방에서 밥알 흘린것인줄 알고 엎디여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는데 한참만에야 그것이 밥알이 아니라 벌레라는것을 알았다.이때 나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42년간을 매일 콩보리밥 한덩어리로 살다보니 갈비뼈가 배가죽을 뚫고 나올 정도였다.말그대로 우리는 <움직이는 송장>이였다.그런데 이제는 매일 흰쌀밥을 먹는다.식탁마다에 산해진미가 넘쳐 난다.그런데도 안해는 자꾸 권한다.(우용각) 친어버이의 사랑 종종 폭신하고 따스한 털이불속에 몸을 맡길 때면 나에게는 느닷없이 남조선에서의 감옥생활이 떠 오른다. 11월이면 감옥측에서는 일반 죄수들이 몇번이나 사용해 먼지가 풀썩풀썩 이는 누데기인지 걸레인지 알수 없게 된 <이불>이라는것을 준다.절반 접어 아래와 한쪽옆을 꿰매여 마대처럼 만든 <이불>이다.나는 30년간 성에가 허옇게 내돋은 독감방의 겨울을 이런 <마대이불>속에 들어 가 나군 했다. 이제는 그것이 옛말로 되였다.이불장에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철 따라 덮을 갖가지 이불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조선사람들은 예로부터 부모들이 시집,장가 가는 아들딸들에게 품을 들여 이불을 장만해 준다. 지금 나는 이 세상 그 어느 부모도 대신해 줄수 없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을 페부로 절감하고 있다.(김석형) 은정어린 생일상 나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생일 90돐상을 받아 안았다. 온갖 산해진미가 다 올라 있는 생일상,혁명전사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그대로 넘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생일상이였다. 나는 저로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장군님의 사랑이 너무 고마와 눈물이 났고 이런 은정어린 생일상을 받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동지들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감옥에서 생일날은 시끄럽고 고통스러운 날이였다.내 생일은 2월이다 보니 해마다 성에가 허옇게 낀 추운 방에서 언 콩보리밥 한덩어리로 나군 했다.동지들이 생일을 축하하여 보내온 과자 한개를 손에 쥐고 기뻐하던 일도 있었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있어서 고통과 불행의 날로 되였던 생일날,수십년동안 생일이란 말조차 잊고 살아야 했던 내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생일상을 받았다. 나는 행복의 눈물을 훔치며 둘러 앉은 자식들에게 경애하는 장군님을 충성 다해 모실것을 신신당부하였다.(류연철) 즐거운 음력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있어서 음력설은 고독과 설음을 자아내는 불행한 날이였다. 이러한 우리들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품에 안겨서 음력설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였다. <비전향장기수동지,오래 사셔서 조국통일의 그날을 꼭 보셔야 합니다.> 음력설날에 내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인사의 한토막이다. 이번 음력설에는 정말 바빴다.집에서는 찾아 오는 친척들과 친지들의 인사를 받느라고 바빴는데 밖에 나서니 또 그대로 바빴다.비전향장기수라고 보는 사람마다 음력설인사를 했기때문이다.아들이 일하는 보건성의 일군들이 내 손을 잡고 설명절을 축하하는데 손녀동무들인 대학생들이 나를 에워 싸는 바람에 돌아 서서 마주 인사해야 했다.알고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정어린 음력설인사를 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즐거운 음력설,행복의 음력설,이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어버이로 모시고 온 나라 인민이 한식솔로 사는 내 조국의 민속명절의 하루로구나.)(홍문거) 사랑하는 서리꽃 며칠전 집으로 향하던 나와 안해는 모란봉의 설경에 이끌리여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였다. 보기 드문 희한한 흰꽃의 세계에 심취된 나에게 안해가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서리꽃이여서 더욱 아름답다고 말하였다. 나는 안해의 말을 입속으로 되뇌이며 그 의미를 새겨 보았다. 이 땅에는 해마다 수많은 꽃들이 피여 난다. 그 꽃들중에서 추위속에서만 피여 나는 꽃이 하얀 서리꽃이다. 참으로 소중하게 안겨 오는 서리꽃이 남쪽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겨울이면 독감방에 성에가 하얗게 내돋군 하였는데 그것을 볼때마다 온몸이 오싹하군 하였다.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얼구어 죽이려는 교형리들을 도우려고 내돋은것만 같았기때문이다.남쪽에서 애 써 외면했던 서리꽃,허나 그 꽃을 우리 조국에서는 누구나 사랑하고 자랑한다. 마음이 즐거워 진 나는 저도 모르게 곱게 피여 난 꽃들 많아도 서리꽃이 나는 좋다는 노래를 몇번이고 불러 보았다.(전창기) 영원한 동지 남조선의 감옥에서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언제나 <이 개새끼>,<빨갱이새끼>로 불리웠다.20대의 새 파랗게 젊은 간수들도 70살이 넘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야>,<자>,<어이> 지어 <늙다리>라고 부르며 멸시하군 하였다.참을수 없는 모욕과 치욕을 당할 때마다 인간생활,동지애의 세계가 그리웠다.그래서 살벌한 감옥에서도 <동지애의 노래>를 배웠고 즐겨 불렀던것이다. 그러한 우리들의 처지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늙다리빨갱이>라는 멸시의 대상으로부터 <비전향장기수동지>로 불리우며 온 나라 인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하루에도 알고 모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지>로 불리우며 사랑과 존경을 받을 때마다 나는 하늘땅이 열백번 뒤집혀도 혁명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 가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영원한 동지가 되겠다는것을 굳게 결의 다지군 한다.(김용규)(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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